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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비명헌터-210화 (210/366)
  • 210화

    물줄기가 사원의 바닥은 물론 공중에도 생겼다. 물에선 뜨거운 김이 올라오고 있어서 주변에 가까이 가는 것만으로 피부가 화끈거렸다.

    예상보다 더 위협적인 물줄기에 놀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유유히 나무다리를 만들던 하미준 헌터도 강에 닿자마자 문드러지는 나무뿌리를 보자마자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듯 강줄기의 경로를 꼼꼼하게 살폈다.

    -펑!

    그때 최민 헌터가 강을 향해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 푸른 불꽃이 강줄기를 뚝 끊어 놓나 싶더니 이내 금방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폭발물이 밑으로 떨어질 수도 있으니 웬만하면 물줄기는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는 말을 마친 후 장갑을 끌어당겨 손에 딱 맞췄다.

    ‘강이 너무 많이 생기네.’

    고개를 들어 녹두를 살짝 보았다. 커진 덩치를 보니 도저히 강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녹두야. 잠깐만 들어가 있자.”

    ‘응. 알겠어.’

    다행히 녹두도 내 의도를 알아챘는지 순순히 팔찌 안으로 들어가 주었다.

    -풍덩.

    이번엔 물 위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사원을 가득 메운 강 위로 손바닥만 한 가네샤 상들이 하나둘씩 떨어지고 있었다. 그것들이 물을 타고 둥둥 떠내려오기 시작할 때쯤.

    -퍼버버벙!!

    본격적인 폭발도 함께 시작됐다.

    “쳇!”

    폭발 때문에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용암에 가까운 물이 여기저기서 터져 사원의 온도가 빠르게 올라갔다. 물방울들이 시야를 방해한 탓에 가네샤를 제대로 볼 수도 없었다.

    -우우우웅.

    일단 급한 대로 방아쇠를 길게 당겨 공간 전체를 울렸다. 강을 타고 떠내려오는 가네샤 상들이 크게 흔들리더니, 폭발하기도 전에 바스라지며 그대로 물에 섞였다.

    “신지의 헌터, 뒤쪽!”

    “윽!”

    하미준 헌터의 경고에 뒤를 돌자 물줄기에서 튕겨 나온 석상 하나가 내게 날아오고 있었다.

    -펑!!

    재빠르게 허리를 숙여 폭발은 피했지만, 다리 부근에서 흐르고 있던 또 다른 강물에 종아리가 닿아 화끈한 통증이 느껴졌다.

    ‘가네샤랑 거리를 좁히는 게 우선이야……!’

    이 물줄기들은 일종의 방어막, 체력이 떨어진 가네샤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이것을 전부 없앤 후에 가네샤를 공격하는 건 시간 낭비다.

    -타닥!

    아슬아슬하게 폭발을 피해 물줄기 사이를 파고들었다. 폭발이 일지 않아도 굽이치는 강물 때문에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어 피부가 따끔거렸지만, 신경 쓰지 않고 눈으로 가네샤의 흔적을 좇았다.

    허공에 떠 있는 강을 다섯 개쯤 건넜을 때, 마침내 수십 개의 물줄기로 둘러싸인 가네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들 이쪽이에요!”

    -철컥.

    소리로 위치를 알린 후 자아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탕!!

    자아에서 빠져나온 새하얀 탄환은 강들의 틈을 파고들어 가네샤의 가슴 한가운데 박혔다.

    “괴롭고, 달콤하구나!”

    목이 쉬었는지 가네샤의 목소리가 아까보다 훨씬 갈라져 있었다.

    -후웅.

    하지만 도끼를 드는 움직임은 여전히 날쌨다. 가네샤가 도끼를 휘두르느라 강물을 헤집자, 강을 따라 떠내려오던 석상이 경로를 바꿔 일제히 내 쪽으로 날아왔다.

    “흡……!”

    -퍼버벙!

    크게 뽑은 쉴드를 그것들 쪽으로 밀자 석상들이 터져 나갔다.

    “틈을 잘 벌려 주었구나.”

    갑자기 나타난 칼리가 나를 향해 씩 웃어 보이곤 끊어진 강줄기 너머의 가네샤를 향해 낫을 높이 들었다.

    -쾅!!

    대낫이 가네샤의 머리를 마구잡이로 내려찍기 시작했다. 가네샤가 손으로 낫을 뽑아 던졌지만, 칼리는 금방 다시 돌아와 같은 곳을 계속해서 공격했다.

    ‘구원자의 무기 창고.’

    가네샤가 칼리에게 정신이 팔린 지금이 치명타를 날릴 기회다. 창고 안에 있던 바주카를 꺼내자 무게 탓에 잠깐 주저앉았다.

