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Answer-279화 (279/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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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가 흐름을 잡았다. 웨인 루니와 데이빗 장의 환상적인 콤비 플레이로 선제 득점에 성공한 이후, 기세가 살아난 잉글랜드는 자신감 있게 경기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물론 프랑스 또한 아예 허수아비는 아니었다. 사미르 나스리를 필두로 괜찮은 공격을 몇 차례 전개시키곤 했다. 하지만 복귀한 존 테리의 존재감이 상당했다. 그는 자신이 왜 세계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지 증명이라도 하듯, 완벽한 라인 통솔 능력을 보이며 프랑스의 공격을 무력화 시켰다. 적절한 챌린지 & 커버, 그리고 오프사이드 트랩을 활용하여 그들의 공격을 무위로 돌렸다.

최종 라인 뒤쪽 공간을 노리기 힘들게 되자 프랑스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사이드 돌파, 다른 하나는 중거리 슈팅 시도였다. 하지만 사이드 돌파에 이은 크로스 시도는 잉글랜드 센터백들이 공중전에 강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무모함에 가까웠고, 중거리 슈팅은 잉글랜드 미드필더들의 견제에 의해 제대로 슈팅 코스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어거지로 때리는 것에 가까웠다. 이런 슈팅은 대부분 형편없이 빗나가거나 조 하트 골키퍼가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었기에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수비가 안정된 모습을 보이자 공격도 더욱 살아나기 시작했다. 알렉스 옥슬레이드 체임벌린은 아직 덜 여문 선수임에는 분명하지만 본인이 왜 잉글랜드에서 손 꼽히는 재능인지 널리 알리고 있었다. 상대의 오른쪽 사이드를 자신감있게 돌파하며 활기를 불어 넣었다. 비록 이후 패스 타이밍이 조금 늦는 모습이었지만 어린 선수임을 감안하면 충분히 괜찮은 모습이었다.

"헤이 알렉스. 조금만 더 빠르게 패스해줘."

물론 루니는 그 약간의 아쉬움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방금 전의 돌파에서도 한 명을 제친 뒤 바로 중앙 쪽의 자신이나 데이빗에게 연결시켜 주었다면 더 나은 찬스를 잡을 수 있었을 텐데 체임벌린이 계속 몰고가는 바람에 템포가 어긋나 버렸다. 루니의 지시에 체임벌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로서는 루니 정도 되는 선수의 지시를 무시하기 힘들었으니 말이다.

'저쪽은 나스리? 저 선수 빼고는 딱히 제 몫을 해주는 선수가 없는 거 같네.'

데이빗은 공을 기다리며 그런 생각을 했다. 사실 프랑스의 공격진은 화려했다. 프랭크 리베리, 카림 벤제마, 플로랑 말루다에 사미르 나스리까지. 이름 값만 놓고 보면 잉글랜드에 전혀 밀리지 않았다. 아니, 2선 공격수의 역량만 놓고 본다면 잉글랜드를 압도했다. 그만큼 좋은 선수들이 포진해 있는 것이 프랑스였다.

하지만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아무리 좋은 선수를 모아 놨다고 해도 그들이 한 팀으로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지금의 프랑스가 그랬다. 그들은 마치 고급 식재료를 단순히 모아 놓은, 멋진 요리가 되지 못한 모습과 비슷했다.

'그럼 걱정없이 공격에만 전념하면 되겠지.'

원래 그다지 수비에 가담하지 않는 주제에 그런 뻔뻔한(?) 감상을 떠올리는 데이빗이었다. 슬슬 공이 넘어올 것 같았다. 데이빗은 호흡을 고르고 박차고 나갈 준비를 시작했다.

"그래! 뚫어버려! 멍청한 프랑스 놈들은 니 상대가 아냐!"

