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350화 (350/366)
  • 외전 12화

    ―지옥도 발생 31일차, 도윤.

    “아, 나왔다! 수원 S급 던전 공략 완료입니다!”

    ―쿠구궁.

    도윤이 소속된 파견팀이 게이트 밖으로 나오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헌터가 크게 외쳤다. 도윤은 뒤를 돌아 게이트가 완전히 소멸한 것을 확인한 후 이미 거리로 빠져나온 몬스터들 쪽으로 발을 옮겼다.

    “건물을 우선적으로 보호해 주세요! 주택가로 넘어가지 않게 방어선 만들어 주시고요!”

    “알겠어요!”

    도윤의 말에 주변에 있던 방어계 헌터들이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사람들의 이동에 거대한 도롱뇽 몬스터가 방향을 바꾸었고, 그들을 짓밟기 위해 빠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피잉.

    도윤은 녀석을 정면으로 마주한 채 활시위를 놓았다. 날렵한 바람 화살이 허공을 가르는 동시에 주변의 바람까지 전부 집어삼켰고 곧 거대한 돌풍 그 자체가 되어 몬스터의 몸을 그대로 관통했다.

    “키에에엑!”

    고막을 찢는 듯한 소름끼치는 괴성이었다. 도윤이 인상을 찡그리며 휘청거렸지만, 곧 중심을 잡고 이번엔 몬스터의 주변으로 천재지변을 일으켰다.

    ―콰광!

    빠르게 모인 먹구름 속에서 벼락이 떨어졌고 매서운 칼바람이 몬스터의 상처를 파고들었다. 도마뱀이 고통에 몸부림칠 때마다 거대한 머리가 신호등과 가로등에 부딪혔고, 기어코 무너지게 했다.

    ‘주위에 병원만 없어도 좀 괜찮을 텐데.’

    도윤은 못마땅한 얼굴로 주위를 살폈다. 뒤로는 주거 지역, 바로 옆 건물은 대형 병원인 탓에 온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지옥도 사태가 발생한 지 어느새 한 달이 흘렀기 때문에 배리어겔이 눈에 띄게 부식되어 있었다

    ―콰과광!

    도마뱀이 전투태세를 취하기 무섭게 도윤이 다시 시위를 당겼다. 바람 화살이 녀석의 머리와 목, 그리고 심장에 차례로 박혔고, 정확히 급소만을 노린 공격에 도마뱀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반쯤 전투 불능 상태가 된 도마뱀을 향해 헌터들이 스킬을 퍼부었다. 상처를 지지는 불의 구체와 도마뱀의 목구멍을 막아버린 단단한 흙더미, 그리고 사지를 짓누르는 거대한 폭포까지, 속성도 공격 방식도 다른 헌터들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몬스터들의 제거.

    “차, 차, 차도윤 헌터! 한 마리가 북쪽으로 도주했습니다!”

    “쳇, 알겠습니다. 제가 쫓을게요.”

    그때 공중을 날아다니며 상황을 살피던 헌터가 도윤을 향해 황급히 소리쳤다. 도윤이 혀를 차며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달려갔다. 이따금 자신의 뒤로 바람을 일으켜 더욱 빠르게 이동했다.

    ―피잉!

    도마뱀의 뒷모습이 시야에 잡히자마자 도윤은 그 자리에 멈춰서 시위를 놓았다. 화살과 함께 차가운 삭풍이 도마뱀을 맹렬하게 쫓았다.

    ―서걱.

    화살이 도마뱀의 척추를 관통한 동시에 칼날 같은 바람이 그대로 등가죽을 찢어 놓았다. 산 쪽으로 달려가던 도마뱀이 괴성을 지르며 옆으로 나동그라졌고, 도로에 세워져 있던 자동차들이 육중한 몸에 깔려 순식간에 찌그러졌다.

    ―퍼버벙!

    “큿……!”

    도마뱀에게 깔린 자동차 서너 대가 폭발했다. 갑자기 피어오른 불길은 흘러 나온 기름을 타고 더욱 몸집을 키우기 시작했다.

