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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전은 1 대 0으로 마무리 되었다. 영국은 급할 것이 없었다. 굳이 무리해서 추가골을 넣으려 들지 않았고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시작했다. 잠그기에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그저 무리한 공격을 지양하고 최대한 기회를 확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 뿐이다.
반면 브라질은 급해졌다. 시간이야 충분했지만 상대는 홈팀인 영국이었다. 수비도 그리 만만한 팀은 아니었지만 반칙 수준의 공격력이 더욱 문제였다. 한 골을 실점한 상태지만 이대로 추가 실점이 없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데이빗 장의 컨디션과 전반전의 퍼포먼스를 고려해 본다면 추가 실점 없이 막아내는 건 어려워 보였으니 말이다.
그런만큼 공격적으로 나서면서도 후방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던 브라질이었다. 역습에 특화된 공격수 데이빗 장이 있는 만큼 섣부른 공격은 브라질로서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으니까. 행여나 전반전에 두 골차로 벌어진다면 경기를 뒤집기란 하늘의 별따기 수준으로 난이도가 상승하게 될테니 말이다.
"좋아, 잘 하고 있어. 지금 수준을 유지해라."
피어스 감독은 전반전의 경기력에 대한 만족감을 표시했다. 전반 초-중반까지는 대등한 경기를 펼쳤고 몇 차례 위험한 장면도 노출했으나 선제골이 들어간 이후부터는 크게 불안 요소를 노출시키지 않고 안정적으로 경기를 이끌었다. 유리한 경기라고 흥분하여 달려들려던 젊은 선수들을 와일드 카드로 합류한 베테랑들이 적절히 제어해 주었던 것.
"어떤가. 네이마르는 상대할 만 하던가?"
"빠르고 기술이 상당히 좋더군요. 지 멋에 취해서 비효율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만...아쉽게도 제어불능의 꼴통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음료수를 마시며 감독의 질문에 대답하는 베컴, 그의 말대로 전반 중반 이후 의미없는 개인기의 남발을 자제하고 팀 전술에 녹아드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네이마르였다. 비록 라인을 크게 끌어 올리지 않은 영국의 수비 라인을 제압해 내지는 못했지만 확실히 살아나는 모습이었다.
"네이마르보다는 헐크 쪽이 문제로 보입니다. 컨디션이 상당히 좋아 보이던데요."
긱스가 마사지를 받으며 입을 열었다. 다른 선수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시한다.
"피지컬이 엄청 나던데요. 스피드도 무시 못하는 수준인데 파워가 어휴..."
"다미앙인가 하는 녀석은 그리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던데, 만약 그 녀석의 컨디션이 좋았으면 한 골 먹혔어도 이상하지 않았어."
"조별 예선에서 8강까지 꽤 많은 골을 넣었던 녀석 치고는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지."
"확실히 후반에는 네이마르도 네이마르인데 헐크에 대한 대책이 필요할 것 같아."
"정 힘들면 사이드로 몰아서 크로스를 올리게 만들 수밖에. 왼발 잡이라서 오른발 크로스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니거든. 한 번 접고 올리는 건 충분히 대응할 수 있어."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 받는 선수들, 물론 감독과 코치들 역시 대화에 동참하며 후반의 플랜에 대해 이야기했다.
"좋아, 이 정도면 된것 같군. 45분이다. 45분 뒤면 우리는 결승전 티켓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다. 절대 방심하지 마라.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고 했다. 브라질은 나약한 쥐가 아니다. 그들의 송곳니는 충분히 날카롭고 언제든 우리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안겨줄 수 있는 팀이다. 확실하고 강인한 플레이를 하고 와라!"
"Yes, sir!"
힘차게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선수들, 데이빗은 마지막으로 신발끈을 점검하고 그들을 따른다.
[이제 45분 뒤면 결승 무대에 올라갈 팀이 결정됩니다. 리드를 잡은 영국이 끝까지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브라질이 경기를 뒤집을 수 있을 것인가!]
