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Answer-323화 (323/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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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좋아?"

"그럼. 이게 우승컵하고는 또 다른 감동이 있네. 아, 물론 리그 우승컵이 더 좋아."

데이빗은 자신의 진열장에 전시된 금메달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에리카는 못 말리겠다는듯 웃으며 그런 남자 친구의 모습을 바라 보았다.

"신기해. 내가 진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고 생각하니까."

"2주 동안 올림픽에서 뛰어 놓고 왜 새삼스럽게 그래?"

메달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남자 친구에게 살짝 핀잔을 준다.

"그거야 그런데...사실 올림픽 무대라고 해도 별로 다른 건 없었거든. 그냥 축구였어. 국가 대표로 뽑히는 거하고 다른 느낌이 거의 없어서 말이야."

뛸때는 몰랐다며 멋적게 웃음짓는 데이빗, 에리카는 그럴 수도 있겠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메달 수여식할 때 느낌이 온거야?"

"그렇지. 그것 말고는 진짜 똑같았어."

뿌듯한 표정으로 메달을 바라보던 데이빗, 이내 결승전 때의 기억을 회상한다.

"알겠나. 은메달은 결국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다. 이 세계에서 2등은 명예로운 패자가 되지 못한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는 오직 우승밖에 없다."

경기를 앞두고 피어스 감독은 선수들의 의욕을 끌어 올리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여기까지 온 이상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들의 동기 부여였다. 누가 더 금메달을 간절히 원하는가, 우승을 바라는 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아무리 희대의 크랙, 데이빗 장이 있다고는 하지만 만에 하나, 그가 고전할 가능성도 있었으니 말이다.

"나중에 여러분들이 가족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을 오늘 만들었으면 좋겠다. 사상 첫 단일 팀의 멤버로 뽑혔고 100년 만에 조국에 금메달을 안긴 주인공으로 기억되길 원한다. 여러분들은 어떤가?"

"저는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고 싶네요."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스터리지가 대답했다.

"결혼부터 하라고 다니엘."

"좋은 여자 있으면 좀 소개시켜 주시죠?"

장난스러운 대화,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지지 않게 푸는 역할을 한다. 진지하면서도 유머가 있는 분위기, 이상적인 상태라며 만족스러워하는 피어스 감독.

"슬슬 가죠. 하던 대로만 하면 됩니다. 패스만 연결해 주면 어떻게든 만들어 볼게요."

예선과 8강, 4강을 거치며 절대적인 에이스로 신뢰받고 있는 데이빗의 한 마디는 무게감이 있었다. 그가 해내겠다면 의심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그 정도의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선수였으니까.

"그래. 가자. 다들 오늘 목에 삐까뻔쩍한 거 하나씩 거는 거야."

라커룸에서부터 느낌이 괜찮았다. 사실상 이번 대회 최강의 전력을 구축했다던 브라질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만큼 선수단 전체의 사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것. 데이빗은 이런 분위기라면 뒤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느꼈다. 사실 뒤쪽에서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데이빗이 딱히 도움을 주진 못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1~2골만 넣어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와 그 이상의 골이 필요한 경기는 부담 자체가 다르기에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예감대로 경기는 결승전이라는 큰 무대에 어울리지 않게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이는 멕시코라는 팀의 특성과도 맞물린 결과였다. 멕시코는 결승전에 오르긴 했으나 수비력에 강점을 가진 팀은 아니었다. 좌 우 풀백으로 나서는 히메네즈와 차베스가 모두 오버래핑에 강점을 보이는 공격형 풀백이었다. 그만큼 공격 시 엄청난 파괴력을 자랑하긴 했으나 수비에 있어서는 불안한 면이 많았다. 특히 사이드 쪽에서 중앙 쪽으로 파고드는 패턴을 선호하는 데이빗 장을 상대로 수비가 불안한 풀백이 피치 위에 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큰 압박이었다.

