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32)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물질적 요소는 무엇인가? 의식주 생활을 해결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돈이다.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가치를 가진 실링 말이다. 일단 외치자 Moooooooooney!
돈을 벌어들이는 행위야 말로 생산적이고 값지며 아름다운 일이다. 바로 지금처럼.
“+3강 플레이트 아머는 130만 실링이다. 직업계열은 검투사. 당신 체격에 맞지 않을 것 같은데?”
“끄응~ 다른 방어구는 더 없나?”
“안쪽에 많이 있으니까 적당한 걸로 골라봐.”
나는 대장간 안쪽을 가리켜며 손님을 안내했다.
“바드님. 이 암기는 얼마죠?”
“1세트에 100만 실링. 보는 눈이 꽤 있군? 빙결 표창은 둔화효과가 걸려있어서 장거리 견제가 편리한데 말이야. 어이, 그쪽! 사갈 거면 얼른 사가. 효과는 내가 보장하지. 수리/제작의뢰 가능하니까 나중에 다시 찾아오던가. 뒤에 손님들 밀렸다고. 이봐요, 물건 다 팔리고 와봤자 국물도 없으니까 빨리 사고 빠지라니까.”
그야말로 인산인해. 사람이 산을 만들고 바다를 만들었다. 돈이란 돈을 깡그리 싹싹 긁어모으는 중. 이 많은 손님들을 수용할 수 있는 것도 대장간의 규모가 한몫했다.
‘빌어먹을 정도로 거대하군.’
1층은 카운터와 직업별 방어구가 세팅되어있다. 로브, 플레이트 아머, 가죽갑옷, 경갑, 중갑, 판금까지. 그 종류가 워낙 많다보니 부위별 세팅은 2층까지 합해야 했다. 3층은 각종 소모품과 도구들이 비치되어있으며, 4층은 대망의 무기가 정렬되어있다.
모험가들이 가장 많이 찾는 무기를 4층에 올린 이유는 1, 2, 3층을 전부 둘러보게 하기 위함이다. 그래야 소비자들의 과소비를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거 봐! 정말 LV.5제한 롱소드 맞아?! 다른 대장간에서 파는 것에 비해서 공격력이 평균 1.5배는 높잖아!”
“이거 얼마라고요? 15만 실링이요?! 와아 대박. 이것만 사용해도 레벨30까지는 써먹을 수 있겠는걸?”
“이, 이 방패 완전 무시무시하다고! 방패에 잠재능력 붙이는 것부터가 힘들 텐데 방어력 5%증가 효과가 붙어있어!”
······보는 바와 같이 모험가들의 반응은 뜨겁다 못해 열광의 도가니탕이었다. 누구는 능력치를 최대한 낮추기 위해서 어마어마한 노력과 수고가 들이고 있는데 말이야.
‘크윽. 좀 더 약하게 두드려야 되나? 예상보다 좋은 옵션이 붙었잖아!’
장비 몇 개만 팔아치워도 50만 실링은 가뿐히 넘는다. 이정도면 여행자금을 마련하는 것은 누워서 시간보내기 수준. 지금보다 좋은 옵션을 띄우면 물건 값이 2~3배는 뛰어오르겠지만 가격이 비싸서 사람들이 구입할 수 없게 된다.
돈이란 무엇인가?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한 소시지와 치즈, 우유를 마련할 수 있는 물적 자원이다. 우유와 치즈, 그리고 소시지나 베이컨을 벌어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그야말로 뷰티풀 판타스틱 월드!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을 땐 이런 경험을 접해본 적이 없었다. 때문에 돈의 개념은 알고 있었지만 중요성을 깨닫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튼 요점만 말하자면 이거다. 장사라는 것이 생각보다 내 성미에 적합하다는 것. 그리고 돈을 벌어들이는 맛이 마약처럼 기분 좋다는 것.
“미안하군. 재고가 바닥났어. 생산속도가 못 따라가거든. 내일 다시 와라.”
대장간을 개장한지 단 3시간 만에 모든 품목 품절. 진열대 위에는 붉은색 글씨로 쓰인 『Sold out』이라는 문구가 놓여있다. 설마 이 정도까지 인기 있을 줄은 몰랐건만 소모품 하나 남김없이 매진이라니······.
나는 사람들이 대장간에서 멀어지기 무섭게 오늘 매출을 확인했다. 매출목록은 대장간 카운터 위에 놓여있는 장부를 손가락으로 터치하면 기입된 정보가 알림창 형식으로 떠오르는데 장부는 손님과의 거래가 성사되는 동시에 자동적으로 기록되는 듯하다.
