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56)
나는 곧장 출구 쪽으로 직진하여 바닥을 파헤쳤다. 후방에는 다수의 인원이 따라오는 중이다. 쿠샨을 제외한 공작 8명과 케르드. 그리고 또 다른 3명이다. 아마도 회담때 봤던 사천왕이 분명하다. 그중 한명은 쿠샨이 어찌어찌 처리했다지?
“주인님! 저쪽으로 곧장 가면 바깥으로 빠져나갈 수 있어!”
“알고 있다.”
드릴 전차로 땅을 꿰뚫어버리는 마냥, 곡괭이가 가속했다. 이내 속이 뻥 뚫리는 시원 상쾌한 공기가 온몸을 감싸 돈다. 도대체 며칠만에 만나보는 지상낙원인지······.
“주인님 머리위에 흙이 잔뜩 쌓였어.”
등에 붙어있던 미호가 풍만한 꼬리털로 내 머리를 털어주며 말했다.
“그나저나 잘도 따라붙었군.”
내가 뚫어놓은 땅굴을 통해서 수많은 인영이 속속히 튀어나왔다. 모습도 각양각생, 무기도 각양각색, 패기와 살기, 투기까지 모두 고루고루 가지고 있다.
비록 내가 땅을 파며 올라왔다곤 하지만 내 속도를 따라올 정도의 실력자라······. 괜히 엠페러 길드는 아니라는 소리군. 접전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미호의 등에 기절한 쿠샨을 올려주며 명령했다.
“이 녀석 데리고 카스티바와 게르덱을 찾아가. 어디 있는지 대강 눈치 챘지?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생기면 무전기로 통신 때리고.”
“주인님은?”
그녀의 짧은 귀가 쭁쭁 일어나 근심을 보냈다.
“COMMAND: EQUIPMENT SUMMONS SET.2”
미호가 원하는 대답은 아니었을 거다. 하지만 내 의도가 무엇인지는 알았을 거다.
‘나는 놈들과 싸운다.’
엠페러 길드는 대규모 범죄 집단이다. 그 잔당들만 합쳐도 수십만 명이고 평균레벨만 따져도 200이상에 육박한다. 게다가 그 위에서 수하들을 다스리는 공작 놈들이란 왕실의 기사단장이 아니면 상대조차 불가능 할 정도란다.
물론 쿠샨을 보면 공작들의 수준은 알만하다. 그러나 뭉쳐서 덤벼온다면 어떤 명콤비를 보여줄지 모르는 일. 더군다나 비밀리에 전해지는 사천왕과 엠페러 길드의 우두머리인 케르드도 납시셨으니 긴장정도는 해줘야 마땅한 상황이다.
《해왕의 갑주를 장비하였습니다. 세트효과를 보정 받습니다. 장착중인 장비와 세트효과는 아래와 같습니다.》
해왕의 하르디온(상의) -장비중
해왕의 발바르(하의) -장비중
해왕의 클로터(장갑) -장비중
해왕의 가르시소스(신발) -장비중
해왕의 파쿠툼(어께견장) -장비중
해왕의 알테어(귀고리) -장비중
해왕의 힐데즈마(팔 보호대) -장비중
4세트 효과: HP, MP포인트 10% 증가
5세트 효과: HP, MP포인트 초당 회복량 5% 증가
6세트 효과: HP, MP포인트 최대치 30% 증가
7세트 효과: 물리 피해, 마법 피해에 대한 데미지 15% 감소.
설명: 물의 요정 운디네는 물의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해왕의 힘을 빌리기로 했습니다. 그녀는 해왕의 비늘을 모아서 7개의 장비를 제작했고, 그 장비를 파도에 떠밀어서 먼 대륙으로 퍼트렸습니다. 그녀는 언제가 자신의 나라를 구해줄 용사가 7개의 장비를 모아서 찾아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해왕의 힘을 빌려 몸이 단단해지고 생존력이 상승합니다.』
할아버지가 내게 남긴 몇 안 되는 장비중 하나인 해왕의 갑주. 이 갑옷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할아버지가 파란만장했던 시절에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모으게 된 갑옷이라고 한다. 아직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나 뭐라나 그런 말을 한 것 같은데, 아무튼 내가 유용하게 쓰고 있는 장비다.
