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54)
엠페러 길드의 공작급 장군만이 사용하는 숙소는 원형으로 파인 거대한 땅굴에 위치해있다. 방과 방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있으며 건너편 방까지는 50미터정도. 방 전체는 마법방벽으로 감싸여서 외부인은 방 안의 상황을 인지할 수 없는 구조였다.
그러나 천년여우 구미호는 마력의 진리에 이른 존재. 마법의 마력을 간파하고 깨트리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공작들의 뒤를 밟은 미호와 쿠샨은 큰 어려움 없이 각 대장의 방 안의 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다.
“이봐 아저씨. 주인님이 무슨 부탁하든?”
“공작간의 이간질. 놈들 간의 관계는 잘 알고 있다. 내게 맡겨라.”
미호는 쿠샨을 가로막으며 소리쳤다.
“아저씨 제정신? 놈들이 당신 얼굴 뻔히 알고 있는데, 어딜 나가? 이간질은 내게 맡겨. 주인님한테 몇 놈 꾀라고 지시 받았거든. 서로 무슨 관계인지나 말해봐.”
쿠샨은 쉽게 수긍하며 미호의 의견을 따랐다. 설명을 새겨들은 미호는 음흉한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꽤 복잡한 연인 관계네. 여기서 구경이나 하라고.”
미호가 방안을 뚫어질 듯이 주시했다. 일렁이는 마력의 벽너머로 붉은색 인영이 움직인다. 마치 열 감지카메라를 통해서 감시하는 느낌이랄까. 누구는 옷을 갈아입는 중이고, 누구는 무기를 손질하고 있으며, 누구는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개인정비시간을 갖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절호의 기회지. 일단 젊은 오빠 방부터 가볼까? 생생한 영혼이 쪽이 더 끌리거든.’
목표는 키180정도 되는 젊은 남자가 장창을 손질하고 있는 방. 무기를 귀하게 다루는 성격 탓인지 아까부터 무기에만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나는 기척을 감추어 그의 방으로 접근했다. 본래는 보이지 않는 마법장벽. 그러나 내 눈에는 푸른 막이 뚜렷하게 보인다.
‘마력의 본질과 변화된 성질을 분석해서 같은 파장의 마력을 방출하면······.’
아무 일 없이 성공적으로 장벽을 통과할 수 있단 말씀!
이 사태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젊은 남성은 뿌듯한 미소와 함께 화려한 창날을 계속해서 매만졌다.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은 건지 싱글벙글 웃고 있는 모습이 영락없는 어린애나 다름없다.
‘저런 장난감 다루는 게 뭐가 좋다고 웃고 있는 건지······.’
그렇게 10초정도의 시간이 흘러서야 남자는 뒤늦게 무기를 고쳐 쥐며 소리쳤다.
“웬 놈이냐!”
그는 화려한 백금색 용무늬가 그려진 경갑과 오색조의 깃털로 화려하게 장식된 투구로 무장한 상태였다. 그가 긴장을 풀지 않고 살기를 풍기며 입을 열었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이 거리까지 다가왔다는 것은 필시 풋내기는 아닐 터. 네놈의 정체를 밝혀라.”
“어머, 너무 듬직한 사내인걸? 하울이 반할만 하네.”
미호가 성숙한 목소리로 능청스럽게 말을 회유하자 그의 눈썹이 일순간 고동쳤다.
“네가 하울을 어떻게 아는 거지?”
“다 알고 있거든. 공작 서열 1위 미라프 하울과 은밀하게 교재중이란 거. 그래도 그렇지 열 살이나 연상인 여자에게 반하다니, 당신도 눈이 참 낮은걸? 빌로스 레볼.”
“내 이름까지 알고 있군. 네놈은 누구냐!”
“알 필요 없어. 지금은 잠자코 있어주기만 하면 돼.”
딱 보니까 레벨400대의 숙련된 무인이 분명하다. 이렇게 혈기왕성하고 생생한 정기를 눈앞에 두고 당장 빨아 마시지 못하다니! 가슴이 벅차다 못해 터질 듯이 뛰어다니는 것 같다.
나는 곧장 유혹스킬을 시전 했다. 주인님조차 방심했다가 걸려들 뻔한 초강력 유혹스킬이다 눈앞의 애송이가 걸려들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당신의 이상형이 어떤 모습인지 봐볼까?’
레볼의 눈은 영혼이 담겨있지 않은 빈껍데기의 죽은 눈이었다. 단단히 쥐고 있던 장창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그렇게나 날카롭던 살기는 욕정에 젖어 기세가 죽었다. 그러고는 곧장 미호에게 다가가더니······.
