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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ter Smith-23화 (23/202)

Master Smith (23)

신이 추구하는 이념은 무엇일까? 구원? 은혜? 축복? 아니, 그보다 신이 추구하는 것이 있기는 할까?

신이 내게 준 것이 무엇인가? 가족을 눈앞에서 빼앗아간 것? 내 고향을 파괴하고 불사른 것? 모두가 비릿하고 끈적끈적한 피의 웅덩이위에서 미동조차하지 못하게 만든 것?

그 이외에 신이 내게 보여준 다른 모습은 뭐가 있지? 인간이 찬양하던 고결하고 성스런 ‘그분’은 어디 갔지?

나는 그날 알아차렸다. 신은 절대로 자비롭지 못하다는 것을. 그렇지 않고서야 인간의 추악함을 그대로 담아 넣은 엠페러 길드가 세상을 활개 칠 리가 없지 않은가?

고향에서 벌어진 약탈과 겁탈의 연속, 마을 사람들의 무차별적인 죽음. 이 모든 것이 ‘엠페러’라는 이름 아래 행해졌다. 그들을 놔두면 나와 같은 피해자가 또 다시 나타날 것이다. 나는 그날을 기점으로 굳게 다짐했다. 반드시 엠페러 길드에게 복수하겠노라고.

“준비되셨습니까?”

안토니오는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옆에 있는 거구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신장 180이상의 거체였고 온몸이 녹색 풀 플레이트 아머로 무장했다. 등에는 거대한 대검이 압도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중이다. 그 남자는 우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문제없다. 신호만 떨어지면 바로 돌격이야.”

2000명 이상의 수많은 모험가와 용병들이 숨죽이고 대기 중. 협곡 안에는 진득한 살기가 가득 감돌았다. 엠페러 길드의 병력이 전부 협곡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신호가 내려질 것이다.

“안토니오. 놈들의 머리가 보인다!”

멀리서 허겁지겁 달려오는 한명의 모험가. 몇 분전 정찰을 나갔던 모험가가 분명하다. 만약 이대로 놈들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다음 목표는 분명 코지부락이 될 것이고, 그 주변의 던전과 사냥터는 놈들의 영토나 다름없게 될 것이다.

“모두 전열을 가다듬으세요. 기습은 아처와 레인저로 시작하겠습니다. 아이스속성 엘리멘탈을 부여해서 적들의 발을 묶어둔 다음 탱커부대가 선두로 돌격. 곧바로 모든 병력을 투입하겠습니다.”

“훌륭하군. 모두 전투준비!”

우렁우렁한 그의 목소리가 낮은 파동을 그리며 코지부락의 파티원들 귓속 구석구석까지 전달되었다.

멀리서 몰려오는 흙먼지. 돌부리에 덜컹이는 육중한 마차소리. 갑옷에 달린 철편이 철컹거리는 소리. 분명 이번에도 어디선가 물건을 잔뜩 약탈하고 이동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 때문에 놈들이 다가오는 시간이 오래 걸렸던 것이리라.

“조심하세요.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서 철두철미하게 준비했을 겁니다. 이번 기습으로 확실한 효과를 보지 못한다면 불리해질 뿐이에요.”

“잘 알겠다. 아처 사격준비!”

덩치 큰 남성의 신호에 맞춰서 레인저와 아처, 보우마스터 등. 각종 활과 쇠뇌를 쓰는 원거리 공격이 장전되었다. 그리고 마법사들의 마력을 반쯤 불어넣어 엘리멘탈 속성을 부여한다.

푸른빛이 감도는 화살과 볼트는 시위에 걸린 탄성력을 한 몸에 받아서 당장이라도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기기긱 거리는 저항음과 함께 날카로운 금속의 끝은 엠페러 길드가 지나가는 자리를 노려보았다. 그들이 협곡을 지나가는 순간 이 아래는 냉기의 축제가 시작될 것이 분명하다.

‘왔다!’

안토니오가 속으로 외치기 무섭게 거구의 남자가 들어 올린 팔을 내리며 발사신호를 보냈다. 그 뒤의 장면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퓨뷰뷰븃! 퓨뷰뷰───!