전문가들 역시 멕시코의 그런 부분을 약점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멕시코는 굳이 주전 멤버를 바꾸지 않았다. 그들은 다른 팀들이 수비를 굳혔음에도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어차피 막지 못할 바에야 내줄 건 내주고 자신들도 공격에 치중하는, 맞불작전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처참한 결과로 이어졌다.

"솔직히 멕시코 전은 뭐랄까...그냥 내가 프로 데뷔한 이후에 가장 편했던 경기 중 하나였던 것 같아."

에리카에게 어깨를 으쓱하며 이야기한다. 이미 몇 번 들은 이야기였지만 에리카는 웃으며 귀를 기울여 준다.

"공을 잡았을 때 주변으로부터 느껴지는 압박감이 전혀 없었거든. 풀백은 공격 나가서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고...한 20~30m는 아무런 견제 없이 달릴 수 있었지?"

"그랬을거야. 내가 봐도 그랬던 것 같아."

"응, 좀 허탈하기도 하고...아무튼 골을 쉽게 넣어서 좋았지. 첫 번째 골을 넣었을 때의 슈팅은 정말 마음에 들었어."

개인적으로 뿌듯한 골이었다며 자랑하듯 이야기하는 데이빗, 아직도 그 발의 촉감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엄청난 중거리 슛이 터져 나왔습니다! 와우! 발등에 정말 제대로 걸렸어요!]

[정말 공의 중심을 제대로 포착한 슈팅이었습니다! 지금 보시면 알 수 있겠습니다만, 사실 키퍼가 코스를 잡았거든요. 손 쓸수 없는 구석으로 향한 슈팅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급격히 흔들리면서 떨어집니다! 이런 슈팅을 막으라고 하는 것은 골키퍼에게 너무나 가혹한 일이죠!]

[수비가 불안한 멕시코 수비진을 이끌고 좋은 경기를 만들어 온 코로나 골키퍼도 어찌할 수 없는 어메이징한 골이 나왔습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선수의 무회전 킥에 버금가는 멋진 슈팅! 전반 6분만에 선제 득점에 성공하는 영국! 그리고 데이빗 장입니다!]

[멕시코가 공격에 중점을 둔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쉽게 실점을 허용해서는 곤란합니다! 패스 한 번, 공격 한 번에 골을 허용해 버려서야 도대체 몇 골이나 내줘야 할 지 견적이 나오지 않거든요.]

선제골을 허용한 이후에도 멕시코는 전술적인 변화를 꾀하지 않았다. 전반 초반에 불과했고 그들이 자랑하는 공격진 역시 건재했다. 도스 산토스를 중심으로 한 그들의 공격진은 대회 참가국 중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이었고 4강전에서 이집트를 상대로 4골을 퍼붓는 위용을 과시한 바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대가 나빴다. 브라질을 상대로 해서도 크게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준 영국 수비진은 그보다 떨어지는 멕시코의 공격에 크게 휘둘리지 않았다. 풀백들이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한다고 해도 애초에 영국 또한 최전방 공격수들을 제외하고는 크게 공격에 욕심을 내지 않는 편이었기에 수적 열세에 처할 위험도 낮았다. 베컴과 조 앨런, 라이언 긱스의 수준 높은 롱 패스가 이번 영국 대표팀의 주된 공격 루트였기 때문이다.

거기에 홈 그라운드의 이점까지 겹치며 판정에 있어서도 손해를 볼 수 밖에 없었기에 더더욱 공격 작업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어지간한 거친 태클은 정당한 플레이로 넘어가 버렸으니까.

그리고 전반 21분, 다시 한 번 영국의 속공 찬스가 만들어졌다. 이번에는 다니엘 스터리지 쪽이었다. 라이언 긱스의 품격 높은 스루 패스가 멕시코의 중원을 갈랐고 단숨에 최전방의 스터리지에게 연결된 것이다. 소속 팀에서 탐욕이 심한 플레이로 지탄받곤 하는 스터리지는 이번에 큰 욕심을 내지 않고 패스를 선택했다. 스터리지의 뒤를 따르며 쇄도하던 데이빗에게 짤게 내어주는 패스, 그리고 순간적으로 데이빗의 진행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며 수비수의 시선을 분산시켜 준다.

