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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ter Smith-33화 (33/202)

Master Smith (33)

《코지부락 남동쪽 깊은 숲》

구름 없는 높은 창공이 날을 밝히는 중이다. 비단결같이 부드러운 바람이 나무 사이를 지나가며 시원한 소리를 만들고 귀여운 벌레들이 알록달록한 버섯 위를 기어가는가 하면, 멀리서 어린 사슴들이 풀잎을 뜯어먹고 있다.

그야말로 ‘한산함’ 자체. 이 세계······ 하벨스 대륙은 불과 수백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평화가 지속되었다. 인간도, 몬스터도, 동물도 모든 생물이 균형을 이루면서 적당한 관계를 유지했었다.

하지만 평화가 깨진 것도 한순간. 수십 년 전 어둠이 찾아왔으니, 그것은 죽음이자 지옥 그 자체였다.

어둠은 하벨스 대륙 내에 있는 모든 몬스터를 광포화 상태로 만들었고 폭주한 몬스터들은 인간, 동물을 구별 않고 모든 것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새로이 등장한 마족군은 인간들과 끝없는 전쟁을 지속하게 되었으니, 이에 인간들은 몬스터를 향한 적대도가 늘어났으며, 대전쟁의 시초가 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인류에겐 희망이 있었다. 역사적으로 전해지지 않는 희망이 말이다. 희망의 빛은 모든 싸움을 끝냈고, 다시금 세계를 평화로 돌이켰다. 인류역사는 희망이 일으킨 공백의 10년을 ‘잠적의 시기’라 통칭했다.

하지만 또 다시 시간이 흘러, 새로운 어둠은 대륙의 평화를 한입에 집어삼켰다. 금화년 3177해.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인류와 마족군은 피 터지는 싸움을 이어가는 중이다.

지루한 세계사는 여기까지라는 것을 알리듯, 한적한 숲속에서 거대한 폭음 발생했다. 소음은 점점 가까워진다. 점점, 점점 가까워지더니······.

콰아앙!!

지름 1미터가 넘는 나무허리가 수많은 파편이 되어 망신창이가 된다. 농밀한 흙먼지가 대기 중에 흩날렸고 그 안에서 거대한 체구의 남자가 기형의 몬스터를 한손으로 움켜쥐어 구타하는 모습이 보였다.

변변찮은 저항도 못해보고 두들겨 맞은 몬스터는 그대로 절명. 남성의 손에는 거무죽죽한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어휴~ 이 먼지 좀 봐. 이봐! 살살 좀 하지? 몬스터는 끊임없이 나오지만 나무는 아니라고!”

수인은 키 160이 채 안 되는 여성이었다. 블루베리 생머리 위에 쫑긋 솟아난 뽀송뽀송한 귀가 예민하게 반응한다. 엉덩이에 달린 동글동글한 꼬리는 그녀가 토끼형 수인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알리고 있다.

그녀는 여느 때와 같이 당근아이콘이 그려진 백색 에이프런을 두르고 있었으며, 오른손에는 은색으로 반짝이는 지름 30센티미터 정도의 동그란 프라이팬을 쥐고 있었다.

겉모습은 전혀 강해보이지 않지만 겉으로 풍기는 투지 하나만큼은 인정해줘야 할 것 같다.

“이, 이사벨라. 같이 가! 나 힘들단 말이야아!”

“맞다. 레이나가 있었구나! 저 남자가 무작정 돌격만 하니까 깜빡했다!”

꽤나 먼 거리까지 나와서 무엇을 하느냐 물으신다면 바로 레이나의 레벨을 올리는 중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본래라면 쿠샨혼자서 레이나를 끌고 의뢰에 착수할 예정이었지만 이 일을 알게 된 이사벨라는 불안한 마음에 사냥터까지 나온 것.

수 시간에 걸쳐서 사냥을 반복한 덕분에 레이나의 레벨은 10개나 증가했고 스킬숙련도도 대폭 증가시킬 수 있었다.

“오늘 사냥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다.”

“뭐? 벌써 끝난 거야? 아직 해가 저물려면 3시간은 더 있어야 할 텐데?”

이사벨라가 태클을 걸자 쿠샨은 고개를 저으며 반박했다.

“나야 밤새서 움직여도 문제없지만 저쪽의 빈약한 사제께서는 무리인 것 같군. 하기야 스킬숙련도를 올린답시고 블레싱을 남발해댔으니 쉽게 지칠 만도 하지.”

“아, 아니거든! 나 아직 괜찮은데······.”

