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22)
나는 양손 한가득 사탕보따리를 사들고 메리데이로 돌아왔다. 어째선지 이사벨라의 당근텃밭을 가꾸고 있는 론과 노엘의 모습이 눈에 밟혔다.
‘저기서 뭐하는 거야 저 녀석들.’
“노엘님. 언제까지 이러고 계시려고요? 그 남자 없을 때 어서 도망쳐야한다니까요!”
“입 좀······ 다물어······. 바드······ 사탕 가져온댔어······.”
“아이참! 글쎄, 사탕은 본부로 돌아가서도 충분히 먹을 수 있지 않습니까? 이 이상 지체하면 케르드 군주님께 혼난단 말입니다!”
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바닐라 색 단발머리를 찰랑찰랑 흔들며 도리질 치는 노엘. 꾹 다문 입술에는 반드시 사탕을 먹어야 겠다는 옹고집 똥고집이 담겨있었다.
“잘 참고 기다리고 있었구나?”
“흐힉!?”
남색 샤키컷의 마법사는 경악하며 뒷걸음질 쳤다. 마주치기 싫은 얼굴을 마주한 것 마냥 오금을 저리면서 말이다. 그에 반해 노엘은 화사하고 순진무구한 미소로 팔을 활짝 벌리며 바드에게 뛰어들었다.
“와아아~ 사탕!”
“노엘 공주님 잘 참고 기다렸나요?”
진짜 애 다루는 마냥 오글거리는 억양에 론은 세상 무너져 내리는 표정을 지었다. 명실상부 스켈레톤을 소화하는 천재 네크로맨서가 원수의 손아귀에 쓰다듬어지며 사탕에 헥헥거리는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막대······사탕!”
조근조근 소심한 목소리가 들떠있다. 바드는 아빠미소를 지으며 노엘의 아담한 이마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많이 먹어~ 오빠가 뭐든 사주마.”
“진짜······?”
작게 오므린 입에서 기대만발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더니 노엘이 론을 향해 말했다.
“론······. 이 오빠 되게 착해······.”
“넘어가지 마시라니까요 글쎄에에에~!”
모르는 아저씨가 먹을 걸로 꼬드기면 절대 넘어가지 말라고 교육받았을 거 아니냐고! 하여간 이 빌어먹을 꼬맹이! 이렇게 된 이상 나 혼자라도 도망을 가야겠어!
굳게 결심한 론. 바드는 그의 생각이라도 읽었는지 어깨를 부여잡는다.
“어이, 지금 마을광장이 시끌벅적 하거든. 듣기로는 엠페러 길드에서 천금협곡을 털러 이곳으로 오고 있다더군. 너희 뭔가 알고 있지?”
“아, 아뇨! 절대로요? 아무것도 모르는데요?”
론의 완강한 부정에 비해서,
“쿠샨······ 그 남자······ 케르드의 명령으로 파지천금을 찾고 있어.”
막대사탕을 핥으며 노엘이 실토했다. 바드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론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아무래도 네 상관은 비밀보장이라는 개념이 없는 것 같거든. 숨길 생각일랑 곱게 접지?”
“아흐흑······! 네에, 알겠다고요 제길!”
론의 눈동자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렸다.
나는 두 사람에게 엠페러 길드의 계획을 낱낱이 캐물었다. 그 결과 이번일은 묠니르와 어떠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파지천금이 전설의 4대 광물이라고?”
“네. 케르드 군주는 묠니르와 더불어 4개의 광물을 찾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어디에 사용할지는 저희도 모르겠지만 눈에 쌍심지를 켜고 찾는다니까요?”
그렇다면 놈들이 천금협곡으로 온 이유는 파지천금을 찾아내는 겸사겸사 묠니르를 가지고 있는 나까지 노리기 위해서 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놈들은 묠니르를 탈환했는지 아직 모르고 있을 터. 이쪽에서 먼저 선수 치면 재밌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론. 지금 오고 있는 부대와 연락할 방법 있지?”
