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97 =========================================================================
"큭...!"
예상은 했지만 상대로부터 느껴지는 반발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밀려나면 안된다.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 데이빗은 이를 악물며 온 몸의 힘을 끌어 올렸다.
하지만 갑자기 그의 힘이 강해질 리도 없었다. 정신력으로 모든 것을 커버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가 간절한 만큼 상대 수비수 역시 그를 막아 내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점점 데이빗이 밀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공을 빼앗기지 않았다는 점, 진로가 조금씩 옆으로 밀리고는 있었지만 말이다.
'한 발만, 딱 한 발이면 충분한데...!'
한 발만 앞설 수 있다면 앞이 훤히 뚫리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그 한 발자국이 계속해서 발목을 잡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 흘러 나갔다가는 아예 엔드라인까지 밀려버릴 것이다. 그 전에 데이빗은 선택을 해야 했다.
'한 번 접어? 아니야...'
그렇게 한다고 해서 라모스를 제친다는 보장도 없을 뿐더러 호시탐탐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피케가 달려들 찬스를 줄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계속 밀릴 수도 없는데...'
드리블이 어렵다. 패스는 애초에 줄 상대도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노릴 수 있을까?'
확률은 낮았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는 최선이었다. 데이빗은 자신과 어깨를 맞 부딪히고 있는 라모스와 거리를 벌려야 했다. 이렇게 밀착된 상태에서는 슈팅을 날리기 어려웠으니까.
어차피 밀리고 있는 상황, 공을 살짝 옆으로 옮긴 뒤 버티는 힘을 슬쩍 풀어 버린다. 물론 아예 넋놓고 힘을 뺀 것은 아니었다. 라모스의 균형을 미세하게나마 흔들기 위한 플레이, 그로 인해 본인도 조금 흔들리긴 했지만 충분했다. 자연히 옆으로 흘린 공으로 움직일 수 있었으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평소처럼 완벽한 자세에서 날리는 슈팅이 아니다보니 파워를 온전히 싣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아쉬운대로 코스라도 제대로 잡고자 데이빗은 기울어지는 몸을 간신히 지탱하며 목표를 겨냥했다. 왼쪽으로 조금씩 밀리는 와중이었기에 목표를 반대쪽 포스트로 설정한다. 왼발 슈팅을 대각선으로 깔아 찰 생각, 데이빗은 온 힘을 다해 마지막 동작을 실행에 옮겼다. 그리고 균형을 잃고 넘어진다.
"큭...!"
카시야스 골키퍼가 몸을 날린다. 전반전에는 시야가 가려져 있는 상황이라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리고 전반에 한 골을 먹은 이후로 절대 방심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상대의 레벨을 상향 조정한 것이다. 언제든, 어디에서든 슈팅을 날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런 자세가 도움이 되었다. 코스가 절묘했기에 안전하게 처리하지는 못했다. 간신히 튕겨내는 카시야스 골키퍼, 하지만 큰 걱정은 들지 않았다. 세컨 볼을 노릴 다른 공격수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안도하던 카시야스의 눈이 급격히 커진다.
"빨리! 빨리 걷어...!"
생각보다 공을 튕겨낸 코스가 좋지 못했다. 그래도 가장 먼저 공에 다가온 것은 헤라르드 피케였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분명 슈팅을 날리고 나서 균형을 잃고 넘어졌을 데이빗이 어느새 몸을 날리고 있었던 것이다.
'반드시...!'
넘어졌던 데이빗은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마음 편하게 누워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안심하는 것은 자신의 슈팅이 골망을 가르고 난 뒤에 해도 늦지 않았다. 예상대로 카시야스 골키퍼가 자신의 슈팅을 막아 내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이를 악 문 데이빗은 더욱 다리에 힘을 주고 박찼다. 이미 피케가 공을 걷어 내기 위해 발을 들어 올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달려드는 데이빗의 모습에 망설임은 없었다. 아니, 그의 눈에는 오직 공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가 아는 건, 저 공을 상대의 골대 안으로 집어 넣어야 한다는 것, 그것 뿐이었다.
'넣는...!'
이마에 공을 맞춘 느낌이 들었다. 뒤이어 눈 앞에 별이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상대의 발에 제대로 채였으리라. 데이빗은 그대로 그라운드 위로 쓰러졌다.
