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55)
금발 벽안의 40대 중년아저씨 같지만 그는 다름 아닌 토르가 사용하는 전설의 망치 묠니르다. 다부진 신체에 건강미가 넘치다 못해 흘러내리는 것 같다.
그나저나 방금 묠니르가 말했다. 부탁하나를 들어주겠다고 말이다. 전설의 존재가 내 부탁을 들어주겠다는데 이런 기회는 흔치 않지. 이만한 일생일대의 찬스는 놓칠 수 없다.
“어떠한 부탁이든 들어주는 거냐?”
“어떠한 부탁이든.”
“토르의 이름을 걸고 맹세해라. 어떠한 부탁이든 딱 한 가지 들어주겠다고 말이야.”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먹잇감을 빠져나갈 수 없는 경로로 몰아야만 한다. 나는 토르의 이름을 걸게끔 하여 묠니르를 궁지로 몰아세운 것이다. 이로써 약속을 어기면 본인 얼굴에 먹칠하는 것 뿐이다.
“토르의 이름을?”
썩 내키지 않는 얼굴. 나는 곧바로 한마디 덧붙였다.
“설마 내가 생각한 만큼 전지전능하지 않아서 부탁을 못 들어준다거나? 그렇다면 매우 실망인데.”
당연히 묠니르는 부정했다. 그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지.
“너의 착각이다. 좋아. 토르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나 묠니르는 어떤 부탁이든 한 가지 들어줄 것을 약속한다.”
나는 마음속으로 축포를 터뜨렸다. 이제 묠니르가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내가 어떤 부탁을 해도. 단 ‘한 가지’의 부탁······ 아니, 명령을 들어주어야 하는 거다.
“나를 주인으로 받들어라.”
───라는 허무맹랑한 부탁은 위험도가 크다. 묠니르가 나를 주인으로 모시는 전개는 가능할지 몰라도, 토르라는 신이 나를 가만 내버려두지 않을 테니까. 토르의 신경을 긁지 않고 묠니르를 내 권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선······.
‘허락을 구하는 수밖에 없겠군.’
다행히 토르를 만나는 방법은 마련되어있다. 묠니르의 특수능력 ‘강림’을 발동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묠니르의 호감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리면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다는 뜻이기도 한데······.
‘나보다 훨씬 나이 많은 아저씨에게 호감을 얻고 싶지 않다고.’
애당초 강림과 호감도가 관련이 있다는 것도 하나의 가설일 뿐 확실한 것도 아니다.
머리를 쥐어 싸고 끙끙 앓는 바드를 보다 못한 묠니르는 지루하다는 마냥 대답을 재촉했다.
“서둘러 말해라. 이 모습을 유지하는 것도 이제 한계다.”
“좋아.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당신과 나에 대한 호감도를 100%까지 올릴 수 있을까?”
그 순간 묠니르가 인상을 찌푸리더니,
“이상한 취향을 가지고 있군. 내게 호감이라도 품고 있는 거냐?”
“그런 호감 말고 이 아저씨야. 친한 정도를 말하고 있는 거다. 강림스킬을 발동하기 위해선 호감도가 필요할 것 아니야?”
“그런 설명이나 말을 한 적은 없지만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네놈과 우호적으로 지내고 싶은 마음은 없고. 또한 부탁이라고 하더라도 마음까지 넘길 생각은 추호도 없다.”
결과적으로 호감도를 올리는 데에 노력 이외에는 별거 없다는 소리잖냐······.
“그렇다면 다른 걸 부탁하지. 네 주인 토르를 만나게 해 줘.”
“주인님을? 상관은 없다만 뒷감당은 알아서 해야 할 거다. 주인님을 직접 대면하게 된다면 번개구이가 될 거거든.”
“토르의 가호가 있는데도 말이냐?”
“그러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더 대화는 필요도 없군.
“딴 소리하지 말고 토르에게 전해. 조만간 찾아뵙겠다고.”
“지금은······ 아닌가?”
“너 같이 고차원적인 존재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인간들도 나름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고, 살아남기 위해서 얼마나 발버둥 치는 줄 아나? 나도 할 일이 있으니까 지금은 아니야.”
묠니르는 부드럽게 덥수룩한 금발을 정리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알았다. 그럼 다음 기회에 주인님을 만나게 할 수 있도록 하지. 그럼 이만······.”
그가 황금빛의 광채에 뒤덮이더니 망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인간의 모습으로 버티는 것이 한계였던 모양이다. 엄청난 무게를 가진 광물덩어리가 바닥을 내리치자 지면이 방사형으로 갈라져 내렸다.
나조차 들고 휘두르는데 힘이 부치는 이 무식한 녀석을 토르란 신은 솜털베게마냥 휙휙 휘두르고 다니는 건가? 신이란 놈들은 어처구니없는 놈들인가 보군.
아무튼 묠니르 건은 해결했다. 이걸로 다잔까지 몸소 찾아온 목적은 다 이룬 셈이다. 더군다나 엠페러 길드의 빵빵한 보물창고까지 털어버렸으니. 미련은 쥐똥만큼, 아니 먼지진드기의 배설물만큼도 없단 말씀이다.
‘깔끔하게 정리하고 이곳을 떠나면 되겠군. 계획대로라면 미호와 쿠샨이 공작급 녀석들을 거의 다 처리할 즈음이다. 사천왕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케르드의 명령이 없으면 독단적인 행동은 하지 않는다니 믿어보는 수밖에 없겠군.’
이제 쿠샨과 미호를 챙기고 미세먼지 가득한 이곳에서 나가면 된다. 더 머물러 있다간 폐병으로 죽을 것 같다. 안 그래도 천둥의 펠리토늄을 제작하느라 사방이 사우나처럼 갑갑하다.
