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1)
위로는 구름오라기가 흘러가고. 아래로는 별빛 같은 파도가 리듬을 타며 모레사장을 건너온다. 지상낙원이 있다면 아마도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다.
“빌어먹을!”
대낮부터 경을 칠 노릇이다. 어디다 알이라도 잔뜩 까놨는지, 죽이고 죽여도 매일같이 쳐들어오지 않는가!
문어괴수 크라켄은 10미터가 넘는 거대한 촉수로 해변을 헤집었다. 하루 이틀 습격 받는 것도 아니고, 이젠 눈감고도 받아낼 수 있는 공격이었다.
꾸웅!
오로지 무게와 속도에 의존한 짓누르기 공격. 나는 허리춤의 만도를 뽑아들어 크라켄의 공격에 대응했다. 사방으로 충격파가 퍼져나갔고, 파도가 거칠게 울부짖었다. 한동안 우리들은 힘의 균형을 유지하며 촉수와 검을 맞대었다.
“빌어먹을 연체동물 자식이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오는 거냐······.”
누구의 침입도 허락하지 않으리라. 여긴 내 주거구역이란 말이다!
“육갑떨지 말고 바다로 돌아가!”
나는 파천도를 휘갈기며 크라켄의 촉수를 사선으로 절단해 버렸다. 크라켄은 모든 다리를 동원해 공격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녀석도 결판을 내려는 심산이리라.
엄청난 속도로 공기를 휘어잡는 무차별 난무가 이어졌다. 천지가 무너져 내리는 거대한 폭음에 바다가 뒤집어졌다. 나는 그 공격에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허나, 이 이상 정면으로 받아내면 섬이 수장될지도 모른다.
“뼈! 빠지게!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하늘을 가르는 순백색 섬광이 공간을 뒤덮었다. 전설의 괴수 크라켄의 울부짖음이 거친 바다를 잠재운다.
위로는 구름오라기가 흘러가고. 아래로는 별빛 같은 파도가 리듬을 타며 모레사장을 건너온다. 지상낙원이 있다면 아마도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다.
‘염병하네. 오늘도 다 무너졌구만.’
나는 처참하게 붕괴된 대장간과 오두막을 주시하며 외마디 신음을 내뱉었다. 물론 크라켄이 떨어트린 아이템은 빠지지 않고 챙겨주웠다.
***
‘광물이 다 떨어졌군.’
엊그제 크라켄이 대장간을 때려 부수고간 탓에 많은 자원을 바다로 보내버렸다. 덕분에 오늘 하루는 채굴에만 전념하게 생겼다. 가장 귀찮고 가장 허리 아픈 일을 말이다.
나는 야자나무 앞에 세워진 비석에 대고 말했다.
“다녀올게 할아버지.”
나는 앞치마처럼 둘러맨 가죽튜닉을 벗어던지고 휘황찬란한 백색 갑주를 착용했다. 다름 아니라 전설의 4대 광물 중 하나인 ‘파지천금’으로 제작한 세트 장비다. 존재 유무만으로 세계가 떠들썩할 것인데 강화등급이 +24강화 초월강화. 물론 자랑하려고 말하는 거다.
장비 이름은 윈드 마스터(Wind master). 돈 주고도 못사는 귀중한 장비인데 그런 거물이 +24초월 강화라니,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 녀석도 오래 썼네. 할아버지와 처음으로 합작한 장비였는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나는 아직까지 할아버지가 했던 말을 아직까지 잊지 못했다.
『네 스스로 생각하길, 스스로 성장할 여지가 없다면 새장 밖으로 나가라. 새로운 발판이 나타날 것이다.』
섬에서 빠져나가 세상과 접하는 그날이 오긴 올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가벼운 한숨이 터져 나왔다.
‘진주소라 기일이군. 해저동굴 차례였나.’
밀물이 들어오기 전에 1시간 안으로 해저동굴 탐사를 완료해야한다. 평소실력을 십분 발휘한다면 작은 동굴을 탐사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재료를 구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여유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아이템 욕심이 조금 과하다. 조금? 아니지. 스스로 생각해도 엄청나다.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별 수 없다. 이곳은 나 혼자밖에 없는 비좁은 섬이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고 되먹지도 않는 몬스터들만 득실거리는 이 섬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불필요한 물건은 없다. 즉, 뭐든지 많을수록 좋다는 것.
다다익선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예전부터 이 단어가 마음에 들었다.
‘곡괭이 챙기고.’
푸른색과 청록색 아우라가 묻어있는 곡괭이는 평범한 곡괭이와 수준이 다르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이 또한 +24강화까지 강화한 탓이다.
“파천도도 챙겼고.”
도신의 길이만 1미터 50이상의 거대한 만도. 파천도는 이름 그대로 하늘을 깨부술 듯한 압도적인 위엄을 풍기고 있었으며, 그 끝에는 내리쬐는 태양빛을 수십 갈래로 갈라버리는 예리함이 담겨있었다.
파지천금으로 만든 순백색 투구와 한 벌 갑옷, 파천도와 +24강화 곡괭이. 그야말로 절대강자라는 수준을 아득히 초월하는 스펙이 분명하다.