“하울······.”
레볼이 한껏 상기된 목소리로 하울의 이름을 부른다. 나는 곧장 그의 마음속을 주시하며 하울의 얼굴을 확인했다.
‘후우~ 이렇게나 야한 몸이라구?’
하여간 남자가 다 거기서 거기라지. 여자 알몸에 정신을 못 차려서는 빌빌 기어 다니는 꼴이란······.
연녹색의 긴 장발을 가진 청초한 미녀가 나체의 상태로 그의 눈앞에 앉아있다. 하울이란 여자는 한껏 상기된 얼굴로 레볼을 유혹하였고, 레볼또한 그 손길에 정신을 못 차리며 짐승처럼 달려 나갔다. 그가 하울의 어깨를 붙잡고 거침없이 남성미를 내뿜으려던 찰나,
‘여기서 제3자가 등장해주는 거지.’
새로운 인물이 레볼의 상상 속에 난입했다. 과감한 의상과 아찔한 미소를 머금은 유쾌 발랄한 여자. 바로, 미호가 레볼의 기억 속에서 끄집어낸 또 다른 공작이었다.
“리, 리디에냐?!”
“레볼니임~! 저만 빼고 즐기면 섭섭하답니다?”
“잠깐! 너는 케르드 군주님을······.”
“쉿! 여자가 마음을 줄 때 다른 사람 이야기 꺼내는 거 진짜 싫어한다고요?”
망상이 갈 때까지 갔군. 이대로 놔두면 한 시간은 족히 현실로 돌아올 수 없지. 다음 단계로 넘어가 볼까?
이번 사냥감은 미라프 하울. 빌로스 레볼과 마찬가지로 육체적 쾌락에 관심이 많은 녀석이니, 비슷한 작전으로 꼬시면 될 것이다. 게다가······.
‘질투의 화신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니 잘만하면 두 사람 모두 파멸시킬 수 있겠네.’
사실 힘으로 찍어 누르면 진작 죽였을 테지만 그러면 내 존재가 들통 날게 뻔하고, 동시에 주인님의 작업에도 방해가 될 것이다. 최대한 서로 물고 뜯고 맛보고 즐기게 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또 다른 방으로 접근했다. 그곳에는 연녹색 장발과 매끈한 피부를 가진 여성이 청초하고 숨넘어갈 표정으로 간밤을 지내는 중이었다. 이번에는 그녀가 기척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유혹스킬을 시전 했다.
“레볼······?”
미호는 하울의 심층을 관람하며 월요일 아침 막장드라마 같은 상황을 즐겼다. 하울의 환각 속에 비춰진 영상은 방금까지 레볼이 바라보던 환각이었다. 리디에와 이런저런 육체를 나누는 보기 민망한 장면이었다.
“마, 말도 안 돼. 레볼 네가 어떻게······.”
그녀는 부정했다. 하지만 마음은 연인에게 버려진 지독한 배신감을 느꼈다. 그 배신감은 질투라는 강력한 맹독이 되어 그녀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네가 어떻게 날 두고 다른 여자랑? 그것도 리디에를······?”
하울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악의 화신이 된 것 마냥 괴악스런 비명과 함께 온갖 분노를 토해냈다.
“아아악! 다 죽여 버리겠어. 너도 그리고 리디에도!”
나는 슬쩍 혀를 내밀며 멍하니 서 있는 그녀의 귓가에 중얼거렸다.
‘미안, 나도 주인님의 명령이 있어서 말이야.’
나는 조심스럽게 방을 빠져나와 두 사람의 환상을 깨뜨렸다. 눈가에 생기를 되찾은 레볼은 지긋이 아파오는 두통에 눈살을 찌푸렸다.
“크윽······ 방금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리디에가 왜······.”
“레볼.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레볼의 방으로 찾아간 하울이 모멸적인 시선을 내던지며 분노의 마력을 일으켰다. 레볼은 현실과 환상을 분간하지 못하고 당황해 소리친다.
“자, 잠깐만! 하울? 전부 본거야? 방금 그건 뭔가 잘못된 거라고!”
그가 열심히 변명했으나 오히려 모든 사단을 인정해 버린 꼴이었다. 하울은 절망의 눈물을 쏟아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나보다······ 리디에의 몸이 더 좋았던 거야?”
“글쎄 아니라니까! 잠깐 내 얘기 좀······ 커헉!”
질투의 여신은 잔뜩 일그러진 핏대를 꿈틀거리며 화염의 창을 레볼의 어깨에 찔러 넣었다. 타는 듯한 고통에 신음을 내뱉은 레볼은 바닥에 떨어진 본인의 창을 주워들어 화염의 창을 절단했다.