조금 이해가 안되는 게 있는데 말이지.
이렇게 자동화적인 시대가 다 있어? 멋대로 정보가 기록되고 터치 따위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거라면 뭣 하러 장부 같은걸 올려놓는 거냐고?!
특히 그 옆에 놓여있는 펜. 이것의 존재유무는 더더욱 모르겠다. 굳이 손을 움직이며 놀리지 않아도 다 기록되는 것을 말이다······.
오케이. 그냥 그렇다 치고 넘어가도록 하자. 지금은 벌어들인 수익을 확인할 차례니까. 기분 좋은 정보를 확인하는 것은 기분 좋은 마음을 가지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장부목록은 다음과 같았다.
『한손직검 15자루-매진
롱 소드 10자루-매진
투 핸디드 소드 12자루-매진
헬버드 3자루-매진
무거운 강철나무방패 5개-매진
강철합금 풀 플레이트아머 2세트-매진
경량가죽가방 10개-매진
암기(1200개입) 3세트-매진
바스타드 소드 4자루-매진
러프리드 엔가우 1자루-매진
.
.
.
총수익: 5432만 3680실링』
‘판매목록이 다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잖아!’
심지어 등급이 낮은 재료들로만 만들어진 장비들이다. 그 재료값을 빼도 벌어들인 이익은 10배 이상을 상회한다. 하루 매출 5500만 실링? 이거 정말로······.
‘최고로 High한 기분이다!’
이렇게까지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장비에 비해서 평균적으로 높은 능력치와 옵션을 띄웠기 때문에 몇 배 비싼 가격을 받은 탓이다. 굳이 비싼 재료로 비싼 아이템 만들 필요가 없겠는데?
“────랄까. 거기 있는 두 사람은 왜 아직도 안 가고 있는 거지?”
장사 끝났습니다만.
대장간을 뒷정리하고 있는 바드 앞에 낯익은 두 사람이 서 있다. 아직 어린티를 벗어나지 못한 금발의 벽안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는 귀족자제. 안토니오. 적색의 포니테일과 적안을 가진 칼날 같은 분위기를 가진 카스티바다.
“왜 안 가냐고요?”
“내가 질문을 잘못 한 건가?”
카스티바는 할 말이 많았는지 속사포로 입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엠페러 길드 사건 끝나고 다음날 만나자고 했잖아. 여기서 느긋하게 장사나 하고 앉아있어? 지난번 난전 속에서 살아남은 인연도 있는데 우리한테 납득 가능한 설명을 들려줘야 할 거 아니야. 망할 동정남아!”
“누, 누가 누구보고 동정남이라고 하는 거냐! 근거 없는 이야기는 집어치워.”
“오호라~? 그럼 동정은 아니다 이 소리?”
“이야기가 이상한 곳으로 빠졌잖아! 빌어먹을 아줌마야!”
이상한 논제로 시비가 붙어버린 바람에 카스티바와 바드의 이야기가 본론으로 넘어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되었다.
나는 마른 헝겊으로 망치를 문지르며 그녀에게 질문했다.
“알겠으니까 잠시만 기다려. 어떤 대답을 원하는 건지는 몰라도 뒷정리는 마쳐야 할 것 아니야.”
다음 장사를 위해선 이것저것 잔고를 미리 만들어두어야 한다. 고로 뒷정리는 필수. 카스티바와 안토니오가 설명을 보챈다 하더라도 돈을 버는 데 일말의 방해요소가 된다면 나는 가차 없이 벌을 내릴 것이다.
뒷정리를 마친 나는 노엘을 포함해서 안토니오와 카스티바를 이끌고 이야기를 나눌만한 장소로 향했다.
바드는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그란다의 주점으로 향했지만 뒤늦게 어린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포션카페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우와~ 당신 돈 많나봐? 포션카페를 오다니······. 이런걸 사치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센스가 있다고 해야 하나······.”
포션카페는 말 그대로 포션을 즉석에서 제조/판매하는 일종의 상점이다. 대게 파티원과 모이거나, 던전을 돌기 전에 마지막 원정준비를 하는 장소로 쓰인다. 가끔씩 디저트를 먹으러 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라고, 이사벨라가 말한 적이 있었다. 물론 디저트 가격이 어마어마해서 대부분 미니케이크 한 조각 정도로 끝난다고들 한다는데,
“당신이 쏘는 거야?”라고 카스티바가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입가의 침을 쓰윽 닦았지만, 바드는 “어림없는 소리!” 하고 혀를 차며 단칼에 잘라 말했다.
“이번엔 당신이 쏘지 그래? 이러나저러나 나는 생명의 은인이잖아?”
