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Answer-203화 (203/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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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국인 팬의 올드 트래포드 방문기>

잉글랜드는 아시다시피 축구에 미친 나라입니다. 럭비, 크리켓도 꽤 인기가 있는 편이지만 축구에 비할바는 아니죠.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모든 잉글랜드 사람들은 축구를 좋아하고 응원하는 구단이 있다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물론 싫어하는 사람도 있긴 하겠죠?

그 중에서도 제가 방문하게 된 맨체스터 지역은 축구에 특히 열광적인 지역 중 하나입니다. 사실 어딜 가나 비슷하다고는 합니다만, 역시 잉글랜드 최고의 인기 구단이 있는 지역이니 만큼 좀 더 특별한 것이 있지 않을까요?

한국인들에게도 친숙한 구단이죠? 캡틴 박의 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잉글랜드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하고 인기가 많은 구단입니다. 특히 제가 올드 트래포드에서 경기를 직관하기로 한 날은 도시의 분위기가 평소와도 달랐다고 합니다. 다들 아시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사이가 안 좋기로 소문난 리버풀과의 경기가 잡혔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평소에도 열성적인 팬들이지만 리버풀과의 매치가 있는 날에는 그야말로 전쟁을 방불케 하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우연찮게 일정이 맞아 떨어져서 저에게는 최고의 일정이 되었지만요. 올드 트래포드에서 노스웨스트 더비를 직관하게 되다니, 이쯤되면 행운 만렙 인정이죠?

사실 우리 나라에서는 맨유와 리버풀의 경기를 두고 레즈 더비, 혹은 로즈 더비라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입니다. 여기에서는 레즈 더비라고 하면 못 알아 듣는 사람이 많다고 하더라구요. 여기에서 레즈 더비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로즈 더비라는 말은 있긴 한데 맨유와 리버풀 간의 경기가 아니라 맨유와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경기를 두고 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리즈 아시죠? 누구누구의 리즈 시절의 그 리즈...얘넨 도대체 언제쯤 올라올 건지...

리즈 유나이티드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제가 사실 유럽 축구에서 가장 좋아하던 팀은 리즈 유나이티드였습니다. 사실 이유는 거창한 게 아니고...그때 축구 게임을 하는데 팀 이름이 뭔가 멋있어 보였거든요. ^^;;

아무튼 그 리즈 유나이티드가 제가 군대갈때 쯤 해서 강등당하더니,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는 지금까지도 올라오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참 착잡하네요. 역시 사람이나 클럽이나 훅 가는 건 한 순간인것 같습니다...ㅠㅠ

사설이 길어졌네요. 런던에서 2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런던 유스턴 역에서부터 맨유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정말 많더라구요. 기차도 그런 팬들로 거의 만원이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2시간 거리를 기차로 이동해서 경기를 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 까요? 확실히 여기에서 축구는 스포츠가 아니라 생활이었습니다.

맨체스터 피카디리에 도착하자마자 올트 트래포드로 이동했습니다. 호텔 체크인을 먼저 하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되는 바람에 일단 경기부터 보고 호텔로 가야겠다 싶었죠. 트램(노면 전차)을 타고 이동했습니다. 올드 트래포드 역까지 15분 정도 걸렸네요. 역에 내려서 경기장까지 걷는 시간도 비슷하게 걸렸습니다. 런던에서 올드 트래포드로 경기를 보러 오신다면 최소한 3시간 이상 여유를 잡고 오셔야 할 것 같네요.

경기가 있는 당일에는 길을 모르셔도 전혀 상관 없을 것 같더군요. 그냥 99%의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따라 가면 됩니다.^^; 참 쉽죠? 사람 정말 엄청나게 많습니다. 워낙 많은 관중들이 몰리는 경기다 보니 길거리에서 부터 안전에 대비한 경찰들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 하긴 여긴 훌리건의 원산지(?) 잉글랜드니까요...오늘 경기에서 이 경찰들이 할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경기장까지 가는 길에는 노점상들이 많이 있습니다. 기념품도 많이 있고 간단한 먹거리를 파는 가게도 있었는데요, 저는 기차에서 조느라 식사를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여기서 간단히 뭘 좀 먹고 기념품으로 모자와 머플러를 구매했습니다. 약 15파운드 정도 쓴거 같네요.

얼마간 더 걷자 드디어 웅장한 올드 트래포드 경기장에 도착했습니다! TV로만 보던 올드 트래포드를 실제로 보게 되다니 정말 감격스럽더라구요! 한 동안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물론 지나가는 친절한 분께 부탁하여 제 사진도 하나 찰칵!

사진을 찍어 주신 분과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는데요, 사실 그분은 잉글랜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노르웨이에서 오셨다고 하는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골수 팬이라고 하십니다. 오늘 특별히 빅 매치가 있는 날이라 직접 날아와서 관전한다고 하셨는데 참 열정이 대단한 팬이었어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세계적인 인기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왔다니까 바로 '오! Ji의 나라!' 라고 하면서 반가워 하더라구요. 캡틴 박에 대한 칭찬을 아까지 않아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저 역시 몇 년전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특급 조커로 활약했던 레전드 솔샤르 선수에 대한 말을 하면서 금방 친해질 수 있었어요. 좌석이 붙어 있었다면 같이 응원하면서 더 친해질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그분은 작년 11월에 개명된 북쪽 스탠드, 알렉스 퍼거슨 경 스탠드에 자리를 잡았고, 저는 동쪽 스탠드...그것도 2층 좌석을 구한 터라 어쩔 수 없었네요.

