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3)
달빛마저 삼켜버린 칠흑의 밤. 잿더미로 타들어가는 마을이 어둠을 밝히고 있다. 살육에 물든 몬스터들은 인간의 살을 찢고, 피를 마시며 진한 여운에 잠겼다.
“엄마······ 아빠······!”
소녀는 쉰 소리로 부모를 불렀지만 두 사람은 주변에 널브러진 주검과 다를 게 없었다. 목이 뜯기고 피를 흘리며 미동조차 없었다.
피비린내가 일대를 감쌌다. 바닥에 물든 피의 웅덩이는 공포 그 자체였다. 어떻게 그 장소에서 살아남았는지, 어떻게 도망칠 수 있었는지, 어떤 길로 빠져나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지옥 그 자체였던 악몽의 날.
‘나는 몬스터가 두렵다.’
***
“께륵?”
바퀴벌레 한 마리를 억샌 이빨로 까먹고 있는 고블린이 레이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괜한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 가짜 미소를 지었다.
레이나는 하늘색과 순백색이 뒤섞인 사제 옷을 입었다. 옷이 수수한 탓에 남색 당고머리가 잘 어울리는 여성이다.
“그 사람은 어떻게 됐어?”
“께륵께륵! 케켁!”
바퀴벌레를 먹어치운 고블린이 가죽 끈으로 고정한 곡괭이를 자랑하듯 내보였다. 레이나는 그 괴상망측한 언어를 알아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곡괭이를 줬어? 아직도 천막 안에 있고?”
레이나는 돌 위에 쪼그려 앉아, 무릎을 가슴께 쪽으로 끌어당겼다.
“께르륵? 께륵께륵?”
“그 남자와 함께 가고 싶냐고?”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난데없이 찾아온 남자가 같이 가자는데 당연히 거절해야지. 애들을 위해서라도 여기 남아야지. 그런데 왜······, 왜 마음이 자꾸 끌리는 걸까?
“너희를 두고 내가 어딜 가~”
레이나가 가볍게 웃어 넘겼지만 고블린은 이미 눈치 챘다. 그녀가 자신들을 잘 아는 만큼, 그들도 그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블린은 그녀를 떠나보낼 시간이 다가왔음을 직감했다.
‘끼르륵 께륵······.(우리 때문에 떠나지 못하는 거야······.)’
풀죽은 고블린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레이나가 맘 편히 떠날 수 있을까? 고블린의 결론이 정점에 달했다.
‘끼르륵, 케르륵 끼륵 케륵!(우리가 위험해질까봐 떠나지 못하는 거야!)’
그렇다면 강해져야 한다. 우리 고블린이 그렇게 쉽게 당할 몬스터가 아니라는 것을 그녀에게 입증해야 한다! 결론을 고블린은 천막으로 향했다. 거기서 짐을 싸들고 떠나려는 바드의 모습을 발견했다. 이대로 바드가 떠나면 레이나는 행복해 질 수 없다. 붙잡든가, 아니면 레이나를 데리고 가게 만들어야 한다.
“끼륵! 케켁 케케케켁!”
“인사하는 거냐?”
바드는 팔을 허우적거리는 고블린을 보며 마중인사를 하러 나온 것이라 오해했다.
“고맙다. 때린 것은 용서 할 테니까 이만 돌아가도 돼. 레이나에게 안부 전해줘. 내가 준 곡괭이로 잘 지켜줘야 한다?”
“끼르륵! 끼륵끼륵!”
꼬마 고블린은 그게 아니라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러나 고블린의 진심은 바드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결국 수풀너머로 사라져버린 바드의 뒷모습을 멀뚱하게 지켜봐야만 했다.
“끄르르······.”
고블린은 터덜터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레이나가 여전히 바위위에 쪼그려 앉아있다. 그 모습을 본 고블린은 괜스레 울컥했다.
“그렇게 후회할 거면, 그렇게 아쉬워할 거면 당장 쫓아가!”라며,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보잘 것 없는 고블린인걸?
지금까지 레이나에게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았던가? 병들어 죽어가는 동료들을 살려주고, 배고픔에 굶주리면 마을로 내려가 먹을 것도 가져왔다. 사나운 맹수가 달려들면 마법으로 지켜줬으며, 그 과정에서 다쳐도 아픈 내색조차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그녀가 걱정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레이나가 없었다면 우리들은 진작에 사냥감이 되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녀가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서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런 레이나의 진실한 모습을 알기에······.
‘끼르륵 케켁!(우리는 그녀의 행복을 지켜줘야 해!)’
