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37 =========================================================================
"어서와 티티."
"자고 있었구나. 약속을 좀 천천히 잡을 걸 그랬나?"
부시시한 얼굴로 자신을 반기는 데이빗의 모습에 티티가 어색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데이빗은 눈을 부비며 고개를 흔들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9시였다. 오늘 구단에서 휴식을 주었기에 알람도 꺼놓고 늘어지게 잤다. 평소라면 훈련이 없는 날에도 몸에 각인된 버릇으로 일찍 일어났을테지만 최근 피로가 쌓여 있었기에 그런 리듬도 조금 어긋난 것 같았다.
"아냐, 이제 일어날 때도 됐지. 아침은 먹었어?"
"아니 아직 안 먹었어. 괜찮으면 같이 식사나 할까?"
"그래, 잠깐 앉아 있어. 얼른 준비할테니까. 먹을만한 게 샌드위치랑 간단한 햄에그 정도인데 괜찮지?"
"충분해. 근데 준비는 내가 할게. 일단 가서 좀 씻고 오는게 어때?"
눈꼽도 제대로 떼지 않은 몰골이라 티티가 웃으며 주방으로 향했다. 데이빗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욕실로 향했다.
"그런데 제임스는?"
"제임스는 잠깐 출장이랄까? 아무튼 업무차 런던에 가 있어. 아마 내일 중에 돌아오지 싶은데. 아, 여기 냉장고 안에 있는 거 아무거나 써도 돼?"
"어, 아무거나 써. 근데 출장? 무슨 일인데?"
각각 욕실과 주방에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목소리가 높아진다. 티티는 달걀을 꺼내 톡톡 껍질을 깨며 외쳤다.
"별 일 아니야. 광고 업체와 간단한 미팅이 있어서. 아, 불안해 하지 않아도 돼. 네가 지금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지, 무슨 말을 할 지 알 것 같으니까."
"...우리 집 욕실에 CCTV라도 달아 놓은 거야?"
막 그래도 되냐며 소리치려던 데이빗이 떠름히 중얼거렸다. 뭐, 어쨌든 제임스가 생각외로 업무를 잘 한다는 말은 들었기에 크게 걱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친구들 사이의 장난에 불과했다. 피식 웃은 데이빗은 옷을 벗고 샤워기를 틀었다. 자면서 흘린 땀을 씻어 내니 한결 개운해졌다. 가볍게 샤워를 마친 데이빗이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주방으로 향했다.
"벌써 다 씻었어? 빠르네. 잠시만 기다려."
"천천히 해도 괜찮아."
"아냐, 다 했어. 엇차."
솜씨 좋게 접시에 햄에그를 담아 내는 티티, 그리고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고 식탁에 마주 앉는다.
"잘 먹을게."
"뭐, 나야 니네 집에 있는 식재료를 썼을 뿐인데. 나야말로 잘 먹을게."
간단한 아침식사, 최근 늘 혼자 아침을 때웠던 데이빗은 오랜만에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하자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인지 평소보다 조금은 수다스럽게 말을 늘어 놓았고 티티는 웃으며 그런 친구의 말을 받아 주었다.
"그래서...후우. 아무튼 램파드 씨는 좋은 사람인 것 같은데, 캡틴에게 그런 말을 듣고 나니까 친근하게 대하기 좀 찝찝해."
"그렇겠네. 내가봐도 정말 단지 개인적인 친분만을 위해서 접근하는 건 아닌 것 같아."
바르셀로나와의 경기가 끝나고 첼시의 프랭크 램파드로부터 문자를 받았던 이야기를 쫑알쫑알 늘어 놓는 데이빗이었다.
"그렇지? 뭐...국가 대표에서 종종 볼 사이니까 친하게 지내면 좋을 것 같기는 한데..."
"상관 없지 않을까? 너 마음 내키는 대로 하면 될 것 같아. 친해진다고 해도 꼭 그 팀을 가야할 의리가 있는 건 아니고."
"그거야 그렇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식사를 마친 두 사람, 그리고 티티가 오늘 용건에 대해 다시 한 번 이야기를 한다.
"어제 전화로 이야기하긴 했는데, 여름에 여기 너네 집 관리를 해 줄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말이야."
시즌을 마치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지 못할 데이빗이었기에 미리 집을 관리해 줄 사람을 구하자고 이야기한 티티였다.
주섬주섬 서류를 꺼내는 티티. 데이빗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서류를 살피며 질문을 던진다.
"이게 다 뭐야?"
"일단 내가 좀 추렸어. 지원자가 생각보다 많더라. 그래도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미리 사람을 구해 놓는 게 낫지 싶어."
"네 말이 맞아 티티. 사실 전에 니가 얘기해 줬을때도 말했지만 난 정말 생각도 못했었거든. 사람을 구하지 않았으면 나중에 집에 와서 먼지 더미에서 잘 뻔했어."