관중석에서 누구보다도 열렬하게 잉글랜드를, 아니 데이빗을 응원하고 있는 제임스였다. 그는 제라드의 패스가 데이빗에게 연결되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티티도 딱히 말릴 생각은 없었다. 일어나지 않았을 뿐이지 그 또한 열성적으로 응원하고 있었으니까.

"와우! 좋아! 씨발! 다 박살 내버려!"

앞을 가로막는 마티유 드뷔시를 특유의 날렵한 방향 전환 동작으로 떨궈 낸 데이빗의 모습에 제임스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 진다. 그리고 멕세스가 커버를 나올 때 가볍게 패스를 시도하는 데이빗. 물론 패스의 수취인은 웨인 루니였다. 데이빗의 돌파에 발 맞춰 쇄도하던 그는 순간적으로 뒷 공간으로 파고 들었고 자신이 기대한 대로 패스를 이어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두 번째 골을 위한 슈팅을 날리려던 찰라, 간발의 차로 저지당했다. 같은 팀 동료 파트리스 에브라가 몸을 날리는 태클로 공을 먼저 걷어 낸 것이다.

"아오! 그냥 혼자 뚫고 들어 가지!"

제임스가 신경질 적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티티도 방금 전의 장면에서 골을 예감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가 무위로 돌아가자 탄식과 함께 다시 주저 앉았다.

"방금은 수비가 잘한 거야. 데이빗도 루니도 아주 잘했어."

그러니 너무 아쉬워 하지 말라고 친구를 달래는 티티, 제임스는 여전히 불퉁한 표정으로 투덜거릴 뿐이었다. 그 모습이 뿔난 어린애 같았기에 티티는 실소를 흘렸다.

"흥, 만약 좀 전에 데이빗이 저런 패스를 연결 받았다면 우아하게 태클을 피하고 득점했을 걸! 저 멍청한 주정뱅이는 할 수 없었지만 말이야."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끊임없이 친구에 대한 예찬을 늘어 놓는 그의 모습에 티티가 포기했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잉글랜드의 공격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에브라의 저지로 최악의 위기 상황은 면했지만 아직 상황은 완전히 종료된 것이 아니었다. 잉글랜드는 코너킥을 얻어 냈고 제임스 밀너가 킥을 준비했다. 데이빗은 페널티 박스 바깥에서 대기하며 세컨 볼을 노리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제임스 밀너의 킥이 시작되자 빠르게 페널티 박스 안 쪽으로 달려들어가기 시작했다. 옆에 마크맨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상관 없었다. 이번 코너킥은 단순히 제공권으로 승부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니어 포스트 쪽을 파고 들며 공을 잘라먹는 헤더를 성공시키는 것이 목적, 그만큼 높이 보다는 스피드가 중요했고 파워보다는 타이밍이 중요했다. 잉글랜드에서 이런 플레이에 가장 적합한 선수는 데이빗이었고 말이다.

'...킥이 너무 안쪽인데다...'

공에 가까이 접근할 수록 데이빗은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제임스 밀너의 킥이 부정확했던 것이다. 뭐 특별한 일은 아니다. 축구라고 하는 스포츠는 그 어떤 종목보다 실수가 많은 스포츠였으니까.

'너무 낮아.'

코스와 높이, 둘 모두 벗어 났다. 코스라도 멀쩡했다면 발리로 처리할 수도 있었겠지만 공이 지나치게 감기며 안쪽으로 향했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그대로 엔드라인을 벗어날 것이 분명했다. 데이빗은 조금 무책임한, 계산되지 않은 플레이를 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어차피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다면 이대로 공격이 끝나 버릴 것이 자명했으니 말이다.

공의 진행 경로보다 오히려 한 발 더 나아가는 데이빗, 그리고 공이 자신의 뒤 쪽을 통과하는 그때, 가볍게 왼발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발 뒤꿈치로 움직이는 공의 아래 부분을 정확히 차 올린다. 빠르게 날아가는 공의 아랫 부분을 정확히 차올리는 신기, 물론 데이빗이 누군가에게 전달하겠다는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플레이한 것은 아니었다. 즉흥적인 플레이였고 이대로 플레이를 끝낼 수 없다는 집념의 발로였다.