나는 곡괭이를 꺼내들어 벽면을 겨누었다. 올올이 뻗친 아우라가 정면의 모든 벽을 깨부술 기세였다. 내가 전력으로 채광하면 엠페러 길드의 땅굴은 별 힘도 못쓰고 내부로부터 붕괴될 것이다. 완전히 매장되기 전에 상층부를 뚫고 올라가야 하리라.
‘곧바로 상층 550미터쯤 되겠군. 출구는 남쪽으로 1.5킬로미터 지점인가?’
도주루트 파악완료. 이제 날뛸 차례다. 묠니르를 수리한 후유증 때문인지, 여태 팔이 저릿하지만 내가 누구란 말인가? 채광의 정점에 이른 슈퍼광부이기도 하다. 후유증이라는 사소한 걸림돌은 떠올릴 필요도 없다.
《채광의 달인 패시브 발동》
눈앞에 하나의 문구가 떠오르는 동시에 폭풍우치는 언덕위의 풍차마냥 엄청난 속도로 곡괭이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공기를 잡아 찢는 무식한 풍압이 파인 흙을 뒤로 날려버렸고 나의 팔은 수십 개의 잔상을 그리며 벽을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신기에 가까운 시각속도와 손놀림으로 광맥을 읽어 채굴, 수집을 멈추지 않았다.
콰가가가가가가가각 쾅쾅! 콰악, 콰지직!!!!!!
별별 소리가 연쇄적으로 폭발하는 엄청난 소음이 마치 실링이 굴러들어오는 소리마냥 정겹다.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이다.
***
레볼과 하울이 성격을 죽이고 서로의 숙소로 돌아갈 무렵. 남은 공작들도 각 방으로 해산하려는 찰나였다. 이를 가만두고 볼 수 없는 미호는 천장에서 발을 떼고 급격하게 하강하기 시작했다.
“리디에. 뭔가 접근하고 있다.”
“휴겐 위쪽이야! 아침에 대장장이가 말했던 다른 동료인가본데?”
리디에는 강력한 마력에 이끌려 희열을 느끼기 시작했다. 강한 상대라면 사족을 못 쓰는 그녀의 눈에서 기쁨의 별빛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엄청난 속도로 하강한 미호가 지면을 강타해 모든 공작들의 시선을 한 번에 이끌었다. 그녀의 기척도 기척이지만 미호가 풍기는 농밀한 마력과 살기는 모든 이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뭐하는 년이냐. 너는······.”
안 그래도 화가나있던 하울이 독기를 품은 목소리로 미호를 건드렸다. 미호는 아랑곳 하지 않고 짧게 반박했다.
“그쪽 창녀는 입 다물고 있어.”
“차, 창녀?!”
하울의 머리칼이 분노를 보이듯 넘실거리며 일어났다. 멀리 한 구석에서 이를 지켜보던 쿠샨은 예상치 못한 전개에 골머리를 앓았고, 그 순간 동굴 전체가 진동했다. 무언가 격렬하게,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공작들의 숙소 한 가운데로 접근하는 느낌이었다.
휴겐은 잔뜩 부푼 팔근육이 떨리는 것을 감지했다.
“흠?! 내 근육이 위험을 알리고 있다. 모두 긴장해라!”
미호는 퇴근하고 돌아온 주인을 반기는 강아지마냥 자기도 모르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오종종 하울에게 다가갔다.
‘어? 주인님이다. 헤헤~ 다 끝났나 보네!’
“뭐, 뭐냐! 다가오지 마. 오면 죽여 버린······.”
고삐 풀린 미호의 돌진에 더불어 와락 안겨들 것 같은 해맑은 표정을 짓고 있으니, 하울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그것이 큰 착각이라는 것도 깨우치지 못했다.
“극적인 복귀!”
지면이 갈라지고 그 틈으로 생뚱맞은 발언이 거창하게 터져 나왔다. 하울의 발밑을 뚫고 올라온 바드의 머리통은 그녀의 가냘픈 턱을 정통으로 가격했고 기세를 높이던 그녀는 단말마의 신음과 함께 수십 미터 높이까지 치솟아 날아갔다.
“쿠휅!!!”
콰아앙──────!!!
미호는 바드가 솟구쳐 나오자마자 그의 목덜미를 부둥켜안고 애정을 표현했다. 바드는 그런 미호를 밀어내며 질책했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좀 올라가자 이 자식아.”
곧 땅굴이 매장된다. 싸울 거면 1초라도 빨리 올라가서 싸우란 말이다!
“이히히~ 네네~”
미호는 쿠샨의 목을 휘감아 붙잡으며 단단히 주의했다.
“꽉 붙잡아. 얼간이!”
“어? 으어아아아아!!!!”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본 공작급 장군들은 머릿속에 혼란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대장장이와 알 수 없는 힘을 가진 흰색 소복여자의 소란. 더불어 실종상태였던 쿠샨의 난데없는 등장까지! 이내 그들은 확신했다.
‘쿠샨이 길드를 배신했다······.’ 라고.
미호는 반대편 벽을 깨부수는 바드의 목을 끌어안고 엄청난 속도를 따라갔다. 그녀가 바드의 귓가에 대고 신난 어린이마냥 소리쳤다.
“다녀오셨어요~♪”
“그래. 다녀왔다!”
사이좋은 아빠와 딸내미의 퇴근길 인사마냥 여유로운 대화. 쿠샨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 할 만한 대화가 아니라며 태클을 걸었지만 그것도 한순간이었다. 뒤로 날아간 무수한 바위잔해가 쿠샨의 얼굴과 일맥상통하여 기절해버리는 해프닝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자, 잠깐만······ 푸휅! 크학! 으억!··················.”
잠잠해진 쿠샨의 눈에서 의식이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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