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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진짜 미친 자식이네."
라커룸으로 돌아온 선수들, 조가 달라 이쪽 상황을 알지 못했던 다른 선수들은 이야기를 전해 듣고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그와 같은 팀에 소속되어 있는 졸리온 레스콧이나 조 하트는 머리가 아픈 표정을 지었지만 말이다.
"저 자식은 조용한 날이 없네."
"내 말이. 진짜 저 놈은 정신과 치료를 받아 봐야 된다니까."
맨체스터 시티에서도 하루가 멀다하고 가십거리를 만들어 내는 친구였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국가대표 경기라고 해서 다를 건 없었다.
"뭐, 신경쓰지마. 잘하긴 해도 떠벌리는 것만큼 잘하는 건 아니니까. 오늘 경기에서 탈탈 털어주면 좀 조용해 지겠지."
"...딱히 그럴 것 같진 않지만 어쨌든 털어주자는 데는 동감."
레스콧은 그가 경기에 진다고 해서 그다지 바뀔 거라 기대하진 않는 듯 했다. 그래도 같은 팀이라 그동안 속이 썩었던 것을 이번 경기에서 좀 털어내고 싶은 눈치였다. 조 하트도 비슷해 보였고 말이다. 조용히 있던 스콧 파커도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그 망할 자식이 올 해 내 얼굴을 발로 밟았었지. 오늘 엉망으로 만들어 주겠어."
'...워 진정해 스콧. 그래도 너무 지나친 플레이는 안된다고."
"똑같이 갚아주겠다는 건 아니야. 그래도 쉽게 넘어갈 생각도 없지. 걱정하지마. 카드는 조심할테니까."
"...적당히 해."
어쨌거나 파울은 하겠다는 말이었기에 옆에 있던 동료는 식은 땀을 흘리며 조심스럽게 다독일 뿐이었다. 어쩌다보니 분위기가 자꾸 발로텔리를 의식하는 쪽으로 흘렀기에 제라드가 한숨을 쉬며 나섰다.
"이봐, 다들 의욕적인 건 좋은데, 우린 지금 마리오 발로텔리 녀석하고 태그 매치를 하는게 아니야."
그 말에 선수들은 자신들이 지나치게 발로텔리를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 챘다.
"그 정신 나간 녀석을 털어 버리고 싶은 건 나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우리 상대는 어디까지나 이탈리아라는 걸 명심해."
"그래. 다들 그 친구를 너무 신경쓰지 말자고. 오늘 이탈리아를 떨어 뜨려 버리면 한동안 볼 일도 없는데 말이야. 안 그래?"
애슐리 콜이 지원 사격하듯 나서자 한결 분위기가 괜찮아졌다.
"오늘 이기면 4강 상대는 독일이야. 지난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한 친구들도 있겠지만 다들 기억하고 있을거야. 그때의 말도 안되는 오심때문에 우리는 경기를 망쳤어. 그걸 이제 뒤집어 줄 때야."
물론 오심을 제외하더라도 당시 잉글랜드의 경기력은 형편없었지만 제라드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지금은 사실을 말하는 것보다 사기를 끌어 올리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 이탈리아도 밟고 독일도 떨어 뜨리면 우리도 우승할 자격이 있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 되겠지. 물론 눈 앞의 이탈리아 녀석들부터."
선수들은 평소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경기를 준비했다. 이제 드디어 8강의 시작이다.
잉글랜드 베스트 11
1. 조 하트 (GK)
2. 글렌 존슨
3. 애슐리 콜
4. 스티븐 제라드 (C)
6. 존 테리
7. 데이빗 장
10. 웨인 루니
15. 졸리온 레스콧
16. 제임스 밀너
17. 스콧 파커
19. 스튜어트 다우닝
이탈리아 베스트 11
1. 지안루이지 부폰 (GK)
2. 페데리코 발자레티
7. 이그나치오 아바테
8.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
9. 마리오 발로텔리
10. 안토니오 카사노
15. 안드레아 바르잘리
16. 다니엘레 데 로시
18. 리카르도 몬톨리보
19. 레오나르도 보누치
21. 안드레아 피를로
"꼴통 듀오가 투 톱이네."
슬쩍 침을 뱉으며 루니가 중얼거렸다.
"꼴통 듀오?"
데이빗이 고개를 갸웃하자 루니가 턱으로 앞을 가리켰다.
"저기 저 둘 있잖아. 안토니오 카사노라는 양반이랑 저 정신나간 자식 말이야. 사고 치는 걸로는 아주 유명한 놈들이잖아. 몰라?"
"저 발로텔리라는 친구야 잘 알고 있지만...카사노 저 사람도 그랬어요? 들은 것 같기도 하고..."
발로텔리야 익히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리저브에서 퍼스트 팀으로 올라온 이후에도 정말 전설적인(?) 사고를 치지 않았던가. 가끔은 기사를 보면서 눈을 의심할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좀 전에 우리 연습하는데 와서 했던 말도 기사로 나가면 진짜 웃기겠는데.'
