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Master Smith-36화 (36/202)

Master Smith (36)

보름달이 존재감을 뿜어내는 밤. 하늘로 뻗어난 나뭇가지 사이로 은은한 빛이 비집고 나와 바드의 눈동자로 빨려간다.

나는 잘려나간 나무밑동에 걸터앉아 밤을 새고 있는 중이다. 새벽녘 공기가 달빛에 젖은 뺨을 스칠 때마다 몽환의 세계로 빠져드는 기분이다.

저녁식사를 마친 다른 멤버들은 이미 곯아떨어진 상태. 게르덱은 꼼꼼히 결계를 치고 돌아온 탓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안토니오도 시간이 되자 알아서 쓰러졌다.

“무리하는 거 아니야? 그냥 쿠샨 깨워서 바꾸는 게 좋지 않아?”

그녀가 대뜸 말을 걸어왔다.

“잠이 안 오는 것뿐이야. 그쪽이나 교대하지? 눈 밑에 다크써클 생긴 것 같은데?

“그림자야 그림자.”

그녀가 감흥 없는 얼굴로 도리질치며 부정했다.

어김없이 밝은 보름달. 분위기 있어서 좋다. 자꾸 뭔가를 생각하게 만들고 있잖은가? 마치 상상의 지도를 보는 것처럼 말이다. 영롱하면서 고요하고 차분한······ 삶의 끝을 바라볼 수 있는 느낌.

나는 옆에서 조그만 위화감을 느꼈다.

‘······흠?’

울고 있다. 하늘을 바라보던 그녀가 무표정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온 달빛에 반사되어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그녀는 턱선을 따라 흘러내린 물방울이 다리위로 떨어지고 나서야 내 시선을 알아차리고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뭐, 뭘 봐!”

“······.”

이럴 땐 모른 척 하는 것이 현명하다. 쓸데없는 질문은 분위기만 무겁게 만들 뿐이다. 신사적으로 행동하자. 물론 신사가 되는 것은 사양이지만 한 순간 정도라면 참고 입 다물어 줄 수는 있다.

게다가 여기서 대화가 이어지면 앞으로 남은 교대시간까지 엄청나게 어색해질지도 모른다.

나는 움찔거리던 입을 가까스로 제어했다. 결과는 성공적. 모른척하는 연기력도 100점 만점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모른 척 해주는 거야?”

“······그러려고 했는데.”

대놓고 눈물을 보여주는데 이제 와서 모른 척 하는 것도 웃긴 일이다. 그러면 내가 선정해야할 선택지는?

1. 나도 운다.

2. 뭐 어쩌라고.

3. 말없이 안아준다.

4. 무시한다.

5. 야식 드실래요?

1번은 당근빠따 나가리다. 2번은 대놓고 나쁜 놈 되는 거고. 3번은 사망의 골짜기로 걸어 들어가는 거고. 4번은 방치플레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5번? 상황에 맞지 않아.

이럴 거면 뭐하려고 선택지를 만들었나 싶었지만, 먼저 입을 연 쪽은 그녀였다.

“갑자기 이런 모습을 보여서 미안. 이만 잘게.”

“······울고 있던 이유라도 알려주지? 괜히 사람 궁금하게 만들어 놓고선. 대놓고 무시할 만큼 넘어갈 남자는 아니거든.”

카스티바 정도 되는 여자가 왜 가녀린 소녀처럼 울고 있었는지 그만한 사연이 있었겠지.

“실례가 안 된다면 물어봐도 되나? 대답하기 싫으시면 상관없지만, 역시 ‘협곡에서 있었던 일’때문이지?”

그녀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손가락으로 훔쳐내며 정확히 짚었다는 마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내 동료가 다 죽었다고. 아까 말했지?”

“······.”

나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구부린 다리를 양손으로 끌어안고 얼굴을 무릎안쪽으로 파묻었다. 그녀의 아련한 눈동자가 기억의 저편으로 넘어가 과거를 회상하는 듯하다.

“리더는 착한 사람이었어. 불우한 사람을 보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오지랖 넓은 남자였지. 하지만 리더가 죽은 이유는 그 오지랖 때문이야. 그날 안토니오가 코지부락에서 원정 대원을 끌어 모았을 때 완전히 무시했더라면 리더는 물론, 동료 누구하나 죽지 않았을 거야.”

쓸데없이 나서기 좋아하는 성격 때문에 그날 원정에서 죽었다는 소리? 그것 참 유감이군.

“리더는······ 단순히 정의감에 죽었어. 하지만 비난하지 않아. 안토니오가 생각하는 정의감이 자신이 추구했던 이상향하고 많이 닮았다고 말했었으니까. 나는 리더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해.”

정의. 내가 생각도, 실현조차 할 생각이 없는 패턴이다. 내게 있어서 정의란 무엇인가? 그렇게 질문해도 답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정의란 단어가 목숨을 걸만한 가치가 있을까? 그래서 목숨을 버렸다고? 아직 애송이인 안토니오에게 어떤 정의를 보았기에 목숨을 내던졌단 말인가? 제정신이 아니군.

바드는 고개를 저으며 약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의 리더라는 작자는 뭘 믿고? 사람 목숨에 가치를 부여해선 안 되지만 안토니오를 목숨 버려가면서 살려낼 가치가 있었을까?

“네가 리더의 동료라면 이해할 수 있을거야.”

“미안하지만 전혀 이해할 수 없어. 너도 나랑 같은 생각이잖아? 리더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 안 가는 거.”

