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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ter Smith-44화 (44/202)

Master Smith (44)

빨간 피의 웅덩이 가운데서 미호가 주저앉은 채 오열을 토하고 있다. 왜 그러는지 이유는 알고 있다. 미호의 목걸이는 이럴 때 사용하는 용도니까 말이다.

나는 가득 부풀어 오른 마법가방을 등에 짊어진 채로 보물창고에서 빠져나왔다. 멀리서 그녀의 온갖 감정의 화살이 날아오는 듯하다.

나참, 어설프게 굴기는. 뜬금없이 감성에 젖어서는 감정도 제대로 컨트롤 못 하는 건가?

‘인간을 향한 증오가 커졌군. 마력단약의 영향으로 본심이 튀어나온 걸지도 모르겠어.’

이럴 땐 멀리서 지켜보는 것이 최고다. 괜히 섣부르게 나서다가 된통 통수 맞지 말고 반응을 보는 것이다.

‘못 믿어. 모든 인간도, 바드도, 그 누구도.’

미호의 내심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온다. 그녀가 인간을 믿지 못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증오하는 것도 이해한다. 인간은 간교하다. 한없이 사악해질 수 있다. 나를 돌이켜보면 간단히 알 수 있는 사실 아닌가?

요괴는 죽어 마땅하다? 몬스터는 죽여야 하는 존재다? 그건 인간사회 가운데서의 기준이지 세상 모든 이가 수긍할 수 있는 이유는 아니다. 다른 이질적 존재의 기준으로 본다면 인간들이 쓰레기 보다 못한 존재라는 사실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으리라.

믿지 못한다면 믿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 판단이 한순간의 감정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래도 나는 네 주인이야.”

어느 위치에서나 절대적으로 위인 존재.

“알고 있어.”

“너는 내 펫이야. 맞지?”

나는 좋은 의미로 그녀를 펫으로 삼으려던 것이 아니다. 단순한 동정심. 외로움 속에서 견뎌야할 고통의 크기를 내가 알기 때문에 그녀를 받아준 것이다. 요괴면 어떻고 몬스터면 어떠한가? 나와는 상관없다.

미호는 본인의 위치를 잘 알고 있다. 그 때문에 지금도 대들지 않고 고분고분 하지 않은가?

그녀가 젖은 눈동자를 들어올려 내 눈동자로 시선을 던졌다.

“당신을 믿지 않지만 복종은 할게. 그래도······ 되지?”

“그래. 너 이 녀석 말 한번 잘했다. 믿지는 못해도 절대복종? 그러면 여기서 어떤 명령을 하더라도 복종하겠다는 소리렷다?”

그녀는 인간을 싫어한다. 믿지 않는다. 나는 인간이다. 그녀는 나를 싫어한다. 누구누구의 삼단논법으로도 도출해낼 수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복종은 하겠다는 이 모순된 부분. 애매한 관계는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그녀가 요괴이고 내가 인간이기 이전에 그녀와 나는 계약으로 이루어진 펫과 주인의 관계니까. 우리는 서로 신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명령한다. 닥치고 조용히 내 품으로 안겨!”

“······예?”

펫과 주인님(마스터)는 절대적인 신뢰로 이어져야 한다. 즉, 교감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소리다. 그녀에게 나의 결백한 마음을 전할 수 있다면 이 정도 쯤이야······.

─────포옥

‘얼마든지 감수해주겠다 이거야.’

미호가 머뭇거리는 시선으로 몸을 주춤했지만 이내 엉금엉금 기어와 내 품에 파고들었다. 폭신폭신한 꼬리가 감촉이 좋다. 그녀의 귀가 얼굴을 간질였다.

“지금부터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을 테니까 네 마음대로 행동해. 나를 죽이던가, 이대로 도망쳐도 상관없다. 이 거리라면 급소를 노려서 한 방에 죽일 수도 있어.”

“갑자기 무슨 소리······.”

“인간 싫어하잖아.”

급격하게 떨리는 시선과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그녀의 의심이 눈을 통해 들어오. 왜 주저하는가? 그토록 증오하던 인간이 눈앞에 있다. 모든 걸 내려놓은 채 심장을 드러냈다. 날 죽이고 자유를 찾기 위해선 지금밖에 기회가 없을 텐데?

“거봐. 아무것도 못하잖아. 너.”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마음이 찢어지는 듯한 울상을 지으며 미호의 눈꼬리에서 빛의 입자가 흘러나왔다.

‘할 수 있을 리 없잖아. 바보 같은 주인아······.’

내가 못할 거 알면서. 주저하고, 좌절할 거 알면서 왜 그런 소리를 해? 내가 괴로워하길 바라는 거야? 날 놀리는 거야?

따악!

따끔한 통증이 전해진 것은 그 직후였다. 바드가 내 이마에 딱밤을 날린 것이다.

“설마 널 놀리려고 한 짓이겠냐······.”

“그럼······ 왜?”

나는 목숨을 걸고 제안했지만 미호가 나를 죽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품고 있었다. 신뢰하니까.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믿어달라고 한 소리잖아.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너도 믿어달라고.”

의도치 않은 분위기가 흘러간다. 당장이라도 감동받은 미호가 “주인님!”하고, 소리치면서 감격의 눈물과 함께 내 목덜미를 끌어안을 것 같은 그런 상황이다. 정말 유감스럽게도 그런 괴상한 로맨스는 정말 싫다. 나는 요괴 취향이 결단코 아니니까. 그런데 어째서······?

‘다가오지 마.’

미호가 울음을 그치고 내 손을 움켜쥐었다. 분홍색 홍조,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마음의 거울, 떨리는 입술이 동시 다발적으로 가까워졌다.