나는 절벽 아래로 내려가 해저동굴로 진입했다. 동굴은 발광초와 발광석이 내뿜는 사파이어 빛으로 가득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벽에 박힌 투명한 수정과 산호석이 눈에띄게 많아졌다. 딱 봐도 고급스런 재료가 틀림지만 나는 그것들에게 눈길한번 주지 않았다.
필요 없어서? 정답이다. 겉만 번지르르한 쓸모없는 보석 따윈 필요없다. 앞서 말했던 다다익선 정신? 그래 좋다. 하지만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은 해야 한다. 이왕이면 똥보다 된장이 많은 게 좋으니까.
내 시선이 멈춘 곳은 종유석이 모여든 동굴천장이다. 그 사이에서 반짝이는 구체들이 오밀조밀 엉켜있었다. 투명한 유리구슬이 박힌 소라껍데기가 내가 찾던 진주소라다.
‘큰놈들이군.’
나는 곡괭이를 꺼내들었다. 범상치 않은 아우라(Aura)가 공기를 변화시켰다.
짧은 기합소리와 함께 높이 도약, 이어서 풀스윙. 곡괭이가 소라게를 가격했고 시원 상쾌한 소리가 동굴가득 울려 퍼졌다.
콰작!
강철이상의 강도를 지닌 소라게의 등껍질이 허무하게 부서지는 순간이다. 곡괭이의 공격력을 버티지 못한 소라게는 바닥위로 떨어지고 다리를 파르르 떨며 절명했다.
“소라껍데기, 65실링, 소라속살, 불투명한 진주알······. 곡괭이에 레벨10단계 약탈이 붙어있는데 기껏 나온다는 아이템이 고작 이것뿐이라고?”
평소 진주소라 한 마리 잡고 드랍되는 진주알의 개수는 약 5개. 상식적으로 1개가 정상이지만 5개가 드랍되는 이유는 방금 말했다.
이름: 곡괭이+24
내구도: 50/50 → 150/150
레벨제한: 10
공격력: 10+180
속성: 철(鐵)
특수능력: 약탈, 채광속도 증가, 내구성 강화
약탈(레벨10)- 곡괭이로 몬스터를 잡거나 광물채석 시에 일정확률로 드랍되는 아이템을 추가로 제공 받습니다.
채광속도 증가(레벨9)- 채광속도가 200% 빨라집니다.
내구성 강화(레벨5)- 내구력이 증가합니다.
+180이라는 기하급수적인 공격력이 추가된 이유는 초월강화라는 극악의 확률을 뚫은 거대한 보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덕분에 무기로서도 쓸 만한 공격력이다.
‘슬슬 돌아갈까?’
나는 던전을 빠져나가는 내내 채광을 멈추지 않았다.
해왕석은 특정한 해안가 동굴에서만 나오는 희귀광석인데, 무게가 있지만 높은 강도를 자랑하는 광물이다. 1kg당 5만 실링이라는 가치를 가지고 이다······라고, 할아버지가 바깥 세상일을 알려준 기억이 있다.
‘이렇게 널리고 널린 광물인데도 쓸 만하단 말이지.’
***
나는 두툼하게 부푼 마법가방을 지켜보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곧 밀려올 밀물에 휘말리지 않기 위함이다. 허나 내 앞에 피할 수 없는 싸움이 닥쳐왔으니 그것은 곧 운명이나 다름없었다.
“이 느낌은······ 그놈이로군.”
동굴 전체가 흔들리는 거대한 진동이 바닥으로부터 전해졌다. 이윽고 흙바닥을 헤집으며 대형물체가 솟아올랐다. 거대한 집게발과 푸르딩딩한 껍질. 산처럼 솟아오른 봉우리는 강철급 강도를 지닌 등껍질이다. 어둠속에 감춰진 소라껍질 안쪽에선 주황색 안광이 번뜩이고 있었으며 그 물체 머리 위에는《소라 킹》이라는 보라색 문구와 LV.350이라는 숫자가 떠올랐다.
얼마 전 예고 없이 튀어나와서는 거대한 집개발로 오두막을 풍비박산 내버린 범인. 나는 그날을 아직까지 잊을 수 없다. 껍질하나 남기지 않고 도륙내주겠다는 맹세를 비로소 갚을 수 있게 되었다.
“쿠오오오!”
레벨350에 육박하는 소라고둥의 울부짖음. 그 소리는 감히 진주소라 따위에 비교할 것이 못된다. 하기야 퍼플네임드인 중간보스 중에서도 최상급 마물이니 당연하다. 레벨로 따지면 상위 마족장군급이니 무지막지한 상대라고 볼 수 있겠다.
“빌어쳐먹을 권패류. 오두막이 날아가서 얼마나 개고생 했는지 알아? 속살을 뽑아 해장탕에 처넣을 놈!”
그날 일을 떠올릴 때마다 뒷골이 당겨서 목 언저리가 마비되는 것 같다. 광분에 휩싸인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허리춤의 파천도를 뽑아들었다.
키이이이이잉──────!
소리만으로 주변의 공기를 갈라버리는 발검에 소라 킹이 뒷걸음질 치며 주춤했다.
