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35화 (35/366)
  • 35화

    물론 게임과 던전은 다르지만, 지금만큼은 스토리 스킵 기능이 절실한 순간이다. 몇 시간째 걷고 있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매 몬스터 포인트에 갈 때마다 춘향가가 울려 퍼지고 눈앞에서 연극처럼 춘향전의 장면이 펼쳐졌다.

    “매우 쳐라!”

    “예이!”

    “둘이요!”

    “이부불경 이내 마음 이군불사 다르리까?”

    지금은 춘향이가 변학도에게 고문을 받는 장면이었다. 이 모든 장면이 끝나고 이몽룡이 출두하고 나서야 게이트가 나타난다던데… 길어도 너무 길었다.

    ‘도대체 춘향이의 인권은 어디에 있는 거야?’

    이몽룡이 춘향이가 기생 딸이니까 이리 가라 저리 가라 하는 것도 꼴 보기 싫었는데 이젠 웬 폭군 같은 놈이 나타나서 자기 수청 들라고 난리다. 그 와중에 춘향이는 지조를 지킨다고 저 고문을 견디고 있고.

    ‘저게 조선시대의 로맨스 소설인가? 이걸 보고 설레는 사람이 있기나 해?’

    “암행어사 출두야, 출두야. 암행어사 출두허옵신다! 두세 번 외는 소리 하날이 답숙 무너지고 땅이 툭 꺼지난 듯 백일벽력이 진동허고 여름날이 불이 붙어 가삼이 다 타는구나!”

    “뭐가 됐든 빨리 좀 끝내라…….”

    멀끔한 행색의 이몽룡이 마패를 들고 나타났다. 온갖 요란한 소리를 다 내며 병사들이 관아에 쳐들어왔고 도망가던 변학도는 꼴사납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변학도의 병사들은 도망가기 바빴고 동시에 춘향이의 목에 채워졌던 칼이 풀렸다.

    이몽룡은 힘없이 쓰러지는 춘향이의 몸을 받고 서로 뭔가 애틋한 말을 주고받는 것 같은데… 우리가 있는 곳까지는 잘 들리지 않았다.

    쿵.

    변학도가 앉아있던 자리에 게이트가 떨어졌고, 그와 동시에 길을 비추는 자도 그 게이트를 가리켰다.

    “저, 신지의 헌터, 김수아 헌터 셋이서 공격을 맡겠습니다. 이상욱 헌터는 방어 보조와 진주현 헌터의 보호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이상욱 헌터가 진주현 헌터의 주변으로 단단한 나무 방패를 세운 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방패 바깥쪽에 서서 우리의 보조를 할 준비를 했다.

    “저희도 슬슬 자리 잡을까요?”

    “네!”

    김수아 헌터와 함께 춘향과 이몽룡에게 한 걸음 다가가자 최민 헌터가 불 그 자체가 되어 게이트 앞으로 날아갔다. 그의 주변으로 꺼지지 못한 불꽃이 맴돌았지만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게이트에 손을 댔다.

    쿠구궁!

    “그때 춘향이 수풀 속에 있는 병사들을 발견하고 외치메! 아이고, 서방님. 아직도 저희를 죽이려는 자객들이 있사옵니다! 하더니 몽룡의 손을 덥석 잡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라!”

    소리꾼의 말대로 아까까지 죽어가던 춘향, 아니 보스 몬스터 ‘성춘향’이 ‘이몽룡’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나머지 한 손으로는 나와 김수아 헌터를 가리키고 있었고, 이몽룡에게 몸을 기대며 눈물을 흘렸다. 새하얀 얼굴 위로 영화처럼 눈물이 또르륵 떨어졌다.

    ‘아주 자기들 로맨스에 우리를 알차게 이용해 먹는구나.’

    이몽룡은 성춘향을 꼭 끌어안더니 우리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허리춤에 찬 칼을 높이 든 채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네 이놈, 변학도야! 아직도 네 죄를 모르겠더냐! 내 너를 엄히 다스리어 남원의 기강을 바로잡겠다!”

    “제가 주의를 끌 테니 계속해서 공격하십시오.”

    최민 헌터가 속삭이듯 말한 후 온몸에 불을 두르며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퍼버버벙!!

    뜨거운 열기와 함께 성춘향과 이몽룡이 있던 공간에 폭발이 일었다. 새카만 연기 속에서 빠르게 튀어나온 두 사람이 날렵한 움직임으로 최민 헌터에게 달려들었다.

    타앙!

    하늘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새하얀 탄환이 허공을 가르더니 이내 공기 전체를 울렸다.

    “크아악!”

    이몽룡의 칼끝은 최민 헌터에게 닿지 못했다. 이몽룡이 머리를 싸매며 다시 땅 위로 착지했다. 김수아 헌터가 철퇴로 허공을 찢자 엄청난 바람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바람 가시들이 이몽룡에게 날아갔다.