“주인님.”

뺨에 부드러운 감촉이 맞닿았다. 나로선 처음 느껴보는 감각. 입맞춤이란 거 기껏해야 할아버지의 까슬한 수염이 전부였는데······.

미호의 눈웃음이 눈에 들어왔다. “에헤헤~” 바보처럼 웃고 있는 백치미 넘치는 얼굴 말이다.

“오, 오해 마? 그냥 분위기에 휩쓸린 거니까.”

“죽고 잡냐? 어디서 함부로······.”

펫이면 펫답게 굴 것이지 어디서 꼬리를 쳐? 꼬리를. 그것도 주인님한테 말이야. 앞으로 적당히 훈육을 시키지 않으면 안 되겠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머리끝까지 기어오를지도 모를 일이니까.

미호는 웃었다. 그리고 울었다. 도대체 뭐가 그리 만족스러운 걸까?

“멍청한 녀석.”

“바보 주인한테 듣기 싫은 말인데~ 그보다 진짜 죽였으면 어쩌려고 나한테 그런 소릴 했데요?”

“그렇게라도 안 하면 네가 화 안 풀까봐.”

나는 실없는 미소와 함께 미호의 앞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로써 펫과 주인이라는 선을 확실히 그어버린 것과 다름없다. 이걸로 된 거다.

“그래도 좋아하는 건 상관없지?”

“안 돼. 돌아가.”

나는 미호의 이마를 밀어냈지만 그녀는 악착같이 내 팔에 달라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앞으로 귀찮은 일이 엄청 꼬일 것 같다는 생각이 끝이질 않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여우 숲에서 죽도록 내버려 두는 거였는데.’

‘고마워 주인님. 날 이해해 줘서.’

미호의 마지막 고백은 바드의 목줄로도 감지 할 수 없는 심의의 목소리였다.

***

날이 어두워져간다. 어둠의 도시 다잔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미호와 바드가 땅굴에 잠입한지 벌써 수 시간. 감시팀과 유도팀은 여관 메인 홀에서 조용히 앉아있다.

“이봐요 게르덱.”

사람이 어찌 그리 침착하냐? 안에 들어간 사람은 걱정도 안 되나? 여기서 여유롭게 차나 홀짝이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어디 불편하세요? 카스티바님?”

“아, 몰라요! 그냥 전부 마음에 안든 다고요.”

당신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던가, 땅굴로 들어간 바드의 상황을 알지도 못한 채 애만 타야하는 현재 상황이 매우 언짢다고. 마음 같아선 바드를 따라서 땅굴 안으로 쳐들어가고 싶은데······.

‘여기 있는 덩치 큰 아저씨가 그렇게는 못하게 막고 있으니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바드님은 강하잖아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말이죠. 분명 여봐라~ 하면서 당당하게 돌아오실 거예요.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걱정 안 했거든요!”

누가 누굴 걱정해? 그 인간 어떻게 되는 내가 무슨 상관!?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던데 설마 그런 겁니까?”

“그런 거긴 뭐가요! 계속 장난치면 저도 가만 안 있을 거예요?”

그렇게 으르렁거리던 카스티바의 눈에 어린애 한명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는 이제 막 10살 정도 되어보였고 찢어지고 헤진 낡은 천의를 걸치고 있었다. 풍성하게 자란 머리카락은 한동안 머리를 감지 못했던 탓인지 기름기가 좔좔 흘렀으며 얼굴이나 옷에도 얼룩덜룩한 검은 자국이 묻어나 있다.

아이는 주변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의자에 앉아 졸고 있는 남자의 등 뒤로 이동했다. 그리고 슬며시 손을 뻗어 상의 주머니로 손을 넣더니······.

“놈! 어린 것이 벌써부터 도둑질이냐!!”

잠에서 깬 남성이 어린사내아이의 손을 붙잡고는 멀리 던져서 내동댕이쳤다. 나가떨어진 아이는 고통에 젖은 신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우으으······으읍······.”

도둑질하다 들킨 아이의 표정은 공포로 물들어있었다. 하지만 거구의 남자은 자비를 베풀 마음이 없어 보인다.

‘게르덱?’

“자자~ 진정하시죠. 어린 아이를 패대기치면 쓰겠습니까? 게다가 다 큰 어른이······.”

“넌 또 뭐냐! 당장 그 자리에서 비키지 않으면 네놈도 집어던져주마!”

남자는 양팔을 벌려 게르덱을 덮쳤지만 게르덱은 단일 순간이동, 블레싱으로 가볍게 회피했다.

“그 속도로는 고블린도 못 잡겠습니다. 하하하!”

게르덱은 마법 스태프를 휘저으며 남자의 머리통을 뚝딱! 내리쳤다. 남자는 게거품을 물며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꼬마야 다친 곳은 없니?”

“······.”

그 순간 꼬마의 눈이 돌변하더니,

“어라? 내 스태프가?”

게르덱의 반응과 동시에 카스티바가 소리쳤다.

“이 바보야! 소매치기 당했잖아! 빨리 뒤 쫒아가!”

어영부영 사내아이의 뒤를 쫓아가는 두 사람. 쿠샨은 한숨과 동시에 얇은 플라스틱 패널 들여다볼 뿐이다.

안토니오는 근심 가득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두 사람 내버려둬도 괜찮을까요?”

“다 큰 어른들이지만 정신연령은 너보다 낮은 것 같군. 정 걱정되면 따라가 보든가.”

“쿠샨 아저씨 말대로 다 큰 어른이니까요······. 알아서 해결하고 돌아오시겠죠.”

안토니오의 똑 부러지는 소견에 쿠샨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감이다.”

다잔의 첫날밤이 깊어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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