"사실 이번 대회에서 다니엘은 조금 아쉬웠거든."

"그랬어? 그 얘긴 처음 듣는데?"

"개인 기량은 출중해. 루이스하고 비교해도 크게 꿀리지 않는 수준이니까. 근데 골에 대한 욕심이 좀 지나치고...팀 플레이가 부족하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두 번째 골에서는 괜찮지 않았어?"

"그랬지. 순간적으로 루이스하고 호흡을 맞추는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까. 고마웠지. 그리고 아주 재미있었어."

'땡큐 다니엘!'

스터리지의 헌신적인 움직임 덕분에 전방의 공간이 뻥 뚫려 있었다. 이쯤되면 사실상 골이나 다름 없는 수준, 데이빗은 기분 좋게 달리며 골대와의 거리를 좁혔다. 절망적인 표정으로 달려 나오는 코로나 골키퍼, 이미 그도 잠시 후의 결과를 예감한 듯 했다. 데이빗은 침착하고 확실하게 슈팅을 조준했다. 가볍게 왼쪽 하단을 향해 공을 때려내는 데이빗, 골키퍼의 손을 살짝 스치며 골망을 그대로 갈랐다.

20여 분만에 두 골을 기록한 데이빗이 해트트릭을 완성하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전반 27분, 오랜만에 데이빗 장의 돌파를 저지해 낸 멕시코, 하지만 코너킥을 허용해야 했다. 그리고 영국에는 예술적인 코너키커가 준비되어 있었다. 베컴은 자신의 명성대로 클래스 있는 킥을 보여 주었다. 데이빗은 베컴과 함께 뛰면서 크로스를 받아 먹는 재미를 느꼈다. 자신의 부족한 제공권을 보완해 주는 절묘한 회전이 가미된 킥, 수비수의 머리를 피해 자신에게 떨어지는 공은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가볍게 머리로 방향을 바꾸며 해트트릭을 완성했다.

전반에만 세 골을 몰아 넣은 데이빗의 활약에 힘입어 영국은 멕시코를 3 대 0으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추가 득점이 더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이미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한 피어스 감독이 선수 보호 차원에서 데이빗을 교체시켰기 때문이었다. 벤치에는 올림픽 무대를 아직 한 번도 밟아 보지 못한 선수도 있었기에 그들을 배려하기 위함도 있었다. 그가 빠진 이후 멕시코는 전열을 정비하여 총 공격에 나섰으나 촘촘히 들어선 영국의 수비 라인을 부수기에는 2% 부족한 감이 있었다. 오히려 간간히 터져 나오는 영국의 날카로운 역습에 진땀을 빼야했다. 그리고 후반전이 종료되고 데이빗은 자신이 목표했던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올림픽을 마무리하고 집에서 뿌듯하게 자신이 이루어 낸 업적을 즐길 수 있었다.

"전반만 뛰고 교체되서 아쉽진 않았어?"

"응? 아아, 전혀. 해트트릭도 했고...그때 우리 팀이라면 역전 당할 거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거든. 그리고 시즌 개막이 코 앞이라서 체력 안배를 해주겠다는데 나쁠 건 없었지."

"하긴, 그것도 그렇겠다. 달글리시 감독님이 좋아 하셨겠는걸."

"그렇지 않아도 금메달 획득 축하한다고 전화를 한 번 주셨거든. 그때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

"인기 많아서 좋겠어?"

씩 웃음 살짝 옆구리를 찔러 오는 에리카, 데이빗은 간지럽다는듯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인기가 좋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기분은 좋지. 감독님이 날 신경써 준다는 건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아무튼 정말 수고했어. 다치지 않고 끝나서 정말 다행이야."

"누가 들으면 내가 맨날 다치는 것 같잖아. 나 의외로 몸이 튼튼하다고. 우리 팀에서 내가 데뷔한 이후에 나보다 적게 다친 사람이 없..."