    “서방님!”

    사라락.

    눈부신 빛의 천이 이몽룡을 감쌌고, 바람 가시들은 천을 조금 찢어놓은 후 흩어졌다. 성춘향의 주변으로 형형색색의 천들이 어지럽게 나타나 거미줄처럼 관아 여기저기에 걸렸다.

    ‘되게 정신 사납네.’

    천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자 쉽게 끊어졌지만 금방 다른 색의 천으로 덮여서 오히려 시야를 가렸다. 상황이 영 골치 아프게 흘러간다.

    ‘난사하면 오히려 역으로 당하겠는걸.’

    손으로 천을 헤집으며 이몽룡과 성춘향의 모습을 찾기 위해 달렸다.

    “커헉!”

    “어찌 나와 서방님을 갈라놓으려 하느냐!”

    ‘숨이……!’

    성춘향이 손짓하자 천이 순식간에 내 목을 휘감았다. 목에선 쇠를 긁는 것 같은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주변을 폭발시키기엔 너무 작은 소리였다.

    ‘그래도 내 스킬이라면……!’

    난 망설임 없이 내 목에 자아를 댄 채 방아쇠를 당겼다.

    투우웅.

    몸이 약하게 진동하는 동시에 천이 갈기갈기 찢겼다.

    아군에게는 통하지 않는 공격이 이럴 때 좋구나.

    “커, 허으! 허억, 헉.”

    그렇다고 해서 하나도 충격이 없던 것은 아니다. 갑자기 폐부에 들어찬 산소 때문에 헛기침과 거친 숨을 몇 번이고 토해 냈다.

    뿌옇게 흐려진 시야가 채 돌아오기도 전에 대충 하늘을 향해 자아를 조준했다.

    타앙!!

    “꺄아아악!”

    천 위에 있던 성춘향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지만 그새 만들어진 천이 다시 녀석의 몸을 받쳐 주었다.

    후웅!

    발 없는 말로 도약해 성춘향이 서있는 천 자락을 잡고 늘어졌다. 녀석은 내가 다가갈 때마다 그네를 뛰는 것처럼 사뿐히 날아 다른 천 위에 섰다.

    “아오, 지 그네 잘 뛴다고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의 패턴을 봤을 때, 성춘향의 공격력은 거의 0에 수렴한다. 쟤의 유일한 공격 수단이라곤 이 천들로 내 목을 조르는 것뿐이고, 우리의 시야를 가리는 게 주목적이었다.

    아―우우!

    “녹두야?!”

    ‘우리 언니 괴롭히지 마!’

    성춘향의 뒤를 한참 쫓을 때쯤 갑자기 녹두가 팔찌에서 튀어나왔다. 녹두는 나를 앞질러 천 사이를 헤집고 가더니, 이내 성춘향의 뒤를 빠르게 쫓았고 금세 녀석의 치마를 물고 잡아당겼다.

    “꺄아악! 이 똥개 뭐야?!”

    성춘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동시에 수십 겹의 천이 녹두를 향했다.

    타앙!!

    자아로 실드를 만들어 녹두를 향해 날렸다. 실드에 맞은 천 자락은 미역처럼 흐물거리더니 한 올 한 올 다 뜯어졌다.

    “똥개라 했냐, 지금?”

    음파를 길게 뽑아내자 성춘향이 입을 틀어막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탕!!

    수십 겹의 천이 성춘향을 감싸려 했지만 내가 방아쇠를 당긴 게 더 먼저였다.

    “아, 아아…….”

    새하얀 탄환이 성춘향의 등에 박혔고, 성춘향은 다 죽어가는 모습으로 말 한마디를 중얼거렸다.

    “서방, 님…….”

    파사삭.

    성춘향의 몸에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이내 수천 장의 꽃잎이 되어 공중으로 흩어졌다. 관아 전체에 걸려 있던 형형색색의 천들도 안개처럼 사라졌고, 그제야 너덜너덜해진 이몽룡과 다른 헌터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호, 혼자 잡으신 거예요?”

    “네? 어, 네. 어쩌다 보니…….”

    김수아 헌터가 입을 쩍 벌린 채 나를 바라보았다. S급 보스 몬스터를 혼자 잡은 게 꽤 충격이었나 보다.

    그래도 성춘향 자체의 공격력이 그렇게 높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도 쉽게 잡을 것 같긴 한데.

    “춘, 향…아.”

    그때 이몽룡이 중얼거렸다. 그는 칼로 몸을 지탱하며 공허한 눈으로 저 멀리 날아가는 꽃잎을 바라보았다.

    “춘향아!!”

    콰앙!!

    ‘와 씨, 뭐야!’

    “다들 조심하세요! 각성 상태에 돌입한 것 같습니다!”