"뭐...그 정도까진 아니었겠지만, 나나 제임스가 중간에 한 두 번 정도는 관리해 줄 수 있는데 우리도 일이 있다보니 말이야..."
쩝 하고 입맛을 다시는 티티, 데이빗은 손사래를 치며 웃는다.
"에이, 무슨 말이야. 이렇게 알려준 것만 해도 고맙지. 그리고 너희들은 내 에이전트잖아. 우리 집 관리인을 해달라고 부탁한게 아니었는데 뭘."
"그래, 아무튼 일단 세 명 정도로 추렸거든. 일단 이 세 명과는 다 만나서 이야기를 해 봤어. 내 생각에는 누구를 선택해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 다들 경력도 좀 있고 신용도 괜찮은 것 같았어."
"흐응..."
콧소리를 내며 서류를 뒤적이는 데이빗, 세 명 모두 중년 혹은 중년에 가까운 여성이었다. 확실히 집안 관리에는 꼼꼼한 여성이 낫겠다며 데이빗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하니까 오히려 더 선택하기가 어려워 지는데? 직접 만나 보았다니까 선택까지 해 주면 안돼?"
데이빗의 말에 난감한 미소를 짓는 티티, 하지만 곧 그것도 그렇겠다며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어렵사리 한 명을 지목한다.
"다 비슷하긴 한데, 굳이 꼽으라면 이 사람을 꼽을게. 사실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굳이 이유를 말하자면..."
"괜찮아. 난 티티 널 믿으니까. 니가 괜찮다고 한 사람이면 괜찮겠지."
그러면서 이 사람으로 하자 라고 간단히 결정을 내린다. 티티는 자신을 믿어주는 친구의 모습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이 친구가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괜찮겠어? 나야 그렇게 말해주면 좋지만."
"어차피 다 비슷하다며? 서류를 봐도 별 차이를 못 느끼겠으니까 이렇게 선택해도 나쁘진 않잖아. 아니면 동전 던지기라도 할까?"
"...아니 괜찮아. 뭐 네 말이 맞네."
그리고는 주섬주섬 전화기를 꺼낸다.
"네 메리 씨 맞으십니까?"
"안녕하십니까. RS 코퍼레이션의 새뮤얼 로이입니다. 저번에 진행했던 면접 결과에 대해 알려드리고자 연락을 드렸습니다."
"네, 축하드립니다. 메리 씨와 계약을 체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 가능하면 빠른 시간안에 계약서를 확정했으면 하는데요, 오늘요? 저녁 이전에는 괜찮습니다만. 네."
"아 지금 바로 가능하십니까? 아, 그럼 두 시간 후에 저희 사무실로 방문 가능하시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휴대폰을 종료하며 티티가 씩 웃어 보였다.
"이 사람도 어지간히 하고 싶었나 보네. 두 시간 뒤에 바로 사무실에서 도장을 찍기로 했어."
"...되게 빠르네. 보통 이렇게 빨리 처리되는 거야?"
"뭐...나도 잘 모르는데 서로 바쁜 일 없으면 빨리 처리해 놓는 게 좋잖아? 계속 신경쓸 필요도 없고 말이야."
"그거야 그렇지."
"아, 너도 같이 사무실 가서 그 사람 한 번 볼래?"
"나?"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되묻는 데이빗, 티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찌되었건 간에 5월 말부터 한 두 달간 네 집을 관리해 줄 사람이잖아. 직접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해도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그것도 그렇네. 알았어. 그럼 같이 가자. 나도 잘 부탁한다고 이야기해야지."
"그래, 그러는게 좋을 것 같아. 아 벌써 준비할 필요는 없어. 두 시간 뒤에 만나기로 했으니까 아직 여유있다고."
옷을 꺼내러 가는 데이빗을 보며 티티가 만류했다. 데이빗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다. 그랬지? 여기서 사무실까지 20분이면 가잖아. 시간이 좀 애매하게 남네."
뭐 할게 없나 두리번 거리는 데이빗, 그리고 구석에 놓인 게임기를 보며 티티에게 말했다.
"어때, 게임 한 판이나 하고 있을래? 나 이제 꽤 많이 늘었다고. 이제 쉽게 지지 않을 거야."
"그럴까? 적당히 몇 게임하면 시간이 맞을 것 같네."
사이좋게 패드를 나눠 들고 소파에 자리를 잡는다. 데이빗의 호언은 거짓이 아니었는지 연신 궁지에 몰리는 티티, 두어 판을 진행하며 모두 데이빗의 승리로 돌아가자 티티는 패드를 내려 놓으며 항복하듯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이야, 이제 못 당하겠네. 도대체 연습을 얼마나 한거야?"
자신을 인정하는 듯한 티티의 말에 데이빗이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동안 게임으로 당했던 설움(?)을 보상받는 것처럼 한층 업된 목소리로 늘어 놓는다.
