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8)
마을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은 오래전 사람의 발길이 끊긴 모양이다. 건물은 빛이 바랜 채 폐가가 되어있고, 생명의 흔적은 찾아볼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늘은 칙칙한 녹색으로 물들었고 이는 공동묘지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충분한 배경이었다.
거대한 비석과, 망치가 박힌 바위는 영겁의 기간 동안 사람의 손이 오가지 않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곳곳에 낀 이끼와 빛바랜 비석이 그 이유다. 전설이 잠들어 있다는 묏자리치고는 실로 척박한 풍경이었다.
“전설의 대장장이가 잠든 곳?”
나는 고개를 기우뚱 기울였다. 그에 비해, 레이나는 사색이 된 얼굴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왜 그래?”
“그게 아니라. 여기는 분명······ 아니, 일단 이곳을 빠져 나가자. 이곳은 금지구역이라고!”
그녀가 왜 이렇게 당황하는지 모르겠다. 금지구역이라 해도 그냥 빠져나가면 되는 것 아닌가?
《대장장이의 진노가 당신을 공격합니다. 판단불가 상태에 빠져듭니다.》
《대장장이 마스터 패시브 효과로 대장장이의 진노에 저항합니다.》
나는 알림창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대장장이의 진노라니? 방금 판단불가 상태에 빠질 뻔 했다는 거야?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모종의 위화감을 느꼈다.
‘판단불가 상태······? 쉽게 말해 눈에 뵈는 게 없다는 소리?’
내 불안감이 정확히 들어맞았다고 확신한 것은 레이나가 지팡이를 휘두른 뒤였다. 콰직! 지팡이가 오른팔에 직격하고 이질적인 소리와 함께 지팡이가 작살났다. 아프진 않은데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녀의 이상행동은 아마도 대장장이의 진노 때문이리라.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탓에 금지구역으로 지정된 건가? 어이, 정신 차려.”
사제직업은 거의 모든 디버프에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이 최고의 강점이다. 그런 그녀가 저항할 수 없는 디버프라면 대장장이의 진노는 대장장이 마스터 패시브를 가지고 있는 나 같은 녀석이나 이겨낼 수 있는 버프로 추정된다.
지금은 그녀 혼자 나를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서 위험한 상황은 아니겠지만······.
“후읍······!”
“어?”
그녀가 짧게 호흡을 가두더니 고밀도의 공기를 머금은 정권을 눈앞으로 날렸다. 권투사들이나 낼만한 날카롭고 살기어린 스트레이트였다. 그 위력은 정면의 길거리를 풍비박산 내는 걸로 모자라서 허름한 집 한 채를 통째로 붕괴시킬 정도였다.
사제라는 직업이, 그것도 레벨10대인 그녀가 낼만한 힘이 아니다. 이것도 대장장이의 진노라는 버프로 인해 생긴 것이라면 위험하다. 나도 그렇고, 그녀의 몸이 붕괴 될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새, 생각이 바뀌었다! 잠깐만 멈춰!”
“후우우······.”
‘틀렸다. 절대로 멈출 눈빛이 아니다. 바닥이라도 내려치다간 팔이 멀쩡하지 않을 텐데.’
호흡을 가다듬는 레이나의 눈에 영혼이 담겨있지 않았다. 나를 공격하는데 쥐똥만큼의 망설임도 갖지 않는다는 소리다. 평범한 대장장이라면 폭주한 그녀를 막을 길이 없다. 말 그대로 평범한 대장장이라면 말이다.
직업상 절대 이길 수 없는 조건, 레벨이며, 실력까지 뒤떨어질 때 그 차이를 메울 수 있는 것은······.
『아이템』
‘무조건적으로 템빨이다.’
그녀를 상대로 아이템까지 착용하는 건 과분한 행동이지만 당장엔 속전속결로 안전하게 일을 마무리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선 최고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아이템이 최고다.
“헤르메스의 장화.”
금빛 찬란한 배틀 슈즈가 신비로운 기운을 뿌리며 내 몸을 감쌌다. 그 순간, 내 모든 움직임은 선풍과도 같았다.
《이동속도가 대폭 향상됩니다.》
‘기절이 답이야.’
“하아압!”
레이나가 다시 한 번 당찬 기합을 터뜨리며 주먹을 휘둘렀다. 방금 전 일격에 상응하는 힘이 실려 있었다. 공격을 받아내고 카운터? 회피하고 급소를 노리는 것도 좋겠다. 그녀가 내 공격을 버텨낼 수 있을지 미지수이므로 선택은 후자였다.
“느려.”
안면으로 바위 같은 주먹이 날아왔다. 하지만 동작이 크고 느린 덕분에 모든 것은 계획대로 흘러갔다. 나는 레이나의 뒷덜미를 내리쳐 의식을 거두었다.
“마을 안에 이런 곳이 있다니. 위험천만하군.”