    김수아 헌터가 소리쳤다. 이몽룡의 몸에서 새카만 모래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난 팔로 입을 가린 채 권능으로 이몽룡을 살폈다.

    [S급 보스 몬스터 연인―이몽룡]

    [어둠 속성]

    [찌르기, 베기, 일도양단, 암흑]

    [특이 사항 : 연인―성춘향 사망 시 각성 상태에 돌입하며 공격력이 대폭 상승한다.]

    “네가 죽였구나!”

    “윽!”

    이몽룡은 나를 향해 총알처럼 튀어왔고, 난 곧바로 뒤로 물러나며 급하게 실드를 뽑았다.

    챙그랑.

    ‘깨졌어?!’

    날카로운 칼끝이 내 실드를 뚫고 깊게 들어오는 게 슬로모션 비디오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푹!

    “으윽!”

    눈앞이 아찔해지는 고통과 함께 녀석의 검이 내 오른쪽 어깨를 파고들었다.

    “꺼져!!”

    펑!

    자아 대신 소리를 버럭 지르자 이몽룡의 형체가 노이즈가 낀 화면처럼 크게 흔들리더니 녀석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퍼버벙!!

    얼굴에 열기가 훅 끼쳤다. 최민 헌터가 내 앞에 서더니 순식간에 불길로 이몽룡을 가뒀고 공간을 폭발시켰다.

    “가만두지 않겠다!!”

    몸이 불타는 와중에도 이몽룡은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다, 다들 어디 계십니까!”

    “네?!”

    갑자기 이상욱 헌터가 크게 소리쳤다. 그는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방패를 앞쪽으로 휘두르고 있었고, 최민 헌터도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온몸을 불로 휘감았다.

    ‘암흑 스킬이구나!’

    난 길을 비추는 자 덕분에 암흑 스킬에 면역이 있지만 다른 헌터들은 이미 다 당한 것 같았다.

    “다들 침착하세요! 암흑 스킬입니다!”

    일단 사람들을 진정시킨 후 곧바로 이몽룡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파스스.

    새까만 모래가 그의 칼에 모여들자 이 공간 전체를 베어버릴 만큼 커다랗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몽룡의 검 끝은 정확히 우리를 향하고 있었고, 가로로 크게 벨 것처럼 보였다.

    ‘방어 전선부터 구축해야 해.’

    방어계 스킬이 있는 이상욱 헌터와 최민 헌터의 위치부터 확인했다. 이몽룡을 기준으로 제일 가까이 서있는 사람이 최민 헌터, 그 뒤쪽으로 이상욱 헌터가 서있었다.

    정확히 최민 헌터가 서있는 곳 앞부터 ‘방공호’를 연다면 나를 제외한 모든 헌터들을 감쌀 수 있다.

    “최민 헌터! 지금 서있는 위치에서 방공호를 펼쳐 주세요! 최대한 가로로 긴 형태로요!”

    “무슨 일을 하시려고……!”

    “시간 없어요, 빨리!”

    펑!!

    “우읍.”

    내 말을 듣자마자 최민 헌터가 방공호를 열었다. 내가 말한 대로 가로로 긴 불 방공호가 만들어졌고, 난 그 틈에 이몽룡의 뒤로 달려갔다.

    [자아]

    [7%]

    남은 충전 상태가 좀 애매하지만 그래도 직격으로 먹이면 충분히 끝낼 수 있다.

    “일도양단(一刀兩斷)!”

    “하아아!!”

    서걱.

    이몽룡이 칼을 가로로 휘두르자마자 새카만 모래가 위협적인 속도로 방공호를 향해 날아갔다. 그와 동시에 나도 덜덜 떨리는 팔을 들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커다란 소리 탄환이 수십 갈래로 갈라져 순식간에 모래의 허리를 뚫었다. 모래는 위아래로 나뉘더니 그대로 공중분해되었고, 그 틈을 비집고 이몽룡의 몸에도 박혔다.

    펑!!

    “크아아아아!!”

    처절한 비명 소리와 함께 이몽룡이 몸을 이리저리 뒤틀었다. 그러다 결국 한 줌의 모래가 되어 하늘 위로 올라갔다.

    <사명>

    [살신성인]

    [자신을 희생해 다른 사람을 지켜라.]

    [*살신성인의 사명을 가진 자는 다른 사람 대신 공격을 받았을 때 사망하지 않는다. 단, 고통은 느껴진다.]

    [달성도 상승]

    [달성도 : 75%]

    이것도 대신 맞은 걸로 쳐주는구나. 이 공격으로 다친 건 아닌데.

    탱그랑.

    이몽룡이 있던 자리에 마패가 떨어졌다.

    ‘드디어 죽었다.’

    녀석이 완전히 소멸한 걸 확인하고 나서야 긴장이 풀렸고, 그제야 아까 찔린 오른쪽 어깨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툭.

