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21)
4미터 거체의 몬스터. 거친 돌바닥 같은 몸체 곳곳에는 벌레 파먹은 구멍이 존재했다. 얼굴은 단단한 나무껍질로 싸여있어서 그 형태마저 일정하지가 않다. 외견은 그저 나무일뿐이지만 머리위로 떠오른 LV.23이라는 숫자가 녀석이 몬스터임을 알려주고 있다.
나무속성인 엔트의 공격패턴은 단순하다. 팔 휘두르기, 박치기, 때때로 머리 위에 있는 과일투척 등등. 회피하기는 쉽지만 그 위력은 결코 만만히 봐서는 안 되며 방어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동급레벨의 검사도 엔트의 껍질을 파고드는 건 무리가 아닐까 싶은 정도다.
“블레싱!”
그녀가 마나부족으로 버프를 걸지 못하는 상황은 결코 없었다. 내가 제작한 사제전용 지팡이에는 ‘마력 회복속도 100%증가’가 붙어있기 때문이다. 낮은 레벨인 그녀에게 차고도 넘칠 정도로 많은 마나를 선사해 줄 것이다.
“다음 몬스터!”
맨손으로 엔트의 단단한 피부를 꿰뚫자 나무파편이 수많은 조각을 이루며 허공으로 흩날렸다. 엔트의 머리위로 떠오른 HP포인트는 단숨에 제로세팅. 일말의 신음조차 내지 못하고 허무하게 쓰러진다.
“바드, 뒤에!”
사방을 둘러싼 엔트가 팔을 휘두르거나 단단한 열매를 투척했다. 숫자로 밀어붙이시겠다? 매우 좋지 못한 선택이군.
“캐치.”
엔트의 과일투척은 직접 잡을 수도 있다. 먹으면 공복감과 체력이 회복되고 필요 없다면 마을 상점에서 10실링에 내다 팔수 있다.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명언에 충실히 따르는 나에게는 아주 엘레강스한 공격이다.
“크어어?”
바드가 놀라운 속도로 움직이며 열매를 캐치해낸다. 엔트들이 당황한 이유는 오로지 바드의 탐욕스런 눈을 보았기 때문이리라. 등골에 있는 척수마저 쪽쪽 빨아낼 듯한 바드의 무시무시한 눈 말이다.
‘저놈에게 걸리면 나뭇잎 한 장 남기지 않고 다 빼앗길 거야!’
엔트들의 두려운 속내였다.
“크워어어어!!!”
절망어린 그들의 외침이 숲속으로 퍼져나갔고, 그들은 일제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 먼저 싸움을 걸어온 쪽은 엔트였고 치사하게 수적으로 밀어붙인 것도 놈들이니까. 하물며, 뽑아먹을 것이 많은 나무 몬스터를 가만 버려두는 것은 내 취향이 아니거든.
“버프!”
“블레싱!”
블레싱은 전체적으로 모든 능력치가 소량 상승하지만 가장 돋보이는 효과는 마법, 물리 데미지 증가와 이동속도증가다. 꾸준한 버프발동으로 인해서 레이나의 블레싱은 초급숙련도 4단계에 도달했는데 처음보다는 확실히 효율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오른쪽 위에서 곡선을 그리는 펀치. 공기를 찢는 둔중한 철퇴소리는 엔트의 상체를 두 동강 냈다. 산들바람에 흘러가는 나무부스러기가 가을의 고독을 연상케 한다.
엔트에게 드랍되는 아이템은 기본적으로 3가지다. 엔트의 가지, 나무토막, 열매. 장비제작보다는 조각이나, 장식품으로 쓰는 것이 훨씬 이상적일 것이다.
사냥은 계속되었다. 엔트이외에도 레벨53 식인초, 레벨66 블랙 머쉬룸 등. 의뢰를 받아들인 대로 사냥에 나섰다. 그동안 레이나의 순수 레벨은 55에 도달했고, 블레싱의 숙련도도 초급7단계에 이르렀다.
“두시간만에 레벨55······.”
더욱 경이로운 것은 이 모든 의뢰를 끝내기까지 한 시간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보다 더더더 놀란 것은 1실링 하나 빼놓지 않고 아이템을 쓸어 담는 바드의 손기술이었다.
“뭐해? 마을로 돌아가자. 조금 쉬었다가 2사이클 정도 더 돌아보자고.”
“이, 이걸 두 번이나 더?”
이 남자 진짜 괴물 아니야?
“힘들어서 그래?”
그리 지칠 건 없었을 텐데. 오히려 너무 쉬워서 하품이 났을 걸?
“의뢰 완료했어.”
“오! 고맙네. 요즘 늑대의 가죽이 비싸졌더라고. 장사물품으로 취급하기에는 적합한 품목이지.”
“시세가 올랐······다고?”
“한 장에 1만 2천 실링이라고 했던가?”
“자, 잠깐만. 1만 2천 실링짜리 가죽 50장을 10만 실링에 퉁 친거?”
