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351화 (351/366)
  • 외전 13화

    <바람둥이의 순정>

    S급 창조계 헌터 하미준. 그는 WNBA 선수인 엄마와 승무원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외동딸로, 초등학교를 졸업했을 때의 키가 이미 170cm를 훌쩍 넘긴 상태였다.

    키는 물론 골격과 체질까지 엄마를 똑 닮아 조금만 움직여도 근육이 붙었고, 기본적인 운동 신경도 우수했다.

    부유한 집안 환경과 또래보다 큰 몸집은 그의 성격까지 여유롭게 만들었다. 어른스럽지만 당돌한 면이 있어 어른들을 놀라게 하기 일쑤였다.

    중학교에 진학할 때 체육으로 유명한 학교들이 그에게 러브 콜을 보냈지만, 운동이라는 건전한 활동에 묶어두기엔 미준의 영혼이 지나치게 가벼웠다. 그는 운동보다는 사교를 택했다.

    “진혁이 안녕~ 오늘 가르마 바꿨네?”

    “어, 어, 맞아…! 아니, 내 이름 알고 있었어?”

    “그럼~ 우리 어제 여기서 인사했잖아.”

    복도에서 인사 한번 해 본 아이들의 이름까지 기억하고 대화를 붙이니, 미준은 학교의 아이돌이나 다름없었다. 한 반에 미준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적어도 서너 명씩은 꼭 있었다.

    유복한 집, 시원한 인상과 큰 키, 우수한 학업 성적과 센스 있는 성격까지. 누구나 호감을 가질 만한 인물이었다.

    ‘오늘도 사랑스러운 공주, 왕자님들의 마음을 뒤흔들었군.’

    굳이 단점이라고 한다면, 본인이 본인의 매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미준은 애정과 관심을 받는 것을 즐겼다.

    자신을 볼 때면 볼을 붉히는 사람들과, 괜히 말 한 번 섞어 보려 공통점을 만들어 오는 사람들은 늘 미준에게 큰 즐거움을 줬다.

    그렇게 중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가선 학업에 열중하나 싶었지만, 그의 첫 연애가 여기서 시작됐다.

    미준의 첫 애인은 옆 반의 남학생이었다. 그는 아이돌 연습생이었기에 두 사람이 사귄다는 소문이 퍼졌을 때 모두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미준은 제 애인이 ‘하미준의 남자친구’라는 타이틀로 묘한 우월감을 느끼는 걸 보며 귀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애인이 생기고 나니 그 누구도 미준의 호감을 사기 위해 바보 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다.

    갑자기 인생의 재미가 반감되자 미준은 예쁜 남자친구 대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의 바람둥이 기질이 발현한 순간이었다.

    ―짝!

    “이 나쁜 자식아악!”

    분명 뺨을 맞은 건 미준이었는데 남학생이 엉엉 울면서 복도를 달려 나갔다. 미준의 첫 연애는 27일 만에 끝났다. 사유는 미준이 다른 여학생의 이마에 입을 맞췄기 때문이었다.

    “미준아, 괜찮아?!”

    “아니, 좀 아픈 것 같아~ 양호실 같이 가주면 안 될까?”

    “어, 어? 그래!”

    미준은 입을 맞췄던 그 여학생의 어깨에 머리를 대며 어리광을 부렸다. 어젯밤 가로등 밑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얼굴을 붉게 물들였고, 볼만 살짝 부어오른 미준을 굳이 부축하며 양호실로 내려갔다.

    미준의 파란만장한 연애사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미준은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도 붙잡지 않았다. 자신이 누군가의 애인이었을 때도 다른 사람이 자신을 찾으면 사양하지 않고 다가갔다.

    대학교에 들어가니 그제야 미준을 쓰레기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생겼다. 연애를 하는 중에도 다른 사람들과 교제를 이어 나가고, 명백하게 자신에게 흑심을 품고 다가온 사람을 쳐내지도 않았다.

    “저 연애에 미친 연미새 X끼, 진짜 징하다…….”

    “익게에 글 쓰면 안 되냐? 하수영 선수 딸 개판이라고?”

    “써 봤자 뭐하냐. 우리만 피곤하지.”

    자신을 향한 비난에도 미준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의 주변에는 사람과 소문이 끊이지 않았고, 어떠한 방향으로든 관심이 쏟아졌다.

    담배나 술을 하지 않아도 하루하루 새로운 자극으로 가득해 그에게 만족감을 주었다. 미준은 후회 따위 하지 않았다.

    ―쾅!

    물론 그 자극을 찾으러 굳이 신입생 MT를 따라갔다가 게이트 발생에 휘말렸을 땐, 한 10분 정도 후회했다.

    “야, 튀어! 튀어!”