[이대로 물러설 브라질이 아니죠. 하지만 영국 역시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인만큼, 동기 부여가 그 어느 때 보다 큰 상황입니다.]
[영 연방 내의 문제로 참여 자체가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100년 동안 축구에서 금메달이 없었다는 것은 영국으로서도 그리 달가운 역사는 아닙니다. 이번에 극적으로 단일팀 구성이 이루어진 만큼, 반드시 금메달을 따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양 팀 모두 베스트 11에 변화가 없습니다. 지고 있는 브라질 입장에서는 교체카드 활용도 중요한 요소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전반전만을 소화하고 교체 카드를 활용하기에는 너무 이른감이 있죠. 그리고 딱히 부진한 선수를 찾기도 힘듭니다. 네이마르 선수가 전반전 초-중반까지 조금 스탠드 플레이를 일삼았습니다만 그 이후로는 팀 플레이에 녹아든 모습이었죠. 그리고 하파엘 선수가 데이빗 선수를 전혀 제어하지 못했습니다만...이건 하파엘 선수의 문제라기보다는 상대가 나빴을 뿐이죠.]
[누구와 교체한다고 해도 막아내기가 힘든 선수입니다. 그래도 브라질이 경기를 뒤집기 위해서는 반드시 데이빗 장에 대한 제어가 필요합니다.]
해설자들의 말 그대로였다. 후반에도 하파엘은 여전히 그의 발 아래에 농락당하기 바빴다. 다행히 티아구 실바의 적절한 백업이 이루어지며 치명상으로 이어지진 않았으나 위태로운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영국이 데이빗 장 개인에 대한 공격 의존도가 큰 팀이었다면 브라질은 국가 대표급의 선수들이 공격진에 즐비했다.
네이마르, 헐크, 다미앙, 오스카, 모우라, 간수 등. 화려한 멤버로 최전방과 2선을 채운 브라질이다. 심지어 벤치에도 파투와 산드로 등의 선수가 대기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커버 해!"
"제기랄!"
중반 지역에서 오스카가 힘을 쓰기 시작하면서 브라질이 좋은 찬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브라질 선수 특유의 화려한 테크닉을 자랑하는 선수는 아니지만 훌륭한 오프 더 볼 무브먼트, 그리고 좋은 위치 선정을 토대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영국 입장에서 껄끄러운 위치에서 패스를 받고 움직이는 그로 인해 전반적인 미드필드 진영이 꼬여버리게 된 것.
"나이스!"
자연히 노마크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고 전반전에도 좋은 활약을 선보였던 헐크가 그 수혜자가 되었다. 오스카가 영국 선수들의 시선을 집중시킨 사이 자유로워진 루카스 모우라가 창의성 넘치는 패스를 오른쪽 사이드의 헐크에게 전달했고 순간적인 헐크의 침투에 마크맨이 그를 놓쳐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젠장!"
센터 백으로 나선 마이카 리차즈가 급히 커버를 나온다. 피지컬로는 밀리지 않는 리차즈, 하지만 헐크는 중앙 쪽으로 한 번 접고는 반대 쪽 사이드로 로빙 패스를 띄웠다. 그리고 그 공을 향해 달려드는 네이마르, 그는 헐크가 만들어 준 환상적인 기회를 자신의 비효율적인 테크닉 남발로 소모하지 않았다. 오히려 간결하고 파워풀했다. 노 트랩 발리. 영국의 버틀랜드 골키퍼가 반응하기 힘들 정도로 강력하면서도 코스도 괜찮았다. 강하게 영국의 골문을 흔드는 네이마르의 슈팅으로 후반 14분, 브라질이 경기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잘하네."
하프 라인 너머에서 역습을 준비하던 데이빗은 자신들의 골대 안에서 굴러다니는 공을 보며 혀를 찼다. 패스가 긴밀히 연결되기 시작할때부터 느낌이 좋지 않더니 역시나였다.