    -까앙!

    “아악!”

    결국 가네샤의 도끼가 칼리의 낫을 제대로 쳐냈다. 칼리가 무기를 놓치자 가네샤는 기다렸다는 듯 그의 몸을 쥐어 천장으로 던졌다. 칼리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사원 벽에 몸을 크게 부딪혔다.

    -퍼엉!!

    가네샤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가 방심한 틈을 타 소리 포탄을 날렸다.

    포탄은 가네샤의 배를 뚫은 채 그대로 사라졌고, 녀석의 복부에 생긴 커다란 구멍은 어느새 영역을 넓혀 녀석의 몸 전체를 비틀어 놓았다.

    “크아아악!!”

    이번엔 가네샤의 비명이 사원 전체에 울려 퍼졌다. 녀석은 양손으로 배를 움켜쥐며 옆으로 쓰러졌다. 육중한 몸이 사원의 바닥에 닿자마자 벽에 진열되어 있던 다른 석상들까지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퍼버벙!

    ‘젠장할. 완전 목숨이 끊어진 건 아니구나.’

    주위를 둘러보니 물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석상의 수가 아까보다 늘었다. 쓰러진 가네샤를 엄호하듯 녀석의 주위로 영역을 넓히는 강물을 피해 몸을 이리저리 틀자 슬슬 집중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헉……!”

    강물을 피해 몸을 뒤로 돌자마자 석상 서너 개가 내 눈앞으로 떨어졌다. 가네샤 석상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서서히 팽창하는 모습이 슬로모션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쾅!!

    “신지의 헌터!”

    쉴드를 뽑아낼 시간조차 없어 최대한 몸을 뒤로 뺐다. 엄청난 폭발음이 최민 헌터의 목소리를 집어삼켰다. 귓가에 이명에 울리면서 내 몸은 보이지 않는 힘에 다시 한번 뒤로 당겨졌다.

    폭발이 서서히 잦아든 것을 느끼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살아 있나……?’

    바보 같은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두 팔과 두 다리, 그리고 머리와 몸통 모두 크게 다친 곳 없이 멀쩡했다. 앞도 잘 보이고 소리도 잘 들렸다.

    나도 모르게 스틱스 강을 쓴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모든 것이 멀쩡했다.

    -펄럭.

    그때 붉은 천이 눈앞을 가로막았다. 천을 따라 천천히 고개를 들자 틀어올린 검은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비스, 컥……! 콜록, 콜록!”

    “흥, 멍청한 녀석.”

    방금까지 최민 헌터의 방공호 안에서 죽은 듯이 잠들어 있던 비스였다. 반가움에 목이 메어 헛기침을 몇 번 토하고 나서야 제대로 된 목소리가 나왔다.

    “괜찮아?”

    “멀쩡하다. 잠깐 의식을 잃었던 것뿐이니까.”

    그의 등 뒤로 여러 개의 팔이 둥둥 떠 있는 걸 보니 칼리를 빙의시킨 상태였다. 그는 사원 전체에 깔린 강물을 눈으로 훑은 후 나를 돌아보았다.

    “마지막 페이즈인가? 차투르티 축제도 아니고 사방이 가네샤 상 천지로군.”

    “정확히 맞았어. 이게 가네샤의 마지막 페이즈인 차투르티 축제거든.”

    “허.”

    비스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쳤다.

    “이 물은 하미준 헌터의 나무뿌리도 녹일 정도로 위험해. 그리고 물 위를 떠다니는 석상은 일정 시간 이후에 폭발하고.”

    “그걸 뻔히 아는 녀석이 띨빵하게 당할 뻔했구나.”

    “너야말로 안 구해 준다고 해 놓고 또 구해 줬잖아.”

    [발언력 상승]

    [각성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비스 바즈라차르야’가 동요한다.]

    [발언 결과 : 성가심]

    비스도 정곡을 찔렸는지 몸을 살짝 떨며 놀란 티를 냈다.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이 이미 습관인 것 같은데, 비스 본인만 그것을 모르는 듯했다.

    -바스락.

    비스는 아이테르의 로브를 다시 제대로 갖춰 입은 후 바닥 위로 엎어진 가네샤를 내려다보았다. 녀석의 주위엔 더욱 거세진 물줄기가 녀석을 단단히 보호하고 있었다.

    이젠 정말로 마지막을 볼 때가 되었다.

    자아를 입가로 가져와 사원 어딘가에 있을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사원 벽 쪽에 가네샤가 쓰러져 있어요! 이번 공격으로 마무리 지을 거니까 다들 힘을 보태 주세요!”

    “오케이~”

    “알겠습니다!”