파천도는 두꺼운 도신에 비해 천보다 얇고 살얼음같이 날카로운 도첨을 가지고 있다. 보통의 만도보다 절단력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으랴아아아아!”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만도를 휘둘렀다. 거대한 흉기를 거둬들이기까지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수년간 거르지 않고 망치를 쥐어온 근력이 뒤받쳐준 덕분에 이 모든 동작이 가능했다.
푸화악!
평범한 수직 베기. 한줄기 섬광이 소라 킹의 몸체를 두 쪽냈다. 소라 킹은 단말마의 비명도 질러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로서 오두막의 원수는 아이템의 일부가 된 것이다.
레벨350 중간보스답게 좋은 아이템을 떨어트렸을 것이라 기대했으나, 300만 실링과 에픽등급 소라게 속살이 기대를 처참하게 짓밟았다. 오두막을 수리한 수고에 절반도 안 되는 보상이다.
‘그냥 찬거리 하나 생겼다고 생각해야겠군.’
나는 한숨을 안으며 동굴 밖으로 빠져나왔다. 곧바로 밀물이 쓸려와 해저동굴을 집어삼켰다. 조금만 늦었으면 파도에 휩쓸려 동굴 안쪽까지 밀려갔으리라.
나는 암벽을 기어 올라가 오두막으로 돌아갔다. 이제부터가 가장 즐거운 시간이다. 마법배낭을 열고 해저동굴에서 수집한 전리품을 와르르 쏟아내자 수천 개의 진주알과 선홍색 조갯살이 탁자 위를 가득 채웠다. 무게경감과 수용량 증가 마법이 부여된 마법가방 덕분에 이 많은 것들을 가져올 수 있었다.
물론 심심풀이 땅콩으로 만들어본 작품이지만 되게 유용한 가방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수입은 짭짤하군”
풍족한 자원과 물품, 뭐하나 꿇릴 것 없는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 나에게도 바라는 것이 있으니 다름 아닌 말동무다. 전에는 할아버지와 말을 섞는 것만으로 아쉬울 게 없었는데 지금은 누구보다 공허하다. 이래서 곁에 있을 땐 몰라도 없을 땐 뼈저리게 느낀다는 말이 생긴 것 같다.
외로움을 이겨내는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 섬에서 빠져나가면 해결된다. 다만 할아버지와 집과 대장간을 놔두고 떠나는 것이 신경쓰일 뿐이다.
‘괜한 망상 따윈 집어치우자.’
우물 안 개구리든 뭐든, 이만한 풍요를 누리며 사는 걸로 만족하면 되지 않은가?
쏴아아───
“오랜만이군.”
바깥세계의 물건이 떠내려 오는 일은 극히 드물지만 지금처럼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파도에 밀려온 유리병 안에는 붉은색 노끈으로 봉해진 양피지 한 장이 돌돌 말려있었다. 나는 단단히 봉해진 병마개를 따고 양피지를 펼쳐 글을 읽어 내렸다.
『최고의 대장장이를 뽑는다.
전 대륙에 통보한다. 세계의 대장장이들은 귀담아 들어라!
채택된 대장장이는 왕궁 직속 대장장이로 임명.
자격조건: 없음. 어중이떠중이 그냥 아무나 참여가능.
참여방법: 좋은 무기를 만들어 올 것.
기간: 금화년 3177해 다섯 번째 별 1일까지.』
‘어디보자, 오늘이 금화년 3176해 열 번째 별. 1일이니까 정확하게 7개월 남았군.’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잠잠했던 머릿속이 지글지글 타오른다. 세계 최고의 대장장이를 뽑겠다는 소식을 접해서가 아니라 세상으로 나갈 구실이 생겼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괜찮을까?”
나는 오두막 밖에 세워진 비석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되돌아오는 답변은 없었다.
알고 있다. 어디까지나 스스로 타협하고 합리화하는 거. 하지만 그래도······.
“다녀올게. 오래 걸릴지도 몰라.”
나는 마법가방(대형) 3개를 싸들었다. 몇 년간 동고동락하며 지낸 망치와 모루, 그리고 각종 장비와 도구를 담았고 그동안 수집했던 광석과 제작 장비, 그리고 실링도 넣었다.
이만하면 어디 가서도 꿇리지 않을 호화로운 대장간 하나를 거뜬히 세울 수 있으리라.
“언젠가 다시 돌아올 테니까······.”
나는 이마에 주홍색 고글을 착용하고 흰색 민소매 티셔츠에 체인 목걸이를 착용한 뒤, 허리에 낡은 대장간 치마를 묶었다.
“건강하게 잘 있어. 할아버지.”
떠나는 그의 뒷모습은 그야말로 비장했다. 넓은 등판, 조각 같은 근육, 온몸으로 뿜어내는 우직한 각오.
“준비 완료.”
남자의 허리춤에는 몇 년 동안 사용해서 닳아 없어진 대장간 망치가 매달려있다. 손잡이 하단에는 그의 이름이 뚜렷하게 새겨져있었다.
[Bard]
오랜 노가다 끝에 그의 무명 일대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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