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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비명헌터-212화 (212/366)
  • 212화

    -드르륵.

    창을 벽에 꽂은 채로 내려와 창틀에 착지하자, 그곳에 기대어 있던 코피샤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 눈물을 잔뜩 머금어 반짝거리는 눈동자가 유독 ‘그 애’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 탈레주 님?”

    여전히 나를 탈레주 신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꼬맹이는 여전히 나를 그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다.

    ‘관리인들은 어딜 간 거지.’

    꼬맹이의 방 내부를 눈으로 훑었다. 깨진 석상 조각과 장식물들을 제외하고 전투의 흔적처럼 보이는 것은 없었다. 당연히 혈흔과 시체도 없었다.

    “네 수발을 들어주는 놈들은 전부 어디 갔지?”

    “모르겠습니다. 이곳에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말만 하고 사라졌습니다.”

    아무리 자기 목숨이 중요하다고 해도 쿠마리를 두고 갈 정도로 책임감이 없는 녀석들을 쿠마리의 수족으로 뽑지 않는다. 꼬맹이를 이곳에 두고 사라진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화르륵.

    그때 벽에서 불꽃이 튀었다. 잘못 본 건가 싶어 벽 앞에 서서 자세히 보니 벽 전체에 얄팍하게 불이 덮여 있었다.

    ‘방어계 스킬 같군.’

    꼬맹이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녀석은 날 올려다보았다.

    “이곳의 관리인들 중에 각성자가 있느냐?”

    “네?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각성 사실을 숨겼나 보…….”

    -쿵.

    그때 묵직한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들자 창가에 있던 가네샤와 눈이 마주쳤다. 네 개의 팔로 창틀을 움켜쥔 녀석의 눈동자는 나를 빤히 응시하다 순간 꼬맹이를 향했다.

    “엎드려!”

    “네? 와악!”

    -콰직!!

    창으로 가네샤의 머리 한가운데를 관통했다. 팔을 휘둘러 창에 박힌 가네샤를 털어 내자 녀석이 빠르게 추락했다.

    일단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이곳의 생존자들을 SS급의 방어막이 있는 곳으로 이동시켜야 해.

    “뛸 수 있나?”

    “어…….”

    “쿠마리로서가 아니라 코피샤 바즈라차르야로서 뛸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쿠마리가 된 지 얼마 안 됐으니 어떻게 걷고 뛰는지 정도는 기억하고 있지 않느냐.”

    꼬맹이는 잠시 망설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무조건 숨어라. 절대 나보다 앞서 나가지 말고, 너무 멀리 떨어지지도 말아라.”

    “알겠습니다…….”

    -치지직.

    손바닥을 태우는 통증을 참아 내며 그대로 문고리를 돌려 방을 나섰다.

    -철퍽.

    “뭐야……!”

    꼬맹이의 방과 달리, 복도는 전투의 흔적으로 완전히 아수라장이었다. 시뻘건 피 웅덩이가 군데군데 고여 있었고, 찢긴 옷자락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이 방어막이 계속 유지되고 있다는 건, 이 스킬을 쓴 녀석도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다.

    ‘전멸하지는 않았을 거야. 분명 이 사원 어딘가에 살아 있어.’

    “널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놓은 후, 네 관리인들도 같이 구조할 거다.”

    “…….”

    “그러니까 안심해.”

    잔뜩 겁을 먹은 꼬맹이를 달랜 후, 복도를 조심스럽게 통과했다.

    -끼익, 끼익.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삐걱거리는 계단을 지나 다행히 1층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아까 떨어트린 녀석이 오기까지 시간이 좀 걸릴 테니 그 틈에 빠르게 이동하면 되겠지.

    “…잠깐.”

    지금 사원 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놈과 내가 떨어트린 놈이 같은 놈이라면, 아까 그놈에게도 전투의 상흔이 있어야 했다.

    꼬맹이의 방 앞에 방어막을 세운 녀석의 등급은 모르지만, 꽤 견고한 걸로 봤을 때 가네샤 머리에게 한 대 정도는 때릴 수 있는 레벨이겠지.

    즉, 이 사원 안에 여전히 몬스터가 있다는 소리다.

    -쾅!!

    의문점에 마침표를 찍자마자, 천장에 매달려 있던 가네샤 머리가 나를 향해 빠르게 추락했다.

