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43)
백파의 일원은 죽음을 각오하고 미호와 맞서야만 했다. 이 상황에서 등을 돌리고 후퇴하는 행동은 어차피 죽여 달라는 행동으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공격에는 아무런 생각도, 작전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저 목숨을 걸고 투자하는 도박에 불과했다.
“흐아압!!!!”
미호의 목을 향해 공기를 휘어잡는 거대한 대검. 남자는 팔의 힘줄을 전력으로 쥐어짜내어 전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의 대검은 주황색 불꽃을 튀기며 강렬한 울림을 토해낼 뿐이다.
“공격이 가벼워.”
미호는 검지에 돋아난 날카로운 손톱하나로 2미터에 달하는 강철 덩어리의 움직임을 가볍게 저지했다. 그 뒤의 결과는 ‘참담’ 그 자체였다.
미호가 팔을 휘두르자 측면에서 날아오는 푸른 청염의 창이 그의 관자놀이와 목, 그리고 오른쪽 허벅지를 관통했기 때문이다.
급소를 노린 칭명적인 일격으로 대검을 착용한 허갤은 눈 깜빡할 사이에 사망. 푸른 화염에 휩싸여 잿더미가 되기까지 한순간이었다.
“으랴아아!!”
“끼리야아앗!!!”
우측면과 좌측면의 동시공격. 이번에는 스피드를 살린 파이터와 배틀메이지였다. 화려한 검술로 적을 현혹시키고 능동적으로 태세를 변환시킬 수 있는 파이터(Fighter). 마력으로 무기를 만들어 전투적인 싸움을 이끄는 배틀메이지(Battle mage). 조합은 괜찮았지만,
미호가 칼의 손잡이를 움켜쥐듯 손을 오므리자 서너 개의 여우불이 모여, 가늘고 기다란 장검이 생겨났다. 어둠속의 거친 파도마냥 요동치는 푸른 불꽃의 요도(腰刀)였다.
“더블 크로스(Double cross)!”
“만월참!”
거대한 십자가모양의 검기와 보름달처럼 꽉 찬 광휘의 빛이 미호를 덮쳤다. 그녀는 심드렁한 얼굴로 날아오는 공격을 주시했다.
카앙!
“정면으로 막았어?”
검사는 놀란 얼굴로 요동치는 청염의 검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찰나의 순간 공포로 가득 찼다.
나는 생존을 위해 살생하고 상대를 죽여 왔다.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서 나보다 강한 상대에게 전력을 내던지는 싸움을 수없이 겪었거늘, 하물며 즐기기 위해 개발된 검무 따위로 나를 죽이려든단 말인가?
그런 하찮은 목숨이 나의 먹잇감으로 통한다는 사실을 영광으로 알도록 해라. 그게 네놈들의 유일한 위안거리가 될 테니까.
미호는 두 사람의 일격을 물리치고 한 걸음 물러섰다. 지옥 불을 연상케 하는 과도한 열기가 그녀의 손아귀에서 격렬하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검에 마력을 불어넣는 순간······.
좌르릉!
수많은 마력의 조각으로 분해되어 가루에 가까운 형태로 그들을 덮쳤다. 살을 찢고 베어버리는 초소형 칼날입자는 그들의 온몸을 갈가리 찢어발겼다.
“제, 제길! 이게 뭐야! 움직일 수가 없······ 커헉!”
두 사람은 눈과 코, 입에서 붉은 선혈을 토해내며 고통을 호소했다.
‘네놈들이 나를 어찌해볼 생각이라고? 목숨을 걸면 뭐라도 될 줄 알았나봐? 우스갯소리! 너희들은 인간. 나는 요괴. 네놈들이 지금껏 요괴를 질시하고 박대한 이유가 뭐였는데? 그들의 기이한 한 힘을 두려워했던 것 아니냔 말이야?'
그 말대로다. 요괴들은 인간과 달라.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가지고 있어. 인정한다고······.
“그렇다면 내게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당연히 알 텐데 어째서 덤벼드는 걸까?”
이길 수 없다는 걸 안다면.
“목숨을 걸 정도로 보물창고를 사수하는 것이 중요해?”