    사방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조금 안심하며 가네샤를 향해 자아를 들었다.

    “일단 물줄기는 내가 끊어 볼게. 그 틈에 네가 공격해.”

    “알겠다.”

    “그다음엔 내가 제대로 한 방 먹일 테니까.”

    -쾅!!

    비스의 대답을 듣기 전에 자아의 방아쇠부터 당겼다. 평소보다 크게 뽑은 탄환이 가네샤를 휘감은 물줄기를 단번에 끊어 놓았고, 그 위에 있던 석상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마구잡이로 폭발을 일으켰다.

    -펑!!

    물줄기가 다시 이어질 뻔했지만 양옆으로 터진 불이 막은 덕에 가네샤의 몸이 완전히 노출되었다.

    “한 번에 끝내!”

    “알겠어!”

    비스가 바람처럼 날아가 그 사이를 파고들었다. 양손에 들린 낫과 등 뒤의 팔이 들고 있는 창이 일제히 가네샤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콰과과광!!

    “크어어억!”

    비스의 낫이 가네샤의 목을 찌르자마자 그의 팔에 들려 있던 창들은 다리에 꽂혔다. 가네샤는 비명을 고래고래 지르며 몸부림쳤지만 자신의 몸에 박힌 무기를 뽑아내진 못했다.

    -콰직.

    어느새 튀어나온 나무뿌리에 몸통까지 옭아매인 탓에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구원자의 무기 창고!’

    -철컥.

    양손으로 박격포를 쥐고 가네샤를 향해 던졌다.

    “전부 비켜!!”

    박격포의 포구가 핑그르르 돌더니 정확히 가네샤의 머리를 향했다. 내 경고를 듣자마자 주위에 있던 비스가 단번에 몸을 돌려 천장 쪽으로 날아갔고, 그 사이에 박격포는 가네샤의 머리 바로 위까지 이동했다.

    -콰과과과광!!

    엄청난 폭발이었다. 가네샤의 비명은 폭발음에 묻히고 사원 전체를 두르고 있던 강줄기가 점점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쨍그랑!

    그러더니 이내 강은 완전히 사라졌고 부유하던 석상들이 폭발하지 않고 밑으로 떨어져 그대로 깨졌다.

    “하아, 하아…….”

    가네샤 주위에 껴 있던 먼지바람이 서서히 걷히자 새까만 재가 되어 버린 녀석의 잔해가 보였다.

    “됐다!”

    “제법이구나!”

    하미준 헌터와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칼리가 동시에 소리치고 나서야 비로소 실감이 났다.

    토카의 S급 게이트를 클리어했다는 사실을.

    -탁.

    땅으로 내려오자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옆에 있던 하미준 헌터 덕에 엉덩방아를 찧는 건 겨우 피했지만, 힘을 지탱할 곳이 없어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바닥에 천천히 앉았다.

    ‘드디어 끝냈네.’

    생각보다 난도가 있어 어떻게 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아무도 크게 다치지 않고 클리어했다. 안도감과 후련함이 온몸에 퍼지며 이제야 전신에 피가 도는 느낌이었다.

    “뭐가 그렇게 후련하지? 고작 게이트 하나 클리어했을 뿐이다.”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비스가 차갑게 말을 뱉었다.

    -바스락.

    ‘응?’

    하지만 그는 내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굳은살과 상처로 뒤덮인 그의 손과 붉은 눈동자를 번갈아 보았다. 그의 입가에 은근한 미소가 걸린 것처럼 보였다.

    -텁.

    비스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의 시선도 나를 따라왔다.

    “이제 나가서 남은 몬스터들만 좀 정리하면 되겠네.”

    “그렇지.”

    “그 애도 다시 만나봐야 하고.”

    코피샤 이야기를 꺼내자 비스의 눈이 잠깐 커다래지더니 이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크게 다친 곳 없지? 이제 나갈까?”

    “아, 네. 얼른 가죠.”

    -쿠구궁.

    하미준 헌터가 가네샤의 잔해 너머에 있는 게이트에 손을 대고 그대로 쭉 밀었다.

    “클리어 완료~ 여기 상태는 어…….”

    가장 먼저 게이트 밖으로 나온 하미준 헌터가 말을 뚝 멈췄다. 그의 키 때문에 게이트 밖 상황이 보이지 않아, 나는 그를 살짝 밀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이게 뭐야.’

    그리고 나도 하미준 헌터처럼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쾅, 쾅.

    건물을 부수는 ‘지혜의 도끼’, 헌터들을 마구잡이로 공격하는 ‘지혜의 파편’.

    분명 우리가 들어오기 전까지 멀쩡했던 방어 전선은 완전히 해체되어 피비린내와 사람들의 비명으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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