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Master Smith-34화 (34/202)

Master Smith (34)

《하벨스 동쪽끝자락 도시 다잔》

잿빛 먹구름이 유유히 흘러간다. 거리를 맴도는 눅눅한 습기는 방금 막 지나간 소나기 때문 일 것이다. 아직 오후3시 채 되지 않았지만 햇살하나 들어오지 못하는 이곳은 도둑, 살인마, 강간범 그 외에 각종 범죄자들이 몸을 숨겨 살고 있는 다잔이다.

다잔은 풍수지리상 365일 1년 내내 우중충한 날씨가 지속된다. 때문에 도시 자체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는 어찌할 수 없다. 그 영향 때문일까? 마을주민들의 얼굴은 눈 밑이 어둡고 돌처럼 굳어진 표정이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는 마을. 아니, 이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불가능한 마을. 이곳의 심층부에는 거대한 공간이 마련되어있다. 50미터 지하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거대한 땅굴이야말로 도둑의 소굴로 적합하다.

“뭐라? 코지부락을 거쳐 가는 과정에서 뭐?”

“전멸······ 한듯합니다. 통신을 맡고 있던 마법사에게 연락이 끊긴 것이 아마도······.”

“통신병의 마력 위치를 역추적하면 될 것 아니야! 그래서 결과는?”

수정구를 들고 있는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추적결과, 위치는 코지부락 주변 천금협곡 중간위치쯤 인듯합니다. 역시나 돌아오는 신호는 없습니다. 쿠샨의 부대가 전멸했거나, 일부러 통신을 끊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칠흑색 흑발을 견갑골까지 길게 늘어트린 우람한 체격의 남성은 타오르는 눈알을 부라리며 강철식탁 중심부를 강하게 내리쳤다.

떠엉! 하고 둔중한 소리가 발생하면서 순수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지자 거대한 주먹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순수한 근력 파라미터로 철을 우그러뜨릴 정도. 그의 신체능력이 얼마나 강대한지 엿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쿠샨은 엠페러 길드를 배신할 놈이 아니다. 바보같이 줏대만 있어가지고 지금까지 이용할 만큼 이용해먹었는데, 이제 와서 배신할 이유가 없지.”

“그렇다면 역시 전멸을 예상하고 계시는 겁니까?”

로브의 남성이 의구심 가득한 목소리로 내뱉으며 손 위의 수정구를 떨어트렸다.

“그것 역시 믿겨지지 않는군. 쿠샨은 이용해먹기 좋을 만큼 바보일 뿐이지, 그의 강함은 엠페러 길드 내에서도 10위 안팎이다. 얘기치 못한 사고가 일어난 것일 게야.”

거구의 남성은 어둠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주홍색 화톳불이 그의 야만적인 육체를 비췄다.

연한녹색의 피부와 울긋불긋한 힘줄. 오크(Orc)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뿐만 아니라 멧돼지의 엄니처럼 흉포하게 자라난 이빨과 호박색 눈동자는 오크 중에서도 우두머리 수준의 위압감 가지고 있다. 그의 콧구멍에서 뜨거운 콧바람이 간헐적으로 뿜어져 나왔으며, 바윗덩이 같은 주먹은 단단한 건틀렛으로 무장되어 있다.

투사(鬪士) 바바디바바스. 엠페러 길드의 서열3위로 힘을 중시하는 오크전사다.

“쿠샨이야 어찌되든 상관없지만 그가 운반하던 희귀재료들은 엠페러 길드의 자산이다.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

“부대를 준비할까요?”

바바디바바스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아니. 최소한의 인원만 편성해서 정찰병만 투입한다. 재료가 실려 있던 운송용 마차를 발견하면 워프스톤을 사용해서 운송부대를 송신해라.”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마법사는 마력을 피워내며 허공 속으로 허울 없이 사라졌다. 누군가 있었다는 일말의 흔적도 남기지 않고 완전히.

