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78 =========================================================================
6월 11일 우크라이나의 도네츠크, 돈바스 아레나 경기장.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유로 2012 D조 첫 번째 경기가 열리는 곳이었다. 약 5만 명을 수용 가능한 이곳은 양 국가의 원정 팬들로 대부분 차 있었다. 현재 4만 7천여 명이 입장한 상태, 아직 경기 시작까지는 조금 시간이 남은 시점이지만 그들은 서로의 국기를 흔들며 열띤 응원전을 선보이고 있었다.
FRANCE
1. 휴고 요리스 GK (C)
2. 마티유 드뷔시
3. 파트리스 에브라
4. 아디 라미
5. 필립 멕세스
6. 요앙 카바예
7. 프랭크 리베리
10. 카림 벤제마
11. 사미르 나스리
15. 플로랑 말루다
18. 알루 디아라
ENGLAND
1. 조 하트 GK
2. 글렌 존슨
3. 애슐리 콜
4. 스티븐 제라드 (C)
6. 존 테리
7. 데이빗 장
10. 웨인 루니
15. 졸리온 레스콧
16. 제임스 밀너
17. 스콧 파커
20. 알렉스 옥슬레이드 체임벌린
"떨려?"
"아, 아뇨. 별로 그런 건 아니에요."
체임벌린은 이번이 자신의 A 매치 데뷔전이었다. 지난 평가전 이후 진행된 팀 내 훈련에서 경쟁자들보다 뛰어난 모습을 보이며 카펠로 감독의 눈을 사로잡았고 이렇게 깜짝 선발 카드로 출전하게 된 것이다.
"편하게 이야기하라니까. 나이도 세 살 밖에 차이 안나는데."
데이빗이 웃으며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체임벌린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 조금은 안정된 모습으로 그를 바라 보았다.
"고마워. 이제 괜찮아. 그러는 너는 긴장되지 않아? 너도 대표팀 경력이 그렇게 오래된 건 아니잖아."
"나야 뭐...첫 경기 때는 좀 떨었나? 그래도 뭐 요즘엔 괜찮아. 클럽에서 뛰는 거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
"...그게 그렇게 쉬우면 왜 국가 대표에서 헤매는 선수가 나오겠어?"
너무나 쉽게 이야기하는 데이빗의 모습에 체임벌린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 실소를 흘렸다. 데이빗은 어색하게 웃으며 뺨을 긁었다.
"어차피 똑같아. 유니폼이 다르다고 해서 우리가 농구를 하는 건 아니잖아. 축구를 하면 되는 거야. 평소대로."
"뭐, 그것도 그렇네. 아무튼 조언 고마워."
"뭘 이 정도 쯤이야. 그럼 오늘 잘해 보자."
가볍게 하이 파이브를 나누고 센터 서클로 향하는 데이빗, 그리고 왼쪽 사이드로 이동하여 자리를 잡는 체임벌린이다. 센터 서클 안에서 데이빗을 기다리고 있던 웨인 루니가 어깨를 으쓱한다.
"무슨 얘기를 해주고 온거야?"
"아, 별거 아니에요. 그냥 알렉스가 좀 긴장한 것 같아서 너무 쫄지 말라고 얘기해 줬을 뿐이니까."
가볍게 이야기하는 데이빗의 모습에 루니가 대견하다는 듯 미소를 짓는다.
"잘했네. 하긴 저 친구는 오늘이 A 매치 데뷔전이니까. 떨릴만도 하겠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는 듯 데이빗을 유심히 훝어 본다.
"누가 보면 너는 A 매치를 한 100경기는 뛴 베테랑인 줄 알겠다. 너도 고작해봐야 5경기도 안되잖아. 아 오늘이 5번 째인가? 넌 안떨려?"
"...알렉스도 그걸 물어 보긴 했는데, 전 별로 안 떨리네요. 딱히 긴장해야 할 이유도 모르겠고."
평소대로 하면 되는 거 아니냐며 되묻는 모습에 루니가 허탈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뭐 그거야 그런데...에이 뭐 좋은게 좋은 거지. 긴장 안했으면 그걸로 됐네."
"뭐 그런 거죠. 오늘 잘 부탁해요 웨인."
"나야말로. 프랑스 녀석들은 반드시 이겨야지."
이를 드러내며 승부욕을 보이는 루니, 데이빗도 가볍게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프랑스 뿐만이 아니라 어느 나라건 간에 이기는 겁니다."
"맘에 안 들어."
잉글랜드 원정 팬들이 모인 응원석, 제임스와 티티도 이곳에서 경기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데이빗의 CF 계약 등의 문제를 처리해 놓고 그의 경기를 현장에서 직접 보기 위해 날아온 것이다. 그런데 뭐가 그리 마음에 안드는 지 제임스의 입이 댓발은 나와 있었다.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든다는 거야?"
"저거 말야 저거!"
