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31)
나는 메리데이로 돌아갔다. 1층 메인 홀에 위치한 이사벨라의 방안은 여전히 소란스럽다. 레이나가 바니걸 복장을 입지 않으려고 애면글면 온 힘을 다 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도 여관은 평화롭습니다.’
웃픈 미소를 지으며 2층으로 올라가 방을 두드린다. 5초, 10초 다소 반응이 늦었다.
“노엘?”
끼이익────
조심스럽게 방문이 열렸다. 문틈 사이로 바닐라 색 단발머리 소녀가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아는 얼굴이 반가웠는지, 굳어진 노엘의 표정이 한결 풀리고 있다.
“바드으으······ 훌쩍······.”
“뭐, 뭐야? 갑자기 왜?!”
노엘이 사분사분 흐느끼더니 앙앙 울며불며 내 다리를 껴안았다. 올망졸망 고여 있던 눈물이 노엘의 뺨을 타고 펑펑 흘러내렸다.
“바드 보고 싶었어······.”
“나 안 보여서 우는 거야?”
“응······.”
역시 애는 애다. 졸지에 아빠가 되어버린 기분이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귀여움은 타고나는 것인가? 이런 애가 어째서 엠페러 길드에 소속되어있던 건지 아직도 이해하기 힘들다.
아무튼 와보길 잘 했네. 안 왔으면 큰일 날 뻔했지.
나는 노엘을 안고 한참을 토닥였다. 노엘은 겨우 눈물을 그치고 숨만 히끅 거렸다.
“단 거 좋아하지? 밖에 나가서 단 거 사먹을까?”
“응.”
노엘이 곰살궂게 고개를 끄덕였다. 노엘은 내 손가락을 붙잡고 1층으로 내려갔다.
“이사벨라~ 레이나~ 노엘 데리고 잠깐 나갔다 올게~”
“어? 자, 잠깐만! 바드 스톱!”
이사벨라가 허겁지겁 방에서 뛰쳐나와 나를 멈춰 세웠다.
“마침 잘 나오셨네. 부탁할 게 있었는데.”
레이나의 레벨에 대한 건데. 암만 생각해도 내가 도와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거 같거든. 그래서 말이야······.
“이사벨라가 나 대신 레이나와 사냥하면 안 될까?”
“응?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
“알다시피 나와 레이나의 레벨차이가 너무 심하거든. 상식적인 부분에서 차원이 다르다는 소리야. 나 같은 경우엔 하면 되는데 레이나는 그게 안 되잖아? 이사벨라는 레이나와 친하니까 서포트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고······.”
“그건 안 돼.”
너무 하다 싶을 만큼 단칼에 거절하는 이사벨라.
“어째서?”
“이, 일단 레이나는 몬스터 죽이는 일에 익숙하지도 않고. 나, 나도 잘 싸우는 편이 아니거든.”
“그럴 리가?”
이사벨라가 마법에 능통한 사람이라는 것은 진작부터 느끼고 있었다. 나를 속이려나 본데 이미 실패했다 이거거든.
“그럼 할 수 없군. 쿠샨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어찌되었건 북쪽도시로 가려면 레이나의 레벨을 올려야 하니까.”
“뭐? 그 인간한테 부탁을 하겠다고?”
이사벨라가 절대 안 된다며 악지 세게 말했다.
“쿠샨이라면 충분하거든. 어느 정도 상식도 있고, 싸울 줄도 알고. 생각보다 말도 잘 통해. 어젯밤 술집에서도 확인했어.”
“제정신이야 당신? 레이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려고? 재차 말하는데 나는 그 남자를 절대 못 믿어. 알아?”
믿지 못한다라~ 쿠샨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있다는 소리로군. 그녀의 반응은 어느 정도 예상했었다. 그나저나 쿠샨 녀석 노력 좀 해야겠군.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그래서 당신에게 부탁하는 거야.”
애당초 쿠샨을 못마땅해 하는 사람은 그녀뿐이다. 그녀만 ok한다면 만사가 형통할 텐데 아쉬울 따름이다.
