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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괜찮아?
"그럼. 어제 직접 봤잖아. 아무렇지도 않다니까?"
-...어제 페널티 킥 얻어 냈을 때 넘어졌잖아.
8강이 끝난 다음 날, 카펠로 감독은 선수들에게 하루의 휴식을 주었다. 연달아 3~4일의 간격으로 시합을 치르고 있는 선수들인지라 체력 상황이 말이 아니었기에 오전에 간단한 회복 훈련만 진행한 뒤 일정을 마쳤다. 선수들은 이곳까지 찾아 온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으나 그것까지는 허용되지 않았다. 사기 진작을 위해 허용해주자는 의견이 없는 것도 아니었으나 괜히 체력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엉뚱한 곳에(?) 힘을 쓰지 못하게 하자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데이빗은 호텔 방에 편하게 누워서 여자 친구와 전화를 하며 아쉬움을 달래고 있었다. 그녀는 대표팀 내의 규정이 그렇게 엄격한 줄은 몰랐다며 놀란 눈치였고 조금 실망스러워 보였다.
"괜찮다니까. 발이 걸린 것도 아니었고, 안 그래도 경기 끝나고 간단히 검사를 받아 봤는데 아무 문제 없었어."
-그럼 다행이네.
"응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나저나 여기까지 왔는데 못 보게 되서 미안하네."
-네가 미안할 일인가. 난 괜찮으니까 경기에만 신경 써. 다음 경기도 제임스 씨하고 새뮤얼 씨하고 같이 보러 갈게.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섭섭한 마음을 숨기고 자신을 배려해 주는 모습, 데이빗은 마음이 따뜻해 지는 것을 느꼈다. 늘 그랬다. 자신의 여자 친구는 언제나 자신을 생각하고 양보해 주었다. 이는 그가 무명 시절일 때나, 세계적인 스타로 우뚝 선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아마...내가 슬럼프에 빠지고, 나중에 먹튀 소리를 듣는다고 해도 변하지 않겠지.'
모르는 것이 사람 마음이라고 하지만 그럴 거라 생각했다. 데이빗의 입가에 기분 좋은, 나른한 미소가 맺혔다.
-그럼 이제 쉬어. 난 오늘 새뮤얼 씨가 근처에 볼 만한 곳 안내해 주겠다고 해서 슬슬 나가 보려고.
"아, 그랬지. 티티한테도 고맙다고 이야기해줘야겠다."
그러면서도 기분이 영 어색한지 입맛을 다시며 말을 잇는다.
"...축구 선수는 남자 친구로서 그리 좋은 점수를 받긴 힘들 거 같네. 내가 해야할 일을 친구가 대신해 주고..."
-알면 잘하셔.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리며 장난스럽게 이야기하는 에리카.
-난 정말 괜찮으니까 넌 대회에만 신경 써. 계속 연달아 경기 하느라 체중도 많이 빠졌겠다. 식사도 잘 하고.
"안 그래도 매일 엄청 먹고 있어."
-그럼 됐어. 대회 끝나고 나서 보면 충분해.
"고마워.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 그리고 사랑해."
-나도 사랑해.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사랑 메시지를 전하고 통화를 마쳤다. 만족스럽게 휴대폰을 내려 놓는 데이빗, 그 사이 샤워를 마친 루니가 방으로 들어 왔다.
"넌 안 씻어?"
"전 점심 식사 하기 전에 씻었거든요."
"아 맞다. 그랬지."
타월을 대충 던져 놓고 침대 위로 다이빙하는 루니, 5성급 호텔의 침대 답게 쿠션감이 아주 훌륭했다. 푹신한 베개에 파묻혀 몸을 이리저리 비트는 루니.
"이게 무슨 휴식이야, 감금이지. 젠장, 나가지도 못하게 하고. 호텔에만 처박혀 있으라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런 것치고는 꽤 만끽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거야 할 일이 없으니까 그렇지!"
장난스럽게 옆에 있는 쿠션을 집어 던지는 루니, 데이빗은 가볍게 피해냈다.
"불만이 있으면 감독님한테 가서 말해요. 나도 여자 친구가 왔는데 만나지도 못하고 있구만."
"젠장, 그 말 안 통하는 노인네한테 무슨 말을 하라고.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이지."
"TV나 봐요. 별로 재밌는 지는 모르겠지만."
"...보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그러면서도 어지간히 심심했는지 리모컨을 들어 채널을 돌리는 루니, 데이빗은 피식 웃으며 침대에 몸을 뉘였다. 그때 울리는 전화벨 소리.
"응? 저메인이네. 여보세요?"
-아 데이빗, 뭐하고 있어?
"그냥 누워있죠. 할 일도 없잖아요."
-그래? 그럼 여기 호텔 지하에 당구대가 있다던데, 혹시 한 게임 칠래? 조단이랑 조, 그리고 또...아무튼 몇 명이 치자고 해서 말이야.
"그럴까요? 딱히 할 일도 없는데 심심풀이로 괜찮겠네요. 아, 웨인한테도 물어 보고 하겠다면 같이 갈게요."
