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Answer-241화 (24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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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지 않는 옷이라..."

제라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 어린 친구가 진중한 리더의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성격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언제나 유쾌하고 동료들과 즐거이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었으니 말이다. 때로는 쓴 소리도 아끼지 않아야 할 리더의 자리에 그리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었다.

"좀 부담스럽다는 말이지? 그들에게 쓴 소리를 하는 것도, 그들을 이끄는 일들이 말이야."

"...맞아요. 오늘 말하면서도 뭔가 어색했어요. 캡틴은 잘한 일이라 하지만, 저는 잘 모르겠어요."

자신없다는 듯 털어 놓는 데이빗의 모습에 제라드는 그의 마음을 이해했다. 실력이야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하지만 이제 21살의 어린 선수였다. 경력도 정말 짧은 선수였다. 유소년 클럽 경험도 없었기에 하다 못해 또래를 이끌어 본 경험도 없는 것이 데이빗이었다. 갑자기 퍼스트 팀에서 자신보다 경력이 많은 베테랑 선수들을 이끌라고 하면 위화감이 드는 것이 당연했다.

"사실 너에게 부담을 주고 싶어서 한 말은 아니었는데 말이야."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며 제라드가 입을 열었다.

"내 개인적인 욕심을 말하자면, 나는 네가 나처럼, 그리고 캐라처럼 오래도록 이 클럽에 남아서 팀을 이끌어 주었으면 좋겠어. 아, 물론 강요하는 건 아니야.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인 바람 정도라는 거지, 널 속박하겠다는 뜻은 아니야."

오해하지 말라며 첨언하는 모습, 데이빗은 본론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기분이 좋았다. 그가 자신을 차세대 프랜차이즈로 생각하고 있다는 건 감정적인 충족감을 선사해 주었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나도 20대 초반에 완장을 물려 받았어. 너보다는 나이가 많았지만 말이야. 사미는 정말 훌륭한 캡틴이었어. 나도 한동안 내가 잘하고 있나, 내가 할 일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었어."

"...캡틴이요?"

그럴리 없다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데이빗, 제라드는 너털 웃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이 녀석의 머리속에서 자신은 슈퍼맨처럼 전지전능한 존재로 각인되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라고 다를 건 없었지. 지금도 내가 완벽하게 잘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 더 잘할 수도 있었을 거야. 실제로 다른 선수들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고 있기도 하고. 요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는 거야. 그런 면에서 너는 나보다 훨씬 잘하고 있어."

"하지만..."

칭찬은 기분 좋았지만 조금 자신이 없다며 데이빗이 말을 흐렸다. 제라드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강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지금 바로 너에게 모든 역할을 요구하진 않을 거야. 조금씩, 천천히 나아가면 돼. 그동안은 나도, 그리고 캐라나 다른 동료들도 널 도와줄 거야. 누구도 널 무시하지 않을 거야. 모두 널 존중해 줄 것이고 네가 가는 곳을 함께 걸어갈 거야."

"......"

살짝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기는 데이빗, 제라드는 이 어린 선수가 용기를 가지길 원했다.

"네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 지는 모르겠다. 어찌보면 너에게 캡틴이라고 하는 이미지가 나라는 사람으로 잡혀 있을 지도 모르겠어."

말하면서도 쑥쓰러운지 제라드가 콧잔등을 슬쩍 훔친다. 데이빗은 슬쩍 고개를 들며 당연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당연하죠. 캡틴은...캡틴이니까요."

'추종자를 두면 이런 느낌이겠지.'

뭐 세계 최고의 선수를 추종자로 둔 느낌도 나쁘지 않다며 제라드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나처럼 할 필요 없어. 그냥 마음 가는대로 해. 누군가를 따라하지 마. 나도 사미를 따라하려고 해본 적이 있어. 하지만 그거야 말로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거야. 그걸 알고 나서는 내 스타일대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동료들을 대했고 그들은 내 진심을 알아 주었어."

"억지로 멋진 말을 꾸밀 필요도 없어. 말하기 어려우면 행동으로 보여줘도 돼. 그런 면에서 넌 잘하고 있어. 부담스러울 수도 있어. 하지만 그건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 뿐이야.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거야. 그때까진 내가 옆에서 많이 도와줄 게."

이렇게까지 말을 해주는데 더 못한다고 빼기도 뭐했다. 데이빗은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제가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계속 해 볼게요. 그러니까..."

"그래, 어려운 일이 있으면 지금처럼 언제든 말해도 좋아. 캐라나 다른 친구들에게 말해도 좋고. 누구도 너의 도움을 거절하지 않을 거야."

어느 정도 일단락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제라드가 남은 와인을 홀짝인다. 이런 고민은 나쁘지 않았다.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팀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것이고 팀의 발전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증거였으니 말이다. 관심이 없다면 이런 진지한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을 것이다.

"좀 개운해졌나? 더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어?"

"아뇨, 괜찮은 것 같아요. 앞으로 또 캡틴을 이렇게 귀찮게 할 지도 모르지만..."