내가 쿠샨을 확실하게 믿는 이유가 더 있다. 그건 바로 쿠샨이 사랑에 빠졌다는 것. 고로 쿠샨이 그녀가 분노할만한 짓은 안 할거란 소리다.
이사벨라는 게저분하다는 듯이 고개를 내쳤다.
“왜 하필 다음계획이 그놈을 선택하는 건데?”
“정 불안하면 당신도 따라 가시던가.”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이사벨라가 쿠샨을 이길 만큼 강하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도 쿠샨이 이사벨라를 공격할리는 없을 것이다.
“사람이 정말 나빠 먹었네. 그래가지고 레이나를 어떻게 지키겠다는 건지······.”
“성질만 내지 말고 내 말부터 신뢰하시지? 쿠샨은 동료야. 당신이 내 동료를 믿지 않겠다는 소리는 레이나도 믿지 않겠다는 소리랑 뭐가 달라?”
이사벨라는 한발 물리치며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그게 전부. 이빨을 갈아 마시며 으르렁거리는 모습은 여전히 사나웠다.
“끄응~ 알았다고. 나도 따라가면 되잖아.”
“흐음······. 끝까지 본인의 힘은 밝히지 않으시겠다?”
“뭐?”
이사벨라가 흠칫 당황했다. 나는 손을 휘저으며 얼버무렸다.
“아무것도 아냐. 아무튼 잘 부탁할게.”
레이나의 스킬 숙련도를 올리기 위해선 버프를 걸어줄 대상이 많을수록 좋다. 쿠샨이든 이사벨라든 일단 레이나의 상대가 되어 줘야한다.
“이사벨라~”
방안에서 토끼를 찾는 레이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파이팅을 불어넣었다.
“힘내, 토끼 씨!”
바드의 손가락을 잡고 있는 노엘도 이사벨라의 동그란 꼬리를 움켜쥐며 응원했다.
“토끼야 힘내······.”
“끼, 끼야앗! 자, 잠깐! 꼬리는 함부로 만지지마 꼬마야······.”
이사벨라가 얼굴을 붉히며 방안으로 들어갔다. 나와 노엘을 서로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튼 이걸로 한건 해결? 아니지, 한건의 시작이다. 목표는 한 달 안으로 레이나 레벨을 60까지 달성시키는 것. 일단 그 부분에 전념하자.
그러고 보니 엠페러 길드에게 털어낼 것이 몇 개 더 있었지 아마?
전설등급 재료에 관련된 정보. 그건 쿠샨의 도움을 받으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바드의 주변으로 ‘크흐흐’라는 문구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음침하고 악랄함이 잔뜩 묻어나는 분위기로 말이다.
“크흐흐······.”
***
노엘을 데리고 한참동안 마을을 돌아다녔다. 나 없는 동안 마음고생이 심했을 공주님께 무엇을 먹여야 할지 고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던 것 같다.
“나 저거······ 저거 먹을래.”
내 뒤에서 수줍게 가리킨 음식은 구름처럼 몽실몽실 거리는 솜사탕이었다. 와아, 저거 얼마 만에 보는 거야? 가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만들어 줬던 것이 기억난다.
“너 뭘 좀 먹을 줄 아는구나?”
바드는 지체 없이 솜사탕을 구매해서 솜사탕을 한 조각 떼었다.
“아아~”
노엘이 조금만 입을 벌려 눈앞의 솜사탕을 덥석 베어 물었다. 별똥별이 쏟아지는 눈동자가 휘둥그레 넓어진다. 감동할 정도의 달콤함과 순식간에 단맛으로 녹아 없어지는 신비로운 현상에 노엘이 깜짝 놀랐다.
“없어졌어······.”
“맛은?”
“달콤해.”
노엘이 입가에 묻은 솜사탕을 핥아냈다. 또 먹고 싶다며 들이대지는 않았지만 딱 봐도 더 먹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래, 어디한번 실컷 먹어보자! 까짓것 배만 안 터지면 되는 거다!
