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362화 (362/366)
  • 외전 24화

    <당신의 곁에서>

    “다들 수고 하셨습니다!”

    “부상자 이쪽으로 인도 부탁드립니다!”

    포천 B급 게이트의 폭발이 가까스로 5일 만에 수습되었다.

    강희가 있었을 땐 게이트 폭발 이전에 인력을 미리 배치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감지 센서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어 폭발 초기에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다.

    민간인의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수습이 늦어진 건 사실이라 뉴스에선 강희의 빈자리에 대한 아쉬움이 심심찮게 들려왔다.

    ‘하미준 헌터가 협회장으로 자리 잡을 때까지 시간 좀 걸리겠네.’

    지의는 소멸하는 게이트를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고, 그 자리에서 기지개를 쭉 켰다. 쉬지 않고 이어진 전투에 팔다리가 저려서 며칠간 안정을 취해야 할 것 같았다.

    “수고하셨습니다, 신지의 헌터.”

    “아, 최민 헌터.”

    그때 지의의 옆으로 민이 슥 나타났다. 마지막 페이즈의 보스 몬스터를 상대할 때 생긴 얼굴 쪽 상처에 커다란 거즈를 붙이고 있었다.

    “상처, 깊은 건 아니죠?”

    “근육이랑 신경까지 다친 건 아니라 괜찮습니다. 며칠 치료하면 다 낫는다고 합니다.”

    지의가 걱정스럽게 묻자 민은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걸고 이야기했다. 민의 웃는 얼굴은 지의에게 이미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지옥도가 사라졌는데도 여전히 게이트가 생기고 폭발하는 게 참 모순적인 것 같습니다.”

    “그러게요.”

    민의 말에 지의는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처음 창조자가 지의에게 말한 대로, 이 세상이 존재하는 이상 게이트가 만들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옥도’처럼 인위적인 재앙이 생기지 않을 뿐, 인류를 위협하는 일은 언제 어디서라도 발생할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완전한 평화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래도 이겨낼 거잖아요. 그쵸?”

    지의가 희망에 찬 눈으로 민을 올려다보았다. 변하지 않고 늘 올곧은 그 눈빛에 민의 심장이 뛰었다. 그는 적당한 대답을 고르려다 포기하곤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툭.

    “앗…!”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민이 갑자기 지의 쪽으로 몸을 기울이더니 곧 지의에게 안기다시피 그에게 몸을 기댔다. 지의는 그의 양팔을 잡고 어정쩡하게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양새가 됐다.

    “저기 뭐야?”

    “신지의 헌터랑 누구야, 지금?”

    “저, 최민 헌…….”

    ‘잠깐. 이 사람 몸이 왜 이렇게 뜨거워?’

    지의가 당혹감에 버벅거리던 와중, 손바닥을 타고 느껴지는 비정상적인 열기에 눈을 크게 떴다. 고개를 돌려 민의 얼굴을 보자마자 지의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민이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눈의 초점이 흐려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여, 여기 치료계 헌터 좀 불러주세요!”

    “네?! 아, 네!”

    “최민 헌터, 최민 헌터! 정신 좀 차려 봐요!”

    주변 사람들이 치료 부스로 뛰어가는 사이 지의는 민의 몸을 조심스럽게 바닥 위로 눕혔다.

    “윽!”

    그의 피부에 닿은 것만으로 손끝이 뜨거워졌다. 지의가 붉어진 손가락에서 민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열이 오른 얼굴 위로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눈꺼풀이 무거운지 눈을 뜨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하아, 하아, 하…….”

    “최민 헌터, 제 말 들려요?”

    민은 가슴을 움켜쥔 채 거칠게 숨을 내쉬기만 할 뿐 지의의 말에 조금도 대답하지 못했다.

    ‘숨쉬기 힘들어…….’