"그동안 심심할 때 꾸준히 연습했지! 이제 이 정도면 그 망할 디르크 씨의 콧대를 기분 좋게 짓밟아 줄 수 있겠어!"
복수의 시간이라며 음흉한 웃음을 흘린다. 이 망할 게임으로 인해 동료들로부터 웃음거리가 된 시간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이가 갈렸다. 하루 빨리 그 오명을 벗어 던지겠다며 주먹을 불끈 쥐는 데이빗이다.
"그래 그래. 아, 슬슬 나가야 할 시간인데?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나중에 제임스도 껴서 같이 하자고."
"벌써 그렇게 됐네. 그래. 제임스야 이제 내 상대가 안되겠지만 나쁘지 않지."
외출 복장으로 후다닥 갈아 입는 데이빗, 그런 데이빗을 보며 입을 달싹이던 티티,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상한 느낌을 받았는지 데이빗이 고개를 갸웃하며 질문을 던진다.
"왜 그래?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음...아니."
잠깐 뜸을 들이는 티티, 그리고 한숨을 쉬며 그래도 말 해주는 게 낫겠지 라고 덧붙인다.
"사실 최근에 말이야."
"어, 무슨 일인데 그렇게 뜸을 들이는 거야? 듣기 무서워 진다."
너스레를 떠는 데이빗, 티티는 피식 웃으며 말을 잇는다.
"아, 미리 말해 두는데 너무 진지하게 받아 들이지는 마. 요즘 우리 사무소로 있잖아."
조금 진지한 이야기라는 것을 느꼈는 지 데이빗도 웃음기를 지운다. 그리고 이어지는 티티의 말.
"...네가 자신들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연락하곤 해."
"...뭐라고?"
"사실이야. 지금 나와 제임스가 연락받은 숫자를 합치면 세 건 정도 돼. 앞으로도 분명 종종 그런 연락이 잇을 거고."
자신이 뭘 잘못들었냐는 듯 티티를 바라보는 데이빗, 티티는 혀를 차며 다시 한 번 확인 시켜 주었다. 데이빗은 어처구니 없다는 듯 픽 웃었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홰홰 저으며 부정한다.
"난 또. 사기꾼들이겠지. 지금 와서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래?"
"내 생각도 그래. 아마 네가 이렇게 뜨고 나니까 한 몫 잡아 볼 생각으로 사기를 치는 게 아닐까 싶어. 사실 이야기할까 말까 고민하긴 했는데, 나중에 분명 찌라시 언론에서도 들 쑤실만한 화제라서 말이야. 미리 알아두면 대처하기도 편할 것 같아."
"괜찮아. 전혀 신경쓰지 않아. 그리고 만약..."
데이빗의 눈빛이 사늘히 가라 앉는다. 그리고 날 선 어조로 말을 잇는다. 대범하게 넘기는 듯 보였지만 역시 고아 출신이라고 하는 것은 그의 상처였으니 그리 쉽게 아물진 않았을 것이다. 티티는 내심 마음이 아려왔다.
"만약 진짜...내 부모가 날 찾는다고 해도, 난 그런 사람 부모로 인정할 생각 따윈 없어. 나한테 가족은 티티, 제임스, 그리고 에리카 밖에 없어. 나머진 필요도 없다고."
단호한 그의 말에 티티는 고개를 끄덕이며 애써 밝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사실 자신의 말이 그가 잊고 있던 상처를 헤집진 않을까 걱정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숨길 수 만은 없는 일이었기에 조심히 이야기했고 생각보다 그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티티 본인도 데이빗의 생각과 동일했기 때문이다.
'만약 부모란 작자가 눈 앞에 나타난다면 내가 먼저 그 망할 자식들을 가만두지 않을거야.'
"그래. 네 말이 맞아. 아무튼 이런 사기꾼들은 적당히 위협해서 입을 다물게 할게. 그러면 되겠지?"
"응, 그거면 충분할 것 같아. 그리고 걱정하지 않아도 돼. 언론에서 분명 한 번쯤 건드릴 거라는 건 알고 있어. 그것때문에 멘탈이 흔들리거나 그런 일 없을거야."
"멋진 자세야. 내가 괜한 걱정을 한 것 같네."
대견하다며 데이빗의 어깨를 두드려 주는 티티, 데이빗은 에헴 하며 콧대를 세웠다.
"그럼 이제 메리 씨를 만나러 가자. 슬슬 출발하지 않으면 시간이 간당간당 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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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작을 야구로 할까 생각하고 있는데요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스포츠 장르가 아닌 다른 장르를 한 번 써보고 싶은 생각도 들어서요
-물론 The Answer부터 마무리 짓고 나서요
-이거 완결 전에 차기작이라고 새로 올리는 일은 없을 거에요
-연중은?
-ㅠㅠ안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