거구의 오크는 아무것도 없는 구석을 주시하며 생각했다. 드디어 때가 왔다고, 하벨스 대륙의 끝이 도래되었다고 말이다.

‘때가 되었다. 이 대륙을 정복할 때가.’

***

“전설등급 재료라고?”

강아지 눈으로 탄성을 내지르는 것은 카스티바였다. 아이템 품목이 재료라고는 하지만 전설이라는 등급은 생전에 듣도 보도 못해봤기 때문이리라.

안토니오 역시 놀한 눈치다. 한창 드링킹하던 포션은 테이블 구석으로 밀어내고 지금은 게르덱의 이야기에 경청하고 있는 상황. 이 와중에 가장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은 바드였다.

“······.”

아까부터 긴 침묵을 지키고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머릿속에서 복잡한 사칙연산을 하고 있던 탓이다.

그레이프 포션 7만5천 실링, 세실리아 포션 12만 3천 실링, 비타민 포션 10만 2천 실링, 3단 생크림 블루베리 케이크 16만 실링······.

‘도합 46만 실링······.’

뭔 놈의 비싼 메뉴만 잔뜩 주문한 것인지, 바드는 상당히 고뇌에 찬 얼굴로 뒷주머니에 돈 자루를 막연히 바라보았다. 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안토니오와 노엘은 2만 실링짜리 시원한 보리수 포션을 추가로 주문한다.

‘50만.’

계산을 마친 바드의 뇌 속에서 보이지 않는 금이 쩌저적~ 하고 시원하게 갈라졌다.

“그나저나 이렇게 많이 사도되는 거야? 꽤 부담이 될 텐데······.”

“카스티바 씨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늘 바드님이 장사가 잘 돼서 큰 돈 좀 만지셨거든요. 제 말이 맞죠? 바드님.”

처음부터 그걸 노렸던 거냐! 당신덕분에 지갑이 상당히 가벼워질 위기에 처했습니다만, 시답지 않는 정보를 공유할 생각이라면 나는 앞 뒤 안 가릴 자신 있거든.

바드는 팔을 부들부들 떨면서 심기가 불편한 목소리로 물었다.

“본론만 이야기 하지. 엠페러 길드의 전설등급 재료 아이템에 대해서 말이야. 경고하는데 만약 별거 아닌 정보라면······.”

“걱정 마시죠. 적어도 바드님이 생각하는 50만 실링 어치보다 훨씬 유용하고 비쌀 테니까요.”

그는 내가 신경 쓰고 있던 부분을 정확하게 꼬집어 말했다. 그 말은 즉, 내가 돈에 대한 집착이 상당한 사람이라는 것을 진작 알아차렸다는 소리렷다? 그렇다면 쓸모없는 정보는 가져오지 않았겠군.

그 말에 긍정이라도 하려는 듯. 게르덱이 어께를 으쓱이며 말했다.

“엠페러 길드는 지금 전설등급 재료를 제작하기 위한 재료를 전부 모았을 것입니다. 물론 그 재료의 대부분을 바드님이 갖고 있지만 말이죠.”

‘처음부터 다 알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다가오는 군. 녀석의 말에는 신빙성이 없어. 신뢰는 금물이다.’

“경계하고 있군요. 제가 이런 정보를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신가요?”

‘마치 내 속을 꿰뚫어 보았다─── 라고밖에 들리지 않는데?’

“엠페러는 대륙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를 눈치 채고 발 빠르게 움직인 집단이 있습니다. 그들은 국왕의 친위대도, 평범한 모험가나 용병도 아니죠.”

그가 안경을 고쳐 쓴 뒤 이어 말했다.

“저희는 근래 20년간 전설등급 재료에 각종 정보를 수소문 했습니다. 그리해서 알아낸 사실이 전설등급의 재료를 구하기 위해서는 수백 가지의 희귀등급 재료를 합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설재료를 만들기 위해서 재료를 합성해야한다······? 그 재료가 내 손에 대부분 있다는 것이고?”