피식 웃음이 흘러 나왔다. 루니는 그 사이에 설명을 계속하고 있었다.
"카사노 저 양반은 그래도 요샌 좀 얌전하지. 결혼한 다음에는 확실히 철이 들었달까. 근데 옆에 있는 저 미친 망아지 새끼는...응? 뭔데? 왜 그런 눈으로 쳐다봐?"
"아뇨 아무것도..."
데이빗의 뚱한 눈빛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루니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린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루니도 꼴통 짓을 한 것으로 치면 어디가서 절대 꿀리지(?) 않는다. 그 사실을 알아 챘기에 루니가 이렇게 휘파람을 불며 딴청을 피우기 시작한 것이다.
"자자 집중하자. 이제 곧 경기 시작이야."
서둘러 마무리하는 모습, 데이빗은 픽 웃으며 넘겼다. 어쨌거나 저 유쾌한 악동은 지금 자신의 파트너였다.
"그러죠. 오늘도 잘 부탁해요."
그리고 시선을 다시 앞으로 돌렸다. 슬슬 주심의 킥 오프 휘슬이 울릴 것이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집중력을 끌어 올리는 데이빗, 그리고 센터 서클에서 양 허리에 손을 올리고 서 있던 마리오 발로텔리와 눈이 마주쳤다.
빵-
'저게 뭐하자는 거야...'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향해 총을 쏘는 시늉을 하는 발로텔리의 모습에 집중력이 흔들릴 뻔 했다. 옆의 루니는 눈을 감고 뭐라뭐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자세히 들리지는 않았지만 대충 죽인다 죽여버리겠다 X자식 등등...욕설로 마음을 추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웨인도 베테랑이니까.'
저렇게라도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이 오히려 믿을만 했다. 저렇게 털지 않고 경기에서 거친 플레이를 일삼아서야 곤란하니 말이다.
'그럼...이제 시작이네.'
휘슬이 울렸다. 데이빗과 루니는 곧 바로 전방을 향해 뛰어 나가며 체크를 시작했다.
"늦지는 않았죠?"
"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피곤하겠어요."
"비행기 타고 왔는데 피곤은요. 휴우...일찍 오고 싶었는데 그놈의 시험때문에..."
미리 예약해 놓은 자리에 가방을 대충 던져 놓으며 에리카가 한숨을 쉬었다. 제임스는 씩 웃으며 그녀에게 물을 건네 주었고 에리카는 밝은 표정으로 감사를 표했다.
"고마워요. 안 그래도 급하게 오느라 목이 말랐거든요."
"천천히 마셔요. 그나저나 진짜 빨리 오셨네. 호텔 체크인도 안하고 바로 경기장으로 뛰어 온 거죠?"
제임스의 질문에 에리카가 물을 마시는 와중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물 병에서 입을 떼고 한숨을 돌린 뒤 말을 이었다.
"네, 공항에서 택시타고 바로 여기로 왔어요."
"그러게 저나 제임스가 공항으로 마중 나가겠다고 말씀 드려도..."
모르는 사이도 아니었고 가장 친한 친구의 애인이었다. 공항에서 이곳까지 픽업해 오는 일이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극구 사양하는 에리카로 인해 결국 먼저 경기장에 와 있었던 두 사람이었다.
"에이, 혹시 비행 사정으로 연착되거나 할 수도 있잖아요. 만약 그러면 데이빗이 뛰는 걸 아무도 지켜보지 못할 수도 있는데, 그럼 데이빗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 되잖아요."
"하아, 알겠습니다. 그래도 켈리 씨의 그런 마음은 데이빗에게 큰 선물이 될 겁니다."
티티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마음 씀씀이에 감사했다. 에리카는 멋적은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시선을 그라운드로 돌렸다.
"이제 전반 10분이네요. 데이빗은 별 일 없었죠?"
"네, 문제 없습니다. 몸 상태도 괜찮아 보이네요."
"이기는 것도 좋고, 데이빗이 골을 넣는 것도 좋지만...다치지만 않았으면 좋겠어요."
축구 선수를 남자 친구로 둔 이후, 예전처럼 경기를 그저 즐길 수 만은 없게 된 그녀였다. 가끔 거친 태클을 당해 그라운드 위로 쓰러지는 모습이라도 볼라치면 심장이 멎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랬기에 그의 멋진 활약에 즐거워하면서도 언제나 마음을 졸이며 지켜보아야 했다. 그것은 티티나 제임스도 마찬가지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데이빗은 강한 친구입니다."
"그래요. 저 녀석, 보기에는 좀 약해보여도 은근히 강골이라니까요? 편하게 보고 있으면 저 머저리 같은 이탈리아 녀석들을 제대로 엿먹인...아니 멋지게 제치고 골을 넣을 겁니다. 물론 경기가 끝나고 아주 건강히 돌아올 겁니다."
"그래야죠. 아니, 반드시 그럴거에요."