“허허~ 왜 그러나? 경험치는 두둑하지 않은가? 너무 원망하지 말게나. 날 탓하기 전에 자네가 시세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것을 탓하게.”
바드는 부서질 듯 이를 갈면서 눈물을 머금고 10만 실링을 받아들였다. 의뢰인의 말대로 자신이 시세에 눈이 어두웠기 때문에 발생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레이나. 경험치는 얼마나 들어왔어?”
“레벨3개나 올랐는데? 벌써 58이야.”
“꽤 빠르군. 이 기세면 금방 100까지 도달하겠어.”
레이나는 문득 의혹을 품었다.
“그런데 있잖아. 어차피 네가 만들어준 무기를 착용하면 레벨이 350까지 올라버리는데 이거 의미 있는 사냥이야? 원래 레벨이 58까지 올랐다고는 해도 350인건 매 한가지 인데······.”
그녀의 날카로운 지적에 나는 감탄하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오, 예리한걸? 좋은 질문이야.”
그녀의 말대로 레벨을 올리기 전에 무기를 장착하나, 레벨을 올린 후에 무기를 장착하나 무기 장착 후 레벨350으로 변동이 없다. 왜냐하면 레벨10에서 58까지 성장하는 수치가 레벨350에서 351로 올라가는 성장수치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레벨업은 정말 무의미 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생각해봐. 장비의 특수능력은 +효과보다 비례적(%)으로 증가하는 능력이 많아. 그 말은 기본 능력치가 높을수록 착용 장비의 효율이 높아진다는 거야. 한마디로 네 기본 능력치가 높아질수록 무기 장착 후 레벨이 점차 상승한다는 것이지.”
레이나는 박수를 마주치며 깨우친 눈동자를 빛냈다.
“그 말은 네가 만들어준 무기는 딱히 레벨제한이 없다는 그 소리?”
“그렇지. 레벨에 따라서 일일이 장비 교체하는 건 돈도 아깝고 시간도 아깝잖아?”
“우와아아~ 의외인데? 네가 그렇게 넓은 혜안을 가지고 있을 줄은······.”
“까불면 맞는다?”
각설하고, 이걸로 입증된 사실 하나. 파티상태라면 의뢰보상의 일부가 파티원에게도 들어간다는 것.
“흐음, 조금 쉬었다 할까?”
그녀의 얼굴이 피곤으로 찌들어있다. 하기야 그녀로선 상당히 피곤한 원정이었을 거다. 전투에서 멀쩡히 서있는 것만으로도 스태미나가 많이 소요됐을 테니까.
“아니! 나는 괜찮으니까 계속해도 상관없는데.”
“땀 뻘뻘 흘리면서 말해봤자 전혀 설득력이 없거든?”
레이나는 뒤늦게 이마에 맺힌 땀을 소매로 닦아내었다. 그 땀이 전투로 인한 땀인지, 아니면 무더운 날씨에 로브를 뒤집어써서 난 땀인지 모르겠다.
레이나는 별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 이사벨라의 여관으로 향했다.
“알았어. 조금만 쉬었다가 나올게.”
“두 시간 뒤에 광장 게시판 앞으로 와.”
나는 레이나와 헤어진 뒤에 중앙광장의 게시판 앞으로 향했다. 적당한 의뢰나 확인할 생각이었는데······.
‘뭐야.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게시판 앞에 수많은 인파들이 이목을 끌었다. 무슨 일인가~ 하고, 가까이 다가간 나는 그 이유를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게시판에 붙어있는 하나의 공지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던 것이다. 엠페러의 약탈을 저지할 파티를 구한다는 충격적인 내용의 공지가 말이다.
엠페러에 대한 정보는 그란다의 술집에서도, 론과 노엘에게도 입수했다. 대단히 악질적인 놈들. 현 시점에선 가장 명확한 적수. 놈들을 소탕하기 위해선 왕실의 친위대가 최소 10부대는 있어야 한다고 들었다. 그런 그들의 약탈행위를 막겠다고? 무슨 수로?
“엠페러 길드······인가?”
내용은 이러했다. 1000명의 대규모 파티를 짜서 엠페러 길드가 이동하는 위치에 미리 대기한 뒤. 역으로 습격하자는 내용이다. 말이야 쉽지 설마 쉬운 일이겠는가?
어떤 놈인지 웃기는 녀석이다. 고작 1000명의 파티로 놈들을 처리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니까. 평균 레벨을 500이상으로 잡겠다는 거냐? 왕실의 친위대가 얼마나 강한지 모르겠지만 왕의 자리를 지키는 군대가 10부대나 필요하단 말이다. 턱없이 부족한 인원으로 뭘 어쩔 생각이지?
나는 냉소를 머금고 공지 게시자의 이름을 확인했다. 《안토니오》 그것이 게시자의 이름이다.
“당장 오늘부터 모집? 광장에서?”
나는 당장 주변을 둘러보며 그를 찾았다. 1000명이나 되는 파티를 이끌어갈 리더라면 분명 레벨이 높은 편일 거다. 그렇다면 착용한 장비 또한 불가피하게 좋아 보일 것이고······.
