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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겼다!"
벤치에 앉아 있던 선수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혈전 끝에 거둔 승리였기에 그들의 감상은 더욱 특별했다. 데이빗도 자리에서 일어나 관중석을 향해 박수를 치며 다가오는 선수들을 맞이 했다. 그는 이번 경기에서 한 골을 기록한 뒤 체력 안배 차원으로 교체 되었었다.
"잘했어 마르코! 헤이, 조단! 오늘 진짜 좋던데?"
"이 정도 쯤이야."
동갑 내기 친구인 조단 핸더슨이 에헴 하며 허리에 손을 올린다. 데이빗은 알겠다며 엄지를 세워 준다.
"오늘은 잘난 척 해도 봐 줄게. 나쁘지 않았어."
"헤이, 얘기는 들어가서 하자. 구단 직원이 사진 찍자고 하니까 빨리 들어와."
"사진? 아, 또 구단 SNS에 올릴 사진 말하나 보네."
카윗이 소리치는 소리에 데이빗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에 사진 찍은 자식이 또 찍는거 아니겠지."
오늘은 선발 자리를 알렉산더 도니에게 넘기고 벤치에서 관전하던 호세 레이나가 불안한 듯 중얼거렸다. 그 말에 옆에 있던 제이미 캐러거가 폭소를 터드렸다.
"아 그때? 진짜 끝내 줬지. 어떻게 그렇게 찍힐 수 있냐?"
단체로 사진을 찍다 보면 꼭 한 명쯤은 상당히 이상하게 찍히는 경우가 있기 마련인데, 지난 번 단체 사진에서는 호세 레이나가 그런 불운의 주인공으로 당첨이 되었다. 절묘하게 눈이 반쯤 떠진 상태에서 찍혔는데 일부러 연출하라고 해도 하기 힘든 수준의 기괴한 모습이 찍혀 버린 것이다. 어지간 하면 다시 찍자고 할 만한데 사진을 찍은 직원은 그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일부러 재미를 위해 무시한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것을 그대로 구단 SNS에 올렸고 팬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런 기억이 있기에 레이나가 지금 불안한 듯 이야기하는 것이었고 말이다.
"젠장, 사람이 그렇게 나왔으면 좀 다시 찍던가 하지. 망할 자식 같으니."
"그냥 니가 못생긴거야 페페."
옆에서 이죽거리는 디르크 카윗, 레이나는 어처구니 없는 표정을 지으며 쏘아 붙였다.
"거울이나 보고 오시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한테 못생겼다는 소릴 들을 순 없어!"
"넌 그 사진이나 다시 보라고. 누가 더 못생겼는지 바로 알 수 있을걸?"
투닥거리는 둘, 제이미 캐러거는 낄낄거리며 둘 사이의 만담을 즐겼다.
"왜? 팬들은 좋아 하던데? 프로 선수라면 팬을 즐겁게 해줘야 하는 거 아냐?"
"너나 즐겁게 해 주라고 캐라. 아무튼 그 망할 인간 보이면 오늘 X나 뭐라고 해 줘야 겠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라커룸으로 향하는 선수들, 다들 이겼다는 기쁨에 피로를 잊은 듯 보였다. 달글리시 감독과 코치진은 그들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오늘 한 골을 기록하며 제 몫을 다했고 후반, 수비를 강화하고자 한 달글리시 감독의 의도에 따라 교체 되었다.
"이겨서 천만 다행이군. 오늘도 졌으면 정말 끔찍한 일이 되었을 거야."
"그렇죠. 선수들이 많이 피로가 쌓인 상태라 불안했습니다."