실은 쿠샨의 말이 한 치의 오차가 없음을 레이나 본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정도 노가다로 금세 지칠 것이라면 바드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바드의 지팡이를 착용하면 블레싱을 사용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어. 하지만 실질적인 경험을 쌓기 위해선 원래 능력치에서 차차 경험을 쌓아야겠지. 마나를 관리하는 능력도 배워야하고 말이야.

“레이나. 네가 그렇게 말해도 전혀 설득력 없거든? 이마에 땀 좀 봐.”

“······신경 쓰이게 해서 미안. 하지만 정말 괜찮거든! 조금만 더 하자. 응?”

짧은 시일 안으로 바드가 만족할 만큼의 레벨에 도달하고 싶다. 그거야말로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라 생각하니까.

‘좀 더 힘내주겠다고!’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나야 상관없지. 좋아! 그럼 계속 움직여보도록 할까? 오늘 목표는 레벨25다. 쉬지 않고 달리면 날 세기 전까진 어떻게든 가능할 거다.”

쿠샨이 힘차게 파이팅자세를 취하며 거칠게 소리쳤다. 그 모습을 곁에서 멍하니 지켜보는 이사벨라. 쿠샨과 시선이 마주쳤다.

‘······날 보고 있다?!’

“······(멀뚱)”

예상치 못한 상황에 늙다리 중년아저씨가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회피했다.

‘바, 방금 전 파이팅 자세가 이상했던 건가?’

“어이. 아저씨.”

그녀가 중저음의 목소리를 내리깔며 나를 불렀다.

“왜, 왜 그러지? 힘들면 조금 쉬었다 해도 괜찮은데······.”

“아니, 그건 아니고. 아저씨 정말로 우리 편 맞아? 난 말이야 엠페러 길드처럼 저질적인 집단은 정말 혐오하거든?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푸욱! 보이지 않는 붉은 화살이 쿠샨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그러나 이사벨라의 독설은 거기서 끝맺음을 하지 않았고,

“더군다나 당신같이 아재냄새 풀풀 나고, 털 많고, 인상 험악하고, 사람목숨 가벼이 여기는 사람은 더더욱!”

퍼벅! 푹! 푸욱!

이사벨라의 완벽한 승. 그녀는 흥! 콧바람 치며 고개를 돌렸다. 쿠샨은  완전히 상처 입은 얼굴로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하지만······.”

감미로운 그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번엔 조금 누그러진 억양이었다.

“일단 당신을 믿어보기로 했어. 바드의 말도 있고 하니까. 무, 물론 한동안만이라고! 말 그대로 아주조금. 약간 신뢰한다는 소리니까 이상한 오해는 마!”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옅은 미소를 짓는 중년 아저씨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동시에 이사벨라는 쿠샨의 얼굴 바로 앞까지 자신의 얼굴을 파박! 하고 근접한다.

‘가, 가까워!’

쿠샨의 숨이 살짝 거칠어진다. 당장이라도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은 상황. 그러나 눈앞의 수인족은 그런 쿠샨의 순정을 무참히 짓밟았다.

“나중에 뒤통수치면 그땐 정말 죽. 여. 버. 릴. 거. 야?”

하고, 농밀한 살기와 투기를 쿠샨의 눈 안쪽 깊숙한 곳까지 똑똑히 각인시켜주었다. 파하아~ 하고 크게 실망한 눈치. 역시나는 역시나······.

‘정말 무서운 녀석이로구먼. 저 작은 몸에 어떻게 저런 살기가 튀어나오는 걸까?’

나는 보이지 않는 눈물을 흘리며 고된 수련을 이어나갔다.

***

《코지부락》

카스티바는 가벼워진 지갑을 집어 들고 탈탈 털어내며 끄으으~ 하고 새된 신음을 내뱉었다. 한 달 식비가 하루 만에 거덜 나니,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이다.

“도대체 얼마나 마셔댄 거냐고······. 돈은 내겠다고 말 했지만 너무 양심 없이 마신 거 아니야?! 게다가 쇼트케이크로 모자라서 3단 요거트 스무디까지······!”

“그건 우리 공주님이 먹고 싶다니까 당연한 지출이라고!”

나는 품에 안고 있는 노엘을 가리키며 당당하게 외쳤다. 카스티바는 분노한 표정으로 되받아쳤다.

“그럼 요거트 스무디는 당신이 냈어야지!”

“쪼잔 하네. 이왕 사는 거 한꺼번에 계산하면 좋잖아?”

