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38 =========================================================================
"다시 한 번 계약서 살펴 볼래?"
"아냐, 아까 봤는데 뭘."
데이빗은 티티와 함께 사무실을 찾았다. 손님을 기다리게 하는 것은 큰 실례였기에 빠르게 이동했다. 다행히 약속 시간보다 20분 가량 먼저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럼 잠깐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 난 다른 작업 좀 하고 있을게."
"신경쓰지 마. 약속 시간도 거의 다 되어 가네. 잠깐 뉴스나 좀 보고 있지 뭐."
사무실에 비치된 소파에 앉아 휴대폰으로 뉴스를 확인하는 데이빗, 티티는 짜투리 시간을 활용하여 다른 업무처리를 시작했다. 관리하는 선수가 한 명밖에 없었지만 직원이 단 둘이다 보니 업무량이 적은 것만은 아니었다. 특히 친구의 일을 대신 하는 것이니 만큼 더욱 꼼꼼히 처리하고자 하다보니 그런 경향이 있었따.
똑똑
사무실을 노크하는 소리, 약속한 지원자가 도착한 듯 싶었다.
"들어 오세요."
"실례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여성은 40대 초반, 혹은 중반의 나이로 보였다. 풍성한 금발 머리는 펌을 했는지 적당히 말려 있었고 살집이 넉넉하여 푸근해 보였다.
"반갑습니다. 데이빗 장입니다."
"메리 코디에요. 만나서 영광이에요 데이빗 장 선수."
"먼저 저를 뽑아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 드리고 싶네요."
예의 바르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한다. 데이빗도 황망히 답례를 잊지 않는다. 나이 많은 부인이 인사를 하는데 가만히 고개만 까닥거릴 수도 없었다.
"별 말씀을요. 여기 제 에이전트가 코디 씨와 면접을 진행하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코디 씨께서 좋은 인상을 심어주신 덕분이지요."
예의바르게 겸양하는 모습에 티티는 내심 웃었다. 실제로는 정하기 어렵다고 자신에게 떠 넘겼는데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고 유도리있게 말을 늘어 놓는 모습이 재밌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데이빗도 선수 생활을 하면서 언변이 꽤나 는 것 같다고 느꼈다.
"새뮤얼 씨에게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그렇다고 해도 역시 데이빗 장 선수가 마지막에 결정하셨을테지요."
"코디 씨의 경력과 지난 면접 때의 모습을 생각하면 뽑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었겠지요."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정말 다행이라는 말을 한숨과 함께 늘어 놓는다.
"음? 뭐가 다행이라는 말씀이신가요?"
티티의 물음에 메리는 아 하는 탄성과 함께 살짝 낯을 붉히며 대답했다. 자신도 모르게 본심이 나와버려 조금 부끄러운 모양이다.
"요즘 일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요. 일 거리 자체도 잘 없는데다 한 번 공고가 뜨면 정말 경쟁률이 보통이 아니랍니다. 이번에도 꽤나 많은 지원자가 몰린 것으로 알고 있어요. 내심 불안했는데 정말 운이 좋은 것 같네요."
실제로 많은 지원서가 몰렸기에 티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말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 그렇군요. 그래도 코디 씨의 경력을 보면 상당히 많은 일을 해 오셨는데요. 그런 고충과는 거리가 먼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지원서에서 다양한 일을 소화한 그녀였기에 일을 구하는 것이 그리 어려워 보이진 않았기에 티티의 의문은 당연했다.
"최근에는 쉽지가 않네요. 그래도 이전에 일했던 곳에서 좋은 평을 해주셔서 어느 정도 구하는 데 도움이 된 건 사실이죠."
겸손한 듯 대답, 하지만 결국 자신에 대한 어필이었다. 넌지시 자신의 성실함과 업무 능력에 대해 알리는 모습, 이미 채용이 확정되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 때문이리라. 티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뭐, 길게 이야기할 것도 없이 계약서를 살펴 보실까요?"
"네, 그랬으면 좋겠네요."
테이블에 계약서를 꺼내 올리는 티티, 그리고 메리에게 건네 준다.
"살펴 보시죠. 계약에 대한 세부 내용, 급여, 기간 등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일단 확인해 보시고 다른 생각이 있으신지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계약서를 받아들고 꼼꼼히 살펴보는 메리, 근로 기간 및 시간, 그리고 급여를 살펴보며 조그맣게 '와우'하고 탄성을 흘린다. 그리고 근로 시 주의 사항 및 준수사항도 꼼꼼히 체크하는 모습, 한참 살펴보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계약서를 내려 놓는다.