수백 개의 화살이 연달아 발사. 좁은 협곡 안에서 화살비를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얼음속성이 부여된 화살이 지면에 충돌하더니 눈부신 얼음의 결정체가 사방으로 튀어 올라 반짝이는 얼음의 꽃을 만개했다.

싸늘한 냉기가 협곡 안을 가득 채우고 급격한 온도 저하 탓에 공기 중의 수증기가 응결하여 뿌연 안개를 형성했다.

안토니오는 공격이 직격했음을 확신했다. 놈들이 공격에 대비하거나 방어하려는 자세는 일절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번 공격으로 녀석들은 크게 당황했을 것이다.

“지금입니다! 놈들이 아이싱(Icing)상태일 때를 노려서 추가적인 공격을······!”

“아니. 지금은 아니야.”

풀 플레이트아머를 착용한 남자나, 그 옆에 있는 사무라이 판금 옷을 입은 호리호리한 남자나 누구하나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잔뜩 긴장한 얼굴.

“어째서죠! 지금 공격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요!”

“진정하고 제대로 봐. 지략가라면 이정도 판단쯤은 하란 말이다. 놈들에겐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다고!”

안토니오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의문의 시선을 그리며 협곡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뿌연 안개를 뚫고 그 속에서 유유히 모습을 드러내는 검은 인영. 그 수는 상당했다.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다고?

“마, 말도 안 돼!”

“놈들. 진작 베리어(Barrier)를 사용하고 있었던 거야. 철두철미한 녀석들이군.”

결정적으로 상대방은 이미 반격태세를 갖추었다. 엠페러 길드원들은 활을 들어 올렸고 이쪽을 겨누고 있다. 그 수만 헤아려도 족히 수천.

‘아무리 그래도 여기까지는 닿지 않을 텐데······.’

우리는 위에서 아래로 발사한 것이지만 저쪽은 아래서 위다. 사거리가 닿을 리 만무하단 말이다!

“숙여라 안토니오! 놈들의 공격은 사정거리가 상당해 보인다!”

풀 플레이트 아머를 착용한 남자가 적의 공격을 인지하고 재빠르게 행동에 나선다. 뿌연 안개 속을 뚫고 파공음을 터뜨리며 날아오는 수많은 빛줄기. 그것이 공기를 가르고 협곡의 벽을 꿰뚫기 까지는 한순간이었다.

하지만 원정대원들도 능수능란하게 회피하여 큰 타격은 입지 않았다.

“습격은 실패다. 이대로 육탄전에 돌입하는 수밖에 없어.”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탱커를 먼저 앞세워서······.”

“아쉽게도 그 조차 못하게 될 것 같군.”

순백색 휘광으로 이루어진 밧줄을 타고 빠른 속도로 기동하는 엠페러 길드의 선두. 전신을 감싼 로브와, 등 뒤에서 번쩍이는 금속 날붙이는 보이는 그대로 암살자가 분명했다.

아무리 체력과 방어력이 뛰어난 탱커라 한들, 빠른 연속기와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는 암살자를 상대로 오랫동안 버티고 서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뻔히 보이는 곳에서 암살단을 선두로 보내다니. 놈들도 생각보다 어리석군.”

“이대로 돌격인가요?”

“암살자 부대를 상대로 육탄전에서 밀릴 이유는 없다. 모두 무기를 꺼내고 싸워라! 코지부락을 지켜내자! 여기서 패배하면 마을의 안위는 없다!”

거구의 남자가 등에 찬 대검을 뽑아들고 허름한 망토를 벗었다. 도신 끝에 번쩍이는 휘광과 예리한 금속성의 울림이 대기를 진동시켰다. 그 소리를 신호로 일제히 무기를 꺼내드는 2000명의 대규모 파티는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토니오! 너는 후방으로 물러나! 뒤쪽에서 전장의 흐름을 읽고 오더(Order)를 내리는 거다!”

“아, 알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상황이 의외로 착착 넘어가는 것이 느낌이 좋다······ 라는 안토니오의 희망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방금까지 든든하게 상황을 살피던 녹색의 풀 플레이트아머를 착용한 거구의 전사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피의 분수를 뿜어내고 있던 것이다.

“크아아아악!!!”

“아저씨!!”