“······.”
그는 부정하지 않았다. 부정해봐야 어차피 노엘이 다 까발릴 생각이기 때문이다. 론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할 수 있습니다.”
“당장 연락해. 묠니르를 탈환했으니까 내일 오전 10시 천금협곡 중앙에서 만나자고. 그 늙은 대장장이는 탈환 과정에서 사망했다고 대충 얼버무려. 생각이 있으면 알아서 잘할 거라 믿는다.”
론은 폭발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크큭! 멍청한 놈. 내가 네 말대로 움직일 거 같냐? 당장 네놈 모든걸 까발려서 모가지를 수급해주마! 때마침 쿠샨공작님까지 당도하셨으니 내일은 네놈의 제삿날이 되겠군,’
‘녀석. 딴 생각하고 있군.’
이래서 허갤은 믿을 것이 못 된다. 뭐만하면 빌어먹을 생각만 하니 말이다. 하지만 론은 내 손바닥 안이다. 자신의 길드가 최강이라 단언하는 놈이 굳이 내 말을 따를 이유가 없지.
‘내일은 네 제삿날이다 론. 말 안 듣는 인형은 일찍이 폐기하는 것이 좋거든. 그에 비해서······.’
“츄릅. 츄릅.”
요 꼬맹이. 너무 귀여운 거 아니냐? 엠페러에 관한 대략적인 정보도 가지고 있겠다. 어린 나이에 천부적인 마법 재능도 가지고 있겠다. 그야말로 복덩어리다. 엠페러 길드보단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백만번 옳은 선택이다.
“노엘 공주님~”
“응.”
“엠페러 길드로 돌아가고 싶어요?”
“으응······ 아니.”
침울해진 어린 소녀의 표정은 론에게 뜻 모를 불안감을 안겨 주었다.
‘서, 설마 저 대장장이. 노엘 백작님을?’
‘그 설마다 요놈아.’
나는 노엘을 번쩍 들어 올려 작은 손바닥 위로 눈깔사탕을 얹어주며 말했다.
“오빠랑 같이 가면 사탕 매일 먹을 수 있는데.”
“······우으응!!”
호고곡! 동그랗게 커져버린 토끼 같은 눈동자. 너무 귀엽다. 그래, 일단 내 편이 돼 준다면야 사탕 값은 감수해주지.
“노, 노엘 백작님?”
“론. 바이바이~”
바닐라 소녀가 베시시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바드와 함께 가겠다는 모종의 신호였다.
***
론과 노엘을 메리데이의 가장 구석진 방으로 보내고, 나는 레이나와 이사벨라가 쉬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늦었네요. 여자 친구 놔두고 너무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는 거 아니에요?”
“누가 여자 친구야! 너 자꾸 헛소리 할래? 그보다 아직 두 시간 안 지났는데 왜 돌아왔어? 광장 게시판 앞에서 만나기로 했잖아?”
“복잡한 일이 좀 생겼거든. 내일은 두 사람 모두 여관 안에 꼼짝 말고 있어. 혹여나 마을이 소란스러워 지면 코지부락을 후딱 떠나고.”
“엥? 갑자기 왜요?”
이사벨라가 토끼 귀를 쫑긋 세우며 의아해 했다. 하루 종일 집밖으로 안 나간 탓에 마을 내에서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모양이다.
“마을 전체가 위험해졌어요. 엠페러 길드가 이곳으로 오는 모양이에요.”
두 사람의 표정이 급속도로 굳어졌다. 엠페러 길드가 지나간 장소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그녀들도 들은 소문이 있기 때문이다.
“그거 몬스터침공보다 더 큰일인데······.”
“엠페러 길드 잡겠다고 난리도 아니야. 1000명이나 되는 대규모 파티를 2개나 만들어서 벌써 원정길에 나섰다고. 접점은 아마도 내일 오전. 코지부락의 전력이 대부분 동원되었으니 놈들이 이곳에 도착하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지.”
