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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보인다."
경기장 입장을 앞둔 선수들이 입장 통로 안에서 줄을 맞춰 대기하고 있었다. 데이빗은 넌지시 자신에게 말을 걸어 오는 상대를 확인했다. 첼시의 부주장, 프랭크 램파드가 미소를 띈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오랜만이에요 램파드 씨."
"프랭크라고 부르라니까. 프랭키라고 불러도 괜찮고."
편하게 대하라는 말, 하지만 경기를 앞둔 지금, 잠시 후에는 원수처럼 서로를 잡아먹기 위해 달려들텐데 그러기도 쉽지 않다며 데이빗이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우승이 눈앞이네. 기분이 어때?"
자신들을 이겨야 우승을 하는 상대이건만, 램파드는 크게 개의치 않고 묻는 모습이다.
"글쎄요,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서요. 오늘 경기에 이기면 확실히 실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은근한 승부욕을 보이는 데이빗, 램파드는 너털 웃음을 흘렸다.
"그것도 그렇네. 그래도 우리는 호락호락하지 않을거야. 우리도 지금 엄청 급하거든."
지금 토트넘과 뉴캐슬 유나이티드에게도 밀리며 리그 7위에 랭크되어 있는 첼시였다. 이대로는 유로파 리그 진출권도 날아갈 판이었기에 죽을 힘을 다해 경기에 임할 것이 분명했다.
"에이, 첼시는 최근에 우승 많이 해 봤잖아요. 이번에는 우리가 좀 해야겠으니 협조 좀 해주시죠?"
장난스레 엄살 섞인 말을 늘어 놓는다. 그리고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치며 말을 이었다.
"그러고보니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진출했잖아요. 그거 우승하면 내년에 순위에 상관 없이 챔피언스 리그 자동 진출이니까..."
오늘 경기는 좀 슬슬해도 되는 거 아니냐는 뜻을 에둘러 표현한다. 램파드는 어이 없다는 듯 피식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그걸 어떻게 장담하겠어? 아무튼 보기 좋네. 리그 우승은 정말 즐거운 경험이니까. 아마 내 생각에 오늘 너희가 우릴 이기지 못한다고 해도 우승은 너희가 차지할 거라고 생각해."
"덕담은 고마운데요, 오늘 이길 겁니다. 이왕이면 홈 팬들 앞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싶거든요."
다음 최종 라운드 상대는 스완지 시티였고 어웨이 경기였다. 우승 축하 파티는 홈에서 해야 제맛이라고 데이빗이 양보하지 않겠다는 뜻을 확고히 밝혔다. 그래도 어쨌든 우승은 자신들이 차지할 것 같다는 멘트에 대한 답려도 잊지 않는다.
"첼시도 꼭 빅 이어를 들거라 믿어요. 상대는 뮌헨이죠?"
"그래, 만만치 않은 팀이지. 뭐, 응원해줘서 고마워."
"천만에요. 내년에는 우리가 들 거니까요."
의욕을 드러내는 데이빗, 실제로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원정 다득점 원칙에 밀리지 않았다면 4강을 넘어, 우승에 도전할 수도 있었던 리버풀이었기에 그의 말이 단순한 허세로 들리진 않았다.
"그래, 서로 양보할 수 없으니 정정당당히 붙어 보자."
그러면서도 아쉬운 듯 한 마디를 더 남긴다.
"우리 팀에 네가 있었다면 정말 리그 우승이 문제가 아니었을 텐데..."
"슬슬 입장이다. 준비해 데이빗."
제라드가 무뚝뚝하게 끼어들며 대화를 끊는다. 램파드는 '하여간 무슨 말을 못하게 해'라고 중얼거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제라드 또한 '방심할 수 없는 녀석'이라며 조용히 투덜댔고 말이다.
그리고 입장이 시작되었다. 리버풀 선수들은 대기 터널 계단 윗 부분에 새겨진 'THIS IS ANFIELD'라는 문구에 한 번씩 손을 대며 지나갔다. 데이빗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에서 경기를 치르면 늘 치르는 의식, 오늘은 조금 특별했다. 데이빗은 조금씩 빨라지는 심장 박동을 억제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날뛰고 싶었다. 경기 시작 휘슬이 지금 당장 울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저기 저걸 건드리는 건 전통이야? 무슨 특별한 의식 같은 건가?"
옆에서 램파드가 질문을 던져 온다. 데이빗은 딱히 깊게 생각해 본적이 없는 부분이었기에 고개를 흔들었다.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 부분이에요. 여기는 안필드라는 것, 우리에게 충족감과 소속감, 그리고 의욕을 충족 시켜준달까요. 우리는."