"조건이 아주 좋네요. 굳이 더 첨언할 것이 없어 보여요. 신경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약서가 마음에 들었는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감사를 표하는 모습이다. 티티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땅한 조건일 뿐인데요. 그럼 이 계약서대로 진행하면 되겠습니까?"
"네. 저는 만족스럽네요. 바로 사인하면 될까요?"
"그렇게 하시죠. 이쪽에 서명해 주시면 됩니다."
유려한 필체로 서명을 마치는 메리, 순식간에 계약이 체결되었다. 티티는 굳이 한 푼 아끼자고 계약서를 박하게 작성하지 않았다. 데이빗의 입장에서 어차피 큰 돈도 아니었던데다 한 동안 친구의 집을 책임질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적당한 조건으로 만족을 시켜줘야 일에 최선을 다 하기 마련이다.
"좋습니다. 이걸로 계약이 마무리되었군요. 축하드립니다 코디 씨."
"이걸로 결정 되었네요.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제 집을 관리하는 것처럼 최선을 다 하겠어요."
살짝 악수를 나누며 계약 성립을 축하한다. 몇 마디를 더 나눈 뒤 메리가 사무실을 떠날 채비를 했다.
"그럼 5월 25일부터 일을 시작하면 되고, 그 전에 한 번 더 방문하면 되겠지요?"
"네, 방문하시기 전에 연락을 주시면 감사하겠네요."
"그거야 당연히 해야할 일이죠. 그럼..."
살짝 목례를 하며 문을 나서는 메리, 그러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데이빗을 돌아 본다.
"응? 더 하실 말씀이라도 있나요?"
"아...아뇨."
잠깐 고개를 갸웃하던 메리, 곧 절레절레 흔들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럼...다음에 뵙겠습니다."
다시 한 번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서는 메리, 데이빗은 고개를 갸웃하며 티티를 바라 보았다.
"뭐 할 말이 있었던 것 같지 않아?"
"글쎄?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네."
"생각해보니 계약 내용이 좀 마음에 안 들었다던가?"
"아니, 그런 것 같지는 않던데? 혹시 너한테 사인을 해달라고 부탁하려던 게 아니었을까?"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하는 티티, 데이빗은 쩝 입맛을 다셨다.
"그런가? 그런 거였으면 그냥 말해도 됐을텐데."
"뭐 정확한 건 나도 모르지.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고."
"그렇겠지? 뭐 중요한 일이면 나중에 얘기하겠지 뭐."
"그래. 그럼 이제 어떻게 할래? 집까지 데려다 줄까?"
"뭘, 혼자서도 갈 수 있어. 너도 바쁘잖아. 아, 근데 시간이 벌써 점심 시간이네. 괜찮으면 같이 점심이나 먹자. 그리고 난 집에 가면 될 것 같은데."
"그래, 이 근처에 괜찮은 집이 있어. 제임스하고 가 봤는데 먹을만 하더라. 너도 마음에 들 거야."
"그럼 5월 말부터 그 아주머니가 오셔서 집안 청소나 관리를 해준다는 말이지?"
"응, 5월 중순에 시즌이 끝나잖아. 일주일 정도는 집에서 쉴 시간이 있을 거야. 그리고나서 대표팀 훈련에 참가해야 하니까 그때쯤부터 일을 시작하실거야."
학교 일정을 마치고 자신의 집으로 찾아온 에리카와 함께 저녁 식사를 마친 데이빗, 거실에서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던 중 비 시즌기 동안 자신의 집을 관리해 줄 사람을 구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응. 근데 그동안 나한테 부탁해도 되는데. 굳이 사람 쓰지 않아도."
자신이 대신 해줄 수 있다는 에리카의 말에 데이빗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그건 무리였거니와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이미 계약서에 도장까지 찍은 이상 어쩔 수 없었다.
"너 그때가 딱 시험기간이잖아. 5월 말? 그쯤부터 6월 초, 중순까지. 아니야?"
"그건 그런데, 아예 그때 이 집에서 학교를 다니면 되니까. 어차피 우리 집에 있어도 청소는 내가 하니까."
"응? 그래도 돼?"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는 데이빗, 에리카는 안될게 무어냐며 되묻는다.
"당연히 되지. 그렇지 않아? 네가 거절하면 모를까."
"아니 내가 거절할 리야 없는데...근데 좀 이상한데?"
"뭐가?"
고개를 갸웃하는 에리카에게 데이빗이 조금 불만스러운 어조로 말한다.
"내가 전에 같이 살자고 하니까 그때는 거절했잖아. 근데 내가 없을때 온다고 하니 이거 기분이 좀..."
불퉁거리는 데이빗의 모습에 에리카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중얼거린다.
