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40 =========================================================================
"어서 오세요. TV로 많이 보고 이이로부터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처음 보는데도 친근하네요."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맞이해 주는 제라드의 부인 알렉스 커란, 데이빗 또한 마주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인사했다.
"갑작스럽게 찾아 오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실례가 아닌지 모르겠네요."
"천만에요. 그런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있다 가요."
손을 내저으며 편하게 있으라는 말, 데이빗은 선물로 급하게 사온 와인을 건넨다.
"어머? 아, 이거 준비한다고 좀 늦으셨구나?"
알만 하다는 듯 눈웃음을 지으며 받아 든다. 데이빗은 뒤통수를 긁으며 대답했다.
"처음으로 방문하는데 선물을 준비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급하게 준비하느라 좀 부족하지만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네요."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데요, 이이의 동료라면 언제든 편하게 찾아와도 괜찮아요. 그리고 선물 고마워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생산자의 와인이네요. 어머? 이 빈티지 아주 훌륭한 거잖아요? 귀한 선물을 받았네요."
와인에 대해 조예가 없는 데이빗이었기에 그런가 보다 했다. 제라드의 조언에 자신의 와이프가 좋아하는 와인을 골랐을 뿐인데 마음에 들어하니 기분이 괜찮았다.
"괜찮으면 이거 저녁 식사에 같이 곁들일까요?"
"아, 괜찮습니다. 나중에 두 분이 즐겨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시즌 중에는 제가 술을 마시지 않기로 해서요."
데이빗의 말에 알렉스는 아 하는 탄성을 흘리며 대단하다는 듯 바라본다.
"자기 관리가 철저하시네요. 젊은 나이에 그렇게 금욕적으로 생활하기 쉽지 않을 텐데요."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에요. 나이는...젊은 편이지만 체력은 다른 선수들보다 떨어져서 그렇게 자랑할 일도 아닌데요. 관리하지 않으면 제대로 뛸 수 없어요."
데이빗의 대답에 입을 가리고 웃음을 터뜨리는 알렉스.
"꼭 베테랑처럼 말하는 것 같네요. 그럼 나중에 시즌 끝나고 한 번 찾아 오세요. 이이가 시즌 끝나면 다른 선수들을 초대해서 파티를 종종 열거든요. 그때 함께 즐겨도 괜찮을 것 같네요."
"네. 초대해 주시면 꼭 올게요."
"아, 너무 얘기가 길어졌네요. 배고프죠? 준비한 건 별로 없지만 많이 들어요. 아, 이쪽은 우리 딸들이에요. 릴리, 렉시, 인사하렴. 아빠와 같이 축구하는 동료란다. 아, 저기 애 아빠가 안고 있는 아이는 셋째 루르드에요."
"안녕하세요. 릴리 제라드에요."
"안녕하세요. 렉시에요."
인형같이 귀여운 아이들이 예쁘게 인사하자 데이빗은 환하게 미소지으며 무릎을 굽히고 눈 높이를 맞추며 인사를 했다.
"안녕? 귀여운 아가씨들? 반가워. 데이빗 장이라고 해. 정말 예쁘구나."
조금 부끄러운 지, 첫째 릴리는 엄마의 다리 뒤로 숨어 버렸다. 둘째는 붙임성이 좋은지 더 어린 나이임에도 똘망똘망한 눈으로 데이빗과 눈을 마주쳤다.
"으음...저 캡틴?"
"음?"
렉시를 한 번 안아봐도 될까요? 너무 귀여워요."
간절한 눈빛으로 제라드를 바라보는 데이빗, 제라드는 한숨을 쉬며 허락했다.
"조심해서 안아 주도록. 혹시나 우리 렉시가 싫어한다면..."
바로 내려주라고 말하기도 전에 데이빗이 팔을 벌려 렉시에게 안기라고 말한다. 렉시는 경계심없이 쪼르르 달려와 데이빗에 품에 폭 안겼다.
"꺄하하하."
자신의 딸을 안아 들고 재롱을 부리며 이리 저리 흔들어 주는 데이빗, 렉시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해맑은 웃음을 터뜨리며 즐거워한다. 그 모습을 보는 제라드의 표정이 영 어색하다.
"당신도, 렉시가 저렇게 즐거워 하는데 뭐가 그리 불만이에요?"
"...내가 뭘 어쨌다고."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린다. 알렉스는 그런 남편의 모습에 허탈한 듯 웃음을 흘린다.
"애하고 그냥 놀아주는 거잖아요. 정말...나중에 우리 딸들 결혼할 때 어쩌려고 이러는 건지."
"......"