    “조심.”

    몸이 중심을 잃어 크게 휘청거렸지만 바닥에 처박히기 전에 최민 헌터가 먼저 나를 잡았다.

    그는 나를 안다시피 품에 가두곤 그대로 천천히 앉았다.

    “바로 치료해 드릴게요! 몸에 힘 푸세요!”

    진주현 헌터가 부리나케 달려오더니 내 앞에 무릎을 꿇고 곧바로 치료 스킬을 썼다.

    “으, 크으윽……!”

    상처에 소독약을 양동이째 들이붓는 것 같은 고통이었다.

    검은 연기가 상처를 촘촘히 감싸고 벗겨진 살과 근육을 이어 붙였다. 회복 과정이 적나라하게 느껴져서 최민 헌터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숨만 헐떡거렸다.

    쿵, 쿵.

    그때 심장이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왜 자꾸 무모한 짓을 합니까!”

    “그럼… 최민 헌터가 당하게 냅둬요?”

    최민 헌터의 목소리로,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던 큰 소리가 들려왔다.

    ‘이것도 회귀 전의 기억…….’

    고개를 겨우 들어 최민 헌터를 바라보자 그는 입을 꾹 다문 채 내 상처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저한테 의지할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

    “도대체 당신한테 저는 뭡니까?”

    이건 또 무슨 소리래.

    멜로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가 최민 헌터의 음성으로 들리고 있었다.

    “하하하…….”

    회귀 전의 내가 바람 빠진 풍선같이 힘없이 웃었다.

    “이제 저는 제가 누굴 믿어야 할지도 잘 모르겠거든요.”

    “치료 다 됐어요. 좀 괜찮으세요?”

    “아…….”

    진주현 헌터가 말을 하는 동시에 회귀 전의 내 목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졌다. 천천히 고개를 내려 어깨를 살피자 피딱지 위로 숯이 묻은 것처럼 검은 가루들이 붙어있었다.

    “감사합니다, 진주현 헌터.”

    “제가 할 일을 한 것뿐인데요, 뭘.”

    진주현 헌터에게 감사 인사를 하자 밝은 미소가 돌아왔다.

    ‘그나저나 아까 그 기억이 너무 선명하네.’

    ‘카르마를 밟는 자’의 달성도가 올라갈수록 과거의 기억이 더욱 확실하게 들어오는 것 같았다. 어쩌면 더 자주 흘러들어 올 수도 있고.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아, 네.”

    최민 헌터의 품에서 빠져나와 몸을 일으켰다. 최민 헌터도 느릿하게 일어나더니 게이트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도대체 당신한테 저는 뭡니까?”

    최민 헌터의 뒷모습만 바라보며 아까의 기억을 곱씹었다. 지난 시간선에서 내가 최민 헌터 대신 공격을 맞아준 것 같은데.

    “이제 저는 제가 누굴 믿어야 할지도 잘 모르겠거든요.”

    기껏 희생해 놓고 왜 그런 말을 한 거야?

    ‘언니, 괜찮아?’

    그때 녹두가 천천히 내 앞으로 걸어왔다.

    ‘우리 녹두가 성춘향 잡는 데 한 건 했지.’

    “잘했어. 우리 녹두~”

    꺄―우!

    턱을 벅벅 긁어주며 이마를 맞대자 녹두가 기분 좋은 듯 갸르릉거렸다.

    “신지의 헌터! 갑시다!”

    “아, 네!”

    이상욱 헌터가 손짓했고, 나는 부지런히 게이트 쪽으로 달려갔다.

    * * *

    S급 던전에 갔다 오면 으레 하는 그런 인터뷰라고 생각했는데, 클리어 시간을 단축하는 바람에 인터뷰가 평소보다 길어졌다. 조금이라도 더 했다간 정말로 서서 잠들었을 것이다.

    “빨리 집 가고 싶…….”

    “신지의 헌터.”

    “왁!”

    갑자기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꽥 질렀다.

    “최, 최민 헌터?”

    고개를 돌리자 최민 헌터가 나를 차분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내게 가벼운 묵례를 취했다.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아, 아뇨. 멍 때리고 있어서 놀란 거예요……. 아직 안 가셨네요?”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이 사람이 나한테 묻고 싶은 게 뭐가 있을까.

    최민 헌터는 내 대답을 기다리는 듯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어, 뭔데요?”

    최민 헌터가 자기 손을 내려다보더니 이내 엄지와 검지를 붙여 원을 만들었다.

    ‘잠깐, 설마……?’

    그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털끝이 바짝 서는 기분과 함께 심장이 목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빨리 뛰었다.

    최민 헌터는 천천히 팔을 들어 제 눈앞으로 손을 가져갔다.

    “이거, 뭡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