대장장이의 진노든 뭐든,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빛바랜 비석과 이상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황금빛 망치다. 레이나가 폭주하게 된 이유도 분명 이것들과 관계가 있으리라.
나는 레이나를 고쳐 업고 비석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크기가 커다란 만큼 어딘가 다른 글이 새겨져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비석 뒷면에 작은 글씨가 쓰여 있다.
“뭐라고 쓰여 있는 거야?”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한 글자 한 글자 유심히 읽어내렸다.
“바위에 박힌 망치를 뽑는 자. 전설의 대장장이가 될 것이다. 그 호칭을 감당할 수 있다면 망치를 뽑아라······?”
전설의 대장장이? 세상 어느 놈이 그걸 제 멋대로 정한단 말인가? 다짜고짜 밖으로 나가서 내가 전설의 대장장이오~ 소리치면 미친놈 취급만 받을 것이다.
“웃기는 녀석이군. 전설의 대장장이가 뭐냐?”
나는 비석에 새겨진 글씨를 비웃었다. 망치? 까짓것 냅다 뽑아주도록 하겠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 아닌가?
‘속는 셈 치고 되어주지. 전설의 대장장이.’
비석이 말하는 대로 뒷감당할 자신만 있다면 상관없잖아? 그렇다면 한번 뽑아보는 거다. 혹시 아는가? 내가 사용하는 망치보다 상위능력치일지.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 레이나를 뉘인 뒤에 양손에 침을 뱉었다.
“퉤. 어디 한번······.”
곧바로 바위에 박힌 망치의 손잡이를 단단히 부여잡는 순간,
파지직! 콰카카카카카칵!!!!!
“으윽······! 크허어억!!”
손끝으로부터 뿌리처럼 뻗어나가는 격통. 망치의 손잡이에서 불규칙한 스파크가 튀어 오르더니 수백 번의 정전기가 온몸을 찔러댔다. 나는 냉큼 손을 놓으며 뒤로 물러섰다. 프스슥. 희뿌연 연기가 손바닥에서 피어올랐다. 마치 망치가 나를 거부하는 느낌이다.
“감히 망치주제에 대장장이를 거부해?”
자존심 상하게 도구가 주인을 정한단 말이지?
우우웅!!!!
“어쭈? 이놈 봐라? 안 나와?!”
콰르릉! 꽈르르르!
나는 망치를 붙잡고 다시 한 번 근육을 쥐어짜냈다. 그러나 망치 또한 순순히 딸려나가지 않겠다는 마냥 먹구름을 만들어 천둥 번개를 사방으로 떨어뜨렸다.
귀가 터질 것 같은 폭음과 함께 바닥이 뒤집혔고 파편은 사방으로 흩날렸으며, 뜨거운 전류가 온몸에 전율했다. 피가 증발하는 극악의 고통이 엄습했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크하아아아!!!!!!”
눈이 뒤집히고 근육이 멋대로 경련을 일으켰다. 그러나 내 손은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의로 단단히 고정된 상태였다. 다시 한 번 드센 기합과 함께 근육이 부풀었다.
“뼈! 빠지게! 크아아아아아아아!!!!!!!!!!!!!!!!!!!!!!!!!!!!!!!!!”
하늘에서 거대한 낙뢰가 떨어져 지면을 강타했다. 귀를 찢는 폭음과 피를 끓어오르게 만드는 따끔한 정전기가 온몸을 찔러댔다. 나는 번개에 삼켜진 상황에서도 망치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도구가 주인을 정하는 게 영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덕분에 난생 처음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 살점이 갈라지고 핏물이 주륵주륵 나올 때까지 이를 악물고 고통을 버텼으니 당연한 결과다.
잠시 후 번개가 잦아들었다. 숨 막히는 흙먼지가 허공을 부유했다. 땅으로 방전되지 않은 잔류전기가 이따금씩 허공에서 지지직거렸다. 나는 엉망진창이 된 몸으로 HP를 확인했다. 남은 체력은 10%도 안 남았다. 하마터면 정말 저세상으로 갈 뻔했다.
“꽤나······ 새침데기잖아······ 너.”
피칠갑이 되었다고 해도 무관할 정도로 살가죽이 벗겨지고 온몸에 화상을 입었다. 머리카락은 벼락을 맞아서 삐죽삐죽 뻗은 채이다. 이렇게까지 애먹이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완전무장을 하고 망치를 뽑을 걸 그랬다. 괜히 객기를 부려서 이지경이 되다니.
나는 자연치유 능력을 믿고 마지막 한 가닥의 의식을 놓았다. 죽은 송장처럼 빳빳하게 굳어진 채로, 채 지혈도 안 된 몸으로 깊은 잠을 청했다.
“드르렁~ 쿨······.”
《묠니르가 당신에게 약간의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망치를 사용 할 때마다 묠니르가 튕길 것입니다.》
《금지구역의 봉인이 해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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