"정말, 프리미어 리그도 휴식기를 좀 가져야 한다니까요. 남들 다 쉴 때 이게 뭐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12월의 시작이었던 풀럼 전, 그리고 챔피언스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었던 리버풀은, 이어진 프리미어 리그 15라운드 퀸즈 파크 레인저스와의 홈 경기에서 루이스 수아레즈의 해트트릭에 힘입어 3 대 0 대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3일 뒤에 열린 16라운드, 아스톤 빌라와의 원정 경기에서 상대의 날카로운 역습에 2골을 허용하며 끌려갔고, 데이빗이 한 골을 만회하며 분전했으나 결국 1 대 2로 패하며 시즌 2패째를 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숨 쉴틈도 없이 이어진 17라운드 위건 전에서 2 대 2 무승부를 기록하며 같은 기간 전승 행진을 달린 맨체스터 시티에게 승점 동률을 허용하고 말았다. 아직 골 득실에서 앞서고 있어 1위를 달리고 있었으나 15라운드까지만 해도 승점 차를 5점까지 벌려 놓은 상태에서 순식간에 따라 잡혔으니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다행히 오늘 12월 26일, 블랙번과의 경기를 잡으며 한숨 돌리긴 했으나 아직 지옥의 일정은 끝나지 않았다. 12월 30일에는 뉴캐슬과의 홈 경기가 남아 있었다..
"리그 컵에서 탈락한 것을 기뻐해야 하나?"
씁쓸히 웃으며 달글리시 감독이 중얼거렸다. 리버풀이 이 기간에 경기 사이에 텀이 길게 잡힌 것은 이때 리그 컵 일정이 잡혀 있기 때문이었다. 이미 탈락한 리버풀로서는 짧지만 꿀맛 같은 회복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정확히 박싱 데이(26일)에 경기를 치르고 또 4일 뒤에 뉴캐슬하고 경기를 치르네요. 그리고 내년 1월 1일에 맨체스터 시티와 붙는 일정이라니...정말 이건 너무 끔찍하네요."
"맨체스터 시티도 오늘 이겼으니 여전히 승점은 동률이네요."
"그쪽 팀이야 워낙 스쿼드가 두터우니까. 이런 강행군에서 유리할 수 밖에 없어."
완벽한 더블 스쿼드를 갖춘 팀이 맨체스터 시티였다. 벤치에 앉아 있는 선수들, 심지어 벤치에 앉지도 못하는 선수들 중에도 어지간한 팀에서라면 주전을 차지할 만한 A급 선수들 즐비한 팀이 맨체스터 시티였으니 이런 강행군에서 다른 팀에 비해 유리한 것이 당연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선수층을 살려 리버풀이 강행군에 고전하는 사이 차곡 차곡 승점을 쌓았고 약간 뒤처진 거리를 완벽히 좁혀 버렸다.
"정말 겨울 이적 시장이 중요하겠어요. 특히 로테이션 수준의 멤버가 거의 없다시피 한 공격진의 보강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올해가 지나면 우리 공격수들이 모두 퍼져버려도 이상하지 않다구요."
막시 로드리게스는 순조롭게 회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쨌든 그가 팀이 가장 힘든 시기에 손을 보탤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었고 덕분에 매 경기 풀 타임에 가깝게 뛰고 있는 데이빗 장, 루이스 수아레즈, 마르코 로이스와 디르크 카윗이었다.
"알고 있네. 아니면 미드필더라도 영입해야겠지. 어쨌거나 우리는 스쿼드를 좀 더 보강해야 해."
감독만큼 팀의 현재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으랴. 달글리시 감독은 현재 팀의 부하가 위험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더구나 지옥같은 박싱 데이 기간이 끝난다고 해서 이후 일정이 편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1월 말부터 FA컵 32강전이 시작되고, 또 2월에는 챔피언스 리그 16강 토너먼트가 시작되니까요."
챔피언스 리그라는 말이 나오자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한숨을 쉬는 달글리시 감독과 코치들이다. 그들로서는 정말 울고 싶어지는 대진이었다.
"16강부터 밀란이라니...게다가 16강을 이기고 올라간다고 해도 상대는 바르셀로나가 유력하니...이거야 원."
