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Master Smith-30화 (30/202)

Master Smith (30)

쿠샨과 함께 부어라 마셔라 술을 마시던 먹던 도중에 필름이 끊긴 탓에 기억의 경계가 확실치 않다.

나는 옆 테이블에서 한쪽 팔을 들어 올리고 처참하게 코를 골고 있는 쿠샨을 확인했다. 그의 손에 들려있는 맥주잔은 깔끔하게 비워진 상태였지만 맥주잔을 놓을 생각이 없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눈부신 빛은 다음날 아침이 다가왔음을 알려줬다. 길거리에 들려오는 평화로운 소리. 장사꾼이 지저귀는 소리라던가, 파티를 구하는 다른 모험가들의 목소리다. 한창 활발하게 행동해야 할 시간이 될 때까지 그란다는 뭐하고 있었나······.

하고 카운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이건 뭐, 전쟁터나 다름없구먼.

“이 아저씨는 혼자서 몇 병이나 마신거야!”

지독한 술 냄새가 진동한다. 불룩 튀어나온 살색의 민둥산은 아마도 뒤룩뒤룩 살찐 그란다의 뱃살일 것이다. 아무래도 주인장 혼자서 꽐라가 된 것이리라.

“술값은 여기다 두고 가지.”

나는 그란다의 배꼽위로 묵직한 돈주머니를 올려놓고 처참하게 쓰러진 쿠샨을 어께에 걸쳐서 일으켜 세웠다. 묵직해보여도 발휘할 수 있는 근력수치에 비하면 깃털수준이나 다름없다.

‘그나저나 이 꼴로 돌아가면 혼날 텐데······.’

아직까지 술김이 빠진 것도 아니고, 온몸에 진동하는 술 냄새는 레이나가 싫어할 거다. 게다가 어젯밤 쿠샨의 본심을 알아버린 이상 이사벨라의 앞으로 그를 데려갈 수도 없는 노릇.

‘길거리에 버릴까?’

문득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묘책. 남자로서 이해해줄 건 다 이해해줬다. 그가 어떤 꼴로 무슨 망신을 당해도 내 알 바는 아니기 때문에······.

“다른 여관 알아봐서 들어가야겠군. 침대위에 던져놓으면 알아서 일어나겠지.”

안 그래도 바쁜데 이런 식으로 시간을 버리는 것은 아깝지 않은가? 시간은 금이라는 말도 있다. 돌려 해석하면 내 시간을 잡아먹는 쿠샨에게 황금을 청구해야하는 것이 마땅한 건가?

쿠샨을 더욱 독하게 부려먹기로 다짐하는 순간이었다.

새로운 여관에서 냉수 한 모금 마신 다음에 메리데이로 돌아간 나는 제일먼저 레이나부터 찾았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그녀의 레벨과 숙련도를 올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바드는 오늘 그 계획이 철저히 무너질 것을 예감했다.

난장판이 된 방. 여기저기 널브러진 천 쪼가리들은 수건이나 옷 그런 것뿐만이 아니라 보기 민망한 속옷도 몇 가지 휘날리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고개를 살짝 돌리고 한 발짝 그녀들의 방안으로 들어가는데······.

“레~이~나! 당장 이 옷 안 입어?”

“싫어! 싫다고! 이, 이 손 당장 안 놔!? 무슨 여자애가 힘이 이렇게 세냐고! ······흐익? 꺄악!”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는 몰라도 난입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지금은 작전상 후퇴. 돌아오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는 것이 좋을지도······.

“바드? 마침 잘 왔다. 레이나 옷 입히는 것 좀 도와줘!”

조심스레 방을 빠져 나가려던 찰나에 이사벨라가 반갑게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그에 반해 레이나의 목소리는 더욱 필사적으로 올라갔다.

“뭐? 바, 바드가 왔어? 이사벨라! 절대로 들어오게 하지 마! 들여보내면 절교야. 진짜라구!”

그녀의 장렬한 외침이 뼛속 깊은 곳까지 전해져왔다. 그러나 이사벨라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은근한 말투로 말했다.

“그렇게 벗은 몸을 보여줄 바엔 순순히 이 옷을 입는 게 나을 텐데? 우리 귀염둥이 아가씨~”

이사벨라의 손아귀에 들려있는 옷은 남색과 짙은 검정색이 조화된 스판재질의 한 벌 옷이었다. 어째선지 뒤쪽에는 토끼꼬리가 달려있었고 다리 쪽은 촘촘한 나일론 재질의 스타킹이······.

“그 옷 당신이 아르바이트 할 때 입었던 옷이잖아!”

