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211화 (211/366)
  • 211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숨을 내쉴 때마다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바닥엔 피로 엉겨 붙은 사람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그나마 싸우고 있는 헌터들 역시 크게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두근두근.

    이런 참상은 몇 번을 보아도 적응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고, 생명의 불씨가 꺼져 가는 모습만큼 날 괴롭게 하는 건 없었으니까.

    ‘속이 울렁거려…….’

    “이 지긋지긋한 새끼들아…!”

    순간 눈앞이 크게 흔들릴 때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지호 언니의 목소리였다.

    -촤아악!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물로 만든 용이 가네샤의 머리를 부수고 다시 흩어졌다.

    “윽…….”

    “지호 언니!”

    언니는 공격을 쏟아 낸 후 바닥 위로 쓰러졌다. 빠르게 언니를 향해 달려가 몸부터 살폈다.

    “헉……!”

    명치 쪽이 피로 흥건했다. 언니의 몸을 잠깐 만진 것만으로 양손에 끈적한 피가 묻어 나오고 있었다.

    “녹두야, 배리어 바로 펼쳐 줘. 최대한 크게!”

    -키이잉.

    녹두가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기도 전에 돔 형태의 배리어가 먼저 만들어졌다. 주위에 있는 웬만한 부상자들을 전부 덮을 만큼 큰 배리어였기에, 여기저기서 새하얀 빛무리들이 날아들어 부상자들을 치유하기 시작했다.

    -쾅!

    물론 몬스터들까지 한꺼번에 가둔 바람에 하미준 헌터와 최민 헌터가 녀석들을 상대하러 움직였다.

    “지, 의……?”

    “어, 언니!”

    그때 지호 언니가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무언가 말하려 입술을 달싹거릴 때마다 찢어진 상처에서 피가 새어 나왔다.

    “말하지 마. 일단 여기서 쉬어.”

    지호 언니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후, 몸을 일으켜 다시 주위를 살폈다.

    우리가 이 던전을 클리어하는 동안 아마 게이트 밖으로 계속해서 몬스터가 빠져나왔을 것이다. 클리어 전까지 게이트가 닫히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법칙이니까.

    만약 우리가 처음 상대한 만큼 몬스터가 튀어나왔다면, 확실히 여기 있는 인력으로 상대하기엔 빠듯했겠지. 라울 국장이 S급 각성자이고 지호 언니와 이상욱 헌터가 수준급의 실력자라고 해도, S급 몬스터 수십 마리를 처리하기엔 어려웠을 것이다.

    더군다나 ‘지혜의 파편’에겐 전의를 상실케 하는 정신계 스킬이 있다. 그 사실을 밖에 있는 헌터들에게 전했어야 했는데…….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어.’

    던전 입구에서 몬스터들의 수준을 파악했을 때, 우리 중 한 사람을 밖에서 대기시켰어야 했다. 그랬다면 이것보다는 피해가 적었을 텐데.

    -탁.

    그때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생각과 죄책감에 잠겨 있던 정신이 단번에 현실로 돌아왔다. 고개를 돌리니 배리어의 끝을 향해 날아가고 있는 최민 헌터와 눈이 마주쳤다.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후웅.

    그는 입 모양으로 그렇게 말하곤 배리어 구석에 있던 ‘지혜의 파편’을 불로 집어삼켰다.

    “하아…….”

    -짝.

    양손으로 뺨을 치고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 필요한 건 자책이 아니라 이 상황을 타개할 대책이다.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동시에 몬스터가 어디까지 유출됐는지 확인해야 한다.

    “비스.”

    “…….”

    “비스!”

    옆에서 망연자실하게 서 있던 비스를 향해 소리치자 그가 몸을 파르르 떨며 그제야 나를 바라보았다. 게이트 밖의 상황이 이 정도로 안 좋을 줄은 비스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탁.

    비스의 양어깨를 붙잡고 입을 열었다.

    “비스, 부탁이 있어.”

    “…나한테?”

    “어?”

    비스의 물음에 나도 모르게 되묻자 그가 고개를 떨구며 중얼거렸다.