"태평하게 감상을 내뱉을 때야?"
스터리지가 투덜대며 말을 붙여 온다. 데이빗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뭐 허둥댄다고해서 들어간 골이 무효로 되는 것도 아니잖아?"
"그건 그렇긴 한데...뭐가 이렇게 여유롭냐는 거지."
찝찝한 표정을 짓는 스터리지에게 데이빗은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별 거 아니잖아. 팀 미팅때도 저 쪽의 공격력이 막강하다는 건 이미 들었고, 한 골 정도는 예상 범위 내였으니까."
당황할 거 없다는 데이빗의 반응에 스터리지가 실소를 흘린다. 말이야 그렇다고 하지만 실제 경기에서 신경쓰지 않기는 힘든 일이다. 그런데 데이빗은 진심으로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그래, 니 말이 맞네. 그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리드를 가져오면 그만이지."
말을 마치고는 수비진에게 빨리 공을 보내 달라고 요구하는 데이빗, 좋은 걸 보았으니 답례를 해야할 차례다.
영국이 먼저 교체 카드를 활용했다. 체력이 떨어진 노장 긱스를 대신하여 조 앨런을 투입했다. 베컴이 수비에 치중하면서 전방으로 한 번에 정확한 패스를 보내줄 만한 자원의 필요성을 느낀 피어스 감독의 결단이었다.
이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한 수가 되었다. 에너지 레벨에서 밀리며 미드필드의 주도권 싸움을 빼앗기게 되었는데 기동력이 준수한 조 앨런의 합류는 단비와 같았다. 체구가 작은 것이 흠인 선수였지만 애초에 브라질의 미드필더들 역시 신체 조건이 아주 우월한 것은 아니었으니 큰 문제는 없었다.
"데이빗!!"
스캇 싱클레어가 빼낸 공을 이어 받아 지체 없이 전방으로 볼을 배급하는 조 앨런, 영국 국적의 젊은 선수들 중에서 패싱력에 있어서는 손에 꼽힌다는 평을 받고 있는 만큼 상당히 정교한 패스였다. 물론 데이빗의 마음에도 쏙 들었다.
"오케이!"
흥이 난 듯 크게 대답하며 볼을 트래핑한다. 여러차례에 걸쳐 자신에게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당했던 하파엘이 독기 오른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여차하면 파울도 불사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물론 순순히 자신의 발을 걸게 둘 생각은 없었다.
가볍게 중앙 쪽으로 올라 온 아론 램지에게 공을 돌리고 다시 뛰어 간다. 지체 없이 다시 데이빗의 발 아래로 공을 붙여 주는 램지, 깔끔한 2 대 1 원 투 리턴에 드리블 돌파를 경계하던 하파엘이 한 번에 무너진다.
"패스!!"
페널티 박스 안쪽에서 패스를 요구하는 스터리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주변 상황을 파악하는 데이빗. 패스 코스가 마땅치 않다. 커버를 나오는 티아구 실바가 절묘하게 패스 코스를 차단하며 접근하고 있었다. 슈팅을 때리기도 조금 애매한 상황, 그렇다면 남은 것은 돌파 뿐이다.
'할 수 있어!'
돌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감이다. 테크닉, 스피드, 파워, 민첩성 등 다양한 요소가 필요함은 물론이지만 자신감이 없다면 움직임에 날카로움이 부족해진다. 언제든 수비수 한 명 정도는 쉽게 요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드리블러에게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데이빗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티아구 실바는 쉽지 않은 상대임에는 분명했다. 하지만 막힌다는 이미지는 없었다. 데이빗의 오른발이 잔영을 남기는 것처름 흔들린다. 최소한 실바는 그렇게 느꼈다. 동시에 상체는 반대 방향으로 숙여진다. 상체와 하체의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어긋나는 모습, 이 동작으로 실바의 발이 0.1초 가량 굳어 버렸다. 그리고 데이빗이 돌파하는 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너무나 간단히 뚫어 버립니다. 실바 선수가 길을 비켜주기라도 했나요?!]