데이빗의 말에 제라드는 신경쓰지 말라는 듯 손을 으쓱인다.

"귀찮지 않아. 언제든 환영이야. 부담갖지 말고 편하게 이야기 해."

그 말에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데이빗, 그는 오늘 제라드오 조금 더 가까워 진 느낌이 들었다. 이후 한동안 더 잡담을 나눈 두 사람, 슬슬 귀가해야할 시간이 가까워졌고 데이빗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얘기는 잘 나누었나요? 손님 대접을 제대로 못해서 미안해요."

현관 앞에서 릴리, 렉시와 함께 배웅을 하는 알렉스 커란, 데이빗은 괜찮다며 연신 손사래를 쳤다.

"우웅..."

데이빗이 간다고 하자 렉시가 고사리같은 손을 뻗어 온다. 데이빗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마주 팔을 활짝 펼친다. 제라드가 옆에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듯 험험 하며 헛기침을 한다.

"아무리 너라도 내 딸은..."

"이이가...무슨 소릴 하는 거에요?"

눈을 곱게 흘기며 제라드의 옆구리를 콕 찌르는 알렉스, 제라드는 입맛을 다시며 데이빗의 품에 안겨 있는 렉시를 바라본다. 뭐가 그리 좋은지 방실방실 웃음을 흘리며 즐거워 하는 딸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복잡해져 온다.

"...잘 시간 아니었어?"

"그런데 오늘은 잠이 안오나 봐요. 루르드는 지금 재웠어요."

에둘러 표현하는 모습에 알렉스가 다시 한 번 웃음을 터뜨린다. 그러는 사이 어느 정도 놀아줬다 싶은지 데이빗이 조심스레 렉시를 내려 놓으며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눈다.

"다음에 올 때는 따님들 선물도 사와야 겠어요."

"부담 갖지 말고 오라니까요."

"애들이 너무 이뻐서요. 저도 나중에 이렇게 귀여운 딸이 있으면 좋겠어요."

역시 딸이 최고라는 데이빗의 말에 제라드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알렉스는 데이빗이 나중에 자신의 남편 못지 않은 딸바보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갑자기 찾아와 실례가 많았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조심해서 가요. 다음에 또 놀러 와요."

"조심해서 들어 가고, 내일 훈련장에서 보자."

제라드 부부, 그리고 딸들과 인사를 마친 데이빗은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덧 4월, 밤이지만 그리 쌀쌀한 날씨는 아니었다. 제라드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 졌다. 딱히 해결된 것은 없지만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조금 풀리는 느낌이 있었다.

"뭐 일단 하다보면 되겠지."

팀을 잘 이끌어야겠다는, 잘 이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잠시 접어 두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거라는 말은 실감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오랜만에 박싱 데이 무렵과 비슷한 일정이었다. 챔피언스 리그 8강 전후로 3~4일 간격으로 시합이 계속 이어졌다. 아스톤 빌라와의 32라운드 경기가 끝나고 2일 만에 블랙번 로버스 원정을 떠난 리버풀이다. 이 경기 이후로는 일정에 상당히 여유가 있었기에 어찌보면 마지막 고비라고 할 수 있는 경기였다.

블랙번 로버스는 약체로 분류되는 팀이었지만 경기는 상당히 어려운 양상으로 흘러 갔다. 달글리시 감독은 이 경기 이후 일정이 널널하다는 것을 감안하여 조금은 무리일지도 모르지만 주전들 대부분을 라인업에 포함시켰다. 챔피언스 리그, FA 컵에서 모두 탈락한 리버풀이었기에 가능한 운용이기도 했다.

하지만 주전들의 체력 상황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바르셀로나와 경기를 치르며 지독한 소모전을 겪어야 했고, 그 전후로 연달아 시합을 치러야 했다. 그 대부분의 경기에서 주전 라인업을 가동 시켰던 만큼 선수들에게 걸린 부하가 보통이 아니었다.

막시 로드리게스는 부상 복귀 이후 상태가 영 좋지 못했다. 스피드가 한층 떨어졌고 볼을 다루는 감각 역시 좋지 못했다. 그나마 무사 시소코는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좀 헤메는 모습을 보였지만 리그에서는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블랙번은 현재 리그 19위, 강등권에 걸려 있는 팀이었다. 리그 말미에 접어든 요즘, 블랙번으로서는 승점 1점 1점이 귀중했다. 잔류와 강등은 하늘과 땅같은 차이였다. 그만큼 그들은 필사적으로 경기에 나섰다. 괜히 4월 달에 가장 무서운 팀은 강등권 팀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달글리시 감독이 무리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주전들을 대거 출전시킨 이유였기도 하고 말이다.