손가락을 들어 가리키는 곳에는 데이빗과 루니가 센터 서클에서 킥 오프 휘슬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딱히 그가 불만을 가질만한 요소를 찾기 힘들었던 티티가 고개를 갸웃한다. 만약 데이빗이 벤치에서 시작하는 상황이라면 이해할 만 했으리라. 하지만 데이빗은 당당히 선발 출장한 상태였고 팀의 핵심 플레이어로 인정받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그리 불만인 것인지 궁금해진 티티가 입을 열었다.
"네가 센터 서클 쪽을 가리키고 있는게 맞다면, 도대체 뭐가 불만이라는 건지 모르겠는데? 데이빗도 출전했잖아. 근데 뭐가 문제야?"
"앙? 이봐 티티! 출전은 당연한거잖아. 그건 애초에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일이라고. 만약 데이빗을 벤치에 처박아 놨다면 저 멍청한 이탈리아 노인네는 굳이 내가 욕하지 않아도 평생 먹을 욕을 하루 만에 먹었을 걸? 그게 아니라 저기 등 번호 말야 등 번호!"
"등 번호? 데이빗의 등 번호 말야?"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한 번 확인한다. 7번을 달고 있는 데이빗의 모습, 꽤 괜찮은 번호 인지라 (애초에 티티는 등 번호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성향이었다) 여전히 불만의 원인을 찾기 힘들었다.
"7번이 어때서? 괜찮은 번호잖아. 예전에 데이비드 베컴이 달았던 번호기도 하고 말야."
"그건 그런데. 저 녀석은 10번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그런데 저 주정뱅이가 10번을 달고 있고! 저러니까 꼭 데이빗이 밀린 것 같잖아."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마 제임스. 번호는 별 의미가 없다고. 데이빗도 신경쓰지 않을 테니까 너도 흥분하지 마라."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등 번호는 상징이야! 로망이라고! 그리고 저 녀석에게는 10번이 가장 어울려!"
그리고 한참을 계속 떠들기 시작하는 제임스, 10번을 예찬하는 건지 데이빗에게 10번이 어울린다는 건지 알기 힘들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뭐...번호 따위는 상관 없어.'
킥 오프 휘슬과 함께 공을 뒤로 돌리고 앞으로 달려나가는 데이빗의 모습이 보인다. 저 모습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등 뒤에 어떤 숫자가 달려 있건 간에 말이다.
90년 대 후반에서 2000년 대 초반까지의 프랑스는 축구에 있어서 세계 최강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나라였다. 지금은 은퇴한 프랑스의 레전드, 아니 세계 축구사에 손꼽히는 전설 지네딘 지단의 존재는 그야말로 대단했다. 그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의 프랑스는 보통의 강호, 즉,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을 노려볼 만한 수준은 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있을 때의 프랑스는 완전히 다른 팀이었다. 그는 미드필드 뿐만이 아니라 경기장 전체를 지배했고 상대하는 모든 팀들을 무릎 꿇게 만들었다. 그의 영향력 아래에서 프랑스는 월드컵과 유로 대회를 거머쥐며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그 또한 시간을 막을 수는 없었고, 나이가 들어 그가 은퇴하게 되자 그 후폭풍은 상당했다. 이미 그의 리더십과 존재감, 실력에 익숙했던 프랑스는 그의 공백을 강하게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 어떤 선수로도 대체 불가능한 선수였다. 그의 은퇴 즈음부터 해서 제 2의 지단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한 숱한 유망주들은 모두 그에 미치지 못했다. 그리고 이는 프랑스에게 불운한 일이 되었다.
구심점을 잃은 프랑스는 흔들렸다. 그리고 그의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후계들의 자존심 싸움도 격화되어 갔다. 대표팀은 분열되었고 뭉치지 못했다. 프랑스는 약해졌다. 유로 2008과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조별 리그를 뚫지 못하고 최하위로 탈락하며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리고 절치부심하며 참가한 이번 유로 2012에서도, 그들의 대표팀은 안팍으로 구설수에 오르며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확실히...이 친구들, 뭔가 어수선한 느낌인데.'
경기 시작 10분만에, 데이빗은 위화감을 느낄 수 있었다. 보통 그가 상대하는 팀들은 강 약에 관계 없이 집중력이 있었고 서로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계속적으로 정보를 교환했고 지시를 받고 내리길 반복했다. 그래서 보통 이렇게 상대 수비진 사이에 끼어 있으면 그들간의 대화를 들을 수 있기 마련이었다. 언어가 달라 무슨 말인지 알아 듣지는 못한다고 해도 말이다.
'너무 조용하네.'
하지만 프랑스 대표팀은 너무나 조용했다. 라인 간격 유지가 그 어떤 포지션보다 중요한 수비수들 간의 대화가 부족하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 신호였다. 데이빗은 이들이 서로 그리 신뢰하고 있지 않음을 직감했다.
'흐응...생각보다 쉽게 일이 풀릴 수도 있을 거 같은데.'
가끔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팀들이 있었다. 원래 긴 시즌을 치르다 보면 가끔 팀 워크가 흔들릴 때도 있었으니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팀들을 상대로는 대부분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데이빗은 루니에게 가볍게 사인을 보냈다.
'스위치.'