    “으아아악!”

    “같, 같이 가……!”

    숙소 정중앙에 떨어진 게이트에 평화로웠던 펜션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미준이 자신의 사비로 원래 숙소보다 훨씬 더 좋은 곳을 예약했는데, 그게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칠 줄은 몰랐다.

    “하미준 때문에 진짜 이게 뭐야, X발…….”

    “야, 다 들리잖아……!”

    “들으라고 하는 건데, 뭐.”

    미준을 향한 적나라한 비난이 이어졌다. 아무리 미준이어도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서까지 평정심을 유지하긴 힘들었다. 미준이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자신을 질책한 학생을 향해 입을 연 순간.

    “그게 왜 미준 선배님 때문이에요?”

    누군가 미준을 변호했다. 미준이 눈을 크게 뜨며 발언의 주인공을 찾자 이제 막 어린 티를 벗은 장발의 여학생이 시야에 잡혔다. 그는 눈을 똑바로 뜬 채 미준을 비난한 남학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친구 이름이 뭐였더라?’

    이름과 얼굴을 외우는 덴 도가 튼 미준이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었던 신입생이었다.

    미준이 그의 이름을 생각하는 동안 남학생은 어이없다는 듯 픽 웃으며 대답했다.

    “쟤가 여기를 예약했으니까 그렇…….”

    “미준 선배님이 여기서 게이트 터질 걸 알고 예약한 것도 아니잖아요. 지금 할 소리는 아닌 것 같네요.”

    “넌… 씨, 선배가 얘길 하는데…….”

    “야, 야, 네가 참아…….”

    여학생은 그대로 그를 지나쳐 가더니 제설함 뒤에 몸을 숨겼다. 그러고는 고개만 빼꼼 내밀어 게이트의 동태를 살폈다.

    “풉.”

    미준이 그 모습을 보며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미준에게 꽂혔다. 그 시선엔 미준을 비난하던 남학생의 것도 있었고, 그는 화를 참지 못하고 미준을 향해 성큼 다가갔다.

    ―우둑

    그가 미준의 멱살을 잡자 명품 로고가 박힌 셔츠 단추가 뜯어졌다.

    “야, 야, 김윤상 말려!"

    “지금 싸울 때 아니야, 임마!”

    주변 사람들이 남학생을 떼어 놓으려 했지만 그는 이까지 악물고 멱살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미준은 재밌다는 듯 씩 웃으며 남학생을 내려다 보았고, 그럴수록 남학생은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웃어?”

    “응. 우리 윤상이가 신입생한테 개 털리는 모습이 너무 재밌어서.”

    “이 새X가……!”

    ―쿵, 쿵.

    남학생이 손을 올린 그때, 게이트 안에서 몬스터가 나타났다. 펜션만 한 크기의 거대한 딱정벌레였다.

    “으, 으아아악!”

    딱정벌레가 기어 나오자 기어코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딱정벌레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수풀에 뛰어들거나 최대한 먼 곳으로 도망갔다. 여기저기서 우는 소리가 터져나왔고 소리를 들은 딱정벌레는 그쪽으로 천천히 발을 옮겼다.

    미준은 침착하게 주변에 있던 각목을 집어 들었다.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그나마 나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헌터들이 곧 온다고 했으니 그때까지만 버티면 돼.’

    ―툭.

    “깜짝이, 웁.”

    “쉿.”

    그때 미준을 변호했던 신입 여학생이 옆으로 다가왔다. 미준이 깜짝 놀라 무심코 소리를 지를 뻔하자 그가 양손을 번쩍 들어 미준의 입을 막았다.

    여학생은 딱정벌레를 흘긋 보며 미준의 어깨를 끌어내렸고, 그로 인해 미준은 허리를 숙인 채 그에게 귀를 빌려주었다.

    “저거 신종 딱정벌레예요. 시각이 없어서 아마 소리에만 반응할 거예요.”

    “그, 그래?”

    “물론 몬스터라서 100% 확신할 수는 없어요. 그래도 해봐서 나쁠 건 없을 테니까요.”

    여학생은 미준보다도 침착했다. 긴 머리카락을 하나로 야무지게 묶은 후 바닥을 굴러다니는 소주병 중 개봉하지 않은 것을 들고 왔다.

    미준은 자로 잰 듯 군더더기 없는 그의 움직임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선배님이 이 소주병 좀 저기로 던져주세요.”

    “계곡 쪽으로?”

    “네.”

    미준은 발 옆에 놓인 소주병 세 개를 바라보다 고개를 들어 딱정벌레와 주변 환경을 살폈다. 딱정벌레가 있는 곳으로부터 5m 간격으로 던지면 계곡 밑으로 빠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선배님 운동 잘한다면서요. 하수영 선수 딸이라고 하던데.”

