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53)
장비를 수리한다는 것은 제작보다도 까다로운 작업이다. 원래의 윤곽과 강도를 유지해야하고, 그 기능을 감퇴시키지 않기 위해서 섬세하고 고달픈 기술을 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적은 기술력이나 노하우의 부족함이 아니라 전설이라는 이름 앞에 서있다는 부담감이다. 설상가상으로 무기의 내구도는 파괴직전의 절망적인 수치. 수리 실패는 묠니르의 파괴로 이어지리라.
거기다 걱정되는 거 하나 더. 본래 펠리토늄은 장비수리가 아닌 강화에 적합한 ‘강화석’이다. 시중에 수리석이라는 것이 따로 없기 때문에 펠리토늄을 이용하는 것뿐인데. 아무튼 수리하는데 있어서, 특히 전설등급의 무기를 수리하는데 적합한 재료가 될지 확신할 수 없다. 최악의 경우 재료와 무기 둘 다 소멸할 가능성이 있다.
‘차라리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
그렇다 한들, 전설등급의 무기가 되리라 단언할 수 없다. 확률이 거기서 거기라는 거다. 게다가 펠리토늄으로 무기를 만든다니······ 제정신이야?
최선의 선택은 무기를 살리는 거다. 금지된 구역에서 영겁의 세월동안 봉인 당해놓고는 자유의 몸이 되고나서도 무기파괴라니, 그건 너무 기구한 인생 아니냐고.
“네 인생 내가 만들어 줄게.”
나는 겁먹은 듯 바르르 떨고 있는 묠니르를 부드럽게 달래주었다. 내 목소리가 전해지기라도 했는지 묠니르의 격렬한 진동이 잦아들었다. 그 순간 묠니르가 자유로운 광휘의 빛을 내뿜었다.
무수한 실선이 짜이고 짜여서 거대한 베일 따위를 만들었고 바다의 잔잔한 파도마냥 나의 가슴으로 밀려왔다.
나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몸을 관통하는 빛덩이를 주시했다.
《토르의 가호를 받았습니다. 상태창을 확인하여 주십시오.》
낭랑한 방울소리와 함께 황금색 테두리와 망치가 그려진 멋스런 알림창이 발생했다. 쓸데없이 화려하다는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상태창을 확인했다.
지난번에 전부 읽지 못한 상태정보. 복잡한 정보창에는 눈에 띄는 궁서체가 황금색 불꽃을 피우며 아른거리고 있었다. 나는 토르의 가호를 터치해 자세한 내용을 살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토르의 가호
1. 토르의 분신 묠니르가 당신을 주인으로 인정했습니다. 전기속성에 대한 면역력이 100%로 증가되며 모든 감전 데미지가 300% 증가합니다.
2. 모든 능력치에 대해서 긍정적인 상승효과를 보이며, 이 효과는 묠니르의 호감도 증가에 따라서 변동될 수 있습니다.
3. 묠니르 사용 시, 신체에 끼치는 악영향이 줄어듭니다.
4. 토르의 가호는 일시적인 버프입니다. 재사용 대기시간은 5시간. 지속시간은 1시간입니다. (참고)버프가 끝난 뒤에야 쿨타임이 돌기 시작합니다. 유의하십쇼.
토르의 가호. 다시 해석하면 신의 가호나 다름없다. 신답게 통 큰 버프를 선사해 주시는군. 게다가 전기저항력 100%라는 건 감전 확률이 전혀 없다는 소리다. 즉, 묠니르를 착용하지 않아도 천둥의 펠리토늄을 맨손으로 만질 수 있다는 뜻!
“평소엔 그렇게 틱틱 대더니 이럴 땐 고분고분 잘 따라주는 군. 이 재료로 널 고칠 수 있다는 거냐?”
바드는 흐뭇한 부모의 얼굴로 묠니르를 내려다보았다.
그렇다면 전력으로 고쳐 주마. 네가 길을 보여줬으니 그 기대에 부응해 줘야지.
나는 대장간 망치에서 꾸드득 소리가 발생할 정도로 손에 힘을 넣었다. 방금 전까지 가슴을 맴돌던 부담감이 거짓말처럼 승화되어 사라졌다. 지금이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실패할 거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바드는 수천도 이상의 겁화로 천둥의 펠리토늄을 가열하기 시작했다. 펠리토늄의 표면이 새빨갛게 달궈졌고 간헐적으로 매서운 전기를 허공에 토해냈다.