    “숨어 있어!”

    “네, 네!”

    -콰드득.

    꼬맹이가 사원 구석으로 달려가는 동안, 창으로 가네샤 머리의 팔을 찔렀다. 녀석은 이미 한 차례 전투를 치렀는지 팔 두 개가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촤아악.

    다른 하나를 완전히 도려낸 후 발로 그것을 찼다. 그것은 사원 기둥에 쿵 부딪히더니 밑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엉망진창인 팔로 몸을 일으키더니 다시 벌레처럼 내게 기어 왔다.

    녀석은 지금 무기 없이 맨몸으로 싸우고 있다. 승산은 충분히 있어.

    -콰직!

    양발로 녀석의 팔을 완전히 누른 후 창으로 마구 찔렀다. 그러자 녀석은 서서히 몸에 힘이 풀리는 듯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했다. 날의 방향을 바꿔 세로로 베자 녀석의 형체는 완전히 뭉개졌고 이내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후…….”

    숨을 고른 후 꼬맹이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녀석은 기둥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더니 내 모습을 보고 흠칫 몸을 떨었다.

    “…무섭느냐?”

    “…….”

    “설마 아직도 날 탈레주 신이라고 믿고 있는 건 아니겠지?”

    꼬맹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탈레주 신이 붉은 눈동자를 가졌을 리 없으니까요.”

    역시 이곳에 머물기엔 너무나도 총명한 아이다. 꼬맹이는 아까보다 차분해진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당신의 진짜 이름은 무엇인가요?”

    “그게 왜 궁금하지?”

    “저를 구해 주셨잖아요. 나중에 은혜를 갚으려면 이름이라도 알아야죠.”

    “은혜를 갚긴 무슨.”

    어린아이가 못 하는 소리가 없군. 어이가 없어 문 쪽으로 먼저 몸을 틀자 뒤쪽에서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신께 기도라도 할 거예요!”

    다시 꼬맹이를 보자 녀석은 제법 고집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당신의 앞길에 늘 축복만 가득하기를 빌고 싶어요.”

    “…하.”

    위층에 있던 연기가 여기까지 내려오기라도 했는지, 이상하게 눈이 시큰거렸다.

    ‘나를 위해 기도를 올리겠다고 하지를 않나, 사람들이 내게 고마워할 거라고 하질 않나.’

    요 며칠 사이에 이상한 녀석들을 너무 많이 만난 듯하다.

    “비스.”

    “…….”

    “비스 바즈라차르야다.”

    “신기하네요. 저도 바즈라차르야인데……!”

    꼬맹이는 배시시 웃으며 손가락으로 제 옷의 소매 끝을 만지작거렸다. 감정이 허락되지 않은 어린 현신의 얼굴에 따스한 미소가 걸렸다.

    나는 문손잡이를 잡은 채 꼬맹이를 향해 다른 손을 내밀었다.

    “잔말 말고 이제 나가…….”

    -쾅!!

    “윽?!”

    가만히 있던 문이 갑자기 내 쪽으로 날아오더니 이내 그것을 뚫고 도끼를 든 가네샤 머리가 내 앞으로 불쑥 나타났다.

    -쾅!

    칼리 님의 창이 도끼의 날들과 맞부딪혔다. 녀석은 팔 네 개에 제 무게를 완전히 실어 나를 눌렀고, 난 아예 몸을 뒤로 빼 녀석을 땅 쪽으로 유인했다.

    ‘아까 떨어트렸던 그 녀석이군……!’

    -쿵.

    녀석이 보기 좋게 바닥으로 떨어지자마자 창의 방향을 밑으로 바꾸었다.

    ‘몸이 반쯤 부서진 주제에 날쌔 가지곤.’

    놈은 아까 추락한 탓에 몸이 성치 않았지만 그래도 네 개의 손에 무기를 들고 나를 향해 무서운 태세로 다가왔다.

    -챙, 챙, 챙.

    공격이 빠르게 이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던전을 클리어하느라 몸에 쌓였던 피로감이 서서히 몸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큭!”

    “비스 님!”

    -촤아악.

    잠깐 집중력이 흐트러진 사이, 도끼날이 망토 안을 파고들어 순식간에 쇄골 쪽을 강하게 찢었다. 바로 떨어트려 놓긴 했지만 날이 깊게 들어갔는지 왼쪽 어깨가 마비된 것처럼 저려와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허억, 흑, 윽……!”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아득해지려는 의식을 겨우 붙잡고 창을 붙잡았다.