-그렇게 해. 그럼 10분 뒤에 보자.
전화를 마치고 데이빗은 루니에게 시선을 돌렸다. 재미 없다느니 투정부리던 루니는 얌전히 TV에 몰두하고 있었다.
"웨인, 방금 저메인이 아래에서 당구나 한 게임 치자고 하는데 같이 갈래요?"
"응? 아 난 됐어. 다녀와."
시선도 주지 않고 손을 흔드는 루니, 어지간히 TV 프로그램에 심취한 듯 싶었다. 힐끗 살펴보니 별다를 내용 없는 쇼 프로그램이었다.
"그럼 쉬고 있어요. 좀 있다가 봐요."
세미 파이널 진출, 사실 잉글랜드로서는 메이저 대회에서 4강에 든 것도 오랜만이었다. 98년 월드컵에서는 16강에 그쳤고 유로 2000에서는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이후 이어진 대회에서도 언제나 16강, 혹은 8강에 머무르며 체면을 구겨야 했다.
그런만큼 이번 유로 2012에서 4강에 진출하자 자국에서는 속된 말로 난리가 났다. 드디어 16강, 8강 징크스를 깨고 한 단계 높은 곳까지 도달한 대표팀을 연일 칭찬하기 바빴고 더욱 큰 기대를 걸기 시작했다. 상대가 독일이라는 점도 그런 열기를 부채질하는 데 한 몫했다. 독일과 잉글랜드는 유럽에서도 유명한 라이벌이었으니 말이다.
지난 남아공 월드컵에서의 악연이 아직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이번에야말로 독일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줄 차례라 말했다. 언론에서도 연일 기사를 써내리며 분위기를 한 껏 고조시켰다.
독일 쪽의 분위기는 잉글랜드만큼 뜨겁지는 않았다. 독일은 메이저 대회에서 언제나 4강, 혹은 그 이상에 진출하는 팀이었으니까. 간혹 부진하다고 할때 8강 정도였으니 4강 정도로는 크게 흥분하지 않았다. 그저 당연한 일이라는 반응, 단지 상대가 잉글랜드라는 점에 주목하긴 했지만 자국 대표팀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한 그들은 이번에도 잉글랜드를 꺾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가 지배적인 가운데 독일의 유명 축구 정보지 키커에서는 잉글랜드 대표팀을 얕잡아 보아서는 안된다는 논지를 펴며 특히 경계해야 할 선수로 데이빗 장을 지목했다.
[데이빗 장을 막지 못한다면 결승을 장담할 수 없다]
제목이 자극적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필자는 자신있게 당신은 이미 상대를 얕보고 있다고 이야기해 줄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상대할 팀은 지난 월드컵에서 4 대 1로 대승을 거둔 팀이 아니다. 그들은 그때보다 더욱 뛰어난 선수들로 대표팀을 구성했으며 한층 더 강해졌다.
유로 대회는 세계에서 가장 수준 높은 대회 중 하나이다. 이런 큰 무대에서 세미 파이널에 올랐다는 것은 그들의 능력을 증명하는 부분이다. 대회를 불문하고 세미 파이널 정도 되면 각 팀간의 격차는 크지 않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들이 대진운이 좋아서 상위 라운드로 진출한 것인가? 아니다. 조별 리그에서 그들은 개최국 우크라이나를 포함하여 프랑스, 스웨덴과 같은 강호를 꺾었다. 지난 쿼터 파이널에서는 이탈리아마저 무릎 꿇리고 올라 왔다. 4경기에서 전승, 9득점에 3실점이라는 놀라운 골 득실은 덤이다. 우리의 대표팀이 마찬가지로 4승에 9득점 4실점을 기록한 것을 비교해 본다면 대등한 수준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 중 가장 경계해야 할 선수는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상대 팀의 7번, 포워드 데이빗 장이다. 그는 4경기에 출장하여 5골을 뽑아내는 엄청난 괴력을 과시하고 있다. 독일 대표팀에서 가장 많은 골을 기록한 선수는 바이에른 뮌헨 소속의 골잡이 마리오 고메스(3골)이다.
혹자는 이야기한다. 잉글랜드는 데이빗 장만 막으면 허수아비에 가까운 팀이라고, 그를 막으면 쉽게 이길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필자도 이 부분에 동의한다. 잉글랜드 대표팀 내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잉글랜드 공격은 대부분 그를 통해 이루어지고 그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확실히 그를 막을 수만 있다면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차군단이 잉글랜드를 손쉽게 짓밟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과연 잉글랜드를 상대로 패배한 4팀은, 과연 그 사실을 몰랐을까? 나는 그들을 이끄는 스탭들이 그리 무능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월급 도둑은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스페셜리스트이며 경험이 풍부한 이들이다. 몰라서 막지 못했다는 가정은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다. 애초에 지난 시즌, 유럽에서 두 번째로 많은 골을 기록한 선수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 할 리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당했다는 것이다. 알고도 당한다는 건 섬뜩한 일이다. 모르고 당했다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앞 선 경기를 분석하고 대비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저 수비에 있어서 전통을 자랑하는 이탈리아 마저도 그를 봉쇄하는 데 실패했다. 세계 최고의 골키퍼 지안루이지 부폰은 경기 전 인터뷰를 통해 그를 막을 자신이 있다고 당당히 밝혔지만 결국 초라하게 그의 발 아래 무너져야 했다.