고블린은 비실비실한 주먹을 움켜쥐고 다짐했다. 그는 다른 고블린들을 모아서 은밀하게 상의했다. “끼륵께륵” 쑥덕거리던 그들이 이윽고 “끼에에엑~!” 하는 함성과 함께 팔을 올려 소리쳤다.
단합완료. 남은 건 그녀를 설득하는 것뿐이다. 그들은 레이나 앞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응? 벌써 배고픈 거야?”
대표로 나선 고블린은 바드에게 곡괭이를 받은 꼬마 고블린이었다.
“켁! 케켁!”
“뭐? 그 남자를 따라가라고?”
레이나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설마 이들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나 없이 어떻게 살려고 그런 소릴 하는 거야 얘들아?”
마을을 약탈할 수도, 그렇다고 새내기 모험가조차 공격할 수도 없는 그들이 아닌가? 살려면 작은 동물을 사냥하는 수밖에 없다. 그마저도 내가 모험가들을 따돌리고 먹을 것을 보급했기 때문에 겨우 사냥에 성공하는 것 아니던가!
“캬르릉!!!!”
“너, 너희 왜 그래? 내가 싫어진 거야?”
고블린이 사나운 이빨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들이 레이나의 상대가 될 리 만무했다. 그저 레이나가 바드를 따라가 행복하게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할 뿐이다.
“안 돼. 너희들을 버릴 수 없어. 무력으로 나를 몰아세워봤자 소용없다는 거 알잖아?”
그녀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쯤 되면 바드도 멀리 가버렸을 것이다. 그 사실을 짐작한 고블린들은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파스스.
인기척이다. 한명이 아닌 여럿 되는 숫자. 모험가? 짐승? 어느 쪽이든 고블린들에게 위협이 되는 것은 확실하다. 레이나는 절박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얘들아 도망쳐!”
“끼륵? ············케엑!!!!”
난데없이 날아온 가느다란 물체가 고블린의 관자놀이를 관통했다. 녹색 몸체는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1미터가량을 날아가 쓰러지더니 미동조차 없게 되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숲에서 강철화살들이 날아와 고블린들을 마구잡이로 꿰뚫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과거의 기억이 플레시백 되어, 깊은 절망을 느끼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키륵! 케르륵!!”
고블린은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공격력 1밖에 되지 않는 가느다란 몽둥이를 들어 올리며 사납게 울부짖었다. 잠시 후 수풀 틈에서 두 개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레이나의 예상대로 초보모험가였다.
“와아~ 고블린 부락은 처음 봤어! 아버지한테 떼쓰며 모험가 되길 잘했다니까!”
“그렇게 여유부리면 안 돼. 모험가는 언제 어디서나 죽음과 대면해야한다고 그랬잖아. 약한 고블린이라 하더라도 방심해선 안 된다고.”
칼과 단도로 무장을 한 모습을 보아하니 직업은 검사와 도적으로 추정된다. 수풀에서 화살이 날아왔으니까 동료 중에 궁수가 한명 더 있으리라.
“어? 저기 사람 아니야?”
“그러게? 왜 저기 있는 거지? 설마 고블린에게 붙잡힌 거야?”
오른쪽의 남자가 나를 바라보았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역겨운 시선이내 몸을 훑어냈다. 붉은 머리의 검사는 욕망 가득한 목소리로 추잡한 말을 내뱉는다.
“저 여자 반반한데? 고블린에게 붙잡힌 것 같으니까. 주변 정리하고 한탕 뛰어야겠다.”
“그만 둬. 이미 고블린의 노리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새끼가 입만 열면 더러운 말만 꺼내요. 닥치고 백업이나 잘 해줘. 고블린치고는 쓸데없이 분위기가 살벌하네.”
싸울 생각이다. 이곳을 완전히 쓸어버릴 눈빛이다. 내가 이 아이들을 지킬 수 있을까? 한낱 사제인 내가? 레벨은 그들과 비슷할지 몰라도 전투능력이 없는 내가 그들을 대적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반항하다간 오히려 살해당할지도 모른다.
레이나의 고민은 오래 가지 못했다. 바람을 가르는 흉기가 또 다시 빗발쳤기 때문이다. 하나 둘, 고블린들이 죽어갔다. 그들은 시뻘건 선혈을 흩뿌리며 비명을 질렀다. 몬스터라 한들 죽음을 눈앞에 마주하면 두려운 것이 당연했다.
공포를 느낀 고블린들이 도망치기 시작했으나, 이미 절반이상의 숫자가 절명한 뒤였다.
“크에엑!!”
“캬아아악!!”
고블린은 추풍낙엽 하듯이 픽픽 쓰러져갔다. 쉼 없이 들려오는 날카로운 비명소리. 그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그날과 같다. 몬스터들에게 습격당해서 마을 주민들이 몰살당했던 그날과 똑같다.