바드와 노엘이 군것질로 배를 채우고 있는 사이, 멀리서 한 사람이 큰 소리를 치며 달려왔다.
“바드님! 대장장이 바드님! 잠깐만 멈춰주세요!!”
누가 나를 멈춰 세우는 것인가? 바드의 발길이 정지했다.
“헉헉······. 바드님! 주문이 엄청 밀렸다고요! 어서 대장간으로 가셔야 할 것 같은데요? 사람들이 몇 시간째 줄을 서서 떠나가질 않는단 말이에요!”
“당신은 누구?”
“잊으셨습니까? 바딕트입니다. 지난번에 그 대장간 주인······.”
“바딕트······ 바딕트······ 아! 레이나를 때렸던 빌어먹을 대장장이?”
바드가 쌀쌀맞은 눈빛으로 노려보자 바딕트가 손을 휘적거리며 당황했다.
“그, 그땐 우발적인 사고였던지라······ 아, 아무튼 그때 무례는 죄송합니다. 그 여성분에게도 제대로 된 사과를······.”
“됐어. 내가 알아서 전해주지. 그런데 무슨 소리지? 주문이라니? 대장간 은 아직 개장도 안 했는데 무슨 소리야?”
“그게 문제라고요! 언제 개장할지 모르니까 다든 벌써부터 줄을 서고 있단 말이에요. 시장 입구가 사람들로 붐벼서 터질 지경이라니까요? 지금당장 저 사람들을 해산시키거나 주문제작을 받지 않으면 폭동이라도 일으킬 기세입니다!”
사람 되게 귀찮게 만드네. 내 맘대로 장사도 못하나······. 지금은 노엘을 달래는 게 먼저인데 말이야.
“노엘. 옆에서 조용히 기다릴 수 있지? 대신 달콤한 과자 잔뜩 사가자.” “응! 좋아!”
으그~ 귀여운 녀석. 이상하게 자꾸 귀여워해주고 싶다. 그렇게나 먹을 게 좋을까? 이러다 배터지는 거 아닌가 몰라.
나는 바딕트의 등짝을 후려갈기며 소리쳤다.
“안내해.”
“네? 어, 어딜······?”
“내 대장간으로 안내 하라고. 거기가 어딘지 모르거든. 말해두겠는데 나는 코지부락에 온지 일주일도 안 지났어. 여차하면 길 잃어버린······.”
바딕트가 당혹스러워 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대장간으로 안내할 필요가 전혀 없지 않은가? 벌써 이곳부터 엄청난 줄이 이어져 있으니 말이다.
“설마 이거야?”
“네. 이제 보니까 많긴 많네요.”
내 대장간은 파리만 날리는데······.
바드는 의아한 얼굴로 질문했다.
“이 상황을 알려준 건 고마운데, 갑자기 왜 그러지?”
“뭐가 말입니까?”
“너 나 싫어하는 거 아니였나?”
이상하잖아. 쌍욕을 해도 모자랄 판에 대뜸 존댓말 하는 걸로 모자라 몸소 찾아와 가게 붐비는 것까지 알려주었잖아? 누가 보면 엄청 긴밀한 사이인 줄 알겠네. 우리 둘은 마지막이 썩 좋지 못하게 끝난 걸로 알고 있는데?
“그, 그야 제 고향을 구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별 다른 뜻은 없고 그냥 고마워서 그랬다?”
그렇다면 납득할 수 있지. 괜히 딴 마음 품고 접근한 거였다면 혼내줄 생각이었는데.
“알겠으니까 이만 가봐. 망치질 더 열심히 하고.”
“아, 예! 수고하세요!”
바딕트의 표정은 초면에 비해 한결 너그러이 부드러웠다. 성실하기만 하다면 녀석도 이름 좀 날리는 대장장이가 될 것이다. 분명······.
‘일이 밀렸다. 후딱 해치워야겠군.’
기지개를 켜며 몸을 푸는 바드. 본격적인 대장간 운영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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