하지만 이 예상하기 힘든 단 한 번의 플레이로 프랑스 수비수들은 혼란에 빠졌다. 갑작스레 공의 궤도가 변하자 순간적으로 움직임이 멈춰 버린 것이다. 이는 그들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사람이라면 당연한 것. 그리고 잉글랜드에게는 행운이, 프랑스에게는 불운이 따랐다. 데이빗이 차 올린 공에 가장 가까이 근접한 것은 잉글랜드 선수였다.

철썩-

졸리온 레스콧은 골을 넣고도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사실 제임스 밀너의 킥이 시도된 순간 일이 어그러졌음을 알았다. 그래서 반 쯤 포기하고 뒤로 물러서고 있었는데, 데이빗을 스쳐 지나간 공이 갑자기 자신의 눈 앞에 나타났을 때는 정말 놀랐다. 축구 선수의 본능으로 그 공에 머리를 맞추긴 했지만 의도된 플레이는 아니었다. 약간 얼떨떨한 모습의 그를 일깨워 준 것은 관중석에서 터지는 열화와도 같은 함성, 그리고 자신을 덮치는 동료들의 손길이었다.

"잘했어 졸리온!"

"데이빗 이 미친 녀석! 도대체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야?"

"진짜 말이 안 나오네! 잘했다! 둘다 끝내 줬다고!"

잉글랜드 선수들도 흥분한 채 둘을 감싸고 소리를 질러 댔다. 레스콧은 하도 머리를 얻어 맞아 머리가 띵할 지경이었지만 오히려 그제서야 실감이 들었다. 조금 반응이 느리긴 했지만 큰 상관은 없었다. 레스콧은 데이빗과 강하게 포옹하며 그의 환상적인 어시스트에 감사를 표했다.

[이 장면을 보고 계신 분들은 운이 아주 좋은 분들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골이 존재할 수도 있는 건가요? 믿을 수가 없습니다!]

해설자 캐스터도 난리가 났다. 지금의 골 장면은 정말 누구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멋진 장면이었다.

[예전에 지네딘 지단 선수가, 유로 2004에서 저것과 비슷한 무브를 보여준 적이 있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데이빗 장 선수는 왼발 뒤꿈치로 처리했다는 점이고 지단 선수는 아웃 사이드로 처리했다는 차이가 있겠네요.]

[아 저도 생각이 나는 군요. 정말 멋진 플레이 였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골로 연결되지는 못했기에 아쉬움을 남겼었는데요, 오늘 데이빗 장 선수에 의해 완성되는 군요! 정말 아름다운 플레이입니다.]

[이걸 노리고 플레이했다면 정말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하지만 데이빗 장 선수라면 모르겠군요. 워낙 예상에서 벗어난 플레이를 즐기는 선수니까요.]

[이 골로 잉글랜드가 2골 차 리드를 잡습니다! 프랑스로는 점점 경기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분발이 필요한 프랑스! 잉글랜드는 과연 이대로 경기를 굳힐 수 있을까요?!]

위이잉-

리버풀 시내의 스프링 필드에 위치한 데이빗의 자택, 데이빗이 국제 대회에 참여하는 동안 그의 저택 관리를 맡게된 메리 코디는 3일만에 출근하여 청소를 하고 있었따.

"흥흥흥."

가벼운 콧 노래를 부르며 창문을 활짝 열고 청소기를 돌린다. 그냥 청소만 하기에는 심심했는지, 거실에 TV를 켜 놓고 데이빗이 뛰는 경기를 귀로 들으며 말이다. 물론 그녀가 멋대로 고용인의 기물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정도로 경우가 없는 사람이 아니었고 데이빗의 에이전트, 티티를 통해 혹시 집을 관리하는 동안 TV를 좀 사용해도 되겠냐는 문의를 넣었고 전혀 상관 없다는 답변을 들은 상태였다. 물론 TV를 보느라 고용인의 의무를 저버리지는 않았다.