쉽사리 가공될 만큼 무른 강도는 아니라 이건가? 펠리토늄인 이상 녹이지 않으면 묠니르를 수리할 수 없다. 용광로의 온도로 부족하다면 녹아내릴 때까지 온도를 올려주겠다. 내 모든 마력을 불태워서라도!
“하아······. 이럴 때 사용하라고 있는 마법이 아닐 텐데.”
나는 연소에 필요한 공기를 대량으로 불어넣기 위해 손을 한데 모으고 용광로의 풍구 안으로 강력한 바람을 쏘아 보냈다. 밀도 높은 공기압이 풍구로 빨려가자 용광로는 푸하악! 하고 뜨거움 숨결을 터뜨렸다. 마치 성난 화산마냥 용광로 전체가 빨갛게 물들었다.
‘빌어먹을, 이것도 부족한 거냐?’
평범한 펠리토늄이라면 흔적 없이 소멸했을 극한의 온도다. 그런데 천둥의 펠리토늄은 도대체······.
“육시랄 것. 더럽게 안 녹는군.”
공기로 부족하다면 그렇다면 이번엔 땔감이다. 때마침 일순간에 화력을 높이고 장기간 태울 수 있는 적합한 연료가 하나 있다.
“조금 아깝지만 아낄 타이밍이 아니지. 내가 이거 얻으려고 해수를 얼마나 열심히 후드려 팼는데······.”
바드는 쥐똥만한 눈물을 삼키며 인벤토리에서 투명하게 번들거리는 큐브조각을 오브젝트 했다. 전설의 해수에게만 얻을 수 있는 레비아탄의 지방이다. 웬만한 유류보다 가연성이 높아 화력을 대폭 상승시킬 때 조금씩 떼어 쓰는 귀중한 아이템!
“얼핏 봐도 10kg은 남았었는데 이걸 통째로 불태우다니. 경을 칠 짓이라고······.”
레비아탄의 지방은 일부 떼어서 태우면 비오는 날에도 꺼지지 않는 화력을 자랑한다. 파도에 뒤덮여도 그 화력이 조금 주춤할 뿐 활활 잘 타오른다.
‘투자한 만큼 결과 좀 내자.’
바드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용광로 안으로 지방덩이를 던졌다. 100g에 족히 700만 실링은 받을 수 있는 최고급 재료가 10kg이나 타들어갔다. 새로이 발발한 홍염은 바드의 온몸을 집어삼킬 듯 성장했다. 일반 모험가라면 이미 잿더미가 되어서 즉시 절명했을 테지만 바드는 뛰어난 화염저항력으로 약간의 화상 데미지만 입었을 뿐이다.
이 이상 온도를 높이면 안 된다. 펠리토늄이 녹기 전에 용광로 뿐 아니라 펠리토늄을 담을 그릇마저 온도를 버티지 못할 것이다. 조금이라도 다른 철물과 섞이면 펠리토늄은 못 쓰게 된다고!
사방이 뜨겁다. 숨쉬기가 힘들 정도로 공기가 무겁다. 사방팔방 달궈진 벽면은 화산탄마냥 엄청난 열기를 머금었고 영문 모를 기체까지 흘러나오는 것 같다. 바드의 턱에서 미끄러진 염분기가 바닥으로 떨어지자 살벌한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증발했다.
용광로의 온도는 처음보다 10배 이상 상승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녹이지 못했으면 그땐 진짜 목숨 걸고 온도를 높여야 한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극적인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다. 천둥의 펠리토늄이 비로소 검정색의 물방울을 그리며 녹아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3시간쯤 지나서야 펠리토늄은 완전히 녹아내려서 새까만 쇳물로 변화되었다. 이는 결전의 시간이 도래했음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
파지직! 파직!
새까만 물이 청록색의 번개를 그리며 유동적인 파장을 방사했다.
‘됐다. 이제 저 입방체를 묠니르 위로 부으면······.’
나는 쇳물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천천히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묠니르 위로 들이 부었다. 평소처럼 집중했고 공을 들였다. 언제나 그랬듯이 전력을 다해 임했다. 그것이 대장장이의 자세이자 장인의 혼을 발동시키는 노하우다.
검은 쇳물이 묠니르에 닿자마자 강렬한 스파크가 날카로운 소리를 일으키며 공기를 때렸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고 팔의 감각이 마비되었으며 시야가 흔들렸다. 하지만 여기서 주춤할 수 없다.
‘여기까지 와서······.’
여기까지 와서 망칠 순 없단 말이다······!