나는 근육섬유를 쥐어짜내듯 묠니르를 들어올렸다. 그 무게가 어찌나 육중한지 팔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바드는 허공을 향해 묠니르를 가볍게 휘둘렀다.
콰콰콰콰!
공기를 통째로 집어삼키는 소리가 아주 위협적이다. 너무 무거운 탓에 파천도마냥 휘두를 수 없지만 이 정도 파괴력이면 어떤 무기든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낼 수 없으리라.
그도 그럴 것이 바드가 묠니르를 휘두른 여파로 거대한 건물벽면에 자잘한 균열들이 갈라져 붕괴직전까지 도달했다. 풍압만으로 이정도니 말 다했다.
각설하고, 역시 남다른 비주얼이다. 놈들이 착용한 방어구부터 무기까지 기괴한 기운이 느껴진다. 게다가 종족까지 각양각색 아닌가? 몇 놈은 인간, 어떤 놈은 오크, 어떤 놈은 수인족. 묘인(猫人)쯤으로 보인다.
“케르드 군주께서 어인일로 여기까지 행차하셨나?”
바드가 적안을 번뜩이며 사납게 웃어보이자 케르드는 실소를 머금으며 차갑게 답변했다.
“뻔뻔한 녀석이군. 우리가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지원을 아낌없이 해주었건만 이렇게 도망쳐버리는 거냐?”
“뻔뻔한 건 당신이지. 내가 전설의 장비를 넙죽 바쳤다면 곧장 죽였을 것이 뻔한데, 내가 뭘 믿고 무기를 바치러 나가나?”
“훗. 뚫린 입이라고 잘도 말하는군. 한번 구경하도록 해볼까? 잘난 네 실력을 말이야.”
강철 같은 눈으로 나를 주시하던 케르드가 손으로 신호를 보내자 8명의 공작들이 일제히 튀어나와 나를 에워싸고 무기를 겨누었다. 그 어느 때보다 한껏 긴장한 공작들이지만 내게 있어서 지루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덤빌 거면 어서 덤벼라. 군주가 서두르라고 보채기전에······.”
“이 애송이가! 여유부리는 것도 거기까지다!”
가장먼저 나선 사람은 청백금 갑주로 무장한 창기사였다. 그의 말총머리가 바람에 휘날리며 매섭게 다가왔으나, 드높은 기세와 다르게 공격은 무참하리만큼 쉽게 막혔다.
타악!
“어라?”
“느려 터졌군.”
빌로스 레볼은 10미터라는 거리를 1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좁혔으나 도리어 그 속도를 따라잡혔다. 바드는 그가 상황을 이해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묵직한 무릎차기로 그의 복부를 가격했다.
“커헉!”
파앙! 레볼은 엄청난 충격과 함께 몇 미터를 나가 떨어져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를 지켜본 다른 공작들의 표정은 삽시간만에 굳어졌다.
‘어떻게 된 놈이냐······. 레볼은 우리 대장군 중에서도 최고의 기동력을 자랑하는 민첩 파라미터를 가졌다. 헌데 저리 쉽게 따라잡히다니!’
“동료가 당하고 있는데 보고만 있군. 언제까지 얼 타고 있을 셈이냐? 머저리들아.”
“킁! 입만 살아가지곤. 모두들 콤비네이션B로 간다! 릴리엠은 디버프를 준비해!”
바바디 바바스의 오더에 남색 로브를 두른 10대 소녀가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긍정했다. 그녀가 아담한 손을 가슴께 앞에 모으고 마나를 집중하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저 소녀가 디버프를 캐스팅 할 시간을 벌 생각인 모양이다.
‘작전은 아주 좋아.’
하지만 상대가 나빴다. 게다가 한 가지 간과한 점이 있다면······.
‘너희는 저 애가 디버프를 캐스팅 할 때까지의 시간조차 벌 수 없다는 거다.’
“이 새끼가!”