    도윤은 소매로 입과 코를 가리며 뒤로 물러났다. 도마뱀의 움직임을 막고 부상을 남긴 것까진 좋았는데 예상치 못한 화재 때문에 발이 묶였다.

    ‘여기서 내 스킬을 쓰면 무조건 다른 곳으로 번질 텐데…….’

    도윤이 곤란해하며 반사적으로 인벤토리부터 살폈다. 그의 바람과 달리 불을 진압할 한 아이템은 딱히 없었다.

    ―콰앙!

    번진 불이 또 다른 차를 폭발시켰다. 도윤 혼자선 수습 불가능해서 지원을 부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 하늘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피잉!

    바람 화살이 허공을 가르고 하늘을 향해 쭉 뻗었다. 연듯빛 궤적이 새카만 하늘을 뒤로 한 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키에에엑!”

    ―쾅!

    얼마 지나지 않아 엎어져 있던 도마뱀이 몸을 일으켰다. 몸에 불이 붙어 새카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지만 움직이는 덴 크게 지장이 없는 것 같았다.

    불이 번질 가능성 때문에 천재지변은 쓸 생각도 하지 않았다. 도윤은 시위를 당기며 최소한의 바람으로 단단한 화살을 만들었다.

    ―파바박.

    짧은 화살이 도마뱀의 목에 박혔다. 두꺼운 비늘을 뚫을 순 없었지만 검붉은 피가 녀석의 목을 따라 주르륵 흘렀다.

    ―두두두.

    ‘됐다.’

    도윤은 화재 현장의 반대편으로 달려가며 도마뱀을 유인했다. 몬스터가 도윤을 향해 달려오자마자 도윤은 몸을 돌려 한 손을 높이 들었다.

    ―콰과광!

    벼락 수십 개가 도마뱀에게 내리꽂혔다. 녀석은 감전된 것처럼 그대로 몸이 굳더니 도윤의 바로 앞으로 쓰러졌다. 도윤이 녀석의 머리를 향해 시위를 당기자 묵직한 바람 화살이 그의 손에 들어왔고, 화살은 시위를 떠나자마자 창처럼 두꺼워졌다.

    ―콰직!

    바람 화살이 도마뱀의 머리에 박혔다. 정확히 급소를 맞힌 덕에 녀석의 몸이 수십 갈래로 갈라지더니 곧 재가 되어 사라졌다.

    “후…….”

    도윤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활을 잠시 거뒀다. 이마에 맺힌 땀이 새하얀 볼을 따라 뚝뚝 떨어지는 동안, 도윤은 고개를 들어 4차선 도로를 전부 집어삼킨 불길을 바라보았다. 그가 몬스터를 해치우는 동안 옆 차로 계속해서 옮겨붙은 모양이었다.

    ‘신호를 다시 보내야…….’

    ―쿵!

    그때 엄청난 굉음이 거리에 울려 퍼졌다. 도윤이 두리번거리던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활활 타던 불길이 커다란 모래성으로 덮여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사아아.

    모래성이 무너지자 새카맣게 탄 자동차들의 형체가 나타났고 작은 불씨들도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도윤이 멍하니 그것을 바라볼 때쯤 머리 위쪽에서 무언가 날아오는 것을 느꼈다.

    “차도윤 헌터!”

    “한진우 헌터……!”

    진우가 행운의 토끼발을 탄 채로 도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진우의 함정계 스킬이 불길을 삼킨 것이었다. 흙더미가 산처럼 쌓이긴 했지만 불은 완벽하게 진화되었다.

    “신호 받고 왔어요! 다친 덴 없죠?”

    “네. 괜찮… 윽!”

    “으아아……!”

    ―탁.

    도윤이 갑자기 휘청거렸고 진우가 기겁하며 그의 양어깨를 잡았다. 진우가 고개를 내려 도윤의 발목을 살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요! 발목이 완전 뚫렸는데!”

    “다, 다친 줄도 몰랐네요.”

    도윤의 발목은 보스 몬스터의 공격으로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눈앞의 전투에 집중한 탓에 긴장이 풀리고 나서야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진우가 툴툴거리며 약손으로 도윤의 발목을 치료하는 동안 도윤이 힘없이 말을 뱉었다.