“하하하! 이 녀석들 너무 별 거 아니잖아?”
무자비한 학살에 희열을 품은 두 남자는 광기에 미친 악마처럼 보였다. 무기 끝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액체. 그저 살의로 가득 찬 흉악한 몬스터들과 다를 게 뭐란 말인가?
‘나는······ 이번에도 도망쳐야 하나?’
죽고 싶지 않아. 살고 싶어. 그건······ 고블린도 마찬가지야! 지켜줘야 해. 더 이상 도망만 다닐 수 없어!
“베리어(Barrier)!”
검사의 검이 고블린의 머리를 가르기 직전. 투명한 벽이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카앙!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 충격으로 붉은 머리의 검사가 뒷걸음질 쳤다.
“이년이 감히 방해를!!”
거칠게 달려드는 검사의 모습이 기억 속에 마주한 몬스터와 대비되었다. 몬스터도, 동물도, 살아있는 생명체라면 뭐든 죽이는 눈이 똑같았다.
“꿰에에에엑!!”
날카로운 검격이 레이나를 향하기 직전. 다른 고블린이 둘 사이로 뛰어들었다. 날카로운 금속이 고블린의 어깨를 가르고 옆구리로 빠져나오자, 그 틈으로 피와 내장이 쏟아졌다.
“안 돼!!!”
레이나가 오열하듯 소리쳤다. 싸늘하게 식어가는 고블린은 간헐적으로 몸을 떨었다.
‘살릴 수 있어. 치유마법. 치유마법을! 그전에 일단 지혈부터? 아아······, 으아아아!!’
레이나는 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 눈앞에서 도륙된 고블린은 피거품을 물며 죽어갔다. 호흡은 당장이라도 멎을 것처럼 껄떡대더니 안색마저 급속도로 창백해졌다.
“미안해. 미안해······.”
“어차피 한 놈 더 죽은 것뿐이야. 너무 슬퍼할 필요 없잖아? 미녀 아가씨.”
“어째서 이런 짓을!”
“어째서라니? 당연한 거 아니야? 그들은 몬스터고, 우리의 사냥감이잖아. 몬스터를 죽이는 것은 당연한 거고. 우리는 더욱 강해진다. 세상의 이치 아닐까?”
“그들도 감정이 있고, 교감하며 살아가. 인간이 다른 이들의 목숨을 쥐락펴락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검사는 레이나의 말이 듣기 싫어졌는지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벼 파며 인상을 구겼다. 한손직검을 높이 치켜든 그의 자세에는 단칼에 그녀를 죽이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잘 가 예쁜이.”
검사가 레이나의 머리를 내리찍으려는 찰나의 순간. 바람을 가르는 묵직한 소리가 붉은 머리 검사의 뒤에서 터져 나왔다.
퍼억.
뜨거운 고통이 전해지는 동시에 검사의 얼굴에 공포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레이나는 그의 눈에서 여러 가지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공포, 절망, 아픔, 고통
뒤늦게 경각심을 알아차린 검사가 고개를 돌려 뒤를 확인했다. 크고, 무겁고, 뾰족한. 딱 봐도 엄청 낡은 곡괭이가 갑옷을 뚫고 심장을 관통했다. 격렬하게 불타오르는 청록색 불꽃이 살을 비집고 들어온 것이다.
“이게 왜······? 어디서 갑자기?”
검사는 입가에 한줄기를 선혈을 쏟아냈다. 녹색의 더러운 피부, 구부러진 허리와 누런 이빨, 빨간색으로 물든 적안까지. 정말 불쾌하기 짝이 없는 얼굴이 등에 매달려 있었다.
“한낱, 한낱 고블린 따위가아아아!!!!”
붉은 머리의 검사는 고블린에게 죽임을 당하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죽음을 눈앞에 둔 검사의 가슴에는 공포와 분노라는 대조되는 감정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앙!”
분노를 제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고블린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동족을 무참히 살해하고, 가족과 다름없는 레이나마저 죽이려는 그들을 감히 용서할 수 없던 것이다.
“······안 돼. 말도 안 돼······! 내가······, 고블린 따위에게 일격에?”
검사가 팔을 허우적거리며 동공을 떨었다. HP가 Zero(사망)지점까지 확실한 속도로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억울해. 이,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아! 나에겐 아직 수많은 모험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어.’
검사는 어째서 자신이 고블린 따위에게 죽어야 하는지, 고블린이 어떻게 자신을 죽일 수 있었는지 죽는 순간까지 고민했다.
억울함을 호소할 틈도 없이 눈물로 차오른 검사의 눈동자가 회색빛으로 바래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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