작별 인사를 나누고 티켓을 수령했습니다. 그리고 경기장 안으로 향하는데 경기장 안에서 엄청난 소리가 들려서 깜짝 놀랐습니다. 잠깐 벌써 경기가 시작 됐나? 라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시계를 확인하니 아직 시작하려면 여유가 좀 있었기에 안도했지만 말이죠.

알고 봤더니 바로 원정 온 리버풀 팬들이 부르는 응원가 소리였습니다. 경기 시작 전부터 장난이 아니더군요. 대부분 홈 팬들일텐데 이정도의 목소리를 낸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리버풀이 올 시즌 오랜만에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기 때문인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응원하는 팀이 잘 나가면 서포팅도 기분 좋게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경기장 내부에는 경기장 내에 꾸며진 박물관과 기념품 가게 등이 있어요. 평상시에 박물관 투어, 경기장 투어를 즐기는 관광객들이 많다고 하네요. 그것도 보고 싶긴 하지만 오늘은 경기가 있는 관계로! 멀직이 전시되어 있는 맨체스트 유나이티드의 우승 트로피를 보며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진열대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트로피들이 전시되어 있더라구요. 가까이에서 보진 못해서 몇 개나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정말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명문 구단의 위엄을 느낄 수 있었네요.

아, 그리고 알고 계셨나요? 올트 트래포드에서는 공식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입장할 수 없습니다. 저도 가지고 있었는데...경기장 내에서는 절대 찍지 않겠다고 이야기하고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들어 와서 몰래 찍을 생각이었는데 보안 요원이 엄청 많더라구요. 카메라를 꺼낼 엄두를 내지 못했네요. 그래서 핸드폰으로 살짝 살짝 찍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 사진을 못 찍게 하는 걸까요? 플래시 때문에 선수들에게 방해가 되서? 잘 모르겠습니다. ^^;

경기 시작 30분 전 쯤이었습니다. 선수들이 막바지로 몸을 풀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2층 좌석이라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알아 보는데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웨인 루니, 스티븐 제라드 같은 선수들을 직접 보게 되다니, 진짜 감격스러웠습니다. 혼자서 기분이 너무 좋아서 경기 시작 전부터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히죽거리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아마 제가하는 꼴을 누가 봤다면 미친놈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몰라요;;

아쉽게 우리의 캡틴 박은 볼 수 없었습니다. 지난 1월 초에 있었던 경기에서 고질적인 무릎 부상이 도지는 바람에..ㅠㅠ올드 트래포드에 온 김에 우리의 캡틴 박까지 볼 수 있었다면 금상첨화였겠지만...어쩔 수 없었습니다. 지난 리버풀과의 맞대결에서도 한 골 넣었던 만큼 오늘 직접 골을 넣는 모습을 볼 수 있길 기대했었거든요. 많은 골을 넣지는 못하지만 묘하게 강 팀을 상대로 골을 잘 넣는 캡틴 박이니 만큼 기대가 컸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부디 하루라도 빨리 부상을 털고 일어나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그라운드를 누비는 모습을 볼 수 있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리고 어웨이 팀 리버풀의 선축으로 경기가 시작되자 정말 어마어마한 함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예전 2002 월드컵때를 기억하시는 분 많으시죠? 그때의 분위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여기는 일년 내내 월드컵이고 축제인 것 같습니다.

프리미어 리그에서 손 꼽히는 강 팀간의 대결 답게 정말 엄청나게 치열하게 경기가 진행 되었습니다. 사실 좀 무섭기도 하더라구요. 관중들은 정말 미친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소리를 질러 댔고 선수들도 상대를 죽일 듯이 태클을 하고 몸을 부딪히고...TV에서 볼때와도 정말 달랐습니다. 직접 보셔야 압니다. 글로도 표현되지 않는 현장의 분위기라는 것이 있어요!

이날 한 선수는 공을 잡을 때마다 홈 팬들의 야유를 들어야 했습니다. 리버풀에서 10번을 달고 있는 데이빗 장이라는 선수인데요, 축구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잘 아시겠죠? 현재 잉글랜드에서, 아니 전 세계적으로 손 꼽히는 스트라이커로 7버풀 소리를 듣던 리버풀을 우승권으로 끌어 올린 장본인이니까요. 워낙 위협적인 선수인데다 이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하도 많은 골을 넣은 터라...홈 팬들 입장에서는 미울 수 밖에 없는 선수입니다.

그래도 진짜...잘 하더라구요. 저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응원하는 입장인지라 얄미웠습니다만, 수비수 한 두 명 제치는 건 일도 아닌 듯이 해치워버립니다. 스몰링하고 발렌시아가 불쌍해 보일 지경이었어요. 반칙을 하지 않고서야 막을 수 없는 선수였습니다.