바드의 말에 이사벨라는 거대한 망치에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엠페러라는 세력이 얼마나 크고 위험한지, 그리고 그들을 붙잡겠다고 나선 마을사람들이 얼마나 어리석고 멍청한 행동을 한 것인지 대번에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 그건 안 돼요! 절대로 놈들을 건드려선 안 된다고요! 어디로 갔죠? 설마 정면대결은 아니겠죠? 빨리 서둘러야 해요!”
“이미 늦었습니다. 2000명이나 모인 집단을 무슨수로 막을 생각인 겁니까?”
“그렇다고 가만히 보고만 있으라고요? 결과가 뻔한데? 놈들은 단순한 약탈집단이 아니에요. 목적도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무차별 살육과 약탈을 감행하는 허갤이라고요!”
“그건 잘 알고 있어. 그러니까 두 사람은 여기 남아있으라는 거야.”
이사벨라는 불연 듯이 떠오른 듯 내 손을 붙잡고 요청했다.
“바드 씨라면 막을 수 있죠?”
“예. 하지만 막지 않을 겁니다.”
내가 그들을 막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자기들이 좋아서 나선일인데 내가 무슨 권리로 그들을 방해한단 말인가? 더군다나 나는 정체를 숨기고 싶다. 레벨이 어지간히 높아야지 이렇게 높으면 별별 귀찮은 일에 휘말릴 테니까.
이사벨라는 싸늘한 눈으로 나를 매도했다.
“그래서······ 그들이 죽도록 내버려 두겠다고요?”
“딱히 죽도록 내버려두는 것도 아니죠. 혹시 알아요? 원정이 성공할······.”
“절대로 불가능해요.”
단칼에 잘라 말하는 이사벨라. 그녀의 표정은 한밤중 피어오른 달빛의 장미처럼 싸늘하고 날카로웠다.
“그만해 이사벨라. 싸우는 건 그만둬.”
“레이나 너도 뭐라고 좀 말해봐! 너도 싫잖아. 이대로 마을사람들이 몰살당하는 거······”
“그만하라고 했잖아!”
“······미안.”
분노한 레이나의 외침에 이사벨라가 기세를 죽이고 사과했다. 바드도 이사벨라도 알고 있다. 레이나가 왜 이렇게 까지 화를 내는지 말이다.
그녀는 애써 침착하며 내게 말했다.
“미안해 바드. 오늘 사냥은 여기까지 하자.”
이사벨라가 땅이 꺼져라 한숨 내쉬며 나를 노려보았다.
“이번엔 바드 씨가 확실히 잘못했어요.”
“송구스럽지만 저는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거든요······.”
“흥! 십리도 못가서 발병나라!”
토끼 수인은 새침하게 고개를 돌려버리고는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순순히 인정할 테지만 막무가내로 몰아가는 건 좀 아니지 않아?
아무래도 엠페러 길드가 뭔가 있기는 한가보다. 확신은 못하지만 이사벨라의 말에도 전혀 신빙성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만약 2000명이나 동원되는 원정이 실패하면 그 결과는 안 봐도 피의향연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
그거야 당연히 결정된 거 아니겠어?
계획은 이미 짜두었다. 묠니르를 미끼로 한 엠페러 길드의 유도. 론의 얍삽함을 이용한 계획! 운 좋게 타이밍도 맞아 떨어지면 원정대보다 먼저 접촉할 수 있을 거다. 서두르면 원정대를 따라잡는 것도 손쉬운 일이므로 긴박해할 이유가 없다.
일단 론과 노엘을 데리고 가는 것이 좋겠지. 하여간 그 토끼 아가씨. 사람 나쁜 놈 잘 만드네.
발길을 서두르는 바드였다.
***
“이사벨라. 아까 왜 그랬어?”
사제복을 벗어던진 레이나가 우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사벨라는 되레 질문했다.