지난 12월 16일, 챔피언스 리그 16강 대진 추첨이 있었다. 리버풀은 F조에서 6전 전승으로 조 1위를 차지했고 16강 조 추첨에서 시드를 받게 되었다. 각 조의 1위 팀들은 16강에서 서로 만나지 않게 시드를 받게 되는데 리버풀은 16강에 오른 1위팀 중에서 가장 운이 없는 팀으로 뽑히게 되었다. 챔피언스 리그의 강자, 세리에 A의 명문, AC 밀란이 그들의 상대로 낙점된 것이다.
인테르 VS 마르세유
바이에른 뮌헨 VS 바젤
아포엘 VS 리옹
레알 마드리드 VS CSKA 모스크바
벤피카 VS 제니트
첼시 VS 우디네세
리버풀 VS AC 밀란
바르셀로나 VS 레버쿠젠
불행하게도 바르셀로나와 같은 조에 걸려 조 2위로 진출하게된 AC 밀란을 만난 리버풀로서는 폭탄을 밟은 꼴이 되었다. 이긴다고 장담하기 어려운 상대, 게다가 이겨도 8강에서 세계 축구의 최강자 바르셀로나와 만나는 것이 유력한 상황이니 말이다.
사실 불운하기로 따지면 AC 밀란이 할 말이 더 많았다. 조별 리그부터 바르셀로나를 만나더니 16강에서는 리버풀, 여기에서 이기면 다시 바르셀로나를 만날 확률이 높으니 미치고 팔짝 뛸 만한 대진이 아닐 수 없었다.
양 팀의 관계자, 그리고 팬들은 재수도 없다며 한숨을 쉬었지만, 다른 팬들은 16강 최고의 빅매치라며 벌써부터 기대를 하고 있었다. 2000년대에 양 팀은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 2번이나 만나며 명승부를 펼쳤던 최고의 라이벌이었다. 2004-05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 리버풀의 이스탄불의 기적이라 불리는 역전 드라마를 썼다면, 2년 뒤인 2006-07 시즌에는 AC 밀란이 리버풀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설욕을 한 상황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두 챔피언스 리그의 명가끼리의 대결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였다.
"한숨 쉬어봐야 일정이 변하는 것도 아니고,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군 그래. 선수들이 기다리겠어. 이만 가자고."
"미치겠군..."
겨울 이적 시장이 코 앞으로 다가온 상황, 리버풀의 단장 코믈리는 머리를 감싸며 중얼 거렸다. 토트넘 단장으로 있을 때도 매번 느꼈지만, 이적 시장은 언제나 마음과 다르게 흘러가곤 했다.
"1200만 파운드(약 200억)라니, 정말 제 정신이 아니군."
구단으로부터 이적료 지원이 충분하지 않은 터라 잘 알려진 A급 선수의 영입은 힘들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저평가 된 선수를 찾아야 했고 그래서 찾은 선수들이 풀럼의 클린트 뎀프시였고 CSKA 모스크바의 혼다 케이스케였다. 하지만 클린트 뎀프시는 토트넘이 관심을 보이며 몸 값이 올라갈 조짐을 보이고 있었고 혼다 케이스케는 소속 구단에서 이적료 책정을 해 놓았는데 그게 1200만 파운드였다. 코믈리가 허탈한 웃음을 흘릴 수 밖에 없는 이유였다.
"구단주가 돈이 많으니 이건 안 팔겠다는 의사로 보아야겠지. 혼다가 좋은 선수긴 하지만 1천만 파운드 이상의 가치가 있는 선수는 절대로 아니니까!"
가스 재벌인 예브게니 기네르 구단주는 돈이 궁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가 이적료를 선수가 시장에서 평가 받는 가치보다 월등히 비싸게 책정해 놓은 것은 실질적으로 팔지 않겠다는 의사 표현에 가까웠다.
"안 팔건데 꼭 살거면 이 정도를 내던가...라는 의미겠지. 망할 놈들."