    민이 정신을 잃지 않으려 이를 악물었지만, 시야의 가장자리부터 서서히 어두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민은 열심히 입술을 움직여 지의를 향해 연신 ‘괜찮습니다’하고 말했지만, 그의 귀에는 닿지 않았다.

    치료계 헌터가 허겁지겁 달려올 때쯤 민의 시야도 완전히 검게 물들었다.

    * * *

    민은 곧바로 근처 병원으로 이송됐다. 실려 가는 내내 치유계 헌터들이 달려들어 스킬을 썼지만, 상태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아 지의의 속이 타들어 갔다.

    정밀 검사에 들어갈 때쯤 진우가 허겁지겁 도착했고 의료진들과 함께 검사실 안으로 사라졌다. 지의는 닫힌 문을 바라보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외상도 아니고 정신계 스킬에 당한 것도 아니야.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지?’

    ―위이잉.

    지의가 검사실 앞을 30분째 서성거리고 나서야 검사실의 문이 열렸다. 지의는 몸을 퍼뜩 떨며 몸을 돌렸고 침대에 누운 채 안식을 취하고 있는 민과 마주했다.

    “병실에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의사의 말에 지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을 돌려 다시 민을 내려다 보았다. 아까보다 훨씬 안정된 모습이었지만, 여전히 호흡이 거칠었고 고통 때문에 입술을 깨문 건지 입술에 피딱지가 앉아 있었다.

    ―드르륵.

    민이 병실 침대로 옮겨지는 동안 의사가 지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식형 아이템에 의한 일시적인 쇼크입니다.”

    “이식형 아이템이요?”

    “네.”

    지의가 눈을 크게 뜨자 옆에 있던 진우가 말을 덧붙였다.

    “몸에 직접 삽입하는 형태의 아이템이에요. S급 중에서도 최상급 아이템 중 이런 형태가 많은데, 성능이 좋은 만큼 몸에서 거부 반응도 많이 생기죠…….”

    “이식형 아이템을 사용하는 헌터들이면 한번쯤은 겪는 일입니다. 최민 헌터의 경우 프로메테우스의 심장을 이식하신 상태셨습니다.”

    지의는 헌터 마켓 경매에서 프로메테우스의 심장을 구매하던 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S급 이식형 장신구, 프로메테우스의 심장. 민의 비행을 보조해주는 아이템이었다. 이식 전에도 패시브 스킬과 공격계 스킬을 응용해 짧은 비행은 가능했지만, 본격적으로 공중전을 치를 수 있게 된 건 프로메테우스의 심장 덕분이었다.

    “프로메테우스의 심장이 몸에 갑작스러운 무리를 줬고, 그것에 의한 쇼크일 확률이 높습니다. 근데…….”

    “무슨 문제가 있나요?”

    의사는 잠시 말을 고르다 대답했다.

    “이식형 아이템의 쇼크는 보통 상태 이상 형태로 나타납니다.”

    “상태 이상…….”

    “최민 헌터가 의식을 되찾았을 때 그 상태를 해제할 별도의 방법이 필요할 수도 있어요.”

    “없기를 바라야겠지만요…….”

    진우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며 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안정제를 맞고 잠든 민이 색색거리며 숨을 내쉬고 있었다.

    “하아아…….”

    지의는 마른세수를 하며 병실 벽에 기댔다. 지금 상황에서 자신이 민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게 너무나 절망적이었다.

    ‘상태 이상은 탄환으로도 못 푸는데.’

    지의는 레일리에게 벌어졌던 일을 떠올리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진우는 그런 지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다.

    “시, 신지의 헌터도 많이 지치셨을 텐데 일단 집으로 돌아가서 쉬세요.”

    “…아니요. 혹시 모르니까 최민 헌터 옆에 있을게요. 마음이 무거운 것보다 몸이 힘든 게 낫죠.”

    진우는 의사와 시선을 교환하다 곧 못 이긴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의식 돌아오거나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불러주세요.”

    “알겠습니다…….”