“너야말로 왜 그런 거야? 아직도 그때의 기억 때문에 그래?”
“······.”
“시대가 변했어 레이나. 몬스터든 인간이든 그 외의 동식물이든 다 같은 생명이라고 볼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고. 너도 알잖아?”
“꼭, 그렇지만은······.”
“아니. 이건 기정사실이야. 그 사실을 뼈저리게 알고 있는 것도 너 자신이고.”
레이나는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지만 반박을 하지 못했다. 몬스터라는 존재가 얼마나 추악하고 잔인한지, 무섭고 두려운 존재인지 이미 겼어봤으니까.
‘하지만 이럴 때 보면 가끔씩 답답해. 레이나.’
아픈 기억을 떠올리지 않으려는, 자신의 아픔을 남에게 드러내지 않으려는 버릇은 어찌 보면 레이나의 안 좋은 버릇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사람이라면 도움을 요청할 줄도 알아야지. 민폐를 끼쳐 볼 줄도 알아야지. 어떻게 가슴속에 묵혀두기만 해?
“에휴~”
오늘은 이만 자야겠다. 이 이상의 대화는 감정싸움만 될 것 같아. 이럴 땐 그냥 가만히 놔두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지.
현재 가장 심각한 것은 마을의 용병과 모험가. 도합 2000명이라는 규모의 인원이 엠페러에게 싸움을 걸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암만 생각해도 원정군에게는 승산이 없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쫒아가서 그들을 막고 싶지만······.
앞치마 끈을 풀어헤치고 소파에 몸을 앉힌 이사벨라는 무력한 자신을 한심하게 내려다보았다. 결국 그 남자에게 이런저런 불평해도 자기 또한 별반 다를 게 없지 않은가? 막을 의지조차 없었으면서 무슨 잘잘못을 따지려들어?
“나중에 사과해야겠다.”
따듯한 햇살을 수면제 삼아 잠을 청하는 이사벨라. 그녀의 보드라운 얼굴에는 목욕하고 난 뒤에 마시는 따듯한 우유의 온기가 담겨있었다.
푹신한 소파는 안락함을, 따듯한 햇살은 포근함과 심적 안정을. 분위기 전환에는 최고다.
“흠냥······”
그렇게, 결전의 다음날 아침이 찾아왔다. 어째선지 이날은 닭이 울지 않았다.
***
원정대가 이동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물론, 이동속도 증가물약과 버프를 될 수 있는 데로 걸어둔 상태다. 덕분에 몇 시간에 걸쳐서 꽤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었고, 엠페러 길드가 지나간다는 길목에서 좀 더 유리한 지형을 선정해서 미리 전투에 대비할 수 있었다.
모든 준비가 끝난 상태. 이제 협곡을 지나가는 엠페러 길드를 공격하기만 하면 된다. 작전이 성공만 한다면 그들의 약탈행위는 한동안 잠잠해질 것이고 이번 원정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명성과 경험치를 얻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원정대에서 선봉으로 서 있는 남자가 있었으니. 바로 안토니오였다.
“저는 전투에 전혀 도움이 안 되지만 전략적인 전투를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알고 있어. 그러니까 이 자리에 나와 있는 거 아니야?”
“네, 맞아요.”
“적당히 오더만 내리라고. 뒷일은 우리가 감당할 테니까.”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들의 대화가 오가는 사이에 멀리서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것을 원정대원 누구라도 확인할 수 있었다. 수백에 가까운 집단체가 무리를 지어서 이동하는 규모. 평균 레벨은 대략 300쯤 예상할 수 있겠다.
“왔군요. 드디어······.”
“기회는 한번뿐이라고 생각해야 돼. 놈들이 싸울 태세를 갖추는 순간 패배는 거의 확정이야.”
안토니오는 고개를 끄덕이고 신념의 눈빛으로 원정대를 바라보았다.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 확신 하면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