"잘 하네. 정말 어린 나이에 대단한 사람이라니까."

해설자들의 극찬에 자신도 모르게 청소기를 멈추고 잠시 화면을 지켜 보았다. 그들이 호들갑을 떤 것이 아니라는 것은 리플레이를 통해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축구에 대해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자신이 보기에도 정말 멋진 플레이였으니 말이다. 크게 친분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자신을 고용한 사람이 뛰어난 활약을 펼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즐거웠다.

"저렇게 잘 하니까 20대 초반에 이런 멋진 집을 구할 수도 있는 거겠지."

경제적으로 그리 부유하지 못한 자신으로서는 부러운 상황이었지만 질투와 같은 감정은 아니었다. 순수한 감탄, 혹은 동경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일 해야지 일. 이번에 괜찮은 인상을 심어 준다면 앞으로도 좋은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을 거야."

데이빗은 축구 선수다. 그것도 국가 대표 레벨의 선수였다. 그만큼 비 시즌 동안 국제 대회 참여 빈도가 높을 선수였고 월드컵, 혹은 유로 등의 대회가 있을 때 마다 집을 장기로 비워야 한다. 결혼한다고 해도 그건 바뀌지 않으리라. 보통 결혼한 선수들의 가족들은 원정길에 동참하는 것이 보통이었으니까. 그런 만큼, 그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줄 수 있다면 앞으로도 종종 일거리를 구하는 데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거실 청소를 마치고 TV를 끈 메리, 보지도 않는 TV를 켜 놓아 고용주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보는 사람이 없었기에 켜 놔도 상관은 없었지만 그녀는 그런 면에서 성실했다.

"식기는 오늘 씻지 않아도 될 거 같고..."

사용하지 않는 식기라고 해도 가끔은 설거지를 해줘야 했다. 하지만 매일 같이 닦을 필요는 없기에 다음 번에 출근했을 때 씻기로 마음 먹은 메리는 선반과 탁자, 그리고 오븐 등을 청소했다.

"그럼 이제...침실만 청소하면 되려나."

2층은 미리 청소해 놓았기에 남은 것은 데이빗이 사용하는 침실 뿐이었다. 메리는 청소기를 들고 조용히 방 문을 열었다.

"참 검소하네."

매 주 10만 파운드 이상을 수령하는 고액 주급자 답지 않게 화려한 맛이 부족한 방이었다. 침대와 옷장, 거울과 탁자 정도가 전부였다. 가구들도 그다지 고급스러워 보이지 않는, 일반 적인 가정에서 평범히 볼 수 있는 수준의 것들이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주인이 없는 방이지만 아무래도 가장 개인적인 공간이다 보니, 경험이 많은 메리로서도 언제나 조심스러웠다. 혹시나 고용인의 개인적인 물건을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청소하기 시작했다. 일단 침대에서 시트를 벗겨 내고 이불과 함께 밖으로 들어 냈다. 적당히 털어 내는 것보다는 아예 빨래를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고 세탁기에 던져 넣고 스위치를 넣었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와 청소를 계속하는 메리, 그녀의 손길이 거울 앞 탁자로 향했을 때 그녀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건...?"

사진이었다. 특별할 것이 없는 갓난 아이의 사진. 아마 이 집 주인의 어린 시절의 모습이리라. 하지만 그 사진을 본 메리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설마..."

어느새 사진을 든 그녀의 손이 살짝 떨리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유로 2004 프랑스 vs 크로아티아 (맞나...?) 전에서 나온 장면을 차용했습니다

-그 골 들어갔으면 진짜 역대급으로 꼽혔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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