    “다른 곳 상황은 어떤가요.”

    “강남구에 있는 포항 S급 던전만 처리하면 일단 게이트는 전부 다 해결됐어요. 하미준 헌터랑 일본 헌터 두 분이서 같이 공략하는 중이에요.”

    “…신지의 헌터는 아직도 실종 상태인가요?”

    진우는 상처 위로 약손을 겹치다 말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강세빈 헌터랑 최민 헌터도 같이요.”

    “그 두 사람도요?”

    “네.”

    새로운 소식에 도윤이 두 눈을 크게 떴다.

    ‘핵심 전력의 절반이 빠졌는데도 이 정도로 버티다니…….’

    도윤이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말 그대로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어버린 ‘지옥도’는 어느새 당장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희미해져 있었다.

    “한진우 헌터는 기적을 믿으시나요?”

    “네? 으음…….”

    진우가 잠시 고민하다 곧 입을 열었다.

    “믿어요. 제가 각성한 것 자체가 기적이니까요.”

    “그렇군요. 전 안 믿어요.”

    “뭐, 뭐예요. 사람 무안하게!”

    진우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소리를 빽 질렀다. 도윤은 어딘가 모르게 멍한 얼굴로 잠시 생각에 잠겼다.

    ‘기적이란 건 결국 다 사람들이 노력한 결과가 아닐까?’

    도윤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다. 브로커 덕분에 각성했고, 강희 덕분에 지옥 같은 집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의가 자신을 죽이려던 모친을 저지하고, 고립될 뻔한 던전에서 구해 주었다.

    자신의 인생이 바뀐 그 모든 순간에, 자신의 옆엔 사람이 있었다. 그가 악인이든 선인이든 간에.

    ―사라락.

    역할을 다한 약손이 바스라졌다. 도윤의 발목은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해졌고 지금 당장 뛸 수 있을 정도로 멀쩡한 상태가 됐다.

    “감사합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을 한 거죠!”

    진우가 환하게 웃으며 주먹 쥔 손을 내밀자 도윤도 주먹을 내밀어 가볍게 부딪혔다.

    기적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해야 할 일, 또는 선한 의지를 따라 행동한 사람들이 모여 이뤄낸 성과였다.

    ‘기적’은 그저 그들의 노력을 겸손하게 부르는 이름일 뿐이었다.

    도윤은 그렇게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지친 몸을 움직일 힘이 조금 생겼다.

    ―삐빅.

    그때 헌터넷에 알림이 떴다.

    “와아!!!”

    “깜짝이야……!”

    “왜 갑자기 소란스러워진 거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환호성에 도윤과 진우가 몸을 파르르 떨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진우가 핸드폰을 보자마자 숨을 훅 들이켰다.

    [알림] 재앙 ‘지옥도’로 생성된 모든 게이트가 소멸하였습니다. 도시로 유출된 몬스터의 제거를 부탁드립니다.

    핸드폰 화면 정중앙에 그토록 바랐던 안내 문구가 떠 있었다.

    * * *

    “아, 더럽게 힘들었네…….”

    미준이 치료 부스에 누운 채로 중얼거렸다. 온몸이 피투성이인 데다가 오른쪽 어깨도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 있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키득거리며 웃었다.

    “카사노바 공주, 역시 네 녀석은 범상치 않구나. 역시 이 몸의 일등 수하, 쿨럭, 켁! 우욱!”

    “네네 쨩… 몸도 성치 않은데 제발 가만히 좀 있어요.”

    “큭큭… 네 상태도 만만치 않다, 푸른 눈의 카렌.”

    미준의 옆에 쪼르르 누워 있는 이시카와와 카렌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살아 있는 게 놀라울 정도로 처참한 몰골이었다. 치유계 헌터 서너 명이 달려들어 치료하는 동안에도 세 사람의 입은 쉬지 않았고, 오히려 평소보다 기분이 더욱 고양되어 큰 소리로 웃고 떠들었다.

    그 웃음소리는 다른 헌터들의 환호성에 섞여 도심 한복판에 울려 퍼졌다.

    재앙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인류의 승전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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