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2)
뿌연 안개길이 공간을 지배했다. 바드는 기분 나쁜 공간을 지나며 뒤를 돌아보았다. 섬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원래 장소로 돌아갈 수 없음을 직감했다.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할게.’
나는 발길을 재촉했다. 이곳에서 나가고자 마음먹지 않았던가? 여기까지 와서 망설일 이유가 없다.
안개 속을 헤매는 동안 오감이 뒤엉켰다. 정신차려보니 산골짜기 한가운데였고, 안개지역은 어디에도 없었다.
‘여긴 어디?’
너무 자연스럽게 길을 잃었다.
자연스럽게 머릿속도 새하얗게 탈색되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텅빈 하늘이 머리통을 지배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할지 갈피를 못 잡았다. 하지만 깊게 고민하지도 않았다. 여기가 어디든 발 가는대로 움직이면 뭐라도 나오지 않겠는가? 최소한 이곳은 내가 살던 비좁은 섬이 아니니까 말이다.
갈림길을 만났다. 조잡하게 만들어진 표지판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다. 왼쪽이 고블린 부락, 오른쪽이 코지부락.
고블린은 녹색 피부를 가진 난쟁이 몬스터라고 들었다. 무기라곤 몽둥이나 돌을 던지는 정도지만 성격이 더럽고 잔꾀를 많이 부린다고 한다. 싸움도 못하는 LV.3 최약체몬스터. 덕분에 초보모험가들의 사냥감으로 못 박혔다.
‘······라고 해변에 내려 온 초심자 가이드에 쓰여 있었지.’
몬스터라는 이유만으로 사냥당하는 인생이 참으로 불쌍하기 그지없다. 그런 주제에 숨어살기 싫어하는 성격이라니, 저 좀 죽여주십쇼~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게다가 이 표지판······.’
100퍼센트 고블린이 수작업 한 작품이다. 힘이 약하면 머리라도 좋아야지, 잔꾀가 많다는 사실도 의심쩍다.
‘마을로 내려가도 상관없지만 잠깐 들러볼까?’
비록 최약체 몬스터라고 하나, 집단으로 거주하는 만큼 가져갈 아이템도 많을 것이다.
나는 왼쪽 길을 따라 발을 움직였다. 나무가 많아지고 흙길도 좁아졌다. 퀴퀴한 냄새가 근거리에서 진하게 풍겨온다. 수풀을 헤쳐서 넓은 길로 빠져 나오자 숲에 둘러싸인 넓은 공터가 나타났다.
고블린들이 거주하는 작은 마을. 그곳에는 허술하게 지어진 1인용 천막과 금방이라도 사그라질 것 같은 화롯가가 군데군데 배치되어 있었다. 거리를 배회하는 고블린들은 어째선지 일광욕을 하는데 여념이 없다.
‘표지판을 세워뒀으면 싸울 준비라도 하고 있어야지 놀고먹는데 정신을 팔고 있다니······.’
“키케켁! 케켁!”
“······.”
언제부터 다가와 있었는지, 1미터 겨우 되어 보이는 난쟁이 고블린이 작은 몽둥이를 들고 내 발목을 붙잡았다. 나를 사로잡았다고 착각하는 꼴이 볼만했다.
“케켁! 케케켁!”
다른 고블린들도 좋아라 달라붙었다. 놀아달라고 아우성치는 어린이들 같았다.
‘신기한 놈들일세.’
고블린들은 나무막대기를 휘두르면서 내 다리를 때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서로의 머리를 때리기도 했고, 헛스윙하며 제자리에 넘어지기도 했다.
나는 곡괭이를 꺼내들었다.
“무기는 이런 식으로 휘두르는 거야.”
전방을 향해 곡괭이를 휘둘렀다. 가벼운 동작과는 다르게 거친 돌풍이 일어나 정면을 휩쓸었다. 고블린들은 깜짝 놀라 하나 둘, 자빠졌다.
“잘 따라 해봐. 이렇게 하는 거야.”
“끼엑?”
고블린들이 나를 따라서 무기를 휘둘렀다. 머리가 나쁜 것 치고는 배우는 속도가 상당하다. 어설픈 동장은 금방 고쳐졌고 몇몇 고블린들은 자세를 응용하여 수직 베기나 앉아 베기도 가능해졌다.
고블린들은 바드 밑에서 30분가량 짧은 수업을 받았다. 바드는 그들 가운데 덕망 높은 스승으로 자리잡아갔다. 바드는 곡괭이를 집어넣고 앞으로 나섰다.
“때려.”
“께엑?”
그들의 언어를 알아들을 순 없지만 고블린은 내 말을 알아들은 듯 깜짝 놀랐다.
“뼈 빠지게 때려봐.”
고블린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겠냐고 호소하는 마냥 울상을 지었다. 가슴을 부여 쥐고 엥엥! 우는 놈,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절규하는 놈, 펑펑 울면서 자리에 주저앉은 놈.
“어리숙한 것들! 그래가지곤 초보모험가에게 죽을 뿐이다!”
“끼이잉······.”