도망칠 것이지.
“정 그렇다면 죽여줄게.”
바보 같은 인간 놈들······.
“죽어.”
마력단약의 영향일까? 치솟는 힘이 증오라는 감정으로 변화되어 자꾸만 살인의식을 품게 만든다. 넘치는 힘을 주체할 수가 없다. 당장 누군가를 죽이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만큼!
“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
나도 안다. 완전히 광기에 물들었다. 바드가 날 혼자 남겨둔 건 이것 때문일까? 여차하면 이성을 잃고 바드에게 달려들지도 몰라서? 만약 그렇다면 바드의 선택은 옳았다. 나는 지금 눈에 뵈는 것이 없다. 백파, 청파, 엠페러 길드? 아무것도 내 앞을 가로막을 수 없다.
미호의 힘은 엠페러 세력을 완전히 압도했다. 이미 수백 명이나 되는 인원이 그녀의 손끝에 목숨을 잃었고, 피와 내장을 쏟아내며 차가운 시신이 되었다.
“크윽! 도대체 구미호가 여길 어떻게 들어온 거야!”
“방금 전 잠입은 청파일원이 아니었던 건가?”
“입 다물어.”
“커헉!”
미호의 손길이 닿기만 하면 어께가 끊어지고 목이 떨어졌다. 마치 사람 목숨을 제 주머니에서 꺼내듯 하는 모습. 수만 명에 달했던 백파 일원은 어느덧 궤멸수준까지 이르게 되었다.
“남은 사람은 인원은 기껏해야 3천인가······.”
멀리서 전투를 지켜보고 있는 또 다른 세력. 어깨에 푸른색 완장을 차고 있음을 미루어보아 엠페러 길드의 청파세력이 분명했다.
“백파가 몰살당하고 있다. 우리 세력을 건드린 건 백파가 아니라 구미호였던 건가?”
“어떡할까요? 이대로 저 구미호를 생포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아니다. 이건 보물창고를 털 수 있는 좋은 기회. 백파 놈들의 시선이 다른 쪽을 향해있는 동안 우리는 보물창고를 노린다. 놈들의 전력은 대부분 죽었다. 우리 청파 쪽에서 달려들면······.”
“가능성이 없지.”
누군가 그들의 대화를 잘랐다. 청파 일원은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네놈은 누구냐!”
연갈색의 봉두난발. 연옥의 달빛을 연상케 하는 새빨간 적안.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근육질 상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가 착용한 휘황찬란한 백의 갑주였다.
“내가 누구든 알 필요 없어.”
계획을 위해서 죽어주기만 하면 돼.
청파 세력 또한 수천 명에 달하는 인원이었다. 그들의 평균 레벨은 200이상에 달했으며, 하나같이 고귀한 재료로 제작된 장비를 착용한 모양이다.
“흥! 혼자서 우릴 어떻게 하려는······.”
“연환봉춘권!”
바드의 봉황은 그들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청파세력은 결국 뼛속까지 탈탈 운명이었던 것이리라.
***
“크아아, 크아악!”
바닥에 드러누운 남자가 잘린 팔을 부여잡고 신음했다. 그 앞에 다가선 미호는 무표정하고 싸늘한 시선을 내던지며 도도한 입술을 열었다.
“아파?”
“으으으······. 끄으윽······!”
정신은 공포의 세계에 잠식 된지 오래. 남자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몸을 떨어야했다.
“나는 지난 1천년동안 그보다 더한 고통을 안고 지냈어.”
절대적인 고독, 아픔, 질시. 내게서 모든 것을 갈취해간 인간 놈들의 배덕행위.
“너희는 그런 족속들이잖아? 남에겐 쉽게 상처를 주면서 상처받기 싫어하는 이기적인 하등생물. 나는 그런 너희들에게 한번쯤은 의연해질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의연하게 죽어.
나는 손가락을 한데 모으고 남자의 심장을 향해 짓이겨 넣었다. 살을 억지로 비집고 내장을 밀어내는 저항감. 질척이는 살점과 울컥울컥 흘러나오는 붉은 선혈이 손과 얼굴을 희열로 물들였다.