딱히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돌리는 제라드, 역시 잉글랜드 최고의 딸바보로 꼽히는 남자 다웠다.
"그만 식사 하지. 배가 고프군."
그만 내 딸을 내려 놓으라는 뜻을 에둘러 표현한다. 알렉스는 못말리겠다며 웃음을 터뜨렸고 데이빗은 조심스레 렉시를 내려 놓았다.
"그래요. 아이들은 먼저 식사를 했으니 두 분만 식사를 하면 될 것 같네요. 얘들아, 엄마하고 저쪽가서 놀자."
그러면서 데이빗을 향해 미안하다는 듯 이야기한다.
"미안해요. 손님 대접이 말이 아니네요. 아이들을 슬슬 재워야 할 시간이라서요."
"아니에요. 제가 갑자기 찾아와서 실례가 많습니다."
"그럼 식사하면서 이 사람과 이야기 나누세요."
식사는 맛이 썩 훌륭했다. 급하게 준비한 요리답지 않게 종류도 꽤나 많았고 데코레이션도 훌륭했다. 데이빗은 식사 내내 와이프 분의 요리 솜씨가 훌륭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제라드는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자신의 와이프에 대한 칭찬이 기분이 좋았던지 표정이 괜찮았다.
"술은 마시지 않는다고 했으니...주스면 괜찮나?"
"아, 네."
식사를 마치고 디저트를 즐기는 두 남자, 슬슬 본론을 이야기할 시간이었다. 제라드는 자신의 몫으로 와인 한 잔을 따랐고 데이빗에게는 오렌지 주스를 주었다. 치즈를 한 입 베어 물며 제라드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오늘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음...그러니까요."
조금 머뭇거리는 데이빗, 제라드는 아직 이 녀석이 자신에게 편하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것을 느꼈다.
"좀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야?"
"아뇨, 그건 아닌데."
"편하게 이야기해도 괜찮아. 아, 다른 팀으로 이적하고 싶다는 말만 아니면 돼. 그런 상담도 많이 받아 봤지만 정말 유쾌하지 못한 경험이니까."
장난스레 손을 으쓱하는 제라드, 데이빗은 그 말에 호기심을 느꼈다.
"에? 캡틴에게 와서 이적하고 싶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많아요?"
"...이적하는 선수들은 대부분 그렇지. 뭐, 말 없이 구단과 이야기해서 그냥 가는 친구들도 있긴 하지만."
영 씁쓸하다며 중얼거리는 제라드였다.
"사실 팀을 선택하는 건 각자의 자유지만, 내 입장에서는 좀 씁쓸한 경우가 많아. 정말...떠나기 보내기 싫은 친구들이 그렇게 와서 이야기를 하면 정말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데이빗은 직감적으로 그가 토레스의 이적과 관련된 기억을 떠올리고 있음을 알았다. 사실 토레스는 데이빗 본인에게도 묘한 감상을 불러 일으키는 존재였다. 그가 리버풀에서 왕으로 군림하던 시절, 자신은 유망주에 불과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그와 경쟁 또는 공존을 노려보기도 전에 그는 다른 팀으로 떠나 버렸고 말이다. 작금에 이르러야 누구도 데이빗 자신과 토레스를 비교하지 않는다. 성적이 비교하기 미안한 수준으로 벌어져 버렸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데이빗은 아직도 조금은 그를 의식하는 감정이 남아 있었다.
"페르난도...씨의 이야기죠?"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진다. 제라드는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사실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아. 아니, 유쾌하지 못했던 기억이라는 건 변하지 않겠지.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너와 그 친구가 함께 이 팀에 있었다면, 그리고 루이스와 마르코가 너희를 뒷받침한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어."
와인 잔을 들어 살짝 음미한다. 달콤 쌉싸름한 와인의 맛과 닮았다. 지나간 추억을 회상하는 것은 그런 느낌이다.
"저도 그게 좀 아쉽긴 해요. 사실...이제는 직접 경쟁할 수도 없어서...아직도 그 사람을 의식하는 마음이 조금 있네요."
"너야 이제 그 친구를 의식할 필요가 없지. 페르난도가 한창 폼이 좋았을 때를 봐도 너와는 비교하기가 힘든데 말이야. 이번 시즌에 그 친구의 최단 기간 골도 깨버렸잖아?"
"그거랑은 좀 달라요. 만약 그 사람이 우리 팀에 있는 상황에서 그랬다면 조금 달랐겠지만...아, 저도 제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잘 모르겠네요."
혼란스러운 데이빗의 반응에 제라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그가 말하고자 하는 느낌을 알 것 같았다.
"과거란 그런 것이지. 나쁘진 않아. 그런 부분들이 오히려 널 더 달리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을 테니 말이야."
