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67 =========================================================================
"공부는 잘 되가?"
-그냥 저냥이지 뭐. 어제 카 퍼레이드는 재미있었어? 뉴스로 봤는데 40만 명이 몰렸다고 하더라.
"응 꽤 괜찮았어. 너도 같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미안해. 근데 정말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아서...공부할 게 너무 많아.
"알고 있어. 그냥 아쉬워서 해본 말이야."
어제 카 퍼레이드를 마치고 집에서 푹 쉬고 있는 데이빗이다. 시험 공부하느라 바쁜 여자 친구라 얼굴 보기가 힘들었고 이렇게 전화 통화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었다.
-오늘은 뭐해? 집에서 그냥 푹 쉬려고?
"어, 딱히 할 일도 없고. 어제 별거 아닌 것 같았는데 은근히 피곤하더라. 그래서 오늘은 그냥 집에만 있으려고."
-공부 일찍 마치면 저녁 때 쯤에 볼 수 있을 지도 모르겠어.
"정말? 나야 좋은데, 무리할 건 없어."
-그러니까 아직 확실히는 모르겠어. 일단 열심히 해 봐야지 뭐.
"그래, 혹시 가능하게 되면 연락 줘. 데리러 갈게."
그리고는 더 방해하지 않겠다고 통화를 마쳤다. 한동안 소파 위에서 뒹굴거리던 데이빗, 갑자기 할 일이 뚝 끊긴 느낌이라 영 어색하고 심심했다.
"게임도 내키지 않고..."
간간히 혼자서도 즐기긴 했지만 역시 게임은 여럿이 함께 해야 재미가 있었기에 끌리지 않았다. TV는 켜놓기는 했는데 딱히 눈에 들어오는 프로그램이 없었고 말이다.
"...오랜만에 청소나 좀 할까."
생각해 보니 한동안 청소를 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에리카가 올 지도 모르니까..."
딱히 지저분하게 이것저것 늘어 놓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여자 친구에게는 깔끔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청소를 결심한 데이빗이 자리에서 일어나 청소기를 꺼냈다.
"...청소기부터 좀 닦아야 할 거 같은데. 내가 한동안 청소를 안하긴 했구나."
청소기 위로 먼지가 살짝 쌓인 모습에 혀를 차며 휴지로 슥슥 닦아 낸다. 그리고 자신의 방부터 청소를 시작하기로 했다. 침대 위 이불과 시트를 걷고 마당으로 향했다. 힘 주어 팡팡 털어내자 먼지가 풀썩 일어 났다. 이런 먼지 구덩이에서 계속 잠을 잤다고 생각하니 영 찝찝했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지나가던 이웃이 자신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온다.
"청소 중이신가요?"
"네, 시즌 중에 청소를 좀 게을리 했더니 집이 영 엉망이네요."
"저런, 하긴 선수들은 시즌 중에 피곤해서 제대로 관리하기 힘들겠네요."
말쑥하게 차려 입은 중년의 신사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 동네에서 몇 번 인사를 나눈 사이였다. 아니 주변 이웃들과는 대부분 친근하게 인사를 나누고 있는 데이빗이다. 물론 사인과 함께 사진도 몇 번 찍어 주었고 말이다.
"그럼 다음에 또 뵙죠."
"네, 저도 들어가서 청소를 계속해야 겠네요."
가볍게 일별을 고하고 집으로 들어 온다. 몇 번 털긴 했지만 아무래도 빨래를 하는게 나을지도 몰랐다.
"음...지금 빨면 오늘 덮을 게 없으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5월 말에 관리 도우미가 오면 부탁하기로 했다.
"...확실히 내가 이런 거에 둔하긴 한가 보네."
아무래도 먼지와 친숙한, 항구 숙소를 사용한 경험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그래도 까다로운 것보다는 나은 것 같다며 휘파람을 불며 침대 위에 세팅했다.
"티셔츠는 세탁해야겠고, 저 바지는...한 번 더 입어도 될 거 같은데."
침대 옆 의자에 걸쳐진 옷가지를 정리하며 처리 여부를 결정한다. 휴대폰 충전기를 뽑아 일단 침대 위에 던져 놓고 드라이기 코드를 정리한다. 그리고 거울 앞 탁자 위에 쌓인 서류들을 보고 한숨을 지었다.
"...언제 이렇게 쌓였대."
티티가 보내 준 각종 광고 계약과 관련한 서류, 그리고 축구 협회로 부터 온 정식 소집 요청서, 구단에서 전해주는 각종 파일 등을 읽고 제대로 정리하지 않다보니 지저분하게 널부러져 있었던 것이다.
"...다 읽긴 했지만 버리긴 좀 그렇고..."
차곡차곡 접어 서랍 안에 보관하기로 했다. 혹시 읽지 않은 것이 있나 확인하며 꼼꼼히 정리를 시작했다.