사실 이 선수는 외모도 동양인의 모습인데다, 성도 장(Chang)이라고 표시되어 있어서 동양계 2세가 아니냐는 말이 있죠. 중국계냐 한국계냐를 두고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요, 정확히는 잘 모르지만 고아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이런 선수가 우리 나라 출신이었다면 정말 좋았을텐데요.

선취골은 홈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몫이었습니다. 코너킥 상황에서 공격에 가담한 비디치가 멋진 헤딩골을 터뜨렸습니다! 라이언 긱스의 멋진 코너킥을 상대 수비보다 머리 하나는 더 뛰어 오르면서 아래로 찍어 버렸는데요! 정말 속이 시원한 골이었습니다. 이때 정말 관중석에서 지진이라도 일어난 줄 알았습니다. 물론 저도 소리 지르고 방방 뛰고 난리도 아니었지만요.^^;; 하다 보니 옆에 있는 아저씨하고 껴안고 난리를 쳤는데 좀 이쁜 아가씨의 옆자리였다면 더 좋을 뻔 했습니다 ㅋㅋ

올드 트래포드 첫 방문에 선취골을 기록하는 것을 보니 기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잘 하면 오늘 리버풀을 잡는 걸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전반 종료 직전에 실점을 허용하면서 올드 트래포드는 초상집 같은 분위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소수의 원정팬들만 신나서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불러 댔어요ㅠㅠ

골을 넣은 주인공은 아까부터 홈 팬들의 열렬한(?) 야유를 들었던 데이빗 장이라는 선수였습니다. 골문 앞에서 흐른 공이 재수 없게 그 선수에게 걸려 버렸는데요, 소위 말하는 주워 먹는 골이었습니다. 재수도 없죠 정말 ㅠㅠ

그래도 후반에는 이길 수 있겠지...하고 생각했습니다. 1 대 1 상황이었고 전반전에 충분히 좋은 경기를 펼쳤으니까요. 하지만 이번에도 상대의 10번이 문제였습니다. 정말 얄미워 죽겠더라구요. 왜 홈팬들이 그렇게 야유를 해대는 지 알았습니다. 저도 나중에는 야유에 동참했거든요.

프리킥 상황에서 절묘하게 벽을 넘기는 감아차기로 골을 넣어 버렸습니다. 골을 넣을 때 맨유의 진영이 제가 있는 스탠드 쪽이었기 때문에 자세히 볼 수 있었는데, 공이 감기는 궤적이 정말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이 선수가 공을 잡으면 정말 무서워요!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고 골을 먹을 것 같고...

역전을 허용하자 맨유 선수들은 좀 조급해 보였습니다. 라이언 긱스나 폴 스콜스 같은 베테랑 선수들이 뭐라고 독려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지만 분위기가 좋아지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 결국 후반 40분 쯤에 상대 수비수 글렌 존슨의 추가골로 3 대 1로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ㅠㅠ

사실 정말 좋은 경험이 된 올드 트래포드 방문이었지만,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 장면도 있었어요. 몇 몇, 아니 꽤 많은 수의 팬들이 3 대 1로 점수가 벌어지자 경기장을 그대로 나가버리는 장면이 나왔는데요,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럴까 싶기도 한데 좋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축구에 대한 열정과 팀에 대한 애정이 그정도 밖에 안되냐고 묻고 싶었어요.

경기가 끝나고 경기장 내부에 있는 메가 스토어에 들렀습니다. 경기 시작 전에 둘러보고 싶었는데 사람이 워낙 많아서 미뤘는데요, 꽤 사람이 많긴 했지만 그래도 아까보다는 나았습니다. 아마 경기를 져서 그런 것 같아요. 메가 스토어에서는 선수들의 유니폼, 트레이닝 복, 기타 용품 등을 팔고 있었습니다. 저는 열쇠고리하고 머그컵만 사서 나왔네요. 사람이 없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계산을 마치는데 10분은 걸린 것 같습니다. 사람이 몰릴때는 아마 30분은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어요.

경기장 밖으로 나와 다시 트램을 타고 호텔로 갈까 싶었는데...경기 내내 방방 뛰고 소리를 지르느라 체력이 맛이 가버린지라...좀 편하게 가고 싶은 마음에 택시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잉글랜드 택시 비싼 거 다들 아시죠? 여행 오시는 분들은 왠만하면 택시 이용을 하지 않는 것을 권해 드립니다. 돈이 많으시다면 상관 없겠지만...^^;

아무튼 비록 경기에서 패배하긴 했지만 좋은 추억으로 남은 올드 트래포드 직관기였습니다. 만약 축구를 좋아하시고, 잉글랜드 여행을 계획하고 계시다면 꼭! 방문해 보실 것을 강력히 추천드립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에요.

============================ 작품 후기 ============================

-올드 트래포드까지의 여정부분은

-제가 직접 방문해 본적이 없기에

-네이년 검색을 통해 찾은 여행기 몇 편을 참고했음을 알려 드립니다

-여기 직관의 사신 한명 추가요

-와 이분들 저때문이라니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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