어느새 기운 차린 레볼이 짧고 굵은 욕설을 내뱉으며 바드에게 달려들었다. 양손으로 단단히 움켜쥔 창이 잔상을 그리는 10연격이 난무했다. 그의 창날은 바드의 머리와 옆구리, 그리고 오른쪽 어께와 왼쪽 허벅지를 골고루 파고들었지만 모든 공격은 처참하게 허공만 가로지를 뿐이었다.
“제길제길제길제길제길제길제길제길!!!!”
그의 창이 두 갈래로 분해되자 양손에 홍염의 쌍철극(雙鐵戟)이 쥐어졌다. 다름 아닌 형태변형 무기였던 것이다.
“오호?”
아주 드물게, 정말 극악의 확률로 모든 무기와 방어구에는 형태변화라는 특성이 부여된다. 방금같이 창이 갈라져 쌍철극이 되는 것들 말이다. 나 또한 살면서 딱 한번밖에 보지 못한 형태변형. 얼마나 희소성 있고, 대단한 능력인지 알만하다.
“놀랍군. 이런데서 형태변화 무기를 보게 될 줄이야.”
레볼의 오른손이 상단수직 베기. 왼손은 관자놀이를 노린 가로 횡베기로 이어졌다. 공격패턴이 갑작스럽게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유롭게 감탄사만 내지를 뿐이다.
나는 그의 공격이 적중하기 전에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으로 한발 앞서 공격 범위 안에서 빠져나갔다. 완전무결한 회피. 상대에겐 최악의 기분을 안겨줄 수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한 번도 못 맞추는 건데!”
살기가 잔뜩 버무려진 공격 이다만 허점이 지나치게 많다. 이러면 내가 공격을 안 할 수도 없지.
나는 그의 양팔을 붙잡고 움직임을 저지했다.
“너무 흥분했어.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나?”
“큭! 네깟 놈이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르다니. 반드시 살과 뼈를 취해주마.”
“싸울 줄 모르면서 쓸데없는 패기만 가지고 기어오르면 쓰나. 개죽음 당하기 전에 알아서 물러나지? 새파란 애송아.”
바드가 레볼의 팔을 꺾어 쌍철극 떨어트리게 만들더니 그의 어께와 복부, 명치를 짧게 끊어 쳤다. 퍽. 퍽. 퍽. 짧은 충격이 잇따르며 레볼의 몸이 10미터 이상을 날아가 재차 같은 바닥을 뒹굴었다.
“레볼!”
연녹색의 장발녀가 타오르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빠드득 이빨을 갈아 마시는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았다.
“진정해 하울! 놈을 단독으로 상대하는 것은······!”
“으아아아!”
이미 반쯤 뒤집어진 눈으로 이성이 날아간 하울. 그녀가 새끼 잃은 암사자마냥 구슬프고 거칠게 포효하며 온몸의 마력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기세는 좋지만 방금 전 창기사와 별 다를 게 없는 상황이다.
“이성도 주체하지 못하는 것들이 감히 나서긴 어딜 나서?”
“죽어버려, 개자식아!!!!”
그녀의 등 뒤로 수십 개의 마나 검이 생성되었다. 그것들이 한꺼번에 날아오는 그 순간, 나는 뜻 모를 위화감을 감지했다. 직선형으로 날아오는 공격이지만 방을 바꾸어 선회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공기의 흐름. 이것은 찌르기가 아니라······
‘베기였나?’
“횡참난무!”
초인적인 반사 신경으로 고개를 숙이지 않았더라면 그녀의 공격이 일부 닿았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공격은 사람의 신체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마나로 인한 원격조종이기 때문이다.
하울의 검에서 발사된 검기는 전방5미터내의 모든 것을 가로방향으로 가로질렀고, 보이지 않는 공기마저 잡아 뜯었다. 바드는 수차례 끊이질 않는 모든 통상기를 종이 한 장 차이로 회피했다.
“이, 이걸 피해?”
“제법이군. 단순히 이성을 잃은 것만은 아니었단 소린가?”
나는 곧바로 주먹을 움켜쥐어 마나를 불태웠다. 짧은 순간 영롱한 불길이 주먹을 두르가 거침없는 열기가 등 뒤에서 일렁였다.