자랑스레 떠벌리던 데이빗은 에리카의 눈매가 가늘어지는 것을 보고 꼬리를 내린다.

"다치긴 다쳤잖아. 2011년 가을 쯤에는 몇 달동안 병원 신세를 졌고, 훈련하다가 부딪혀서 다치고...경기 중에도..."

부상 이력을 줄줄이 늘어 놓는 에리카, 데이빗은 말 실수를 했다며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영락없이 꼬리를 내린 강아지의 모습이라 에리카는 픽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튼, 남들보다 자주 다치지 않는다고 해서 안심하면 안돼! 나도 축구 선수가 부상을 아예 안 당할 수는 없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야. 알겠지?"

"알았어. 조심할게."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데이빗의 모습에 착하다며 머리를 토닥이는 에리카, 데이빗은 애 취급하지 말라며 툴툴거린다. 에리카는 살풋 웃음을 터뜨리고는 토닥이던 손길을 거두고 대신 그의 머리를 살짝 매만지기 시작했다. 조금은 짧게 자른 머리를 부드럽게 만지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있잖아..."

"응?"

조금은 어렵게 말을 꺼내는 모습.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데이빗의 눈치를 살짝 보며 말했다.

"그...한국하고 경기를 했잖아..."

중요한 내용은 생략된 불완전한 문장, 하지만 데이빗은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을 충분히 알아 들을 수 있었다.

"괜찮아. 사실 처음에는 분명 나도 조금은 의식했거든. 근데 이제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개운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데이빗. 산뜻한 그 모습에 에리카의 표정이 밝아진다.

"뭐 철이 들고 나서부터는 내가 중국계인지, 아니면 일본계인지...어쨌든 아시아계 일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게 한국이라는 나라라고 해서 특별한 일은 아니야. 이제 그 나라에는 별 감정 없어. 난 지금 생활에 정말 만족하고 있거든."

"그래, 좋은 생각이야."

살며서 그의 허리에 손을 두르며 품에 얼굴을 묻는다. 데이빗도 나른한 표정으로 평온한 시간을 즐긴다.

"이번 오프 동안에는 둘이서 보낼 시간이 없었네."

"내년에는 별일 없을 테니까. 괜찮아."

"응, 그리고 내 후년에도, 앞으로도 계속..."

씩 웃으며 에리카와 눈을 마주친다. 자신의 품에 얼굴을 묻고 있는 그녀의 뺨에 손을 올리며 말한다.

"계속 함께 하자."

============================ 작품 후기 ============================

-고비라는 주말을 무사히 넘긴 것 같습니다

-아직 설사를 계속해서 안심할 단계는 아닌 것 같지만요

-내일 아침에 병원에 다시 한 번 데려가서 진찰을 받아야 합니다

-제발 긍정적인 결과가 있길 바랍니다 ㅠ

-요 며칠 계속 강아지와 관련하여 후기를 채웠는데요

-글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이제 정말 완결이 머지 않았습니다

-뭐 월드컵 우승,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남은 몇 가지가 있지만요

-사실 어차피 우승한다는 건 똑같고

-이제 경기 묘사, 정확히는 주인공의 플레이에 대해 묘사하기가 어려워 짐을 느낍니다

-최대한 같은 내용이 반복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만

-스포츠 장르의 특성상, 그리고 저의 모자란 필력으로 인해

-시간이 갈 수록 비슷한 내용의 반복이 계속될 것 같습니다

-사실 지금도 스스로 그런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 내용은 사실 쓰고 싶지도 않고

-독자 분들께 보여드리는 것도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음 편에 바로 정리해버리고 완결내는 건 아닙니다

-많은 부분이 생략되고 빠르게 스킵되어 넘어가겠지만

-최대한 깔끔하게 마무리 지어 보겠습니다

-근데 E-북 작업은 아직도 다 못했...

-연재+강아지 케어로 인해 시간과 잠이 부족해요 ㅠㅠ

-존경하는 담당자님 저는 태만한 것이 아닙니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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