    “그 누구도 구하지 못하고 희생되는 걸 보기만 한 나한테 부탁을 한다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가네샤한테 당했을 때 도대체 무슨 소릴 들었길래 그러지?’

    내가 모르는 비스의 깊은 트라우마가 여전히 그의 목을 조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잠시 말을 고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배리어 밖으로 나가서 몬스터가 어디까지 나갔는지 알아봐 줘.”

    “…….”

    “지금 상황에서 너만 할 수 있는 일이야.”

    비스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더니 이내 배리어 안을 슥 훑었다. 어떻게든 상황을 이해해 보려는 듯한 태도였다.

    “이 배리어는 내가 있어야만 치료 효과가 발동돼. 여기 있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회복되고 나면 나도 바로 따라갈게.”

    “이미…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안 늦었어!”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비스 바즈라차르야’가 동요한다.]

    [발언 결과 : 비참]

    커다래진 붉은 눈동자를 똑바로 보며 말을 덧붙였다.

    “늦지 않았어. 늦었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해 봐야지.”

    “…….”

    “네가 뭐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지 솔직히 나는 몰라.”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넌 쿠마리를 해방시키려고 수십 년을 혼자 싸워 왔어.”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비스 바즈라차르야’가 동요한다.]

    “누군가 희생당하는 걸 지켜보기만 하지 않았다고.”

    “SS급…….”

    [발언 결과 : 투지]

    -까득.

    비스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의 눈매가 날카로워졌고, 좁혀진 미간에선 굳은 의지마저 느껴졌다.

    “네 녀석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군.”

    -펄럭.

    그가 뒤로 한발 물러나 망토의 모자를 뒤집어썼다.

    “난 이 땅에 있는 모든 쿠마리들을, 그리고 쿠마리였던 자들을 다시 인간으로서 존재하도록 만들 것이다.”

    “곧 그렇게 될 거야.”

    -후웅.

    비스는 칼리를 자신의 몸에 빙의시킨 후, 하늘 위로 높이 날아올랐다. 그는 한 손에 거대한 대낫을 든 채로 주위를 살피며 어딘가로 빠르게 날아갔다.

    ‘이제 내가 할 일을 할까.’

    -철컥.

    배리어 안에 있는 몬스터는 ‘지혜의 파편’ 두 마리와 ‘지혜의 도끼’ 네 마리. 세 명이서 여섯 마리를 상대해야 하는 데다가 부상자까지 같은 공간에 있다.

    쉬운 상황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버텨내야 한다.

    이 싸움에서 그 누구도 죽게 만들지 않기 위해.

    * * *

    “그 일은 너도 어떻게 할 수 없던 걸 잘 알고 있지 않느냐.”

    눈으로 몬스터의 흔적을 쫓는 동안 칼리 님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하지만 제가 더 신경 썼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은 맞죠.”

    -쾅!!

    주택가로 들어서는 가네샤 머리를 향해 창을 던졌다. 정확히 꿰뚫리고도 팔을 파르르 떨며 창을 뽑아내려는 움직임이 징그러웠다.

    -쿵.

    창 손잡이 위로 착지해 녀석을 완전히 제압한 후, 낫으로 한 번 더 공격하고 나서야 그것은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후우, 후……”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자 다행히 놈들은 주택가까진 오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다시 공중으로 날아올라 쑥대밭이 된 중심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비스, 꼭 돌아와야 해!”

    -두근두근.

    “…젠장할.”

    아수라장이 된 이 상황이 자꾸 내게 15년 전의 그 일을 상기시켰다. 완전히 잊은 줄 알았던 ‘그 애’의 목소리는 아직도 내 머릿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때 느꼈던 감정들은 더욱 선명하게 나를 옭아매는 것 같았다.

    -쾅!!

    “뭐야?!”

    그때 엄청난 폭발음이 들려왔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쿠마리 사원 쪽에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후웅.

    생각에 잠길 여유 따위 없었다. 사원 쪽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컥, 쿨럭!”

    건물 안에 있던 촛불이 번지기라도 했는지 창문을 타고 연기가 계속해서 새어 나왔다. 들이마신 연기가 순식간에 폐부에 들어차 기침이 자꾸만 터져 나왔다.

