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Answer-286화 (286/346)

00286      =========================================================================

"저래 봤자야. 다들 알잖아? 어차피 좀 있으면 데이빗이 시원하게 골 때려 박고 끝날 거야."

"그래. 그동안 너무 초전박살을 내놓았으니 우리가 긴장감이 좀 풀어졌다고 오늘 좀 조여 주네."

"아까 루니하고 맞춘 건 진짜 아까웠는데, 시발 솔직히 그거 동일 선상 아니었어?"

"그것도 아까웠는데 마지막에 데이빗의 슈팅이 수비 발 맞고 굴절되서 들어갈 뻔한 것도 진짜 아까웠지. 한 1m만 안쪽으로 튕겼으면 그대로 들어가는 건데 말이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팬들, 그들은 골이 들어가진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자국 팀의 경기력에 만족한 모습이었다. 어쨌거나 경기 주도권을 쥐고 있는 쪽은 잉글랜드였으니 말이다.

"제임스 씨는요?"

화장실을 다녀온 에리카가 제임스가 자리를 비운 것을 보고 묻는다.

"잠깐 전화한다고 나갔어요. 여긴 아무래도 좀 시끄러우니까."

"안 쪽도 시끄럽긴 비슷하던데요."

"그래도 좀 낫겠지요."

그것도 그렇겠다며 에리카가 자리에 앉았다. 전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가는 휴식 시간, 그라운드에서는 몇 몇 후보 선수들이 몸을 풀고 있었다. 당연히 그들 중에 데이빗은 없었다. 전반을 모두 소화한 그는 지금 라커룸에서 체력 회복을 위해 휴식을 취하고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데이빗 녀석의 고집이 조금 마음에 안들진 않아요?"

"네?"

티티의 질문에 에리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사실 유로 대회야 데이빗 본인이 빠지겠다고 할 수 있는 대회가 아니니까 그렇다고 해도...올림픽은 아니잖아요. 7월 말부터 다시 대회에 참여하려면 약 3주에서 한 달 정도, 꼼짝 못하고 휴식을 취해야 하는데."

티티의 말은 평소 볼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은 연인 관계에서, 여름 휴가 기간이 사라진다는 것이 섭섭하지 않냐는 말이었다. 데이빗을 통해 그녀가 이해해 주었다고는 들었지만 본인에게 직접 듣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아, 그 말씀이었어요? 섭섭한 마음이 아예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에리카도 여자다. 아니 여자이기 이전에 사람이라면, 소중한 사람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이 당연했다.

"그래도 본인이 하고 싶어하니까, 미안해 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리고..."

표정에 살짝 행복이 깃든다.

"나중에...저와 자신의 2세에게 자랑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어요. 금메달을 보여주면서 아빠가 이렇게 멋진 사람이다 라고 말하고 싶대요. 그런 말을 들었는데 어떻게 말릴 수 있겠어요?"

"그렇군요."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티티였다. 그러다가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저기 그런데..."

"네?"

"그렇게 말씀하신다는 건 데이빗하고..."

"...아..."

그제야 자신이 한 말이 떠올랐는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이는 에리카였다. 티티는 그 모습도 마음에 드는지 밝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저는 데이빗하고 켈리 씨가 함께 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어요."

"...그래도...데이빗은 맨날 얼렁뚱땅..."

아마 프로포즈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티티도 할 말이 없었다. 요령없는 친구라며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데이빗을 모두 이해해 달라는 말은 아닙니다. 원체 요령이 없는 친구라서요. 하지만 그만큼 순수하고 변하지 않는 녀석입니다."

"그건 알고 있어요."

머뭇거림 없이 대답하는 에리카, 티티는 미소를 더욱 짙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 친구라서 너무 편을 드는 것 같기도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 진심이라고 말이에요."

"알고 있어요."

살풋 웃으며 그만 말해도 된다는 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프로포즈는 제가 어떻게든 조언을 해보겠습니다만, 저도 경험이 없는 지라."

한 마디를 더 붙인 티티의 모습에 에리카가 빵 터져 버렸다.