“호오? 기억하고 있군. 아니면 그때 내 모습이 어마어마할 정도로 섹시해서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았다든지?”

“그럴 리 있겠냐? 이 변태토끼! 레이나에게 그런걸 입히려 하다니!”

레이나의 레벨이나 올릴까 했는데 오늘은 그런 날이 아닌 것 같다.  그녀들 나름대로 바쁜 것 같으니 나도 나 나름대로 해결할 일부터 끝내야겠다.

첫째로 엠페러 길드의 내막을 완전히 파악해야하는 것. 현재 다른 여관에서 꽐라가 된 쿠샨에게 물어보면 그 정도쯤은 쉬운 일이다. 어찌되었건 그는 엠페러 길드에서 부대하나를 거느릴 정도의 직책정도는 되니까.

두 번째로 노엘에 관한 것. 지금쯤이라면 아마 정신을 차렸을 것이다. 레이나와 이사벨라가 저 모양이니 오늘은 하루 종일 데리고 다니면서 기분이나 전환시켜줘야겠다.

세 번째로 이번에 엠페러 길드를 막아내면서 꽁쳐······ 아니, 전리품으로 습득한 고급 재료들을 어떻게 쓸 것인가이다. 물론 이것들로 방어구나 무기, 또는 각종 편리한 도구를 만들 수 있다. 그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까.

하지만 내가 새롭게 접한 이 세상은 돈이 곧 힘이다. 어디를 가든 돈이 필요하고, 하물며 장비를 제작하기 위한 재료조차 돈을 써야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비싼 가격에 팔 수 있지 않을까 인데······.

바드는 머릿속이 똥으로 가득 찬 듯 깊은 고뇌에 빠지고 말았다.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은 취향에 맞지 않은데, 요 며칠간엔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아진 것 같다.

“바드오빠?”

새침하고 귀염성을 띈 목소리가 들려온다. 붉은색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살랑살랑 나부끼며 멀뚱히 서있는 카밀라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

“우연이네요. 이런 길거리에서 만나다니.”

아, 여기가 길거리였던가? 언제 여기까지 나와 있었던 거지?

카밀라의 말마따나 어느 순간 사람이 많은 중앙광장까지 나와서 걷고 있다. 내가 제정신이 아니군. 무의식중에 여기까지 나오다니 말이야.

“요즘 잘 지내?”

“오빠 덕분에요. 오빠는 어떻게 지내세요?”

“글쎄다······ 요즘이라 해봐야 일주일채 되지 않았고. 그저 그래.”

내 인생에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것은 원래 살던 섬에서 빠져나왔다는 것. 그날 이후로 이렇게까지 바쁘게 생활해본적은 없었다. 의뢰를 수행하고, 악착같이 돈을 벌고, 다른 사람을 위해 시간을 들이는 수고를······ 생각해보면 언제부턴가 익숙해졌다.

“마을엔 웬일이야? 아르바이트는 끝났어?”

“치이~ 저는 뭐 만날 소젖만 짜는 줄 아세요? 저도 사람이거든요?”

눈을 가늘게 뜨고 피이~ 혀를 내뱉는 카밀라. 그러고 보니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조금 다른 복장을 입고 있었다. 하얀색 바탕에 프릴이 달린 앞치마가 아니라 분홍색의 얇은 원피스와 밀짚모자를 쓰고 있다. 어께에는 피크닉 가방을 메고 있었으며 왠지 그곳으로부터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소풍?”

“어라? 어떻게 아셨어요?”

“그야 차림새만 봐도 딱 알겠네. 누구랑 가는데?”

아침도 못 먹고 어젯밤 먹은 술 때문에 속만 쓰리니, 참을 수 없는 음식냄새다. 배가고픈 것도 고프지만 일단 뭔가를 먹고 싶다는 것이 당장의 바램이다.

“배고파요?”

“하하~ 티났나?”

바드가 찔린다는 듯 발을 한 발짝 뒤로 빼면서 인상을 구겼더니, 카밀라가 허리춤에 손을 갖다 대고 에헴! 하고, 헛기침을 갈겼다.

“얼굴만 봐도 알겠는걸요?”

카밀라는 가방 안에서 포대자루 같은 것을 꺼내들었다. 크기는 기껏해야 내 손바닥보다 살짝 큰 정도. 부피는 꽤 되는 듯하다. 거기서 흘러나오는 풍미 깊은 냄새는 분명······.

“갓 짜낸 염소젖으로 만든 우유와 햄 치즈 벌꿀 샌드위치에요. 배를 채울 정도는 아니지만······ 주는 대로 드세요?”