방심해서는 안된다. 아무리 경계해도 부족한 선수가 바로 데이빗 장이다. 그를 막는 일은 이번 대회에 참여한 우리 대표팀에 있어서 최대의 도전이 될 것이다. 만약 그를 막을 수 있다면 우리가 결승 무대에 진출할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마르코, 니 얘기는 뭐야, 결국 이 친구를 어떻게 제어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거 아냐?"
잉글랜드보다 이틀 먼저 8강 경기를 마친 독일 대표팀은 하루 동안 휴식을 취한 뒤 이탈리아와 잉글랜드의 경기를 관전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상대가 잉글랜드로 결정되고 나서 그에 대한 대비를 시작했다. 훈련도 잉글랜드가 주로 사용하는 포메이션과 전술에 맞추어 진행했고 비디오 분석을 통해 상대의 파악에 힘썼다.
"얘기가 그렇게 되나요? 뭐...근데 그게 사실이에요. 딱히 과장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네요."
함께 모여 잉글랜드 대표팀에 대한 영상 분석을 진행하는 독일 대표팀 선수들, 그들이 가장 중점적으로 보고 있는 인물은 역시나 대회 득점왕 후보 0순위, 데이빗 장이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그와 소속팀이 같은 마르코 로이스에게 질문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거야 그렇겠지. 니가 뻥을 칠리도 없으니까. 그나저나 진짜 골치 아픈 녀석이네."
머리가 아픈 듯 인상을 찌푸리는 필립 람, 그는 독일 대표팀의 주장이자 수비의 핵심이었다. 그런 만큼 다른 포지션의 선수들보다 데이빗 장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원하고 있었다. 마르코 로이스는 어쩌겠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메시하고 호날두하고도 경기를 치러봤지만...데이빗이 그들보다 떨어진다고 느낀 적은 없어요. 물론 그 친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없는 건 아닌데..."
"그거라도 이야기해봐. 사소한 거라도 그게 실마리가 될 지 누가 알아?"
재촉하는 노이어 골키퍼, 마르코 로이스는 '진짜 별 거 아닌데'라고 중얼거리며 대답했다.
"다들 알고 있는 내용이에요. 호날두에 비해서는 파워가 좀 떨어진다는 점, 하지만 호날두보다 민첩하죠. 메시에 비해서 바디 밸런스가 조금 떨어지긴 하는데...이건 메시가 비정상적인 거지 데이빗이 절대 밸런스가 나빠서 픽픽 자빠지는 수준은 아니라는 거 기억해 주세요."
"그런 만큼 그가 선발 출장하는 경기에서는 공중 볼이 그에게 투입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언제나 발 밑으로 깔아 주거나 공간을 향해 달리게 하는 패스를 주곤 하는데...이건 다들 알고 있잖아요?"
말을 마치고 한숨을 돌리는 로이스, 그리고 한 가지 더 첨언한다.
"아, 그가 파워가 좀 부족하다고, 밸런스가 메시보다 조금 떨어진다고 해서 몸싸움으로 쉽게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그리 나약하게 자빠지는 친구도 아닐 뿐더러...어중간한 바디체크는 그냥 피해버리거든요. 이건 직접 겪어 봐야 아는데...민첩성이 정말 사람 같지가 않아요. 리버풀 수비수들이 연습하다보면 가끔 유령을 상대하는 느낌이라고 하소연할 정도니까요."
로이스의 설명이 끝나자 람이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약점을 이야기해달랬더니 어째 장점을 들은 기분인데...내 착각인가?"
그 말에 민망한듯 머리를 긁적이는 로이스, 하지만 그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무책임한 소리를 늘어 놓는 것 보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게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어쩔 수 없잖아요. 애초에 세계에서 손 꼽히는 공격수인데 그렇게 쉽게 막을 수 있을리 없잖아요. 그래도 람 씨를 비롯해서 다른 분들이라면 승산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전에 챔피언스 리그에서 알레산드로 네스타가 그 친구를 완벽하게 셧아웃 시켜버렸잖아? 그때는 어땠는데?"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상성이 안 맞았던 건지 잘 모르겠어요. 근데 그 사람은 메시도 막아 냈으니 상성이라기보다는..."
"움직임을 읽었다는 거겠지. 일단 그때의 영상을 좀 구해달라고 이야기해 봐야겠어. 어쨌든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이대로 이야기해봐야 결론이 나지 않겠다고 느꼈는지 람이 먼저 일어선다.
"지금 구하러 가는 거에요?"
"그래. 저 친구를 막지 못하면 결승행을 장담할 수 없잖아. 그리고 난 저 친구의 쇼케이스에 강제로 참여하고 싶은 생각은 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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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 대회 파트는 10편~13편 정도로 끝낼 생각이었는데
-...음
-뭐
-이제 준결승이니 곧 끝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