[예술의 경지에 이른 바디 밸런스입니다! 상체와 하체가 따로 노는 움직임! 말은 쉽지만 보통의 유연성으로는 흉내 내기 어려운 재주입니다.]
[브라질 위기입니다! 순식간에 페널티 박스로 진입하는 데이빗! 더 이상 커버를 나올 선수도 없어요!]
[골키퍼가 나옵니다! 와우! 공과 함께 점프하며 골키퍼를 뛰어 넘는 데이빗! 더 이상 그의 앞에 장애물은 없습니다! 빈 골대에 유유히 공을 굴려 넣습니다! 2 대 1! 다시 한 발 앞서 나가는 영국입니다!]
[정말 할 말이 없네요. 이 선수가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쉬워 보이지 않습니까? 세상에 어떤 선수가 저런 플레이를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이 선수를 제외하면 찾기 힘들어 보이네요!]
[브라질이 살아나는가 싶은 순간 마치 악마처럼, 사신처럼 상대의 희망을 짓밟아 버리는 데이빗 장입니다. 그를 상대하는 팀들에게는 지독한 악몽, 저주와도 같습니다.]
동점골을 넣고 10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한 번 실점을 허용하자 브라질로서도 맥이 빠진듯 했다. 딱히 브라질 선수들이 수비에 있어서 실수를 했다고 보기 어려운 장면이었으니 허탈함이 더욱 큰 것이다. 하파엘도, 티아구 실바도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비를 펼쳤다. 문제는 그런 그들의 베스트 플레이가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제압해 버린 상대의 클래스였다. 전술적으로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을 수정하면 된다. 하지만 개인 기량에서 밀리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실력 이상의 플레이를 하라고 선수에게 주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피어스 감독은 데이빗의 교체를 서두르지 않았다. 브라질이 수비를 도외시하고 공격에 나설 시간은 아직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를 경기장에 두는 것이 오히려 브라질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 수 있었다. 공세를 펼친다고 해도 최소 2명 이상이 수비에 남아야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후반 40분이 넘어가고, 더 이상 뒤가 없는 브라질이 추가 실점을 각오한 채 총 공세로 나오자 그제서야 데이빗을 다른 수비자원과 교체 시켜 주었다. 5분 여의 시간, 절박한 심정으로 영국의 골문을 두드린 브라질, 하지만 작정하고 틀어박힌 영국의 수비진을 깨뜨리기에는 힘이 부족했다.
삑-삑-삐익-
"좋아!!"
벤치에서 남은 시간을 지켜 본 데이빗이 주먹을 불끈 쥐며 자리에서 일어 났다. 그리고 옆의 동료들과 하이 파이브를 나누며 결승 진출 성공에 대해 서로 축하했다.
"이제 한 경기만 이기면 금메달이야!"
"끝내 주는데! 데이빗! 오늘도 수고 많았어!"
"다들 고생한 덕분이지! 너도 수고 많았어!"
이긴 뒤라 서로 덕담을 주고 받는 것도 즐겁다. 데이빗은 기분 좋게 웃으며 경기를 마무리 지은 선수들에게 다가갔다.
============================ 작품 후기 ============================
-강아지의 건강을 기원해 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어제 오늘 병원 다녀오고 억지로 약 먹이고 밥을 먹이니
-조금 컨디션이 괜찮아 지는 것 같네요
-여전히 설사를 해서 걱정스럽습니다만...
-진짜 이 조그만 녀석을 버린 인간 면상을 한 번 보고 싶네요
-명치 한 대를 확...-_-;
-새벽에도 잠에서 깨면 낑낑대고 있어서
-잠이 좀 부족하네요
-그래도 건강해지기만 하면 바랄게 없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