‘아, 찾았다.’
스킬명 [통찰]덕분에 수많은 인파속에서 이름을 찾아내는 것은 손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측은한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어리잖아!’
꼬맹이? 도대체 몇 살이야? 저래가지곤 도저히 파티가 모이지 않을 것이다. 분명 아무도······.
“좋아! 나도 이 파티에 참가하겠어!”
“나도! 엠페러 길드 녀석들, 지난주에 이 근처에서 광맥을 발견해서 전부 털어갔다며?”
“정말이야? 이 근처에서 광물을 털어 갈만한 장소라면 천금협곡뿐인데······. 설마 파지천금을 노리는 건가?!”
예상외로 파격적인 반응을 보여주는 공지였다. 하지만 안토니오라는 남자의 정체를 안다면 그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안 봐도 뻔하다.
“그러고 보니 이 남자는 어디 있어? 분명 이 광장 어딘가에 있다고 하지 않았어?”
“게시자 여기 있소? 있으면 대답하시오!”
“저, 저기······. 접니다.”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모습을 드러내는 안토니오. 열아홉 살 되어 보이는 풋풋한 미소년 외모에 잘 정리된 금발 머리칼. 벽안의 눈동자는 투명한 사파이어의 휘광을 잔잔하게 머금었다. 순백색의 화려한 셔츠는 귀족의 자제분이나 입을법한 동화 속 왕자님의 옷이다.
그나저나 나와도 되는 거냐? 정체를 밝히면 모두들 포기해 버릴 텐데?
“제 이름은 안토니오. 베를린 가문의 막내아들입니다.”
“베를린 가문? 헨다스 도시에서 제일가는 그 명문가?!”
사람들이 일제히 동요하기 시작했다. 유일하게 바드 한 사람만이 멍청한 얼굴로 안토니오를 바라볼 뿐이다.
이름 한번 웃기네. 헨다스가 뭐야? 어떤 시장이 지은 이름인지는 몰라도 작명센스가 내 수준 이하다.
“헨다스? 그 도시는 재건중이라고 들었는데? 오래전 엠페러 길드의 습격으로 거의 폐허가 되었다고 하지 않았어? 그나저나 그곳 사람들은 대부분······.”
“죽었습니다. 생존자마저 뿔뿔이 흩어졌지요.”
“그렇군. 긴말하지 않겠어. 하지만 알아두고 싶은 것이 있는데. 엠페러 길드를 공격하는 이유가 뭐지? 너 같이 새파란 애송이가 그들을 공격할 이유라면 역시 도시에 대한 복수냐?”
“비슷한 이유에서지만······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엠페러 길드의 횡포와 횡령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안토니오의 목소리가 누그러진 것은 무언가 찔리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들을 설득하기에 본인은 아직 어리고, 그들을 공격하는 의도 또한 불명확하니까.
“좋아. 네 제안에 동참하지.”
“저, 정말인가요?!”
플레이트 아머를 착용한 젊은 남자가 정의로운 미소를 머금고 안토니오와 나란히 섰다. 그의 얼굴에는 몇 가지 읽을 수 없는 감정의 잔류가 남았다.
“모두들 들어봐! 안토니오가 어떤 목적으로 이런 일을 벌이려는 건지는 알 수 없어. 하지만 엠페러 길드의 만행을 언제까지고 지켜볼 수는 없잖아?”
힘차고 굳센 목소리가 한 박자 끊기고,
“왕실의 친위대면 어떻고 아니면 어쩠느냔 말이야! 우리도 모이면 강하다는 것을 입증하자! 그들을 물리치고 이 마을도 그들의 손으로부터 지켜내자!”
갑자기 주변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의 선동이 한몫 할 테지만 마을주민들도 같은 생각을 해왔던 탓인지 그들의 미미했던 감정 선은 쉽사리 물결쳤다.
주변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한마음 한뜻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대규모 파티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대규모 파티 0/1000에서 1000/1000까지 숫자가 채워진 것은 한순간이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추가적인 파티가 만들어져서 1000인의 풀 파티(원정대)가 2개씩나 이루어졌다.
“이정도면 되겠지 꼬마?”
“저를 어떻게 믿고 이만한 사람들이······.”
“너를 믿는 게 아니야.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피하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지. 너는 우리의 행동에 불을 지피는 부싯돌의 역할일 뿐이다.”
젊은 남성은 그렇게 말했다. 아무 상관없다고, 소년의 정체가 어떻든, 자기네들은 할 일을 할 뿐이라고 말했다.
“얼굴 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부터는 우리에게 맡기라고. 엠페러 길드든 뭐든 전부 때려 부술 테니까.”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안토니오는 보석 같은 눈망울을 글썽이며 90도 인사를 나눴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얼마나 큰 비극의 비수가 되어 그들에게 돌아갈지, 안토니오는 상상도 못했었다. 그저 한없이 든든해 보이는 그들의 등판을 먼 산 바라보듯 바라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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