어지간히 재정이 악화된 팀이 아니라면 보통 이적 시장에서 아쉬운 쪽은 구매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보통 원하는 선수는 정해져 있고 여러 구단이 경합을 벌이는 것이 보통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2배 이상 부풀려 말하는 것을 보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적 시장에서 약점을 보이는 쪽은 언제나 서러운 법이다.
"애초에 600만 파운드 남짓으로 제대로 된 공격수를 사긴 힘들어. 다른 포지션에 비해 너무 비싸."
축구의 꽃은 결국 골이다. 팬들의 인기도 보통 공격수 쪽에 많이 쏠리기 마련이다. 언론에서 보도가 나갈때도 보통은 골을 넣은 선수의 이름이 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세계 최고의 선수를 뽑는 발롱도르에서도 2006년,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던 파비오 칸나바로가 수상한 것을 제외하면 언제나 공격수, 혹은 공격적인 재능이 뛰어난 미드필더가 수상하곤 했다. 자연스럽게 이적 시장에서도 공격수의 몸 값은 타 포지션의 선수에 비해 비싼 편이었다.
"자금만 충분하다면 영입하고 싶은 선수는 정말 많은데..."
그림의 떡이었다. 600만 파운드 가량으로 오퍼를 넣었다가는 1초만에 보낸 서류가 파쇄기로 향할 것이 분명했다. 좀 괜찮다 싶은 공격수들의 경우, 기본적으로 1000만 파운드 이상부터 시작이었다.
"아무래도, 달글리시 감독과 함께 구단주를 다시 한번 만나야 겠어. 지금 이 정도 자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평상 시라면 코믈리도 굳이 이적 시장에 목을 매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선수에 대한 과소비를 경계하는 인물이었고 즉시 전력감의 A급 이상가는 스타 플레이어의 영입보다 유망주, 혹은 저평가된 선수를 찾아 포텐셜을 터뜨리는 것을 더 선호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그가 토트넘에 있었을 때에는 그런 퍼포먼스로도 충분했다. 당시 토트넘은 현실적인 목표가 유럽 대항전 진출이었으니 말이다. 중 상위권의 팀 운영과 우승을 노리는 팀의 운영이 다르다는 사실을 코믈리는 절감하고 있었다.
현재 리버풀은 리그에서도 우승 경쟁을 펼치고 있었고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16강에 올라 있었다. 대진이 만만치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상위 라운드 진출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리그 컵에서야 진작에 탈락했지만 애초에 시즌 계획을 잡을 때 부터 리그 컵은 버리는 경기에 가까웠다. 이런 팀에서의 영입은, 특히 시즌이 한창인 겨울 이적 시장에서의 영입은 다를 수 밖에 없었다. 가장 힘든 시기에 유망주를 키울 정신이 어디 있겠는가? 필요한 것은 즉시 전력감, 로테이션 급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 선수가 필요했다. 그런 선수들은 보통 비쌌고 말이다.
"내 커리어에도 이제는 우승팀 단장이라는 타이틀이 필요해."
토트넘에서 단장으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하며 꽤 유능한 인물이라는 평을 받았으나, 아직 이렇다 할만한 뚜렷한 업적을 세운 바는 없었다. 그는 이번에야 말로 자신의 커리어에 꽃을 장식할 기회라 여겼다.
"20년 넘게 우승을 못하고 있는 과거의 명가를 부활 시킨 단장이라는 타이틀은 상당히 쓸만 하겠지. 무슨 일이 있어도 우승을 시켜야 한다."
============================ 작품 후기 ============================
-하하하핳
-조별 리그에서 꿀대진을 던져 준것은 지옥같은 토너먼트를 만들기 위한 추진력을...
-저때 밀란이 진짜 극혐 대진이었져
-조별 리그에서 바르셀로나랑 두 번 붙고
-16강에서 아스날하고 붙고
-8강에서 바르셀로나...
-한 시즌 바르셀로나 4번
-한바넷
-근데 2무 2패로 나름 선방 함
-응?;;
-메친놈은 사기에요
-특히 저때 메친놈은 진짜 답정너
-난 골을 넣을거고 넌 지면 돼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