    ―드르륵.

    두 사람이 병실에서 나가자 지의는 침대 옆 소파에 주저앉았다. 숨 막히는 정적 속 지의의 긴 한숨과 민의 호흡만이 가득했다.

    ‘던전이라는 게 존재하는 이상 완전히 마음을 놓고 사는 일은 오지 않겠구나.’

    지의는 앞으로 숙였던 상체를 들어 민을 내려다보았다. 이렇게 무력한 그의 모습은 처음 보았다. 지의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오른쪽 눈을 감아봤지만, 상태 이상에 대한 건 보이지 않았다.

    “하암…….”

    긴장이 풀렸는지 졸음이 밀려왔고, 지의는 느릿느릿 간이침대를 꺼내 몸을 눕혔다. 천장을 보고 눕고 나서야 머리까지 피가 도는 듯했다.

    지의는 온몸이 녹는 듯한 착각과 함께 그대로 눈을 감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근새근 잠에 빠져들었다.

    .

    .

    .

    ―끼익.

    쇠끼리 맞부딪히는 소리에 지의가 단번에 눈을 떴다. 양손으로 눈을 비비며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뗀 후 고개를 돌렸다.

    ‘일어났나?’

    그러자 상체를 반쯤 일으킨 민이 보였다. 한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허공을 바라보는 그의 옆얼굴을 보자마자 지의도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최민 헌터, 정신이 좀 들어요?”

    “…….”

    지의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자 검붉은 눈동자가 그를 향했다. 민의 얼굴은 피곤에 절은 듯 초췌해 보였고, 다소 멍한 눈으로 지의를 빤히 응시했다.

    ‘여전히 몸이 안 좋은가?’

    지의는 식은땀으로 엉망이 된 민의 앞머리로 손을 뻗었다.

    ―쿵!

    “윽!”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진 일이었다. 민이 지의의 손목을 잡아당겨 침대에 고꾸라지게 만들더니, 곧바로 팔을 뒤로 꺾어 그를 제압했다.

    몽롱했던 지의의 정신이 단번에 또렷해졌다. 병원 로고가 박힌 새하얀 베개가 눈앞에 들이 밀어지고 나서야, 민이 자신을 공격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너, 뭐야.”

    “최민 헌터……!”

    어느새 지의의 뒤에 올라탄 민이 차갑게 말을 뱉었다. 지의는 힘겹게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창밖의 달빛을 받은 민의 두 눈이 살벌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지의가 몸부림쳤지만 팔과 다리가 완전히 짓눌린 탓에 좀처럼 민을 떨어트려 놓을 수 없었다.

    손목이 끊어질 것 같은 고통에 지의가 이를 악물었고, 곧 온힘을 다해 소리쳤다.

    “최민 헌터, 이것 좀 놓으세요!”

    [발언력 상승]

    [구원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최민’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수긍]

    “윽?!”

    발언력 창이 뜨고 나서야 민이 뒤로 물러났고, 지의는 그 틈을 타 침대 헤드 쪽으로 기어갔다. 지의와 민은 침대의 양 끝에 앉은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방금 뭘 한 거지? 정신계 스킬?”

    민은 인상을 찌푸리며 제 손과 지의를 번갈아 보았다.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자기도 모르게 몸이 움직인 걸 믿을 수 없는 눈치였다.

    “하아, 하아… 최민 헌터야말로 왜 절 공격한 거예요?”

    지의도 붉은 손자국이 남은 자신의 손목을 쓰다듬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이불 한 장을 사이에 둔 기묘한 대치 상황 속에서 지의는 민을 빤히 바라보았다.

    자신을 적대하는 눈빛, 날 선 말투, 그리고 그가 자신을 보자마자 뱉은 말. 그것들을 모두 종합했을 때 지의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단 하나였다.

    “최민 헌터, 저 누군지 모르죠.”

    민의 상태 이상이 기억 상실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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