[데이빗 장 헤더!! 골! 골입니다! 다시 한 번 데이빗 장입니다! 스페인의 추격 의지를 꺾어 버리는 쐐기골입니다! 그런데 일어나지 못하는 데이빗 장 선수! 얼굴을 채인 걸까요?]
[멋진 골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집념이 만들어 낸 골이네요! 하지만 위험한 플레이였어요. 상대의 발에 그대로 머리를 들이 민 거나 다름 없거든요. 피케 선수가 일부러 걷어 찬 건 아닙니다. 큰 부상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환호하던 잉글랜드 관중들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아, 잉글랜드 선수들도 기뻐하기 보다는 동료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군요. 들 것이 들어 오고 있습니다. 데이빗 장 선수, 큰 부상이 아니길 바랍니다.]
"...어나! 이봐! 들 것 좀 부탁해!!"
'...뭐가 이렇게...'
시야가 어두웠다. 그리고 귓가에 이명처럼 웅웅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주변이 어수선하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조금 시끄러운 것이 거슬려 눈을 떠 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데이빗은 깔끔하게 포기했다.
'시끄러워...'
"의식이 없는 거야? 젠장, 위험하게 머리를 들이 밀다니..."
"덕분에 골은 넣었지만...젠장, 빨리 오라고!"
잉글랜드 선수들이 쓰러진 데이빗을 둘러 싼채 의료진을 재촉한다. 아직도 눈을 뜨지 못하고 있는 데이빗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동료들, 눈썹 부근에서 피가 흐른다. 아마 채인 부분이 저쯤인 것 같았다. 부랴부랴 달려온 의료진이 조심스럽게 데이빗을 들 것에 싣는다.
"자기엘카! 준비해! 자네가 할 일은 잘 알고 있을거야! 막아! 지친 동료들보다 한 발이라도 더 뛰어야 해! 알고 있겠지!?"
급작스럽게 교체를 진행하는 카펠로 감독, 허겁지겁 입고 있던 트레이닝 복을 벗어 던지고 자기엘카가 그라운드로 달려 간다. 그리고 동시에 벤치 쪽으로 실려오는 데이빗, 스탭들이 빠르게 의료진을 맞이한다.
"어떻습니까? 데이빗의 상태는 어떤가요? 지금 바로 병원으로 이송해야 합니까?"
"저희도 지금 살펴 봐야 합니다. 머리를 강하게 채인 터라 잠깐 의식을 잃은 것으로 보입니다만..."
"피가 나는데...아니, 아닙니다."
축구화에 머리가 채였으니 피가 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의료진은 조심스럽게 데이빗의 상태를 검진하기 시작했다. 일단 펜라이트로 의식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찢어진 눈가의 상처를 치료한다. 그럼에도 데이빗이 일어나지 않자 의료진은 병원 이송을 건의했다.
"지금으로서는 큰 부상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만...그래도 부위가 부위다 보니 빨리 병원으로 이송하여 정밀 검진을 받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까."
"네, 지금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처치는 다 했으니 더 이상 조치할 것이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스탭 한 두명을 붙여 병원으로 보낼 생각에 인선을 준비하던 카펠로 감독, 그때 데이빗의 옆을 지키던 코치가 소리쳤다.
"일어 나는 것 같습니다! 데이빗이 정신을 차리는 것 같아요!"
"정말인가?"
그 말에 부리나케 달려오는 카펠로 감독, 그리고 의료진이었다. 눈을 찌푸린 채 신음을 흘리고 있는 데이빗의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정신이 드십니까?"
의료진이 먼저 나섰다. 그 말에 조금씩 눈을 뜨는 데이빗, 아직 상황 파악이 안되는 듯 흐릿한 눈으로 주변을 살핀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기억이 없는 건가? 이거 큰일 아닙니까?"
"아뇨, 당연한 일입니다. 기절한 뒤에 완벽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더 말이 안되는 일이겠지요. 본인의 이름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데이빗 장이요. 그건 왜 물어 보시..."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죠?"
"...그거야 당연히...결승전을...?"
대답하다가 벌떡 일어나는 데이빗,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것인지 빠르게 고개를 돌리며 주변을 확인한다. 자신이 들 것에 누워 있었다는 사실도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다급한 어조로 질문을 던진다.
"경기는요! 경기는 어떻게 된거죠?"
"침착하게. 직접 보면 되지 않나."