남자의 어께위에서 투명하게 아른거리는 유동적인 그림자. 형체는 확실치 않지만 사람의 그림자가 분명했다. 안토니오의 예상이 정답이라는 듯이 홀연히 모습을 드러낸 빼빼마른 사람은 오른손의 단검을 거체의 어께위에 꽂아 넣은 상태였다.

간헐적으로 솟구치는 뜨거운 액체는 사방팔방으로 튀어나가며 피의 안개를 만들어낸다.

“끄으윽······ 이 자식이!!”

철제 투구 안에서 타는 듯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암살자가 그의 급소를 노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일격에 쓰러트리지 못한 이유는 전형적인 탱커의 특성을 단단히 단련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별 저항도 못해보고 공격을 허용한 것은 암살자의 실력이 뛰어난 이유. 그 사실만으로도 누구의 실력이 한수 위인지 이미 판가름 난 것이나 다름없다.

“키히힛! 캬하하하!”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소름끼치는 가느다란 웃음소리에 안토니오의 몸이 얼어붙었다. 사람이 피를 흘려서 아니다. 사람이 죽어서가 아니다. 그 웃음소리가 소름끼쳐서가 아니다. 오래전 자신의 도시를 습격한 광기어린 웃음. 마스크에 가려졌지만 그 미소가 눈앞에 훤히 드러나는 듯했기 때문이다.

“도······망쳐 안토니오!”

퍼억············

두개골이 맥없이 바스러지고 철제투구 안에서 선혈이 진득하게 흘러나왔다. 기사는 그대로 절명했다.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사람들의 절규. 몇 분 만에 전열이 흐트러지고 여기저기서 피의 향연이 벌어졌다. 이 모든 게 코지부락의 의지가 꺾여나가는 것을 의미했다.

안토니오는 석상처럼 굳어진 눈으로 이 모든 상황을 부정하고 싶었다.

제대로 된 공격한번 못해보고 압도당했다. 적의 선방부대. 그것도 암살자 에게 전원 몰살? 이건 반칙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이건 너무하잖아······.”

“케케케! 겁 대가리 없이 건드리기에 뭐하는 놈들인가 했더니 고작 피라미였나? 아무튼 잘 가라!”

진득한 살기를 머금은 냉소가 안토니오에게 향했다. 암살자는 하늘높이 단검을 치켜들었다. 이제 놈의 단검이 허공을 가로지르며 나의 몸을 그어 내릴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다는 것뿐이려나.

“팔콘 블로우!(Falconet blow)”

암살자의 단검이 연한 주홍빛을 발하더니 날카로운 예기를 머금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경솔했던 걸까? 내가 쓸데없는 선동을 일으킨 것은 아닐까? 이번에도 나는······ 터무니없는 짓을 벌려 놓은 걸까?

“커헉!!”

안토니오는 코앞에서 들려오는 단말마의 소리를 들어서야 감았던 눈을 뜰 수 있었다. 그는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머릿속을 열심히 굴렸다. 방금까지 악랄하게 웃고 있던 암살자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송이! 괜찮냐?”

“아, 아저씨는 중앙광장에서 봤던?”

조잡한 플레이트 아머를 장착한 유쾌한 남자. 그의 선동덕분에 지금 이곳에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등장했다고 전세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이미 전세는 적들에게 기울어있으니까.

‘내가 미숙했다. 준비한 것도 없으면서 무슨 승리를 바란단 말인가! 내가 성급했다. 적어도 계획은 짰어야 하는 건데······.’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희생한다. 아니, 전멸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갈지도 모른다. 이 얼마나 어리석단 말인가!

“정신 차려 애송이! 여기서 포기할 거야? 복수를 하겠다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저 눈물로 사죄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최선이었다. 나 자신이 한심해서. 꼴에 귀족이라고 마지막까지 잘난 척, 이래저래 변명을 늘어놓는 자신이 싫어서.

“포기하지 말라고 했지! 네 탓이 아니야. 이건 우리 모두가 나선 일이라고! 네 말대로 승산이 없어. 그러니까!!”

그의 얼굴에 공포가 그려진다. 하지만 신의의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한 가지만 약속해줘 안토니오······.”

-약속?

“반드시 살아남아서······.”

-살아남아서.

“혁명을 일으켜라!”

-혁명?