블랙번은 에너지 레벨에서 리버풀을 압도했다. 홈에서 반드시 승점을 따내겠다고 정신 무장을 한 그들은 경기 내내 리버풀을 압박했다. 투박하고 요령이 부족한 플레이였지만 효과는 아주 좋았다. 평상시라면 월등한 기술과 뒤지지 않는 활동량으로 그들을 되려 압도했을 리버풀이었지만 체력 상황에서 차이가 심하게 났다. 기술로 상대를 압도하는 그림은 체력 상황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는 큰 의미를 찾기 힘들었다.

전반 24분, 니콜라 칼리니치에게 선제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코너킥 상황에서 마틴 스크르텔이 상대의 스크린 플레이에 걸려 버리며 칼리니치의 마크를 놓쳐버린 것이 화근이 되었다.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뛰어 오른 니콜라 칼리니치는 편안하게 헤더로 연결했고 리버풀의 골망을 흔들었다.

리버풀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지쳐있다고 하지만 리버풀은 리버풀이었다. 그들의 자존심은 강등권 팀에게 한 대 얻어 맞고 가만히 있을 정도로 얌전한 것이 아니었다. 전반 36분, 무사 시소코의 패스를 이어 받은 루이스 수아레즈가 특유의 턴을 선보이며 돌파에 성공했다. 그리고 급한 마음에 깊은 태클을 시도한 미첼 살가도의 발에 걸려 넘어지며 페널티 킥을 얻어낸 것이다. 원래대로였다면 스티븐 제라드가 이 킥을 처리했겠지만 최근 상황이 바뀌었다.

데이빗의 득점왕 굳히기 및 전무후무한 40호 골 달성을 위해 페널티 킥, 그리고 박스 근처에서 얻어지는 프리킥은 모두 데이빗이 전담하기로 말이 맞춰진 상태였고 제라드는 거리낌없이 데이빗에게 킥을 양보했다. 데이빗은 침착하게 페널티 킥을 성공시켰고 경기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후반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리버풀이 평소와 같지 않음을 전반을 통해 알아 챈 블랙번 선수들은 한층 거칠게 경기에 나섰다. 현재 17위에 랭크되어 있는 퀸즈 파크 레인저스와 승점 차이가 6점까지 벌어진 상황이었기에 무조건 승점을 따내야 했다. 리그 1위 리버풀을 잡아 낸다면 앞으로의 일정에서 자신감이 생길 것도 분명했기에 그들은 필사적으로 달려들었다.

후반 16분, 데이빗 장의 드리블 돌파를 데이비드 던이 저지해 냈다. 사실 파울에 가까운 플레이였지만 이곳은 블랙번 로버스의 홈, 이우드 파크였다. 소수의 원정팬들은 야유를 보내며 심판의 판정에 항의했지만 경기는 그대로 속행되었다. 페데르센이 역습의 선봉에 나섰다. 왼쪽 측면에서 글렌 존슨을 제친 페데르센은 날카로운 크로스를 페널티 박스로 투입했고 데이비드 호일렛이 가볍게 발로 밀어 넣으며 재차 역전에 성공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잠그기에 나선 블랙번 로버스, 전원 수비 태세로 자신들의 진영에서 꽁꽁 틀어 박혀 버렸다. 작정하고 걸어 잠근 상대를 공략하는 데 리버풀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속절없이 시간은 흘러 갔고 결국 추가 시간에 이르렀다.

그리고 홈 팀, 블랙번 로버스에게 통한의 실책이 찾아 왔다. 박스 바깥에서 시간에 쫓겨 때린 제라드의 슈팅을 급한 마음에 수비수 라이언 넬슨이 손으로 건드린 것이다. 심판이 못보고 지나치기에는 너무 노골적으로 건드린 핸들링 파울이었고 심판은 지체없이 페널티 킥을 선언했다.

역시 이번에도 키커로 데이빗이 나섰다. 추가 시간도 모두 지난 상황, 넣지 못하면 그대로 패배가 확정되는 상황에서 데이빗은 침착했다. 마치 막아볼 테면 막아 보라는 듯 골대 좌측 상단으로 강렬한 슈팅을 꽂아 버린 것. 골키퍼가 방향을 잡았다고 해도 막을 수 없는 코스, 위력이었다.

데이빗의 동점골과 함께 경기는 그대로 마무리 되었다. 리버풀로서는 천만 다행의 결과였으나 같은 날 승리를 거둔 맨체스터 시티의 추격을 허용해야했다. 어느 새 승점 4점 차이, 남은 경기가 5경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유리한 것은 맞지만 완전히 안심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리버풀로서는 빨리 승리를 추가하여 매직 넘버를 줄여야 했다.

그리고 5일 뒤, 리버풀은 홈에서 풀럼을 상대로 프리미어 리그 34라운드를 치르게 되었다.

============================ 작품 후기 ============================

-데이빗: 장인어른! 따님을 제게 주십시오!

-에리카: 뭐?

-제라드: 뭐?

-종신 계약을 해 준다면 딸을 주지

-농담입니다

-오늘 인터넷으로 제라드 자서전 예약 구매했어요

-1월 초에 배송된다는 데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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