"...그거야 너랑 있으면 시험 기간에도 니가 날 공부하게 내버려 두지 않으니까 그렇지."
"...아?"
억울하다는 듯한 데이빗의 반응에 에리카가 눈을 흘긴다.
"그...그렇잖아. 실제로 맨날..."
"맨날 뭐? 내가 뭘 어쨌는데?"
"...말을 말아야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리는 에리카, 데이빗은 말해 보라며 깐죽거리다 한 대 맞고는 조용해 졌다. 침울해진 모습이 영 불쌍한 강아지같은 꼴이라 에리카가 슬며시 여운을 남긴다.
"...뭐...동거는 다음 학기부터 해도 괜찮을 지도."
"응? 정말?"
반색하며 달려드는 데이빗, 에리카는 슬쩍 피하며 손가락을 흔들었다. 하여간 잠깐이라도 풀어주면 바로 달려드는 모습인지라 방심할 수 없었다.
"너 하는거 봐서."
그런게 어딨냐며 방방 뛰는 데이빗, 에리카는 픽 웃으며 말을 돌렸다. 정말 자신의 남자 친구는 언제 철이 들까 생각하며 말이다.
"아, 시즌 끝나고 일주일 정도 쉴때 있잖아. 별 다른 일정 없지?"
"응 없는데, 너 왜 말을 돌리는 거야?"
단호한 표정으로 확답을 들어야 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데이빗, 에리카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우리 부모님이 널 만나고 싶어 하셔서. 시즌 중에는 너도 이것저것 신경쓸게 많을 테니 그쯤 될 것 같다고 이야기해 놨는데...혹시 그때도 어려울까?"
"에리카의 부모님이? 나를?"
동거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인지라 데이빗은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물론 되지. 아마 그때 CF를 하나 찍을 것 같긴 한데 그래봐야 하루면 되니까 충분히 시간이 있을 거야."
그러면서 내심 긴장이 되는지 말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부모님이 뭐 좋아하시는 거 있어? 선물로 어떤 걸 준비하는게 좋을까? 레스토랑은 어디로 예약해 놓지? 그리고..."
"진정해 데이빗. 아직 언제 만날지 정해지지도 않았잖아."
웃으며 그의 손을 잡는다. 데이빗은 그제야 자신이 너무 흥분했다는 사실을 느꼈는지 어색하게 웃으며 뺨을 긁었다.
"우리 부모님 그렇게 엄하거나 까다로운 사람들 아니야. 그냥 딸의 남자 친구를 보고 싶어하는 것 뿐이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래도...어떻게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겠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에리카의 부모님인데."
"정말이라니까? 우리 부모님도 너의 팬이야. 그래서 널 엄청 좋아하시니까 너무 긴장할 거 없어. 그리고 벌써부터 무슨 긴장을 하고 그래?"
"응. 알겠어. 그래도 신경써야 하는 일이야. 나중에라도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거 알려줘."
"알았어. 그럼 나중에 집에가서 5월 중순 쯤에 보는 걸로 이야기해 놓을게."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기고 돌아갈 채비를 한다.
"벌써 가게?"
"응, 너도 내일 시합이잖아. 일찍 쉬어야지. 지난 경기 치른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잖아."
실제로 내일 치르게 될 아스톤 빌라와의 경기는 바르셀로나와의 경기 이후 3일만에 열리는 경기였다. 그나마 홈 경기라 다행이지만 체력적으로 완벽하지 못한 상태에서 경기를 치러야 함은 변하지 않았다.
"그것도 그런데...아쉬워서 그러지."
일찍 보내기 싫다며 살짝 투정을 부리는 데이빗, 에리카는 못말리겠다는 미소를 지으며 달랜다.
"그래도 나 때문에 니가 경기를 제대로 뛰지 못하면 내가 힘들 것 같아. 이해해 줄 수 있지?"
"응..."
"나도 너하고 더 있고 싶어. 그래도 오늘은 일찍 쉬는게 맞는 것 같아."
그제야 안색이 조금 밝아지며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집까지 태워다 줄게. 그건 괜찮겠지?"
"나야 고맙지. 사양하지 않을게."
에스코트까지 거절할 이유는 없었기에 기분좋게 팔짱을 껴오는 에리카, 데이빗은 차 키를 흔들며 그녀와 함께 집을 나섰다.
============================ 작품 후기 ============================
-오늘 PC방에 가서 작업을 하다가
-중간에 분량을 한 번 날려 먹어서 멘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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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rl+x -> ctrl+s를 눌러 버렸...
-순간 머리가 하얗게...
-Aㅏ...
-다행히 오늘 작업을 일찍 시작해서 복구할 시간이 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