“으으으! 못돼 먹은 짠돌이 같으니라고!”

거액의 돈을 한순간 날려버린 상황이 실로 불만이었는지 그녀가 하소연했지만 그것은 노~ 프라블럼!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 나는 충분히 얻어먹을 입장이 되니까.

목숨 값으로 몇 십만 실링이면 엄청 싸게 받은 거지 무슨 말이 이렇게 많냐? 이것마저 그렇게 아까워하면 그녀는 나보다 더한 짠돌이던가, 양심이 없는 사람이 분명하다.

옆에 있던 안토니오는 만족한 얼굴로 기분 좋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반면에 카스티바는 아직까지 꿍얼거리고 있다. 그보다 당신들 어디까지 따라오는 거야?

“이야기 끝났어. 이제 할 말 없으니까 댁들 갈길 가라고!”

“그, 그래도 이렇게 헤어지면······.”

카스티바와 안토니오가 갈 곳 잃은 고양이마냥 고개를 떨어뜨렸다. 흑빛 안색이 우울하니, 심히 구슬퍼 보인다.

그래. 당신들 사정 다 알고 있어. 한 여자는 모든 동료를 잃었지, 다른 애송이는 모든 걸 잃은 부랑자신세지, 하지만 어쩌라고? 내가 당신들에게 뭘 해줬으면 하는데? 동정이라도 푹푹 퍼 담아 줄까? 그건 너무 비참하지 않아?

“애당초 말이야. 나는 당신들을 구하러 그 먼 거리를 달려간 게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들어? 까놓고 말해서 이 마을 어떻게 되든 전혀 상관 안 해. 누누이 말하지만 엠페러 길드의 희소성 있는 재료가 요마~안큼 관심 있던 것뿐이라니까?”

바드의 냉담한 한 마디에 두 사람의 표정이 더욱 가라앉았다. 모든걸 잃어버린, 최후의 최후까지 살아남은 패배자의 모습이라면 바로 이들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바드님. 여전하시군요.”

대뜸 지조 있는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불렀다. 냉랭하면서도 차분한 이 억양은······.

비취색 로브와 만년설을 연상케 하는 순백색 머리카락, 거대한 마법 스태프를 들고 있는 남성은 분명 지난번 스켈레톤 토벌작전에서 큰 공을 세웠던 주인공이리라.

“게르덱? 우연이군.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축제날 이후로는 처음이죠.”

시선 맞교환. 그리고 긴 침묵. 먼저 입을 연 것은 바드였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지만 일 없으면 먼저 가보겠습니다. 제가 어지간히도 바빠서 말이죠.”

“아쉽네요.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왔는데. 바드님이라면 분명 흥미를 가지실 것 같았거든요······.”

───쫑긋

바드의 귀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확인한 게르덱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일출마냥 떠올랐다.

“엠페러 길드의 전설등급 재료. 대장장이라면 듣고 지나칠 순 없겠지요. 그건 바드님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요?”

“이봐 게르덱.”

내가 그런 정보에 어 진짜? 하고 넘어갈 것 같아? 내가 그렇게 가벼운 대장장이로 보였단 말이렷다?

“포션카페에서 맛있는 포션이나 빨면서 느긋이 담화를 나눠보지 않겠나. 자네?”

“말이 통해서 다행입니다. 그쪽 분들도 같이 가시죠. 이번 일에는 당신들의 도움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게르덱은 본의 아니게 소외된 두 사람을 향해 손짓했지만 카스티바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방금 막 포션카페에서 나왔거든요. 게다가 저 남자 포션 값을 대주는 바람에 지금은 돈이 없어요.”

그렇게 말하면 게르덱이 날 어떻게 생각하겠냐마는······ 사실대로 말한 거니까 굳이 꼬투리 잡지는 말도록 하자.

“상관없습니다. 이번엔 바드님이 쏘실 테니까요. 이번 정보료는 꽤 비싼 값을 하거든요. 괜찮겠죠? 더치페이는 없는 바드님?”

“이봐. 나는 받아야할 보상을 받은 것뿐이니까 그런 눈으로 째려보지 마시지? 아무튼, 계산은 내가 할 테니까 어서 가자고.”

“누가 뭐라던가요♪”

게르덱이 빙그레 웃으며 포션카페 안으로 들어간다. 그 뒤를 바짝 붙어서 따라가는 것은 안토니오와 카스티바다. 나는 카스티바와 3초간 시선이 맞부딪쳤다. 그 순간 그녀가 혀를 “베~” 내밀며 말했다.

“쌤통이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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