“연환봉춘권!”
화염은 거대한 봉황이 되어서, 주먹을 뻗은 방향으로 날갯짓했다. 엄청난 화염폭풍은 다잔의 거리를 집어삼켜 순식간에 불바다로 만들었고, 새벽부터 주민들의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예상된 시나리오는 연환봉춘권에 맞고 그녀의 머리털이 홀라당 타버렸어야 했는데······.
뿌드득거리는 억세고 질긴 소리가 그녀와 나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크윽, 더럽게 아프군. 대장장이 주먹이 이렇게 매섭단 말이지?”
문어머리를 가진 거구의 남자가 구릿빛 피부를 자랑하며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양손을 한곳에 모아 급소를 피하고 어떻게든 충격을 분산시킨 모양이다.
“막아내다니 대단하군. 당신과는 구면이지?”
“아아, 그랬지. 그땐 별 볼일 없는 청파의 조무래기인줄 알았는데,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적이었다니······ 어이가 없군.”
그가 덧없는 조소와 함께 양손무기를 들어올렸다.
“기억나나? 네놈이 직접 바친 양손 무기다.”
“그 구더기 같은 대검?”
바드의 살기를 예감한 하울이 거칠게 소리쳤다.
“휴겐! 그 남자에게서 물러나!”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감탄했다. 가벼이 휘두른 정권이라지만 적잖은 마력이 둘러진 공격이다. 뼈 한두 개쯤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을 파워였을 텐데 멀쩡히 서있군.
“걱정마라 하울. 명색이 탱커다. 이정도 공격에 쓰러지면 탱커부대 대장군으로서 쪽팔······커헉!”
휴겐이 말을 채 끝나기도 전에 바드의 레프트훅이 휴겐의 턱에 꽂혔다. 오른손에 들고 있는 묠니르를 무게추 삼은 강력한 펀치. 아직 끝나지 않은 연환봉춘권이 그의 눈깔을 반쯤 뒤집어엎었다.
“한번뿐이지만 내 공격을 막았으니 말하는데, 당신은 탱커로서 충분히 시간을 벌었어. 그건 내가 인정하지. 덕분에 릴리엠이라는 마법사도 캐스팅이 끝나가는 모양인걸?”
순식간에 대장군 3명을 제압했다. 이래보여도 겨우 5분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이다. 그 모습을 방관하던 케르드나 사천왕은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아직 여유라 이거군. 이제 남은 공작들께서는 어떻게 나오시려나? 역시 합동공격으로 나오겠지?
릴리엠은 디버프를 준비하는 중이고, 다른 공작들은 내 움직임을 대비하는 중. 먼저 다가올 생각은 없다면 이쪽에서 가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나는 각력을 최대로 끌어올려서 바닥을 박찼다. 그 순간 마을 한 구석에서 거대한 충격파과 소음이 발생했고, 그와 동시에 건물귀퉁이가 폭풍을 맞은 마냥 두부처럼 부서져 날아갔다.
“프랑켄 네게 간다!”
“알고 있어.”
창백하고 퀭한 안색을 가진 산발머리의 남자는 언월도를 머리위로 추켜올려 나의 공격에 대비했다. 하지만 강철끼리 부대끼는 거친 소리와 함께 그의 무기는 맥없이 파괴되었다. 전설의 무기 묠니르를 상대로 정면에서 막아내려는 발상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우직!
뼈가 분쇄되는 소리는 프랑켄이라는 사내의 비명소리에 파묻혀 절망과 함께 녹아들었다. 이제 그들도 알았을 것이다. 가만히 구경해서 나의 허점을 찾는 것은 아무런 해결책이 안 된다는 사실을.
“몇 명 남았지? 한꺼번에 덤비든지 아니면 따로 덤벼서 뒤지시든지 마음 대로해라.”
남은 공작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모종의 사인을 교환했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처음부터 그렇게 나왔으면 나도 한 명씩 쓰러트리는 귀찮은 일은 없었을 테지.
봉두난발의 대장장이는 붉은 적안을 한층 더 빛내며 묠니르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이번 접전으로 공작직위의 것들을 전부 해결하려는 심산인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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