“너 미쳤어! 이게 무슨 짓이야!”
“미친건 당신이야. 내가 누군지 알고도 그런 짓을 했단 말이지? 연인 관계는 이제 끝이야! 당신 따윈 없어도 된다고!”
“정말 나를 죽일 셈이군. 그딴 식으로 행동하는 네 행동은 지긋지긋했어! 그만 돌아가서 머리나 식히라고!”
하울은 실없는 미소와 함께 어깨를 들썩였다.
“날 힘으로 누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보지? 너야말로 미쳤어. 순순히 목을 내놓아라. 상관의 명령이다.”
“싫다면?”
레볼의 목소리에 진심이 담겼다. 그도 더 이상 봐줄 생각이 없다는 신호였다.
“누가 이기는지 볼까? 쭉정이.”
“다시는 입을 나불거리지 못하도록 해주마. 추악한 창녀 같으니······.”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미호는 스스로를 자화자찬 하며 이마를 쓰다듬었다.
‘크흐흐. 이거 너무 쉬운 거 아니야? 서열 1위와 2위의 싸움이라니, 귀찮은 녀석들을 동시에 처리하게 되었잖아? 이제 모든 마법장벽을 해제하면······.’
미호가 박수를 짝! 마주치자, 공작들의 숙소를 둘러싼 마법장벽들이 일제히 소멸했다. 그와 동시에 하울과 레볼이 풍기던 살기와 마력의 충돌이 땅굴 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
츠츠츠, 콰앙─────!
레볼의 방안에서 거대한 폭발이 발생하자, 소란을 느낀 공작들이 각기 방에서 빠져나와 소리쳤다. 뿌옇게 융기한 흙먼지 안에서는 뜨거운 불똥을 격렬하게 튀기며 금속성의 충돌 음이 흘러나왔다.
두 공작의 망설임 없는 싸움. 전력을 다한 싸움은 엄청난 후폭풍을 일으켰다. 이를 지켜보던 공작들 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반짝이는 문어머리 남성이 거친 음성으로 소리쳤다.
“두 사람 전부 그만해라! 이 이상 싸우면 땅굴이 무너진다!”
휴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서로의 목을 노리는 파상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공기를 가르는 치명적인 일격을 주고받는 상황에서 보다 못한 여법사가 나서 두 사람의 움직임을 봉했다.
“사이키(Psyki)!”
전력을 다한 리디에의 속박마법. 그러나 두 사람의 움직임을 멈추는 것은 찰나의 순간뿐이었다. 레볼은 무식한 근력으로 속박마법을 잡아 뜯어 움직였고, 하울은 높은 마법저항력으로 잠깐 주춤했을 뿐, 오히려 기세를 끌어올렸다.
“죽어버려, 망할 천둥벌거숭이야!!!”
“쉽게 당할까보냐!!!”
서로의 급소를 겨냥한 최후의 일격. 미호는 절정에 치닫는 막장 드라마를 두 주먹 꼭 쥐고 감상했다. 하지만 언제나 방해꾼은 있기 마련. 거구의 그림자 하나가 뜨거운 숨을 쉭쉭거리며 둘의 충돌을 가로막았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후욱, 우욱······.”
“바바디바바스? 이게 무슨 짓이냐. 상관끼리의 싸움에 끼어들다니, 죽고 싶은 거냐?”
하울의 얼음장 같은 시선이 바바스를 향했다. 레볼도 마찬가지로 바바스의 몸에 박힌 창을 뽑아내며 질책했다.
“비켜라. 아니면 그 몸째로 꿰뚫어 버린다.”
바바스는 피투성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음을 참아가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두 사람의 싸움은 무의미하다. 군주님은 대장장이의 결과가 탈 없이 나오기를 바라고 있으니 이쯤하고 방안으로 돌아가라.”
바바스가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밀어붙이니, 하울과 레볼이 눈빛을 교환한 뒤 말없이 물러섰다. 천장에 붙어있던 미호는 애가 타는 듯 팔을 바동거리며 내심 소리쳤다.
‘자, 잠깐만! 그렇게 끝나는 게 어디 있어! 막장도 이런 막장은······.’
여기서 이렇게 끝내면 안 된다. 어떻게 만든 스토리인데 각본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안 된단 말이다! 이렇게 된 이상 직접 힘을 쓰는 수밖에 없다. 조금 위험하지만 밀어붙여야지.
‘언니가 간다. 애송이들.’
천장에 붙어있던 미호가 발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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