"오! 데이빗이 공을 잡았어!"
제임스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것처럼 잉글랜드 응원석이 뜨겁게 달아 오르기 시작했다. 공을 잡았을 때 가장 기대가 되는 선수, 그 선수에게 패스가 연결되었으니 자연스레 흥분도가 높아졌다. 물론 반대 편의 이탈리아 관중들은 야유를 시작했지만 말이다.
[가볍게 제쳐냅니다! 다니엘레 데 로시가 뒤쪽에서 달려 들지만 너무나 간단히 피해버립니다! 저 선수는 뒤에도 눈이 달려 있나요?]
[그리고 곧바로 웨인 루니에게 스루 패스! 찬스입니...!! 아...오프 사이드입니다. 정말 간 발의 차로 오프사이드에 걸리고 말았네요. 리플레이로 다시 봐도 정말 아쉽습니다. 고작 50cm 정도가 아닐까요? 이 정도면 심판이 그냥 넘어가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요.]
[그렇네요. 하지만 정말 데이빗 장 선수의 시야는 대단하군요. 뒤에서 달려드는 선수를 보지도 않은채 피해내고 곧바로 쇄도해 들어가는 아군 공격수에게 정확한 패스를 이어주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만큼 주변 상황에 대한 체크가 빠르다는 이야기입니다. 감으로 할 수 있는 플레이가 아니죠. 가끔 데이빗 장 선수가 지나치게 공을 기다리고, 움직이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소리가 있습니다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확실히 그렇지요. 수비 가담이 적은 것은 팀 전술에 따른 부분이니까요.]
[그것도 그렇습니다만, 저 선수는 공을 받기 전, 언제나 주변 상황을 체크합니다. 한 시도 고개가 가만히 있질 않아요. 끊임없이 주변을 파악하고 정보를 수집합니다. 그런 작업을 소홀히 하지 않기에 공을 잡았을 때 엄청난 폭발력을 보여줄 수 있는 겁니다. 단순히 운동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기술이 훌륭하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재주가 아닙니다.]
[그렇군요. 오프 더 볼 무브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곤 합니다만, 이런 것도 그와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쉽네."
데이빗은 가볍게 고개를 흔들며 아쉬움을 털어 냈다. 루니도 아쉬워 하며 자신에게 엄지를 들어 보이는 모습이다. 씩 웃으며 가볍게 박수를 치며 답례한다.
"휴우, X될 뻔했네."
자신의 뒤에서 달려들었던 데 로시가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탈리아 어라서 제대로 알아 듣지는 못했지만 대충 어떤 말을 하는 지 알 것 같았다. 확실히 그의 견제가 아니었다면 오프사이드에 걸릴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를 피하느라 반 회전을 하는 바람에 불필요한 컨트롤이 이어졌고 아주 약간, 정확한 타이밍에서 아주 약간 지체되었다. 그 차이가 바로 결정적인 찬스와 오프사이드를 가르는 분기점이 되고 말았다.
"넌 임마, 뒤에도 눈이 달렸냐? 아, 우리나라 말 모르는 구나."
데 로시가 뭐라고 말하는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알아 듣지 못하니 그저 픽 웃고 자신의 자리를 찾아 갔다.
데이빗의 한 차례, 번뜩이는 패스로 큰 위기를 맞이할 뻔했던 이탈리아였지만 전체적인 수비 조직력이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 원 플레이가 경각심을 다시 일깨웠는지 조직력을 재정비하고 그들이 쉽게 운신하지 못하도록 압박했다.
찬스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데이빗의 개인 돌파, 그리고 루니와의 콤비 플레이를 통해 괜찮은 찬스를 몇 번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하긴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운도 조금 따르지 않았지만 이탈리아 수비들은 끈질겼다. 마지막까지 데이빗, 그리고 루니가 쉽게 슈팅을 때리도록 가만 두지 않았다. 그런 집념어린 수비가 마지막 순간에 임팩트를 방해했고 결국 득점에는 실패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하여간...진짜 전통인가."
괜히 수비의 이탈리아라고 하는 게 아닌 것 같았다. 파울로 말디니, 파비오 칸나바로, 알레산드로 네스타 등의 전설들이 대표팀에서 은퇴한 뒤로 그 명성이 많이 퇴색되었다고 하지만 충분히 답답한 수비였다.
삑 삐익-
그리고 울리는 전반 종료 휘슬, 데이빗은 루니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라커룸으로 향했다. 골을 넣지 못했지만 조급한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아직 경기의 절반이 통째로 남아 있는데다 아예 공략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데이빗은 후반을 기약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 작품 후기 ============================
-대충 열흘 뒤에 여행을 시작할 거 같은데요
-비축분을 쌓기가 어렵네요
-여행 전까지 하루 2연재하고 한동안 쉬는 것 보다
-하루 한 편 씩 올리고 연재 공백을 최소화하는 게 나을 거 같습니다
-어찌보면 조삼모사 같긴 한데...
-현실적으로 그게 더 나을 거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