더치페이는 생각도 하지 않는 바드. 훗! 하고 얄팍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모습이 얄개고 게저분해 보인다.
카스티바는 부들거리는 주먹이 앞으로 튀어나가는 충동을 억제하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알았다고. 내가 내면 되잖아!”
카스티바의 머리위로 보일 듯 말 듯 작은 문구가 그려진 것을 나는 보았다.
[여검사. 의문의 1패] 라는 문구를 말이다.
***
포션카페는 매우 화려하면서도 느긋하고, 삶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다소 그루브한 분위기였다. 빈티지 풍의 가게 디자인과 코를 찌르는 특유의 포션냄새, 그리고 뮤직 크리스털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은 심적 안정을 가져다준다.
테이블위에는 그린, 화이트 블루, 아이보리, 레인보우 컬러의 포션이 한 병씩 놓여 졌고, 쇼트케이크 4조각이 한사람 앞에 한 접시씩 제공되었다.
이것들만 놓고 가격을 매겨본다면 최소한 35만 실링은 쳐줘야 할 것이다.
“잘 먹겠습니다.”
안토니오가 쇼트케이크의 가장자리부분을 조금 잘라내어 입안으로 넣었다. 새콤달콤한 딸기와 부드러운 생크림이 입안에 어우러져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한 기분. 안토니오 얼굴이 활짝 피어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히야~ 맛있네요. 이거.”
“그치? 사양 말고 많이 먹어.”
이럴 땐 생색내주는 것이 예의. 마주앉아있는 카스티바는 세상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도끼눈으로 째려본다.
“당신이 사는 거 아니거든?”
“아무렴 상관없잖아? 당신도 한잔 들이키지? 내 것은 메론 맛인데 안토니오는?”
안토니오는 본인 앞에 높여있는 아이보리색의 포션을 들이키는 것을 주저했다. 포션을 처음 먹어보는 이유도 있지만 우유에 물탄 것 같이 반투명한 색깔이 마냥 거부감이 들었던 탓이리라.
그래도 두 눈 딱 감고 포션병을 기울이는 안토니오. 진하고 여성미 느껴지는 그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이거 쿠키앤 크림 맛인데요?”
“신선하군. 바꿔먹을래?”
뭐가 그리 잘났다고 자꾸만 여유를 부리는 거야? 이 남자 상상이상으로 짜증나네? 저기요, 한 대만 때려도 되요? 더도 말고 딱 한 대만요. 네?
“이봐요. 짜증나니까 빨리 본론으로 넘어가지? 엠페러 길드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그전에 자기소개가 먼저 아닌가? 싫다면 굳이 캐묻지는 않겠지만 호칭은 제 멋대로 쓸 겁니다? 이를테면 ‘성급녀’라든가······.”
이왕 포션카페까지 왔는데 이 여유를 만끽하자고. 이렇게 좋은 분위기도 매번 있는 일이 아니잖아? 동산위에서 봄바람을 맞이하며 녹차를 홀짝이는 애늙은이 같은 여유라도 당신에게는 필요할 것 같군.
물론 당신이라면 봄바람인지 겨울바람인지 구별도 못할 것 같지만 말이야! 하하하하!
“이름은 진작부터 말했었잖아! 카스티바라고! 직업은 보시다시피 검사. 좀 더 나아가서 파이터(Fighter)야.”
“그래 카스티바. 내 소개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되겠지? 쓸데없는 낭설은 집어치우고 본론만 이야기 하자고. 당신이 원하는 진실에 대해서 말이야.”
두 사람에게 진실을 말할 의리는 없다. 오히려 정보만 새나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를테면 내 레벨이나, 앞으로의 목적, 계획 따위 말이다. 하지만 거짓말 할 이유도 없지. 왜냐하면······.
제깟 놈들이 나를 어떻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카스티바는 쉴 틈을 주지 않고 질문을 던졌다 뭐가 그리 알고 싶은 것이 많은지······ 아무렴 상관없으니까 포션 한 병만 더 주문해도 되나······.
바드의 눈빛을 알아챈 카스티바는 의미 없는 한숨과 함께 포션카페 메이드를 불러 세우고 말했다.
“여기 치즈케이크 한 조각 추가요.”
아니······ 치즈케이크 말고, 포션 말이야 이 사람아······.
바드가 약간 실망한 눈치를 보이더니 그녀가 냉랭하게 답한다.
“뭐가? 내가 먹을 건데?”
“아······ 그러셔?”
다만 텅 빈 포션병을 아쉬운 듯이 쳐다보는 바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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