“나는 리더의 오더에 따랐을 뿐이야. 하지만 나는 안토니오를 구해야만 했어. 왜냐하면······.”

그녀는 끝말을 어물거렸다. 무슨 말을 한 것 같지만 내 귀에 들리지 않았다.

“아무튼 복잡한 사연이 있다고.”

“그래서 울었다?”

“별 같잖은 이유도 다 있지? 그냥 모른 척 해줬을 때 적당히 넘어갔어야 됐는데 괜히 쓸데없는 말을 했네.”

물론 쓸데없긴 했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였으니까. 그러나 이야기 자체는 흥미롭다.

카스티바의 리더는 어떤 이상향을 품었기에 안토니오를 전력으로 구해낸 걸까? 과연 그 답을 그녀가 알아낼 수 있을까?

‘너는 알겠냐? 안토니오.’

나는 세상모르게 잠들어있는 귀족청년의 뺨을 지그시 쳐다보며 답변을 갈구하는 눈치를 보냈다. 그러나 들려오는 것은 달밤에 어울리는 고요한 숨소리뿐.

나는 이제 막 눈물을 다 닦은 그녀에게 말했다.

“지금은 안토니오를 지키는 수밖에 없겠군.”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내 말뜻을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다. 나는 재차 이야기 했다.

“그러니까. 안토니오에 대해서 더 알아봐야 네 리더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알 것 아니냐고? 그러려면 안토니오를 곁에서 지켜줘야 할 것 아니야?”

그녀는 안토니오의 뺨을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만지며 엄마 같은 웃음기를 그리더니 단순히 착각이었다고 느껴질 정도로 삽시간 만에 표정이 굳어졌다.

“한동안은 그렇게 되겠지. 하지만 안토니오는 가야 할 길이 달라. 안토니오는 고향에 대한 복수를 하고 싶을 테니까.”

복수, 보복, 처형,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안토니오는 엠페러 길드에게 크나큰 분노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가족도 친구도, 그 외에 모든 것을 송두리째 뽑아서 불태운 것이 엠페러 길드니까.

“안토니오가 그들과 똑같이 행동하는 것을 바라고 있을까? 안토니오는 엠페러 길드와 근본부터가 다른 녀석인데. 녀석도 복수 보다는 답을 원하고 있을 걸?”

지금의 안토니오에겐 해답이 필요하다. 엠페러 길드에게 잃어버린 모든 것을 되찾거나, 다시 빼앗는다는 보복보다,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스스로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할 것이리라.

“해답 인가?”

그제야 어두웠던 그녀의 얼굴이 약간이나마 밝아졌음을 얼핏 보인다.

“그 말을 듣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네.”

정해진 답안에서 답을 찾는 게 아니라 답안의 답을 내가 정해야 한다는 것. 어떤 답으로 선택지를 채울지는 내 손에 달려있다는 것. 그 말이 듣고 싶었다.

“안토니오를 지키면······.”

리더의 생각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될까? 나는 절대로 내 동료들의 죽음이 헛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

“고마워. 덕분에 조금 기분이 나아졌어.”

“지금은 내 동료니까 기분을 풀어주는 것도 하나의 역할이지. 괜찮으면 지금 안겨들어도 아무 말 안 할 건데? 분위기상 그래도 될 것 같지 않아?”

바드는 팔을 벌려 자신의 넓은 품을 과시했다. 물론 그 뒤로 이어지는 것은 쓰레기를 보는 듯한, 또는 역겨운 해충을 보는듯한 눈총을 내리쏘는 카스티바 뿐이다.

이 여자는 무슨, 농담의 농자도 안 먹히는 군.

그렇게 생각하기 무섭게 카스티바의 얼굴이 아련하고 품위 있는 미소로 가득 찬다. 눈가에 차오르는 습기와 적절하게 물들어가는 홍조. 밤바람에 흩날리는 붉은색 포니테일의 머리카락이 향긋한 냄새를 퍼트렸다.

그녀는 양손을 자신의 가슴께 앞에 아울러 모은 뒤, 몸을 움츠리며 몇 초간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다.

“갑자기 왜 그······.”

그녀가 두 눈을 꼬옥 감은 뒤 숨을 합! 참아내고는 내 품안으로 얼굴을 파묻었다.

이게 무슨 상황? 잠깐만. 난 농담으로 한 말이었는데. 방금까지만 해도 잡아먹을 듯이 노려봤잖아?

“잠깐만 이러고 있을게······.”

그녀가 입을 연 순간. 이것이 꿈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현실. 리얼 라이프다.

돌이켜보자. 카스티바와 내가 알콩달콩 핑크빛 분위기를 피워낼 계기가 있었던가?

그녀와 처음 대면했을 때 그녀는 회복포션을 먹지 않고 죽으려고 해서 티격태격 했었다. 나중에 마을로 돌아왔을 때는 또 다시 티격태격 싸웠다. 포션카페에서도 티격태격 싸웠다. 이번 원정길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원정대 이름 때문에 싸웠다.

'싸운 기억 밖에 없다?'

그녀는 한동안 품안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타들어가는 화롯가. 사그라드는 온기와 불꽃. 마지막까지 모든 걸 태워서 회색 연기를 피워낸 장작은 더 이상 불꽃과 온기를 내뱉지 못했다.

“저기, 나무 다 탔는데?”

“······.”

카스티바에게 아무런 반응이 없다. 가만······ 이 전개는?

“코오오······.”

“자는 거냐?”

바드는 미간을 찌푸렸다. 결국 그날은 쪽잠도 자지 못한 채 한 여자를 품고 밤을 새워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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