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19 =========================================================================
-그래, 몸은 괜찮다니 다행이군. 남은 경기에서도 너무 무리하지 말게나.
"알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어떻게 걱정하지 않겠나. 유로에 올림픽까지...아니, 이 얘기는 그만하지. 자네도 지겨울 테니 말이야.
"괜찮습니다."
데이빗은 달글리시 감독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달글리시 감독은 매일 같이 데이빗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몸 상태를 체크하고 있었다. 데이빗으로서는 조금 유난스럽다는 느낌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래도 팀의 감독이 자신에게 지극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이왕 세미 파이널에 올라간 것, 금메달을 따고 오게. 어차피 져도 동메달 결정전까지 해야하잖나.
이기나 지나 경기 수가 같으니 이기라는 말, 뒤집어 생각하면 그는 차라리 영국 대표팀이 일찍 떨어지길 바라고 있었다고 볼 수도 있었다. 데이빗도 그 사실을 눈치챘지만 굳이 이야기하진 않았다. 결국 자신이 조금이라도 쉬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하죠. 감독님께도 금메달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여드리겠어요."
-그것도 괜찮군. 그래도 내가 가장 원하는 건 자네가 건강하게 돌아오는 거야. 금을 한 트럭으로 가져다 준다고 해도 말이지.
"하하."
-아, 그리고 지금 우리 팀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 줘야겠군. 프리 시즌 일정을 통해 다른 친구들의 몸 상태는 괜찮게 끌어 올렸네. 아마 작년과 비슷한 구성으로 시즌을 치를거야. 몇 몇 선수들과 컨택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새로운 영입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네.
-뭐, 새로운 선수가 온다고 해도 자네의 역할은 그대로 이어질거야. 물론 자네가 성실히 현재의 실력을 유지해 준다는 가정하에서의 이야기겠지.
달글리시 감독의 배려였다. 아무리 팀 내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선수라고 해도 새로운 시즌이 시작할 때, 그 역할이 계속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었다. 선수단 구성이 계속 이어진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고 감독의 전술적인 변경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지금의 말은 데이빗에게 큰 안도감과 함께 만족감을 주었다. 팀의 훈련 일정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기에 미안한 마음과 함께 약간의 걱정도 있었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물론 저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지난 시즌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드리겠어요."
-나도 기대하고 있네. 자세한 이야기는 팀에 합류해서 하도록 하지. 남은 대회, 건강하게 잘 치르도록 하게나.
뚝-
전화 통화를 마친 데이빗, 베컴은 씩 웃으며 말을 걸어 왔다.
"니네 팀 감독이야?"
"아, 맞아요. 달글리시 감독님이 전화를 주셨네요."
"용건은 평소와 같고?"
"뭐 그렇죠?"
"히야, 정말 지극정성이다. 어떻게 하루도 안빠지고 연락을 할 수가 있지?"
베컴의 감탄사에 데이빗이 조금 부끄럽다는 듯 멋적게 웃음을 흘린다.
"아무래도 제가 두 개 대회를 연속으로 출전하다보니 걱정이 많은가 봐요."
"그거야 그렇지. 근데 그렇다고해도 보통은 매일 전화하진 않잖아. 하긴, 너 없으면 리버풀이 그리 강할 수 있겠냐만은..."
리버풀에서 데이빗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야말로 절대적이다. 팀 내 프랜차이즈 스타인 제이미 캐러거와 스티븐 제라드는 이미 전성기를 지났거나 끝에 접어드는 선수, 이미 선수단 내에서도 대체할 만한 자원이 있었다. 스타일은 다르다고 해도 그와 비슷한 실력을 보여주는 선수들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데이빗은 대체가 불가능한 자원이었다. 쉽게 이야기해서 리오넬 메시 혹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사오지 않는 이상, 그만한 결과를 내 주는 공격수는 전세계를 통틀어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대안이라고 하는 두 선수는 영입이 사실상 불가능한 선수들이었다.
"저야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죠. 좀 전에는 이번 시즌에도 제가 팀 내 구상에 들어가 있고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거라 직접 이야기해 주셨네요."
기분이 좋은 듯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데이빗의 모습에 베컴이 헛웃음을 터뜨린다.
"그거야 당연하잖아. 세상에 어떤 미친 감독이 널 안 쓸 수가 있겠냐? 아, 물론 감독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지. 인정받은 느낌이 드니까. 그래도 니가 그런 말을 할 위치는 아니라고 보는데..."
경기장에 집어 넣는 것만으로도 한 골 이상이 보장되는 선수를 쓰지 않을 감독이 어디 있겠냐며 가볍게 타박하는 베컴, 데이빗은 민망한지 뺨을 긁으며 화제를 돌렸다.
"근데 다른 분야의 선수들을 만나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아, 그렇지. 넌 이번이 처음이겠네."