잠시 말을 끊고 주변을 둘러본다. 그리고 서포터즈 전용 스탠드를 확인했을 때 눈을 크게 떴다. 스탠드를 가득 메우는 거대한 크기의 통천, 리버풀의 상징 컬러인 붉은 색의 그것은 웅장했고 시선을 잡아두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중간에 크게 적힌 문구.
You Will Never Walk Alone Ever and Ever
리버풀 선수들이라면 하루에도 수십번은 듣게되는 노래 가사, 거기에 단지 영원히라는 말을 붙였을 뿐인데 무엇이 이렇게 가슴을 자극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느꼈다. 눈물이 살짝 맺힐 뻔할 정도로 큰 감동이 밀려 왔다. 이 클럽에 도대체 그들에게 어떤 존재이길래 저런 열정, 성원을 보내주는 것이란 말인가.
"여기에서 질 수 없어요. 그런 겁니다."
"잘 들어. 다음 경기는 없다."
경기 시작 전, 리버풀 선수들은 그라운드 중앙에 모여 둥글게 원을 그렸다. 서로 어깨 동무를 하고 고개를 모았다. 이제 곧 경기가 시작된다. 그 전에 마지막으로 결의를 다지는 자리, 제라드는 절제된 음성으로, 하지만 힘있게 선수들에게 말했다.
"오늘이 최종전이다. 오늘 모든 걸 쏟아야 해. 오늘 이기지 못하면 우승은 없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뛰어야 해. 알겠지?"
"물론이야!"
레이나가 추임새를 넣듯 대답한다.
"다들, 오늘을 인생 최고의 날로 만들자. 이 자리에 우승컵이 와 있어. 우리 손에 들어온 우승컵을 돌려 보낼 멍청이는 이 자리에 없겠지?"
대답은 없다. 하지만 선수들의 결의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위축되지마. 두려워 할 필요도 없어! 우리는 함께 간다! 가자!"
"오오오오!!"
큰 함성과 함께 원을 풀고 각자의 자리를 찾아 간다. 선축은 첼시의 몫, 데이빗은 센터 서클에서 심판의 휘슬을 기다리고 있는 디디에 드록바와 후안 마타를 바라 보았다.
'그러고보니...첼시 상대로는 좋은 기억 밖에 없네. 아, 멍청이 하나가 있었지만 그건 별로 상관 없나.'
자신의 등짝을 걷어 찼던 보싱와가 떠올랐다. 그는 지난 번 맞대결에서도 상대한 경험이 있었다. 그때 아주 통쾌하게 복수를 해 주었기에 이제는 그리 나쁜 기억만은 아니었다.
'데뷔골도 첼시 전이었고...그러고보니 첼시하고 붙어서 골을 못 넣은 적이 없네?'
골을 넣지 못한 구단을 찾는 것이 거의 없다시피했기에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첼시 정도 되는 강 팀을 상대로 매 번 골을 기록하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 데이빗은 오늘도 이런 기분 좋은 징크스를 이어가고자 했다.
'우승도 하고 40호 골도 하고, 캡틴의 말대로 오늘을 인생 최고의 날로 만들어 보자.'
심판의 휘슬이 울렸고 첼시가 공을 뒤로 돌렸다. 데이빗은 빠르게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경기가 시작됩니다! 프리미어 리그 우승의 향방이 걸린 리버풀과 첼시의 37라운드 경기, 이번 라운드 최고의 매치로 꼽히는 경기입니다!]
[리버풀은 오늘 경기에서 이기면 클럽 통산 19번 째 우승을 확정 지을 수 있게 됩니다. 라이벌 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기록과 동률을 이루게 되는 셈이고 프리미어 리그 출범 이후 첫 번째 우승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그만큼 선수들의 집중력이 남다를 수 밖에 없겠죠.]
[첼시는 이번 시즌, 리그에서는 그리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결국 지난 3월, 성적 부진을 이유로 안드레 빌라스 보아스 감독을 해임하고 로베르토 디 마테오 수석 코치를 감독 대행으로 임명했습니다.]
[네. 말이 많은 인사 개편이었습니다만 디 마테오에 대한 평가는 지금까지 괜찮습니다. 리그 순위도 2단계 끌어 올리며 어느 정도 체면 치레는 성공했고 말이죠. 무엇보다 챔피언스 리그에서 호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그의 지지층을 늘려나가고 있는 주요 원인입니다.]
[첼시로서는 클럽 역사상 처음으로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라고 할 수 있겠죠. 물론 이번 경기는 첼시로서도 양보하기 힘든 경기입니다. 챔피언스 리그 우승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첼시로서는 최소한의 마지노 선, 유로파 리그 진출권은 확보해야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첼시는 바르셀로나와의 4강전과 유사한 모토로 경기에 임하는 것처럼 보였다. 데이빗이 데뷔한 이래, 지난 3번의 맞대결에서 모두 재미를 보지 못한 그들은 맞불 작전은 그리 현명한 판단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미드필드 싸움에서야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지만 라인을 끌어 올릴 경우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뒷공간에 대한 부담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은 아예 라인을 바짝 내리며 리버풀의 흉악한 공격수들이 활용할 공간 자체를 줄이는 선택을 했다.