그들이 눈망울을 일렁이며 반항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상품을 걸기로 했다.
“제대로 때린 고블린에게는 이 곡괭이를 주지.”
고블린에게는 과분한 능력치지만 아무렴 어떤가? 곡괭이야 얼마든지 만들면 된다.
“케켁! 켁!!”
드디어 할 마음이 생겼는지 고블린 하나가 몽둥이를 치켜들었다. 자세는 완벽하다. 그대로 휘두르면······
“끼에에엑!”
퍽··················!
맑고 둔탁한 소리가 하부에서 울려 퍼졌다. 주변이 정적으로 물들고, 모든 오감이 정지되었다. 고블린들의 눈이 휘둥그레 바뀌었다. 눈앞이 새하얗다. 강렬한 통증이 신경을 타고 생생하게 퍼져나갔다.
“커헉!”
나는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맥없이 주저앉았다. 간만에 고통이라 할 만한 데미지를 입은 탓에 하늘이 노랗게 물들고, 눈이 자연스레 감겼다.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가죽천막 안에서 정신을 되찾았다. 머리위에 놓인 물수건과 나무를 깎아 만든 대야가 시야에 들어왔다. 고블린이 만든 것 치고는 믿기지 않는 솜씨다.
“저, 저기. 괜찮아?”
소심하고 조심스러운 목소리. 청아하고 부드러운 선율이 귀를 감쌌다. 목소리, 느낌, 언어. 몇 년 만이냐?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
“괜찮아? 급소를 맞았다고······.”
옆에서 고블린이 닭똥 같은 눈물을 떨구며 엉엉 울고 있다. 얼마나 울었으면 눈시울까지 붉었다.
“난 멀쩡해.”
“꾸웨에에에에엡~!!”
고블린이 괴성을 지르며 내 품안에 얼굴을 박았다. 애같이 응석부리는 게 봐줄만 했다.
그나저나 이 여자는 누구지? 그녀도 나처럼 고블린과 친해진 걸까? 겉보기엔 위험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미안. 애들이 많이 난폭하지?”
“······.”
“왜 말이 없어?”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할 수가 없었다. 사람이랑 대화하는 것이 어색하기도 하고, 감격스럽기도 하고, 이래저래 당황스러웠다. 내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할까? 끝으로 내놓은 대답은 이거였다.
“고마워.”
“레이나라고 불러. 그리고······.”
그녀가 아까부터 내 눈치를 보고 있다. 나를 경계하고 있는 눈이었다.
“고블린을 죽이러 온 거야?”
고블린을 죽이는 모험가가 많다보니 이방인을 경계하게 된 모양이다. 생판 남인 나를 치료해준 것은 그녀로서 힘겨운 선택이었으리라. 하지만 왜? 그녀는 인간인데 어째서 고블린을 보호하는 것인가?
“애들이 말해줬어. 아이들과 놀아주다가 실수로 맞았다고. 제정신이 아닌 이상에야 몬스터와 놀아줄 이유가 없잖아? 무슨 꿍꿍이야?”
“별다른 이유 없어. 그냥 놀았을 뿐이지. 이 녀석들을 죽이러 온 게 아니니까 손에든 지팡이 내려놔도 될 것 같은데.”
그녀는 반쯤 의심을 거두며 지팡이를 내려놓았다. 이번엔 바드가 질문했다.
“그러는 당신은 뭔데 몬스터랑 친하게 지내고 있던 거지?”
“그냥 우연히 만난 인연이야. 네가 알 필요 없어. 아무튼 애들을 죽이러 온 것이 아니라 다행이네. 그래서 다친 곳은 어때?”
그녀가 민망한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신경 쓸 정돈 아니야. 그나저나 애들이 배우는 속도가 빠르던데, 네가 무슨 짓 한 거냐?”
“아니. 고블린이 생각보다 똑똑한 것뿐이야.”
그녀는 울음을 그친 고블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앙숙이어야 할 인간과 몬스터. 종족의 구분을 떠나서 그들과 같이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녀의 주변이 다른 세계로 보이기 시작했다. 핑크빛 안개가 주변을 가득 채우고 100억 개의 아름다운 무지개가 구름 위를 가로지르는······ 그 모습을 어떻게 어떤 식으로 말해야할까?
“레이나라고 했던가?”
“그런데?”
방긋 웃던 그녀가 표정을 유지한 채로 얼굴을 돌렸다.
“나랑 같이 떠날래?”
“끼륵?”
“······엥?”
그녀가 어버버 거리며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다. 이내 쌀쌀맞은 어투로 답했다.
“너 바보야? 방금 처음 만난사이잖아? 서로 아는 것도 없는데 뭘 믿고 따라가?”
나는 짧고 간결하게 반박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네가 내 옆에 있으면 좋겠는데.”
한 단계 더 뻔뻔한 바드의 행동에 레이나는 목젖까지 치닫는 말문을 꿀꺽 삼켰다.
“바, 바람 좀 쐬고 올게!”
“그렇게 놀랄 일이냐?”
“게르르르륵······.”
고블린은 절레절레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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