"대표팀 소집 일자는...5월 25일이네."
생일이 지나고 3일 뒤에 소집이다. 그때는 이제 22살로 대표팀에 참가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봤자 대표팀에서는 막내 축이었으니 별반 다를 건 없었다.
"딱히 읽지 않은 건 없는 거 같네. 좋아."
서류를 포갠 데이빗이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한동안 보지 못했던, 아니 잊고 있었던 빛 바랜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
우두커니 사진을 바라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꺼내 들었다. 찍은 기억이 없는 사진, 당연한 일이었다. 사진 속에는 한 아기가 강보에 쌓여 자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강보 위에 올려진 종이 위에는 David Chang 이라는 글씨가 써 있었다.
"...뭐..."
예전에 지내던 고아원에서 들고 나온 몇 안되는 물건 중 하나였다. 딱히 애착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유일하게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고아원에서는 딱히 사진을 찍을 기회가 없었다. 가끔 어떤 봉사자들이 왔을 때 기념 사진을 찍곤 했지만 그 사진은 자신에게 전혀 좋은 추억으로 남지 못했다. 애초에 그곳 생활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으니 말이다.
"...지금와서 버리기도 애매한가."
더 이상 이 사진에 의미를 두고 있진 않았다. 그저 갓난쟁이 시절에 자신이 이렇게 생겼었구나 하고 생각할 뿐. 데이빗은 쓴 웃음을 지으며 대충 탁자위에 던져 놓았다. 서류를 정리하는 모습이 조금은 쓸쓸해 보였다.
띵동-
"누구지?"
청소를 마치고도 딱히 할 일이 없었던 데이빗은 재미 없는 TV를 켜 놓은 채 누워 있었다. 그러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살풋 잠이 들었고 갑자기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눈을 떴다.
"딱히 올 사람이 없는데..."
머리를 긁으며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 밖에 자신의 여자친구가 불퉁한 표정으로 서 있는 모습을 확인하고 놀랐다.
"...어..."
"...역시 자고 있을 줄 알았어."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며 데이빗을 째려 본다. 당황한 데이빗이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져본다. 없다. 분명 주머니 안에 넣어 뒀을 휴대폰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갔지?"
"전화하라길래 전화했더니 받지도 않고. 메시지도 답이 없고 해서 그냥 왔어. 보나마나 자고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사람 걱정시키지 말란 말이야."
"...미안해."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었기에 풀 죽은 목소리로 사과했다. 에리카는 내가 못산다며 픽 웃었다. 그리고 그와 가볍게 포옹했다.
"괜찮아. 딱히 학교에서 여기까지 먼 것도 아니고."
"그래도 미안해. 약속했는데 나도 모르게 잠들어 버렸네. 휴대폰은...아...좀 전에 청소하다가 어디 던져 놨나봐."
"앞으로 그러지 않으면 돼. 연락이 갑자기 안되면 걱정이 된단 말야."
"맞아.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 없을 거야.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그리고 가볍게 키스를 나누는 두 연인, 오랜만의 해후였기에 서로의 온기를 깊이 확인하며 애정을 나눈다.
"그런데 지금 몇 시지?"
"7시 다 되어 가네."
"...생각보다 오래 자 버렸네. 분명 세 시쯤에 소파에 누웠던 걸로 기억하는데."
"피곤했을거야. 시즌이 끝난 지도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고 어제 카 퍼레이드까지 하고 왔으니까. 배고프지 않아?"
"조금? 에리카는? 저녁 식사 전이지?"
"응, 바로 왔으니까."
"잠시만 기다려봐. 금방 저녁 준비할게."
주방으로 향하는 데이빗, 에리카는 자신이 준비하겠다며 만류했지만 데이빗은 요지부동이었다.
"시험 공부하느라 힘들었을거 아냐. 잠깐 앉아서 쉬고 있어. 금방 준비할 수 있으니까. 얼마전에 누가 선물해준 스테이크가 있거든. 그거에 간단히 파스타 정도 준비하면 되겠지?"
"응 괜찮아. 근데 파스타 대신에 빵 정도만 있어도 괜찮을 거 같아."
"그래? 알았어. 그럼 잠시만 기다려."
말을 마치고 달그락달그락 저녁 식사 준비를 시작하는 데이빗, 에리카는 데이빗의 호의를 받아 들여 거실 소파에 앉아 편히 쉬며 한숨을 돌렸다.
"공부하기 많이 힘들지?"
"그냥,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공부니까. 어렵긴 하지만 보람은 있어."
"신기하다. 난 공부를 별로 해 본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 공부가 재미있다는 사람들을 보면 놀라워."
"재미있다는 건 아니었어. 가끔 재미도 있지만 뭐..."