파칙! 파지지직! 치지직!
팔의 혈관이 터질 듯이 끓어오르는 것 같다. 온몸의 피가 증발할 것 같이 아프다.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것 같은데 언제더라?
『깨워라』
고결하고 아름다운 선율의 목소리가 가슴으로부터 진동했다.
『의지를 깨워라』
죽을 만큼의 격통, 뜨거움, 그리고 한없이 깊고 강렬한 힘. 마치 묠니르를 처음 뽑았을 때의 기분이다. 알 수 없는 힘이 몸 안을 헤집는 기분 아닌가?
온몸의 고통이 죽는다고 신호를 보내왔다. 불행 중 다행인지, 죽음과 같은 고통은 오래가지 않았다. 마지막 한 방울의 쇳물이 묠니르와 하나가 된 순간, 팔의 마비는 자연스럽게 사라졌고 부풀어 오른 근육은 다시금 수축했기 때문이다.
“허억······, 헉······.”
온몸의 수분이 전부 증발해버린 느낌이다. 전신에서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그 수증기는 방안을 가득 메웠고, 사우나마냥 후덥지근한 열대야 기후를 생성했다.
바드는 떨리는 손을 떨구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끝난 건가?”
본래라면 펠리토늄이 굳어지고 그 껍질을 부숴야만 작업이 끝난다. 하지만 묠니르의 외형은 검은 쇳물로 뒤덮인 밋밋한 형체가 아니라 맨 처음의 모습을 유지한 채였다. 그 말은 묠니르가 검은 쇳물을 그대로 받아들여 흡수했다는 쪽으로 생각할 수 있다.
“확인할 힘도 없다 이제······.”
뭔 놈의 재료가 이렇게 위험하단 말인가? 화학반응도 아니고 마력의 충돌로 생긴 전격현상이라니······, 토르의 가호가 아니었다면 팔은 물론 사지전체가 전기구이가 되어서 오그라들었을 것이리라.
아무튼 묠니르의 불안정한 떨림이 완전히 잦아들었다. 묠니르의 상태를 보라! 맨 처음보다 훨씬 빛나고 우람한 자태를 그리고 있다. 부피와 무게가 덩달아 늘어났지만 본래 빛바랜 색보다 훨씬 생기가 감돌고 있다.
마냥 화려한 것 보다는 세련되고 고귀한 자태를 뿜고 있는 황금망치. 그 이름도 위대한 묠니르이다.
“만족하냐? 이놈아.”
생각 없이 건넨 한마디. 그런데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온다.
“만족한다.”
우렁우렁하고 엄청난 무게로 짓누르는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바드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흠?”
“덕분에 살았군. 나를 함부로 다룬 것은 용서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인정하마. 나의 주인이 될 자격을 말이다.”
당신은 누구? 굉장히 당황스러운 등장이다.
식당에서 된장찌개를 주문했는데 김치찌개가 나오는 전개다. 묠니르는 어디가고 대뜸 금발머리의 근육 빵빵 아저씨가 나타나서 내 눈을 괴롭힌단 말인가?
아저씨는 해가 저물어가는 어스름한 벽안의 눈을 가졌다. 덩치는 제법 우람했으며 어깨까지 내려오는 금발은 후줄근하게 젖어 넘긴 걸레컷이다. 분명 이상한 아저씨가 맞는데, 그의 주변으로 느껴지는 기운은 결코 남이라 부를 수 없는 익숙한 기운이었다.
“설마 묠니르?”
“호오~ 인간주제 신의기운을 느끼는 건가? 제법이군.”
아저씨는 고고한 자태를 풍기며 한쪽 눈썹을 치켜들고는 제법이라는 마냥 휘파람을 불며 박수를 쳤다.
나는 묠니르가 진짜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으로 여러 가지 정황을 예측할 수 있었다. 첫째로 묠니르가 나를 진짜 주인으로 인정했다는 것. 둘째로,
“기운 차렸나보군.”
“그 말대로.”
“그렇다면 내 부탁하나 좀 들어주지?”
“나를 봉인에서 풀어주고 수리까지 해주지 않았는가? 이 몸의 자존심 한번쯤은 굽혀주도록 하지.”
바드의 표정은 삽시간 만에 사악함으로 가득 찼다.
그렇다. 묠니르마저 언급해선 안 되는 금기어를 말해버린 거다. 부탁을 들어달라는 질문에 대해서 동의를 해버린 것. 그것은 묠니르의 일생일대 최악의 실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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