    -쿵, 쿵.

    고개를 내리니 가네샤 신의 머리가 사원의 하층부부터 천천히 위를 향해 기어 오고 있었다. 건물 앞을 지키고 있던 녀석들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끄아아악!”

    이번엔 멀리서 비명이 들려왔다. 저 멀리 보이는 밭 쪽에서 사람들이 도끼에게 쫓기고 있었다.

    ‘이런 지긋지긋한 몬스터 새끼들……!’

    -쉬이익.

    칼리 님을 몸에서 빼낸 동시에 나는 사원의 지붕 위로 착지했다.

    “비스?! 왜 갑자기 빙의를 푼 것이냐……!”

    “칼리 님, 무기를 하나만 빌려주세요.”

    “뭐라고?”

    칼리 님은 내 물음에 난색이 되며 눈을 크게 뜨셨다. 그런 당신을 향해 말을 덧붙였다.

    “이곳은 제가 맡겠습니다. 칼리 님은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세요.”

    “아이야, 네가 여기 있는 다른 녀석들보다야 강하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들과 비교했을 때뿐.”

    -툭.

    칼리 님의 손가락이 내 심장을 쿡 찔렀다.

    “나를 빙의시키지 않고 S급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적어도 여기 있는 아이가 도망갈 시간 정도는 벌어줄 수 있겠죠.”

    칼리 님이 하시는 말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나는 칼리 님의 힘을 받아 낼 수 있는 유일한 그릇일 뿐, 남들보다 월등한 힘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칼리 님의 무기를 휘두르는 것이 전부인, 약해 빠진 인간이니까.

    “힘을 두 군데로 분산할 수 없어. 선택해야 한다, 비스.”

    “…….”

    “네가 진짜로 구하고자 하는 걸 선택해라.”

    내가 구하고자 하는 것, 그것은 쿠마리가 되어 희생당한 아이들이다. 그러려면 이 사원 안에 있을 코피샤를 구해야겠지.

    “크아악!”

    “아빠! 누나!”

    -쿠구궁.

    하지만 사람들의 비명과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가 이성을 자꾸만 마비시킨다.

    ‘나는 어쩌다 인간들을 구하게 된 걸까.’

    딱히 인간들에게 사랑받은 기억도, 인정받은 기억도 없는데 왜 나는 이들을 계속해서 구해 왔는가.

    “탈레주 님, 제발 저희들을 구해 주소서. 이 고난으로부터 저희를 구원해 주소서.”

    그때였다. 사원의 창가에서 어린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내리자 코피샤가 창가에 기대어 계속해서 기도를 외고 있었다.

    “꼬맹이…….”

    “안 돼애애!”

    동시에 밭 쪽에 있던 가족들의 비명이 날카롭게 울렸다.

    “언젠가 사람들이 너한테 고마워할 거라고 했잖아.”

    “넌 정말 멋있는 사람이야, 비스.”

    SS급의 목소리와 ‘그 애’의 목소리가 다시금 귓가에 울렸다. 그제야 나는 내 질문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게 됐다.

    ‘나는 탈레주의 현신이 아닌, 사람들이 원하는 신으로서 존재하고 싶었구나.’

    탈레주의 현신으로서 존재하는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 발로 걸을 수도, 감정을 드러낼 수도, 그리고 사람들을 도울 수도. 그건 내가 원하던 신의 모습이 아니었다.

    나는 위험에 처한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그런 신으로 존재하고 싶었다.

    -철컹.

    “비스!”

    “칼리 님은 저들을 구해 주세요!”

    “저 멍청한 녀석이……!”

    칼리 님의 손에 들린 창 하나를 뺏어 코피샤의 창문 쪽으로 몸을 날렸다.

    ‘참으로 바보 같고 어리석은 행동이구나.’

    내 행동이 우스워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누구보다 쿠마리가 됐던 나 자신을, 그리고 쿠마리를 만든 이 나라를 저주했는데. 정작 나는 다시 이 나라의 신이 되고 싶었다는 걸 깨달았으니 말이다.

    “하…….”

    하지만 후회는 없다. 이 나라의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면, 그깟 신 몇 번이고 되어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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