듣도 보도 못한 방법이다. 전설등급의 재료를 그런 식으로 밖에 구할 수 없었다면 내가 전설재료를 접해보지 못한 것도 어느 정도 납득 가능하다.

“그럼 여기서 질문. 엠페러 길드가 전설의 무기를 만들어서 이루려는 구체적인 목적은 뭐지? 굳이 전설의 무기가 아니어도 충분한 힘이 될 텐데?”

“마왕의 부활입니다. 그들은 마족의 왕을 부활시켜서 이 땅을 지배하려고 있어요. 아무도 대적 못할 절대적인 힘을 얻어서 말이죠.”

“그 마왕을 컨트롤하기 위한 것이 전설등급의 무기라는 것이고?”

엠페러 길드의 정보는 대강 간추려 졌다. 이제 진짜 본론을 이야기할 차례이다.

“이 이야기를 왜 내 앞에서 꺼내드는 거지?”

“이 일에 제일 적임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내 어딜 봐서?”

그저 평범한 대장장이로 보일 텐데 내 어디가 엠페러 길드를 대적할 수 있게끔 생겼냔 말이야? 물론 그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그딴 길드, 정신도 못 차리게 풍비박산 내버릴 수도 있다.

“바드님의 레벨이 그걸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만한 분이 계시거든요. 그건 나중에 설명하기로 하고. 본론으로 돌아가서, 저는 이번에 엠페러 길드의 본거지로 쳐들어가서 그들의 남은 재료를 약탈하는데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그렇게만 하면 엠페러 길드는 마왕을 부활시킬 수 없고······”

바드가 말을 가로챘다.

“나로선 전설등급의 재료를 구할 수 있다는 거군. 당신이 말하는 계획이 실행되기 위해선 이 둘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지. 그건 무슨 의미지? 핵심을 정확하게 짚자고.”

카스티바는 먹고 있던 케이크를 내려놓으며 기침을 토했다. 안토니오는 사례가 들린 그녀에게 황급히 포션을 권했다.

“이를테면 미끼역할이죠.”

“미끼······?”

“엠페러 길드의 규모는 엄청납니다. 저희끼리 그 내부에 잠입해서 파괴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죠. 그러니 미끼를 이용해서 외부에 혼란을 일으키고 내부에 잠입하는······.”

스톱. 이봐요 이 아저씨야. 지금 그걸 작전이라고 세운 거야? 상대가 어떤 놈들인데 그딴 허접한 작전에 걸려들겠냐고?

“좋은 생각이 있으니까 잔말 말고 다잔으로 떠날 날짜나 정해. 내가 알아서 하지.”

게르덱은 그럴 줄 알았다면서 수긍하는 눈치다. 카스티바와 안토니오만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뿐······.

“그나저나 50만 실링을 나 혼자 계산해야하는 거냐! 억울해!!”

“정보 값으로는 충분하지 않나요?”

악마 같은 미소를 짓는 게르덱이었다.

이제 머릿속 좀 정리하자. 지금까지 대화를 요약하자면 게르덱은 모종의 집단에 소속된 것으로 엠페러 길드의 음모를 미리 알아차렸고, 그들의 계획을 망쳐놓기 위해서 그들의 본진을 직접 공격하기로 했다. 그 적임자로 나를 선택했다는 거고. 그렇다면 북쪽도시로 가기 전에 엠페러 길드를 사전에 때려 부수는 게 조금이나마 안전하지 않을까? 앞으로 여행하는데 위험요소는 최대한 없애두는 것이 좋을 테니까 말이야.

‘이러나저러나 당장 할 일은 하나군.’

일단 레이나를 성장시키는 것이다. 쿠샨은 충분히 강한 상태이고, 노엘 또한 만만치 않은 수준의 마법사니까 말이야. 그동안의 나는······.

‘미친 듯이 장사하며 먹고살 돈을 벌어들이면 되는 거지.’

장비제작! 전설 무기! 황금의 보물창고! 가자, 다잔으로!

바다처럼 넓은 욕심이 바드의 눈동자에 아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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