"새뮤얼 씨는 여자들이 아주 좋아할 것 같은데 아직 없나요? 제가 주변에 아는 사람이라도 소개시켜 드릴까요?"

"저보다는 제임스 먼저 부탁드립니다."

요즘 여자 만나고 싶다고 계속 투덜거려서 죽겠네요 라고 덧 붙였다.

"뭘 먼저 부탁한다는 거야? 너 내 욕했지?"

볼 일을 보고 왔는지 제임스가 뚱한 표정으로 티티를 바라본다. 에리카는 웃으며 그런게 아니라 설명했다.

"그런거 아니에요. 아, 제임스 씨. 혹시 아는 사람 한 분 소개시켜 드릴까요?"

굳이 욕을 했네 안했네 말할 필요도 없었다. 제임스는 콧김까지 뿜으며 얼굴을 들이 밀었다. 격한 반응에 에리카가 흠칫 놀랄 정도로 말이다.

"정말이죠? 거짓말 아니죠? 말할 필요도 없죠! 꼭 부탁합니다!"

"아...네, 네."

더듬더듬 대답하자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하는 제임스, 그리고 뭐라뭐라 외치고 있는데 에리카로서는 조금 알아 듣기 힘들었다.

"진정 해. 켈리 씨가 곤란해 하잖아."

티티가 나서서 말린 뒤에야 수습이 되었다. 제임스는 멋적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꼭 부탁한다며 신신당부했다. 그러는 사이 양 팀의 선수들이 입장을 시작했다.

"아니 우리가 골을 넣기 싫어서 안 넣은 것도 아니고. 재수가 좀 없었을 뿐인데...하여간 망할 노인네 마음에 안 들어."

루니가 투덜거리며 센터 서클에 자리 잡았다. 방금 전 라커룸에서 감독에게 한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건 데이빗 역시 마찬가지였다. 골을 넣지 못한 책임은 자신에게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게요. 같은 말을 해도 좀 좋게 할 수 있을텐데."

달글리시 감독과는 달랐다. 그는 언제나 자신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여 주었다. 전반에 조금 부진하다고 해도 질책보다는 격려로 힘을 실어 주었고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 주었다. 하지만 카펠로 감독은 조금 달랐다. 심지어 오늘 경기에서 루니나 자신이 그리 부진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조금 운이 부족해서, 상대의 수비가 예상외로 끈질겨서 골을 기록하지 못했을 뿐인데 대놓고 좀 더 집중하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당연히 기분이 좋지 못했고 데이빗은 혀를 찼다.

"내가 더러워서 빨리 골을 넣어야지."

침을 뱉으며 투덜거리는 루니, 데이빗은 갑자기 루니의 소속 팀 감독, 알렉스 퍼거슨이 생각났다.

"저기 웨인, 그러고보니까 웨인의 팀 감독 있잖아요."

"누구...아, 영감님 말이야?"

"...영감님이 알렉스 퍼거슨 감독님을 말하는 거라면 맞네요. 아무튼 그 분도 성질 불 같기로 유명하지 않아요?"

그제야 데이빗이 하고자 하는 말을 눈치 챈 루니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거야 그렇지. 가끔 자기 마음에 안드는 플레이를 하면 코 앞까지 얼굴을 들이밀고 소리를 지르는데, 너도 알잖아. 그 영감님의 헤어 드라이 트리트먼트. 유명하지. 안 그래?"

언론을 통해 익히 알려진 퍼거슨 감독의 시그니처 무브(?)를 말하는 모습, 데이빗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뜩이나 머리 숱도 적은데 말이야...아, 그건 그렇고, 아무튼 그 영감님이 불 같은 건 맞는데 의외로 세심하고 자상한 면이 있어.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절대 선수를 무시하거나 질책하지 않아. 오히려 격려를 하는 경우가 많고, 가끔은 약간 도발을 하는데 그게 좀 더 효과가 좋았던 거 같아."

"도발이요?"

데이빗의 반문에 루니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어, 사실 뻔한 수작이긴 한데, 그 영감님이 원체 여우같아야 말이지. 안 넘어가고 배길 수가 없다니까? 다들 발끈해서 달려드는데 그게 딱 그 영감이 노린 거거든. 근데 기가 막히게 효과가 좋다니까. 나도 겪어 봤지만...글쎄 나쁜 기분은 아니었어."