    ‘손까지 말을 안 듣는군.’

    신경까지 잘라 놓았나 보다. 왼손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아 결국 오른손 하나로 힘겹게 창을 들었다.

    -후웅.

    무게 때문에 공격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그리고 그런 나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놈은 더욱 기세가 등등해져 아까보다 저돌적인 태세로 달려들었다.

    견뎌내야 한다. 여기서 사지가 찢긴다 해도 이 땅 위에 숨 쉬고 있는 모든 존재를 지켜야 한다.

    “비스 님…….”

    그것이 인간으로 태어나 신으로 죽은 아이들에 대한 나의 속죄다.

    -콰직!

    도끼날이 셀 수 없이 나를 찍고 나서야 녀석의 이마를 꿰뚫었다. 방심한 놈은 몸을 파르르 떨며 눈을 크게 떴다.

    -찌익.

    하지만 녀석의 도끼날 끝도 내 오른쪽 손목을 찍어 누르고 있었다.

    여기서 창을 빼내면 적당히 찢어지는 걸로 부상을 막겠지만, 치명상을 입힐 기회가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

    반대로 창을 더욱 깊게 파고들어 계속해서 공격하면 녀석을 없앨 수도 있지만, 앞으로 오른쪽 팔을 쓰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철컹.

    ‘고민하는 것 자체가 바보 같은 행위야.’

    눈을 질끈 감고 숨을 한 번 내쉬었다. 그러곤 손에 힘을 주었다.

    “으아아아악!!!”

    “비스 님! 안 돼요!”

    -촤아악!

    꼬맹이의 절규를 들으며 가네샤 머리 쪽으로 창을 더욱 깊게 밀어 넣었다.

    -후두둑.

    그럴수록 살을 찍었던 도끼가 팔을 타고 위쪽으로 올라와 목까지 다다랐다.

    온몸이 타는 것 같았다. 수천 개의 송곳으로 나를 짓누르는 듯한 고통에 몇 번이고 눈앞이 점멸했다.

    -콰지직!

    녀석을 창에 꽂은 채로 바닥을 향해 박은 후 발로 녀석의 손을 짓밟았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녀석이 무기를 놓쳤지만, 손톱으로 내 발목을 할퀴고 박아 넣으며 마지막 발악을 하기 시작했다.

    ‘이젠 진짜로 끝이다.’

    -콰드득!

    창의 방향을 바꿔 머리를 완전히 가르자 놈의 움직임이 멎었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주위를 살피더니 이내 까무룩 뒤집어졌고, 온몸은 새까만 재가 되어 사라졌다.

    “하아, 하아… 하하…….”

    -쿵.

    “비스 님!”

    그리고 나도 녀석의 잔해 위로 쓰러졌다. 쓰러지지 않으려 버틸 생각도 없었다. 실을 끊어 버린 꼭두각시 인형처럼 나는 그 자리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비스 님, 비스 님……!”

    꼬맹이는 내 앞에 무릎 꿇은 채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 내 몸에 손도 대지 못하고 안절부절 주위만 둘러보며 도움을 청할 사람을 찾는 듯했다.

    ‘이제 정말로 끝났구나.’

    인간으로 태어나, 신으로 살았고, 결국은 타락한 신이 되어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혔다. 신이 된 아이들과 신이 될 아이들을 구했고, 동시에 잃었다.

    타락한 신이 된 아이들이 땅속에서 눈을 감는 모습을 보며, 이깟 쿠마리 하나 없애지 못한 나 자신을 저주했다.

    ‘그 아이’의 끝을 지키지 못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이대로 죽으면 나는 지옥으로 떨어질까, 아니면 그 애와 같은 곳으로 갈 수 있을까.’

    두 눈이 무겁게 감겼다. 꼬맹이의 우는 소리와 비명이 서서히 멀게 들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희생당하는 걸 지켜보기만 하지 않았다고.”

    세상이 적막해진 순간, SS급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만약 그 말을 ’그 아이‘도 들었다면 너는 어떤 대답을 했을까. SS급의 말에 동의했을까, 그게 아니라면…….

    ‘사실 나를 원망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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