'첼시까지 저럴 줄은 몰랐는데.'
데이빗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런 전술은 생소한 것은 아니었다. 리버풀에 비해 팀 전력이 처지는, 중 하위권의 팀들은 언제나 이런 자세를 고수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첼시는 리그에서 손 꼽히는 강 팀이다. 이번 시즌, 비록 그들과 어울리지 않는 순위에 존재하고 있었지만 그들을 폄하할 수 있는 팀은 존재하지 않으리라. 그런 그들이 이런 약세를 보인다는 건 분명 놀라운 일이었다.
애슐리 콜, 브라니슬라브 이바노비치, 존 테리, 다비드 루이스로 구성된 포 백, 그리고 포 백 라인 바로 앞에서 상대를 걸러내는 마이클 에시엔과 존 오비 미켈이 겹겹이 장막을 이루고 있었다. 공격적인 성향이 더욱 강한 프랭크 램파드, 후안 마누엘 마타, 하미레스 또한 자신들의 진영을 벗어나지 않은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디디에 드록바만이 어느 정도 전방에 위치하며 역습에 대한 의지를 보이고 있었으나 전체적으로는 거북이가 웅크린 모양새와 흡사했다.
'귀찮네...'
상관은 없었다. 밀집 수비를 뚫어 본 것이 한 두 번도 아니고, 상대가 첼시라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조금 번거로울 뿐이었고 데이빗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패스를 받기 위해 움직였다.
'메시도 골은 넣었잖아?'
다만 이후 역습을 막아내지 못해 떨어졌을 뿐이지, 바르셀로나가 공략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들의 공격력을 상당히 억제하기에는 성공했지만 말이다.
'메시가 했다면, 나도 할 수 있어.'
그건 데이빗의 자존심이었다. 실제로 지난 맞대결에서 거의 대등한 활약을 펼치며 멋진 대결을 펼쳤기에 오만이라고 볼 수 없었다.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사이 좋게 14골 씩을 넣으며 비슷한 레벨임을 기록으로도 증명했으니 말이다.
제라드의 패스를 그대로 돌려 보내고 다시 움직인다. 제라드 또한 재차 그 움직임에 맞춰 패스를 보냈다. 이번에는 원 터치 플레이 대신 자신의 발 아래에 공을 붙여 놓는다. 첼시 수비진의 한 가운데에서 공을 킵하는 그의 행동은 무모해 보였고 정신나간 플레이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것은 첼시로서도 모험이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공을 빼앗아 내지 못한다면 순간적으로 허점을 노출하게 되는 셈이니 말이다. 의도치 않게 데이빗이 밀집된 지역을 스스로 만들어 내 버린 것. 첼시는 패스도 허용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다. 그들은 앞뒤 가리지 않고 데이빗을 포위하며 몰아 붙였다. 그리고 완벽한 포위망이 완성되기 전, 데이빗이 킥을 시도했다.
"제길...!"
발을 뻗어 보지만 간발의 차로 닿지 못했다. 마이클 에시앙을 지나 흐른 공은 왼쪽 사이드에서 중앙으로 쇄도하고 있던 마르코 로이스에게 연결되었다. 로이스에게 다비드 루이스가 달라 붙고는 있었지만 완벽하게 제어하지는 못하는 상황, 그리고 자신을 둘러 싼 수비수를 지나 움직이는 데이빗에게 멋들어진 침투 패스를 성공시키는 로이스.
"아! 젠장..."
데이빗은 나름 괜찮은 슈팅을 날렸다고 생각했다. 코스가 조금 약한감은 있었지만 거리도 가까웠고 충분한 파워가 실린 슈팅이었다. 하지만 첼시의 골대를 책임지는 수문장, 페트르 체흐를 넘기에는 조금 부족했다. 믿을 수 없는 선방을 보이며 데이빗의 슈팅을 밖으로 쳐내는 체흐, 데이빗은 머리를 감싸쥐며 아쉬움을 표했다. 전반 3분만에 골을 기록할 절호의 찬스였는데 너무 아쉬웠다.
"잘했어 잘했어!"
실망하지 말라며 마르코 로이스가 박수를 치며 코너킥을 준비하기 위해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 말대로였다.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데이빗은 아쉬움을 떨치고 페널티 박스 내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여기는 조아라 회사
-직원 분의 자리를 강탈(?)해서 예약 등록 중입니다
-자 어서 절 찬양 하시죠 (당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