"네. 같은 운동 선수라 비슷한 부분도 많았지만 다른 부분도 많아서 꽤 신기했네요."
"그렇지. 다른 종목의 선수들을 만나는 것도 재미있고 도움이 많이 된다고 봐. 특히 이런 국가 대표 레벨의 선수들은 말이야. 각 분야에서 최고의 선수들만 모아 놓은 자리 잖아? 그들만의 노하우를 들을 수도 있고 자기 관리 방법을 공유할 수도 있지. 그걸 떠나서 보통 다들 괜찮은 친구들이 많아서 사적으로 알고 지내기 괜찮은 녀석들이 많아."
"어제 위긴스 씨하고 좀 친해졌거든요. 이번 금메달을 포함해서 올림픽에서만 7개의 메달을 땄다니, 진짜 굉장한 사람 같아요."
영국의 사이클 스타 브래들리 위긴스와 친해졌다며 좋아하는 데이빗.
"아, 그 사람. 전에 분명 CBE(3등급 훈장)을 받았을 거야. 그리고 이번에 금메달을 따고 다른 대회에서도 죄다 우승하다시피 했으니까...아마 기사 작위 서임도 받지 않을까?"
"와우! 대단하네요. 분명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퍼거슨 감독이 작위 서임을 받았죠? 그것과 똑같은 거네요?"
"아마 그렇겠지? 뭐 확실하진 않지만 대단한 사람인 건 분명하니까. 그나저나 그 사람은 언제 만났대?"
궁금하다는 듯 물어오는 베컴, 데이빗은 신이 나서 대답했다.
"아까 밥 먹고 잠깐 산책하는 도중에 만났어요. 우연히 만났는데 먼저 알아봐 줘서 놀랐네요."
"넌 못 알아 봤고?"
"이름은 알고 있었는데 얼굴은 잘 몰랐어요. 조금 미안했는데 아주 좋은 사람이었어요. 젠틀하면서도 유머러스하고..."
"몸 관리 하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알려줬는데, 정말 세계 최고는 뭐가 달라도 다른 느낌이었네요. 저도 꽤 신경쓰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사람마다 자기만의 방식이 있는 거니까. 그 사람이 수도승처럼 산다고 해서 네가 그걸 따라할 필요는 없어. 너에게 맞는 방식이 있는거야."
"알고 있어요. 그래도 놀라웠죠. 자신의 모든 생활을 사이클 하나에 맞춘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한 동안 다른 분야의 선수들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아무래도 베컴은 다양한 분야의 선수들을 만나고 친분을 쌓은 경험이 있었기에 주로 이야기해 주는 입장이었고 데이빗은 흥미롭게 그 이야기를 경청했다.
"아무튼 우리 나라에서는 축구가 워낙 인기다 보니 다른 종목의 선수들이 좀 부러워하는 경우가 많아. 몸 값이나 인지도에서 차이가 확실히 나니까 말이야."
"그런 건 또 몰랐네요."
"뭐, 최고 레벨의 선수가 되면 좀 다르다고 해도,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지."
비인기 종목은 아무래도 그런 면에서 아쉬운 부분이 많다며 이야기해 주는 베컴.
"아무튼 뭐 이야기는 이쯤 해두도록 할까. 내일 준결승이라고. 슬슬 자야겠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전 한 번더 씻고 잘래요. 산책하고 왔더니 땀이 조금 나서."
"그렇게 해."
"또 올드 트래포드네."
준결승을 앞둔 영국 대표팀의 라커룸, 데이빗이 입맛을 다셨다. 올드 트래포드는 국가 대표로 뛰고 있는 지금도 아직 느낌이 그리 좋은 경기장은 아니었다. 뭔가 자신이 있어서는 안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열렬한 관중들의 성원이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런 것도 좋은 경험 아니겠어? 니가 언제 올드 트래포드에서 환대를 받을 수 있겠냐?"
베컴이 데이빗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핀잔을 준다. 옆에서 긱스가 웃으며 대화에 동참했다.
"그건 벡스 말이 맞네. 아,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한데 말이야."
"뭔데요?"
"니가 우리 팀으로 이적해오면 언제든 여기에서 환대를 받을 수 있다는 거지."
짖궂게 윙크하며 이야기하는 긱스의 모습에 데이빗이 기겁한다.
"누구 죽일 생각 있어요? 그렇게 되면 아마 죽을 때까지 리버풀에 가지도 못할 걸요."
"왜? 마이클도 지금 우리 팀이라고. 아, 이번 여름에 다른 팀으로 가려나. 아무튼 그 친구가 어느 팀 출신이었지?"
"...그 사람도 곧바로 팀을 이적한 게 아니잖아요. 여러 팀을 거쳐서 맨유로 간건데...그래도 지금 욕 먹고 있는 걸 보라구요."