생각보다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보이자 안정을 찾은 카펠로 감독이 손가락을 들어 가리킨다. 고개를 돌려 확인하자 2 대 0의 스코어가 눈에 들어 왔다. 그리고 전광판의 시계가 이미 멈춘 사실도 인지했다. 그렇다면 로스 타임일 것이다.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으니까.
"자네가 해냈어! 무모했지만 자네의 시도가 엄청난 결과를 만들었단 말이야!"
"아..."
그 말을 듣자 또렷하게 기억이 살아 났다. 분명 슈팅을 날리고 골키퍼가 막아낸 공을 향해 다시 한 번 몸을 날렸다. 그리고 짜릿한 통증과 함께 기억이 끊겼다. 아마 그때 기절했던 것 같다.
"들어 갔군요. 다행이다..."
기절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의 시도가 결과로 나타난 것이 중요했다. 뿌듯함이 밀려 왔다. 그런데 원래 피치에 없던 선수가 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데이빗.
"저는 그럼 교체된 건가요?"
"당연하지. 기절한 친구를 내버려 둘 수도 없지 않나. 자네는 충분히 제 역할을 다해 주었어. 정말 영웅적인 활약을 보였단 말이야. 그러니까 이제 편히 쉬면서 동료들의 모습을 지켜 보게나."
이례적일 만큼 따뜻한 어조로 데이빗을 격려하는 카펠로 감독,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의료진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개진한다.
"저, 의식을 찾은 것은 다행입니다만, 그래도 병원으로 가서 검진을 받아 보는 것이..."
"아, 그래. 내가 잊고 있었군. 데이빗, 일단 먼저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받아 보는 것이 어떻겠나? 자네는 지금 10분 넘게 기절해 있었어."
"병원이요? 전 지금 멀쩡해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여기에서 우리 팀의 우승이 확정되는 것을 지켜 보고 싶습니다."
완강하게 거부하는 데이빗의 모습에 카펠로 감독이 의료진의 견해를 묻는다.
"혹시 어지럽거나 토물감이 느껴지진 않습니까?"
"아뇨 전혀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요."
계속해서 자신의 멀쩡함을 피력하는 데이빗, 의료진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큰 문제는 없어 보이는 군요. 그래도 반드시 검사는 받아 보셔야 합니다. 머리는 정말 민감하고 중요한 부위입니다."
말을 마치고 자리를 떠나는 의료진, 데이빗은 그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벤치로 돌아가 경기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로스 타임은 몇 분이나 되는 거야?"
"4분, 근데 정말 괜찮아? 병원에 가보지 않아도 돼?"
조단 핸더슨이 걱정스럽게 안부를 묻는다. 다른 이들도 괜찮냐며, 무리하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데이빗은 씩 웃으며 문제가 없음을 이야기했다.
"4분이면 생각보다 기네...내가 기절해서 그런가 보네."
"그거야 그렇지. 그래도 추가골의 가치에 비할 바는 아니야. 넌 정말 멋졌어. 그래도 무모했다고. 몸 생각도 해야지."
가볍게 타박하는 핸더슨, 데이빗은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지금 생각하면 확실히 위험한 플레이였다. 하지만 막상 공을 쫓을 때는 그런 생각을 아예 하지 못했다. 그저 눈 앞의 공을 골대 안으로 보내야 한다는 그 생각뿐이었다.
"눈 앞에 공이 보이는데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있나."
"하긴, 나 같아도 그랬을 거야."
그런 대화를 주고 받는 사이, 존 테리가 다시 한 번 스페인의 공격을 멀리 걷어 냈다. 중앙선을 넘어와 공격에 가담한 카시야스 골키퍼가 공을 잡아 다시 전방으로 보낼 때 드디어 심판의 휘슬이 울렸다. 스페인 선수들은 허탈한 표정으로 주저 앉았고 잉글랜드 선수들은 서로 부둥켜 안고 포효하기 시작했다. 벤치에 있는 선수들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전원 자리를 박차고 뛰어 나갔다. 물론 데이빗도 마찬가지였다.
UEFA EURO 2012
The Final MATCH
Winner: England
Runner up: Spain
Statistics
England Spain
Goals scored 2 0
Total shots 6 15
Shots on target 3 9
Ball possession 36% 64%
Corner kicks 2 7
Fouls committed 14 12
Offsides 1 2
Yellow cards 4 3
Red cards 0 0
============================ 작품 후기 ============================
-아마 이 편이 등록될 때
-저는 멜버른 공항에 막 내렸을 거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