“크윽! 더럽게 아프군. 이럴 때가 아니야 안토니오. 죄책감에 주저앉는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현실을 바라봐라. 네 눈으로 판단해. 미래는 네가 바꾸는 거다!”

“당신 상처가!”

“신경 쓰지 마!”

옆구리를 부여잡고 신음하던 기사가 안토니오의 멱살을 붙잡아 들어올렸다.

롱 레이지 스로우(Long rage throw). 물건 따위를 멀리 던질 수 있는 흔한 기술 중 하나다. 그는 전심전력으로 안토니오 던져 올렸다.

“안톤, 그 아이를 부탁한다! 코지부락까지 어떻게든 도망쳐!”

“오케이! 맡겨만 달라고 리더!”

안토니오를 낚아챈 흑색피부의 근육남자는 코지부락을 향해서 일직선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도주를 지켜본 암살자들은 찢어지듯 소리쳤다.

“한 놈도 도망치게 해선 안 된다! 엠페러 길드를 건드린 놈들에게 매서운 맛을 보여줘라!”

안톤의 등 뒤로 5명의 암살자가 달라붙었다. 탱커로 보이는 이 남자가 암살자의 추격을 따돌리는 것은 무리. 결국 붙잡힐 것이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있는 힘껏 나를 집어던지며 말했다.

“반드시 살아남아! 놈들은 내가 맡으마.”

그 말을 남겨두고 일체의 망설임 없이 암살자게로 돌아서는 안톤. 그 혼자서 암살자들을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말은 죽겠다는 소리······?

“어째서!”

“안토니오. 너는 우리 리더와 닮았어. 정의롭고 정직하지. 리더는 너의 모습이 마음에 든 모양이야.”

이번에 안토니오를 낚아챈 사람은 붉은 머리의 젊은 여검사였다. 그녀의 입가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얼음장같이 차갑고 날카로웠지만 그 내면은 흔들리고 있었다. 아마도 등 뒤에서 들려온 굵직한 비명 탓이리라.

“처음 보는 사람이잖아요. 왜 그렇게 까지 저를 구하려 하는 거죠?”

“너는 내······ 아니다. 그냥 지켜주면 안 될 것 같아서. 그 뿐이야.”

여검사는 안쓰럽게 미소를 지으며 안토니오에게 답했다.

“리더는 용사가 되는 게 꿈이었어. 하지만 정의롭고 순수한 마음은 현실에서 통하지 않았지. 네가 어릴 적 리더의 모습과 닮아서 너를 구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

“그건 개인적인 판단이잖아요! 저는 그저······.”

“그건 알아서 생각해! 이제부턴 너 혼자 달려야 할 테니까.”

그녀가 발을 멈추고 숲 근처에서 안토니오를 내려주었다. 이대로 어떻게든 코지부락을 향해 달려 나가라는 소리였다.

“아직 놈들이 따라오고 있어. 잔당은 내가 상대할 테니까 너는 뒤돌아보지 말고 도망쳐. 그리고 반드시 살아남아서······.”

다시 만나자.

“이, 이봐요!”

“기대할게 용사님.”

여검사는 곧장 전장을 향해 뛰쳐나갔다. 이대로 가다간 그녀도 죽을 것이 틀림없다. 구해야한다. 이 주변 누구에게라도 도움을 요청해야한다.

“제길, 제길!! 으아아아아아!!!!!!!!!!!!!!!!!!!!!!!”

눈물을 머금고 전력 질주하는 안토니오. 정신없이 발을 놀리는 열여덟 살 귀족은 얼마못가 단단한 기둥 같은 것에 머리를 부딪쳤다.

“크아악!”

“어라? 어제 광장에서 봤던 새파란 애송이 아니야? 엠페러 길드는 어쩌고 여기서 이러고 있냐?”

봉두난발에 타오르는 화안(火眼)을 가진 젊은 남자가 능청맞게 말을 걸어왔다. 등 뒤에는 곡괭이와 고급스런 칼자루가 매달려 있다. 나긋하면서도 한층 여유로운 그의 분위기는 어째선지 든든함이 느껴졌다.

“저쪽 맞지? 엠페러 길드와 접촉한 장소가.”

“······그걸 어떻게?”

그가 영문 모를 눈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박살내러 왔거든. 그 놈들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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