대충 어떤 느낌인지 감이 잡힌다며 데이빗이 웃었다. 세계적인 명장이라고 하는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아무튼 우리 영감님하고 저 망할 노인네하고 비교하지는 말아줘. 뭐...나도 영감님하고 싸운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거든. 따를 만한 보스야. 근데 사실 지금 감독은 잘 모르겠어."

"나도 그래요. 그래도 뭐 감독인데 따라야죠. 어쨌든 이기긴 해야하니까요."

"그래. 저 양반 좋으라고 뛰는 건 아니니까."

'그러고 보니...'

후반전이 시작되고 데이빗은 이탈리아 진영 한 가운데에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에 생각이 미쳤고 자신의 상념의 원인이 된 인물에게 시선을 던졌다. 타이밍 좋게 스콧 파커에게 공을 빼앗기고 있는 마리오 발로텔리의 모습, 데이빗은 절로 실소를 머금었다.

'그러게 연습 좀 하지.'

자신있게 떠벌린 것치고는 수준 이하의 플레이였다. 힐끗 근처에 있던 루니에게 시선을 주니 상당히 고소해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아까 발로텔리의 미친 언행에 상당히 열이 받았던 루니였던지라 진심으로 통쾌해 하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파커 씨가 공을 빼냈으니까...'

파커로부터 자신까지 한 번에 이어지는 패스는 기대하기 힘들다. 하라면야 하겠지만 주변에 더 좋은 패서가 있는 상황에서 굳이 그에게 롱 패스를 주문할 필요는 없다. 데이빗은 빠르게 주변 파악을 마쳤다.

자신의 현재 위치, 그리고 마크맨의 존재, 앞 선 수비와 패스 경로를 파악하고 가장 효과적인 공격로를 찾는 작업, 물론 동료의 움직임과 위치 또한 시시각각 업데이트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결정을 내린 데이빗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비에 가담하지 않고 기다린다고 해서 가만히 서서 패스를 받는 건 아니었다. 그들이 주기 좋게, 그리고 더 나은 찬스를 만들 수 있는 자리를 찾아 끊임없이 움직여야 했다.

"패스!!"

스콧 파커로부터 스티븐 제라드를 거친 공이 왼쪽 사이드의 스튜어트 다우닝에게 전달되자 슬슬 시동을 걸고 있던 다리에 힘을 주며 박차고 달렸다.

'가만 두면 또 사이드 돌파 이후에 크로스를 올릴 테니까...'

다우닝의 크로스 정확성이야 말할 것도 없었지만 자신이 뛸 때는 좀 자제해 줬으면 싶었다. 다행히 다우닝은 자신의 콜을 놓치지 않았고 적절한 땅볼 패스를 붙여 주었다.

'생각보다 반응이 빠른데.'

원래 계획대로라면 곧바로 드리블 돌파를 시도할 생각이었다. 자신이 한 명을 제친 뒤 상황을 보고 계속 치고 들어가거나 루니와 호흡을 맞춰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각 이상으로 수비가 타이트했다.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라고 한다면 못할 것도 없지만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역시, 캡틴. 나이스 무브.'

타이밍 좋게 제라드가 라인을 올리며 접근해 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데이빗은 짧게 공을 뒤로 내주고 옆으로 움직였다. 제라드라면 지체없이 다시 리턴 패스를 이어 주리라.

"데이빗!"

강하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다이렉트 리턴을 건네 오는 제라드의 모습, 한 번의 패스 & 무브로 인해 마크맨과의 간격이 조금이나마 여유가 생겼다. 이 정도라면 이제 돌파하기가 2초 전보다 훨씬 수월하다. 데이빗은 패스를 그대로 흘리며 주력을 살려 달리기 시작했다.