주방과 거실 간에 대화를 주고받다보니 자연스레 목소리가 커졌다.
"오늘 청소했나 보네?"
"응, 티가 많이 나?"
"조금? 예전에 처음 이 집으로 이사 왔을 때하고 비슷한 거 같아."
"오늘 할 일도 없고 해서 오랜만에 청소 좀 했어. 그래도 티가 난다니 기분 좋다."
"아 맞다. 우편함에 편지가 좀 와 있던데, 아마 팬 레터 같았어. 내가 들고 왔는데, 이거 어디에 둘까?"
"팬 레터? 그거 내 방에 대충 아무데나 놔두면 될 거 같아. 보통은 구단에서 전해주는데 집 주소가 알려지고 난 뒤로는 은근히 집으로 곧바로 보내는 사람들도 있네."
데이빗의 말에 가방에 챙긴 편지를 꺼내들고 방으로 향한다. 확실히 청소한 티가 났다. 이불도 깔끔히 정리되어 있었고 탁자도 먼지 하나 없이 말끔했다. 대충 탁자 위에 두면 되겠지 라고 생각한 에리카가 편지를 놓고 돌아서려는 찰나 무언가 눈에 들어 왔다.
"이건...?"
데이빗의 갓난 아기 시절 사진, 사귄 이후 처음 보는 그의 어린 모습이었다. 낡은 사진을 조심스럽게 든 에리카가 정신없이 사진을 보기 시작했다.
"...귀여워."
사진 속에서 눈을 감고 자고 있는 아기는 정말 귀여웠다. 아기들을 흔히 천사들이라고 표현하는데 그 말이 정말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속 눈썹이 은근히 길었구나."
에리카가 좋아하는 데이빗의 모습 중 하나가 그가 자고 있을 때의 옆 모습이었다. 긴 속눈썹이 단정하게 내려 깔린 모습은 거친 축구 선수답지 않게 섬세해 보였고 가끔 모델 같아 보일 때도 있었다.
"데이빗!"
사진을 들고 데이빗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요리가 대충 마무리 되었는지 접시에 담아 테이블 위로 세팅하고 있는 데이빗.
"응? 무슨 일이야? 안 그래도 이제 준비가 다 되서 부르려고 했는데."
"아 그래? 고마워. 근데 이것 좀 봐."
"뭔데 그래?"
슬쩍 시선을 내려 그녀가 들고 있는 사진을 바라 본다.
"이런 사진 있었으면 진작 보여주지 그랬어."
귀엽게 눈을 흘기며 장난스레 타박한다. 데이빗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아니, 나도 사실 그 사진이 있는 줄 까먹고 있었어. 오늘 청소하다가 발견한 거야."
"그래? 아무튼 어렸을 때 정말 귀여웠네."
어지간히 사진이 마음에 드는지 연신 미소를 지으며 눈을 뗄 줄 몰랐다. 데이빗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입맛을 다셨다.
"이것 좀 봐. 지금이랑 눈매랑 코가 똑같아. 입도 비슷하고. 어쩜 좋아."
꺅꺅거리며 즐거워하는 여자 친구의 모습, 데이빗은 별거 아닌 사진 한 장에 저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니 신기한 기분 마저 들었다.
"어...그렇게 마음에 들면 가져 갈래?"
"정말?"
눈을 반짝이며 되묻는 모습이 확실히 관심이 있어 보인다. 데이빗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정말로. 딱히 난 그 사진이 있는지도 몰랐고, 봐도 별 느낌이 없어서.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까 가져가면 좋을 것 같네."
"그래? 고마워! 그럼 이따가 가져갈..."
신이 나서 대답하던 에리카가 말끝을 흐린다. 그리고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냐. 그냥 이건 네가 가지고 있는 게 나을 거 같아."
"난 괜찮은데?"
"그래도. 어렸을 때 사진 한 장은 가지고 있어야지. 나중에 자녀가 생기면 보여줄 수도 있잖아."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하는 그녀의 모습에 데이빗은 그런가 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게 들으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슬며시 그녀의 눈치를 보며 말을 잇는다.
"그럼 나중에 네가 보여줘도 되잖..."
"...뭐 뭐라는 거야. 정말..."
분위기 없이 또 툭 던지듯 말하는 데이빗의 모습에 에리카가 당황하며 그의 손을 찰싹 때렸다. 데이빗은 아차 하며 자신의 입을 막았다.
"...저녁이나 먹자."
눈치를 보며 슬쩍 화제를 넘기는 모습, 에리카는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 보다 어쩔수 없다는 듯 웃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아 진짜 리버풀 왜 내가 볼때마다...
-전 지금 몹시 화가 나 있어요
-앤디 캐롤 이 망할 전봇대 자식
-ㅁ미ㅓㅣ럼닝러미어리ㅓ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