그녀가 불안한 눈으로 힐끔힐끔 쳐다본다.

‘양이 적으면 어떡하지? 불평하려나?’

그러나 바드의 반응은 ‘행복’ 그 자체의 의미를 100% 담아냈다.

“오오! 먹어도 되는 거야? 정말? 그래도 혹시 소풍에서 먹을 음식이 부족해지면 곤란하지 않아? 역시 안 먹는 게······.”

“자꾸 딴 소리 할 거예요? 확 뺏어버리는 수가 있어요!”

“아아~ 그건 안 되지. 아무튼 잘 먹을게 카밀라. 누군지 몰라도 소풍 잘 같다오고. 알았지?”

온갖 잡념으로 복잡했던 머릿속이 순식간에 비워진다. 나는 카밀라와 인사를 마치기 무섭게 도시락 봉지부터 뜯어냈다.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황금빛 비주얼의 샌드위치가 내게 인사하는 것 같다.

“안뇽? 나는 맛있는 허니 프렌치 토스트에염~”

눈으로 감상! 그리고 크게 한입!

따듯하고 고소한 우유 맛이 촉촉하니, 입안을 감돈다. 최상의 신선도와 풍미가 빵 안에 한 가득! 햄과 치즈의 짭조름한 조화는 빵과 어우러져서 환상의 케미컬을 표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혀를 부드럽게 감싸는 달콤한 벌꿀이 온몸의 신경을 말랑말랑하게 녹이고 있다.

‘커억! 마, 맛있어!’

정말 이런 음식을 공짜로 먹어도 되는지 의심이 갈 정도이다. 나중에 카밀라를 만나면 몇 개 더 부탁해야겠다. 이건 사서 먹어도 될 정도라고!

“배도 채웠겠다. 노엘부터 데려오고, 쿠샨을 깨워야겠군. 여태 자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한결 기분이 업된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발길을 옮겼다. 아니, 옮기려고 했다. 내 앞을 가로막은 수십 명의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말이다. 적의는 없어 보이지만 무언가 절실하게 부탁하려고 하는 눈치.

‘뭐, 뭐다냐? 이 분위기는?’

터무니없는 부탁으로 남의 골수까지 빨아먹을 녀석들일지도 모른다. 경계하자.

“갑자기 뭐야? 당실들 너무 대놓고 길 막는 거 아니야?”

나의 눈초리에 그들 중 한 사람이 나서서 말했다.

“바드님의 명성과 소식은 익히 퍼졌습니다. 마을에 몬스터가 침공했을 당시 카밀라를 금지구역에서부터 빼낸 것도 말이죠. 뿐만 아니라 엠페러 길드의 침공 또한 멋지게 막아내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말입니다. 바드님.”

그는 애절한 목소를 한톤 키우며 크게 소리쳤다.

“이번에 새로 건축한 대장간에 들어와 주십쇼!”

《마을 사람들이 대장간의 주인이 되기를 요구했습니다. 요구 수락 시 코지부락 중앙시장에 위치한 대장간은 당신의 소유가 됩니다.》

예상치 못한 행운. 굴러들어온 복을 발로 차버릴 생각은 없다.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냥 얻어먹는 것 같아서 기분이 이상하군. 정말 괜찮나?”

“바드님이 대장간을 맡아주신다면야 저희야 미쁘기 그지없습니다.”

그들은 환호의 박수갈채를 보냈다. 상황이 아주 좋게 흘러간다. 레이나가 레벨을 올리는 동안에 나는 대장간에서 장사를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이번엔 남의 대장장이를 훔쳐 쓰는 것이 아닌, 정식적으로 당당하게 말이다!

“이렇게 신경을 써주니 보답은 아니지만 좋은 정보 하나 알려주지. 코지부락 북쪽에 위치한 금지구역. 봉인이 풀렸으니 이제 들어가도 상관없다. 당신네들이 힘을 합쳐서 개간하든지, 알아서 해.”

코지부락의 금지구역은 지금의 코지부락보다 규모가 3배는 크다. 그동안의 마을은 빙산의 일각이었을 뿐이라는 것.

이번에 대장장이의 진노가 사라졌으니 그곳을 개간하고 입주자들을 늘리면 코지부락은 마을이 아닌 도시로 성장할 여지가 생긴다. 너나 할 것 없이 아주 좋은 기회라는 것.

마을 사람들은 재차 환호했다.

“가, 감사합니다! 우와아아아!!”

“영웅님 납시었다! 만세!”

나 또한 덩달아 외쳤다.

“새로운 대장간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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