테크닉을 생략한 단순 스피드 경쟁, 데이빗의 전담 마크맨 레오나르도 보누치가 그리 느린 편은 아니었지만 단순 스피드 경쟁으로는 데이빗의 상대가 되기 힘들었다. 어깨를 걸기 위해 애써 보지만 공을 흘림과 동시에 살짝 돌아가는 움직임을 보인 데이빗으로 인해 그것도 힘들었다. 물론 직선적인 경로 대신 조금 돌아가는 움직임을 보였기에 거리 상으로 약간 손해를 보긴 했지만 보누치와의 스피드 격차는 그 정도 차이는 메꾸고도 남았다.

"빌어먹을...!"

보누치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죽어라 쫓아가고 있지만 상대 공격수와의 격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아니, 조금씩 더 벌어지고 있는 상황.

만약 자신을 앞에 두고 테크닉을 선보였다면 이렇게 휘둘리지는 않았으리라. 따라가기 힘든 상황이 왔다면 굳이 쫓아가는데 중점을 두지 않고 전반에 그랬던 것처럼 파울로 끊어 버렸을 테니까. 전반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전반과 상황이 달랐다. 상대의 지금 공격은 투 톱만을 이용한 속공이 아니었다. 미드필더들이 올라오며 공간이 벌어진 상황, 그 틈을 노려 단순한 스피드 경쟁을 걸어 온 상대 공격수의 판단은 정말 얄미웠다. 이제 자신이 저 공격수를 막기 위해서는 백 태클 밖에 답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후반 5분 경인데 잘못해서 레드카드라도 받는다면? 그리고 이미 페널티 박스 근처였다. 잉글랜드에는 꽤 괜찮은 프리키커가 즐비했다. 보누치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데이빗이 페널티 박스로 진입했다.

'좋아, 이제 웨인에게 패스를...엇?!'

데이빗은 굳이 자신이 직접 때릴 생각이 아니었다. 보누치를 제칠 때 조금 빙 돌아가는 움직임을 취하는 바람에 슈팅 코스가 조금 좁아졌다. 물론 때릴 수 있는 각도였고 아예 넣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더 좋은 위치에 동료가 있다면 달랐다. 루니에게 라스트 패스를 준다면 자신이 때리는 것보다 훨씬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그래서 힐끔 시선을 중앙으로 준 뒤 패스를 시도하려 할 때 누군가 자신을 덮쳐 오는 것을 느꼈다.

"우왓!!!"

그러는 와중에도 데이빗은 몸을 최대한 가누며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애썼다. 다행히 발을 채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더 이상 플레이를 이끌어 나가는 것은 무리였다. 언제나 최대한 플레이를 이어나가고자 하는 데이빗이었지만 지금은 무리였다. 그렇다면 파울을 유도하는 게 나았다. 사실 파울이 맞기도 했고 말이다. 축구가 미식축구라면 모르되 지금의 플레이는 몸싸움 수준을 넘어섰으니 말이다. 데이빗은 그대로 그라운드 위로 넘어졌고 심판의 휘슬이 울렸다.

"페널티야!!!"

루니가 양 팔을 번쩍 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 보았기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느꼈다. 옆에서 몸을 부딪혔다기 보다는 그대로 밀어 버리는 플레이였다. 부상의 위험도 상당히 큰 플레이였다. 루니는 인상을 굳힌 채 거친 플레이를 보인 이그나치오 아바테에게 다가가 밀쳤다. 아바테도 가만히 있지 않았고 루니와 대치했고 양 팀 선수들이 몰려 들었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험악해 지자 재빠르게 다가온 심판이 휘슬을 불며 선수들을 뜯어 말렸다.

"심판! 이건 명백한 악의적인 파울입니다. 페널티 킥은 당연하고 카드, 아니 퇴장을 줘야 해요!"

제라드가 심판을 향해 어필을 계속했다. 물론 이탈리아의 주장 부폰은 정당한 플레이였고 시뮬레이션 액션이라고 강조했다. 심판은 그들에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낸 뒤 침착하게 페널티 스폿을 향해 손을 가리켰다.

============================ 작품 후기 ============================

-저도 소개팅 좀

-이제 선인가...

-마지막으로 여자친구가 있었을때가 언제였더라...

-아직 10년은 안됐네요!

-ㅠ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