인간의 고동을 느껴본지 얼마나 오래되었던가? 강제로 손을 찔러 넣고 철내음 가득한 피의향연을 얼마 만에 맡아보는가?
죽어라. 내가 받은 고통만큼 아파하며 죽어라.
간헐적으로 피를 토해내는 남성의 동공이 서서히 풀려간다. 움찔거리던 입술도, 몸도, 희미하게나마 두근거렸던 심장도······.
“······.”
다 죽였다.
미호는 복잡한 얼굴로 멍하니 바닥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원통함, 분함, 그리고 증오. 이 감정을 어떻게 풀어야할지 그녀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가슴을 마구잡이로 내리치고 싶은 갑갑한 마음. 어찌할 바를 몰라서,
“으으······아흐윽······ 흐극······!”
소리 없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
등불만이 어둠을 밝히고 있는 으슥한 방. 요염한 바디를 뽐내며 책상에 걸터앉은 로브의 여자와 건틀릿을 착용한 거구의 오크가 마주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투사(鬪士) 바바디바바스. 엠페러 길드의 3위로, 하벨스 대륙 내에서 엄청난 악명을 날리고 있는 10인의 공작 중 한명. 그리고 건너편에 앉아있는 여성이 서열5위에 달하는 9서클 마법사(vertex wizard) 리디에다.
“땅굴 안이 소란스러운 것 같던데?”
“청파와 백파가 마찰을 일으킨 모양이더군. 듣자하니 청파가 먼저 건드린 것 같은데······.”
“글쎄? 이걸 보면 생각이 달라질걸?”
리디에가 손가락을 따악! 튕기더니 허공으로 남색의 눈동자가 튀어나왔다. 마치 마귀의 눈동자를 연상케 하는 기분 나쁜 모양새. 눈동자는 동공에서 초록빛의 빔을 벽면에 발사했다.
“이놈들은?”
바바디바바스의 눈썹이 한껏 요동쳤다.
“외부인이 침입한 건가? 겁 대가리 없이 우리 길드를······.”
“우리가 아주 만만했나보지. 제 딴에 들키지 않게끔 몰래 숨어들어왔겠지만 나의 마신의 눈은 피할 수 없는걸? 그리고 백파와 청파를 이간질 시킨 것도 이 외부인 들이야. 물론 그들의 농간에 놀아날 꼭두각시들이 아니지만 말이야.”
리디에가 다시금 손가락을 튕겨 마신의 눈을 집어넣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꽉 얼싸안으며 참을 수 없는 흥분으로 얼굴을 붉혔다. 그녀의 입가에 환희에 찬 미소가 내려앉더니,
“엄~청 강해! 두고두고 싸우고 싶을 만큼 말이야!”
“끄응, 전투광이 또 다시 미쳐 날뛰겠군.”
바바디바바스는 골머리를 앓으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아무튼 이 일을 그냥 보고 넘어갈 수는 없지. 녀석들의 목적은 보나마나 보물창고가 분명하다. 10인의 공작을 전부 불러내고 그 밑에 남작 자작 백작을 집결시키도록 하자고. 케르드 군주님의 귀에 이 소란이 닿는 날에는 큰일이 벌어질 테니 일분일초라도 정리하는 게 좋겠다.”
리디에는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대고는 곤란하다는 마냥 고개를 저었다.
“흐응~ 미안하지만 마르코 공작은 이미 사망했어. 외부인이 이미 죽였거든. 쿠샨 공작은 진작 실종상태고 말이야~”
“마르코가 죽었다고?”
돌 석상 같던 바바디바바스의 표정이 한껏 움찔하며 되물었다.
“외부인이 청파의 본거지를 지나쳐가던 도중에 전부 죽인 모양이야. 마르코는 상대도 안 된 것 같던데?”
“아무리 서열10위라지만 마르코의 힘이 미치지 않는다니······.”
“더 기대되지~? 그러므로 내가 먼저 놈들을 상대할거지롱!”
“이봐, 리디에! 잠깐······.”
바바디바바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리디에의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 사라져버린 뒤였다. 바바스는 한껏 긴장감을 불태우며 생각했다.
‘느낌이 좋지 않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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