간단한 전술이지만 의사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팀을 상대로 이만한 것이 없었다. 순간적으로 마크 상대를 바꿔야 할 지, 그대로 따라갈 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타이밍이 조금만 늦어도 한 쪽이 뚫리게 된다. 데이빗은 슬슬 타이밍을 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드필드 지역에서 공을 따낸 잉글랜드가 플레이 메이커의 역할을 맡은 제라드에게 공을 연결시키는 모습을 확인했다. 제라드가 오른쪽의 제임스 밀너에게 크게 열어주는 것까지 확인하고는 자신보다 앞서 있던 루니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크게 손을 들어 밀너에게 패스를 요구했다.
제임스 밀너도 경험 많은 선수다 보니 데이빗의 움직임을 한 눈에 알아 챘다. 애초에 투 톱이 서로 겹치듯 동선을 잡고 있는 상황인데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이 바보였다. 밀너는 씩 웃으며 그들의 동선에 맞추어 패스를 보냈다. 누가 받아도 이상하지 않은 코스로 아슬아슬하게.
'땡큐 밀너 씨.'
패스를 향해 달리며 데이빗은 마음 속으로 감사를 표했다. 그는 자신들의 의도를 읽고 상황에 맞는 패스를 보내 주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자신과 루니의 영역, 그들이 해야할 역할이었다.
데이빗은 공을 받지 않았다. 자신의 보폭에 맞추어 그 사이로 그대로 통과시켰다. 물론 받으려는 듯한 제스처를 취함으로써 상대에게 혼선을 주었다. 여기서 생긴 반 템포의 타이밍, 그리고 루니 옆을 스치며 빠져 나갔다. 그리고 데이빗과 루니의 완벽한 하모니가 탄생했다.
루니는 수비를 등진 상태에서 데이빗이 자신의 왼쪽으로 스쳐 지나가는 것을 확인했다. 공은 왼쪽에서 대각선으로 자신에게 굴러 오고 있었다. 오른발로 키핑하고 돌아설 지, 아니면 데이빗에게 연결시켜 줄지, 연결시켜 준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순간적으로 루니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긴 시간은 필요 없었다. 생각과 동시에 결론을 내린 루니의 행동은 자연스러웠다. 마치 키핑할 것처럼 오른발 인사이드를 내민다. 자연히 수비는 그에 맞추어 반응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의 의도는 키핑이 아닌 패스, 루니는 밀너의 패스를 오른발로 받아 냄과 동시에 궤도를 자신의 뒤쪽으로 꺾었다. 순간적으로 공의 진로가 90도에 가깝게 꺾였고 그 공의 최종 목적지는 데이빗의 발 아래였다.
'죽여 주는데!'
공이 자신의 발 아래에 닿았을 때 데이빗은 극도의 쾌감을 느꼈다. 루니라면 분명 어떻게 해서든 자신에게 공을 연결시켜 줄거라 생각했다. 아니, 자신을 미끼로 삼아 스스로 돌파를 하더라도 어쨌든 좋은 찬스를 만들어 낼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의 플레이는 데이빗으로서도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플레이였다. 이런 완벽한 플레이가 펼쳐지는 상황에서 그 일원이 된다는 것은 선수로서 정말 짜릿한 일이었다.
'꽤 빨리 뛰어 나오잖아.'
자신의 작은 속임 동작과 루니의 창조적인 움직임에 힘입어 마크는 완벽히 떨궈 낸 상황이었다. 하지만 골키퍼의 쇄도 타이밍이 생각보다 빨랐다. 옆으로 피하며 제치고 골을 넣을까 고민했지만 욕심을 버렸다. 그것보다 더 멋진 그림이 생각났고 데이빗은 미련 없이 공을 가볍게 옆으로 굴렸다.
"나이스!!"
멋진 백힐 패스를 선보인 루니가 그대로 반전하여 데이빗과 보조를 맞추었다. 그리고 골키퍼를 이끌어 낸 그가 욕심부리지 않고 자신에게 공을 밀어 주자 절로 흥이 났다. 완전히 텅 비어 버린 골대, 유치원생도 넣을 수 있는 상황, 이런 상황을 루니 정도 되는 선수가 놓칠리 없었다. 가볍게 인사이드로 공을 굴린다. 천천히 골망을 흔드는 공, 그리고 큰 함성속에서 루니가 포효하며 세레모니를 시작했다.
FRANCE 0 : ENGLAND 1
============================ 작품 후기 ============================
-프랑스는 확실히 지단 은퇴 이후로
-잡음이 많은 거 같아요
-대표팀 내 불화설에 왕따설에
-직접적인 비교는 힘들겠지만
-퍼거슨이 은퇴한 맨유와도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게 아닌가
-확실히 90년 대 후반~2000년 대 중반까지, 그만한 존재감을 가진 선수는 없었던 거 같네요
-이제는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으로 새 출발을 하는 지단입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클럽은 아니지만 지단은 잘 했으면 좋겠네요
-근데 그 동네는 감독 모가지를 너무 쉽게 날리는 곳이라
-아니 애초에 안첼로티는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