"그런가요?"
"그래, 아무튼 페르난도는...떠나기 전에 날 찾아와서 나에게 구단을 설득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어. 나는 최선을 다해서 그를 잡아 두고 싶었지. 그는 나에게 케니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말했어. 하지만 난 정말 말하고 싶지 않았어. 절대로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캡틴의 역할이었지. 그가 와서 나에게 그런 말을 했을 때, 내 심장이 칼로 찔리는 기분이 들었어."
"...저는 사실 캡틴의 마음을 제대로 알 기 힘들어요. 그런 경험이 없으니까요. 그래도, 저와 친한 동료들이 그런 말을 한다면 정말 슬플 것 같아요."
조금 이야기가 무거워졌다. 제라드는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듯 재차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이런 얘기만 아니라면 편하게 해도 좋아. 설마 이적하겠다는 말은 아니지?"
"그럴리 없잖아요. 제가 어딜 가겠어요."
긴 말없이 단호히 부정하는 데이빗의 모습이 만족스러웠는지 제라드가 보기 드믄 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농담삼아 이야기하긴 했지만 데이빗이 이적하겠다고 나설 경우 더 이상 버티기 힘들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 녀석이 이적하면...정말 나도 은퇴해 버리고 싶어질 지도 몰라.'
선수 생활 말년에 찾아온 복덩이였다. 자신의 염원, 그리고 구단의 염원을 이뤄줄 소중한 동료이자 파트너, 그리고 자신이 후계자로 점 찍고 있는 재능. 그런 그가 만약 다른 클럽으로 떠나고 싶다고, 그동안 자신에게 상처를 준 여럿처럼 말을 꺼낸다면 정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질 것 같았다. 그는 이 귀중한 복덩이를 절대 다른 팀에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구단에 이 녀석이 팀 내 최고 수준의 대우를 받는다고 해도 전혀 상관 없다고 이야기했지.'
팀 내 최고 수준의 대우 또는 리그 최고 수준의 대우라고 하는 건 그 자체로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선수로서의 자존심을 가장 직접적으로 충족시켜줄 수 있는 지표가 바로 돈 문제였으니 말이다. 제라드도 알고 있었다. 그가 비록 팀 내 최고 수준, 리그에서 최고 수준의 대우를 받고 있다고 하지만 그가 시장에 나갈 경우 이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받아 낼 수 있음을 말이다. 그랬기에 그가 자신보다 더 높은 금액을 받는다고 해도 개의치 않을 수 있었다. 자신도 이제 30 줄에 접어 들었다. 이제 돈 욕심은 별로 없었다. 그보다는 선수 생활의 숙원, 우승이 더 중요했다. 다른 클럽에서 드는 우승은 그에게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이 클럽에서 우승하길 바랐고 그랬기에 데이빗에게 최고 수준의 대우를 해주라 구단에게 요청했고 그를 남기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던 것이다.
"그래, 나도 우리 팀의 어떤 선수도 이제는 떠나 보내기 싫어. 다 함께 성공적인 시간을 함께 했으면 좋겠어."
그러면서 손을 으쓱하며 이제 용건을 말해 보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사실, 캡틴이 예전에 저에게 말을 했었잖아요. 이제 라커룸에서, 그리고 경기 중에 동료들을 이끌어 나가라고요."
"그랬지. 그 이후로 잘 하고 있던데? 오늘도 괜찮았어. 사실 네가 말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야기했을 말들이었어. 네가 적절하게 그들의 집중력을 살려 주었고 덕분에 난 편하게 지켜볼 수 있었지."
대견한 듯 데이빗을 칭찬하는 제라드, 데이빗은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표정이 밝지 않았다. 제라드는 무엇이 이 어린 녀석을 고민하게 하는 지 궁금해졌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 표정이 좋지 않은데? 혹시 누가 너에게 뭐라고 말한거야?"
"아뇨, 그런 건 없어요. 다들 제 말을 존중해 주었어요. 그런게 아니라..."
한숨을 쉬며 말을 정리하는 모습, 제라드는 인내심 있게 그가 말하길 기다렸다. 생각이 정리되었는지 데이빗이 조심스럽게 말을 잇는다.
"캡틴이 그렇게 말 하고 나서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어요. 하지만..."
"하지만...아무래도 누군가를 이끄는 건, 저에게 맞지 않는 옷인 것 같아요."
============================ 작품 후기 ============================
-아?
-ctrl+z를 까먹고 있었네요!
-왜 진작 말해주지 않으셨나요! (뻔뻔)
-죄송합니다
-잠깐 정신줄을 놨네요
-카르데 님~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