    “못하진 않지.”

    “직접 보고 싶으니까 여기서 한번 보여주세요.”

    “허, 참…….”

    침착하다 못해 뻔뻔하기까지 했다. 미준은 그의 태도에 엄청난 흥미를 느꼈지만 일단 눈 앞의 상황을 해결하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후웅.

    미준이 소주병을 들어 숨을 깊게 들이마셨고 있는 힘껏 딱정벌레의 뒤쪽을 향해 던졌다.

    ―쨍그랑!

    파열음이 펜션촌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러자 몬스터가 수풀 속에 숨어 있던 학생들에게서 등을 돌리고 소주병 쪽으로 느릿느릿 움직였다.

    “진짜 잘하시네… 왜 운동 안 했어요?”

    “했으면 여기서 너처럼 귀여운 애들 못 만났을 테니까?”

    ―쨍그랑!

    또 다시 미준이 소주병을 던져 계곡 쪽으로 유도했다. 마지막 병을 던지고 나니 몬스터는 계곡이 보이는 낭떠러지에 아슬아슬하게 걸렸다.

    집채만 한 크기였지만 다리가 연약해서 힘주어 밀면 몸을 넘길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틱.

    그때 여학생이 품에서 라이터를 꺼내 각목에 불을 붙였다. 미리 소주를 부어 놓은 건지 횃불처럼 활활 잘 탔다.

    “…이것도 던져?”

    “힘들면 제가 다녀올게요.”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내가 해야지.”

    차마 자신보다 훨씬 작고 왜소한 후배에게 그런 일을 맡길 수 없었다. 미준은 두려운 감정을 숨기고 각목을 받아 들었다

    ‘여기선 던져도 택도 없겠군.’

    미준은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뎌 딱정벌레 몬스터와 천천히 거리를 좁혔다. 그동안 몬스터는 소주병 주위에서 발을 동동 구르기만 했다.

    ―콰직.

    “아.”

    그때였다. 미준이 바닥에 찌그러져 있던 캔을 미처 보지 못하고 밟아버렸다. 그 소리에 딱정벌레의 머리가 미준 쪽을 향했고 녀석이 느릿느릿 그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X발. 이젠 이판사판이다.’

    저를 향해 다가오는 거대한 벌레를 보며 미준은 마른세수를 했고, 불타는 각목을 야구 방망이처럼 들며 본격적인 전투 준비를 했다.

    ―키이이잉.

    [각성자 하미준]

    [대지 속성 개방]

    [고유 스킬 ‘도깨비 방망이’ 개방]

    “…응?”

    미준의 결심을 누군가 들어주기라도 한 듯, 그의 앞에 기적 같은 상태창이 나타났다.

    * * *

    미준의 각성과 함께 상황은 정말 빠르게 종결됐다. 고유 스킬과 더불어 A급 공격계 스킬인 ‘대지의 보은’도 열렸고, 몬스터는 미준의 나무뿌리 공격 한 번에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헌터들이 왔을 땐 이미 펜션촌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뛰어나와 미준을 둘러싸고 있었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미준을 욕하던 이들도 뻔뻔하게 그들에게 섞여 미준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그 친구 어디 갔지?’

    미준은 자신을 감싸줬던 여학생을 찾아 고개를 한참 두리번거렸다.

    “하미준 씨 맞으시죠?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 헌터협회 헌터 관리국장 김세…….”

    “아, 자, 잠깐만요!”

    “네? 하미준 씨!”

    구석에서 넘어진 친구를 치료해주던 그 여학생이 시야에 들어왔다. 미준이 헌터협회 국장을 뒤로 한 채 그에게 달려갔다.

    “아, 선배님…….”

    “넌 어디 다친 데 없어?”

    “네, 선배님 덕분에 괜찮아요.”

    여학생은 평온한 얼굴로 친구에게 밴드를 붙인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거 물어보시러 오신 거예요?”

    “어? 어, 그건 아니고.”

    ‘뭐야, 나 왜 이렇게 말을 못해?’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롭고 능구렁이처럼 이야기하던 미준이 여학생 앞에서 말을 버벅거렸다.

    “이름!”

    “네?”

    “이름 뭐야? 생각해 보니 못 들은 것 같아서.”

    여학생은 의아하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미준을 한참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뗐다.

    “선지은이에요.”

    바람이 불었다. 아직 쌀쌀했던 봄 공기가 미준의 얼굴에 닿았지만 화끈거리는 감각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누군가의 이름을 들은 것만으로 이토록 가슴이 뛴 적은 난생처음이었다.

    미준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곤 지은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하미준이야. 앞으로 자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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