만약 한 번에 리버풀에서 맨유, 혹은 맨유에서 리버풀로 이적이 이루어진다면 그 선수는 어마어마한 이슈에 시달릴 것이 분명했다. 데이빗은 자신이 그 주인공이 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굳이 맨유가 아니라고 해도 지금은 이적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네요. 리버풀 생활에 꽤나 만족하고 있는 중이거든요. 애초에 고향 팀이기도 하고."
그 말에 긱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진지한 이야기도 아니었고 그저 농담식으로 말한 것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가 온다면 진심으로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도 진심이긴 했다.
"아쉽네. 생각이 있으면 언제든 이야기하라고. 웨인도 널 정말 좋아하더라."
"...마음만 받을게요."
적당히 얼버무리며 민감한 화제에서 벗어 난다. 마침 슬슬 감독이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에게 마지막 지시를 내릴 타이밍이었다.
[이제 단 두 경기만을 남겨 두고 있는 축구입니다. 약 2주 간의 여정도 이제 마무리 단계로 접어 들었습니다.]
[앞선 4강의 다른 경기에서는 멕시코가 이집트를 3 대 1로 꺾고 결승에 진출한 상태입니다. 이 경기의 승자와 금메달을 다투게 되는 것이죠.]
[사실 멕시코와 이집트도 좋은 팀입니다만, 사실 지금의 경기가 사실상의 결승전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브라질은 세계 최고의 팀 중 하나이고 사상 최초의 단일 팀을 구성한 영국 역시 그에 못지 않습니다.]
[선수단 구성을 보아도 브라질과 영국의 선수들은 이집트와 멕시코의 선수단에 비해 이름값이 높습니다. 물론 축구는 명성만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의 퍼포먼스를 바탕으로 내려진 지금의 평가가 높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무게감면에서 확실히 우위에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죠.]
[이번 대회 최고의 매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양 팀은 이번 대회 최고의 공격력을 자랑하는 두 팀이죠. 브라질은 마치 정해 놓기라도 한 것처럼, 모든 경기에서 3골을 기록하는 진기록을 달성했습니다. 4경기에서 12골, 그야말로 엄청난 공격력을 보여 주었죠. 네이마르, 헐크, 다미앙 등, 명문 클럽들로부터 열렬한 러브콜을 받고 있는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영국 역시 그에 못지 않습니다. 8강전에서 무려 8골을 폭격하며 무시무시한 공격력을 자랑했죠. 4경기에서 16골을 기록하며 이번 대회 최다 득점 팀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브라질에 비해 공격에 있어서 한 선수의 의존도가 크죠.]
[데이빗 장 선수를 말씀하시는 군요. 맞습니다. 3경기 출전에 9골 3어시스트를 기록 중입니다. 이미 대회 득점왕은 확정 지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사실 23세 이하의 선수들이 주축인 이번 대회에서 데이빗 장 선수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반칙에 가깝습니다.]
[아무래도 아직 경험이 부족하고, 선수로서 완성이 안된 선수들이 막기에는 지나치게 가혹한 상대입니다. 오늘 경기에서도 브라질에게 가장 위협이 될 선수를 꼽으라면 의심의 여지 없이 데이빗 장 선수를 말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영국 대표팀으로서는 데이빗 장에 대한 과도한 견제가 쏠릴 것에 대비해야 합니다. 주변 동료들이 시선을 분산시켜줘야 하죠. 함부로 데이빗 장 선수에게 헬프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끊임 없이 움직여줘야 합니다.]
[데이비드 베컴의 이번 대회 컨디션이 상당히 좋아 보이기 때문에 이번 경기에서도 좋은 조력자의 역할을 기대해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데이빗 장 선수와 아주 좋은 호흡을 보이고 있어요.]
============================ 작품 후기 ============================
-한국이 떨어졌으니 일본도 8강에서 이집트에게 발린 걸로
-아 그리고 말씀 드려야 할 것이 있어요
-The Answer가 E-북 계약을 진행했었습니다. 작년 말쯤이었나...
-아무튼 E-북 관련해서 담당자 분께 원고를 보내드려야 합니다. 메모장에 적힌 걸 그대로 보내드릴 수는 없어서요. 저도 다시 한 번 체크하면서 고칠 부분이 있으면 고쳐야 하구요
-그래서 며칠 간 연재가 지연될 수도 있다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런 작업을 해 본적이 없다보니 시간이 얼마나 소요될 지 모르겠네요
-최대한 빠르게 마무리 짓고 다시 연재로 찾아 뵙겠습니다
-그래도 좋은 부분도 있어요!
-E-북 계약이 되었기 때문에 연중은 불가능하다는거!
-할 생각이었냐?
-아...아닙니다?
-왜 의문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