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3 =========================================================================
"확실히 스티븐은 좋은 캡틴이네요."
스티브 클락 수석 코치는 센터 서클 부근에서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는 제라드를 바라보며 든든한 느낌을 받았다. 달글리시 감독도 동의하는 부분인지라 굳은 표정을 살짝 풀며 대답했다.
"저 친구는 타고난 카리스마가 있지. 아마 나중에 은퇴하고 나서도 지도자로서 괜찮은 인물이 될거야."
전반을 마치고 라커룸에서 한바탕 혼쭐을 내주려던 달글리시 감독은 이미 제라드가 선수들의 기합을 넣어준 사실을 알았다. 확실히 선수들의 상태는 전반전 동안 보인, 어딘가 넋이 나간 듯한 표정이 아니라 투쟁심이 보였다. 어찌보면 자신이 할 일을 선수가 대신해 준 셈. 달글리시 감독은 유능한 주장을 둔 것도 복이라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그래도 아직 들뜨긴 일러, 선수들이 어느 정도 회복했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두 골차로 지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에버튼은 절대 만만히 볼 팀이 아니라고."
"물론입니다. 그건 선수들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45분 사이에 두 골차를 따라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감독이나 코치로서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남은 것은 선수들이 잘 싸워주는 것, 그것 뿐이었다.
"빨리 추격골을 넣어야 해. 그러면 전반에 내준 흐름을 한 번에 가져올 수 있어."
"캡틴 말이야."
후반전, 선축으로 시작하는 리버풀이었기에 데이빗과 수아레즈는 센터 서클 안에서 시작 휘슬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아레즈가 휘파람을 불며 새삼스럽다는 표정을 짓자 데이빗은 왜 그러냐는 듯 물었다.
"아니, 내가 이 팀으로 이적해 오고 나서, 저 사람이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건 처음 봐서 말야. 맨날 인상을 쓰고 다니긴 하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감싸주는 편이었잖아?"
실제로 그동안 선수의 실수를 강하게 질책하기 보다는 잊어 버리라고, 잘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독려를 해왔던 제라드였기에 수아레즈는 은근히 놀란 것 같았다. 데이빗도 어깨를 으쓱하며 동의했다.
"저도 처음 봐요. 그만큼 팀을 통솔하는 입장이니까 우리보다도 더 답답했던 거겠죠."
"그거야 그렇겠지. 아무튼 다들 좀 정신을 차렸으려나. 후반에도 계속 이러면 나 진짜 못참고 폭발할 거 같은데."
침을 뱉으며 중얼거리는 수아레즈, 실제로 전반전이 끝나고 폭발할뻔 했던 수아레즈였다. 타이밍 좋게 제라드가 먼저 나서지 않았다면 그는 마음껏 화를 표출했으리라. 데이빗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이미 지나간 일이다. 지금 생각해야 할 것은 동료들이 또 실수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아마 그럴일은 없을 거에요. 루이스, 그런 생각하지 말아요. 우리는 이제 남은 45분 동안, 최대한 많은 골을 넣는다는 것, 그거 하나만 생각해야 되요."
"물론이지. 두 골차 따위, 금방 뒤집어 버리자고."
[확실히 움직임이 살아난 리버풀입니다. 전반전이 끝나고 달글리시 감독에게 제대로 한 소리를 듣고 나왔나요?]
[아무래도 전반전의 경기력은 정말 좋지 못했으니까요. 케니 달글리시 감독으로부터 제대로 호통을 들었을 겁니다. 그리고 전반을 마치고 라커룸으로 들어가기 전, 스티븐 제라드 선수가 다른 선수들을 모아 놓고 무어라 이야기를 하는 장면도 화면에 잡혔었죠? 아무래도 그것 또한 후반전에 달라진 경기력의 원인이 되는 것 같습니다.]
[확실히 스티븐 제라드 선수의 리더십은 굉장하군요. 그만큼 선수단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캡틴은 드물겁니다.]
[맞습니다. 리버풀에게는 행운이죠. 하지만 아직 에버튼이 두 골차 리드를 지키고 있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리버풀로서는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추격하는 골을 성공시켜야 합니다.]
완벽하게 이전의 폼을 찾은 것은 아니었다. 아직 투박하고 매끄럽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자란 부분은 분노로, 악으로 메꾸고 있었다. 그 분노가 쓴 소리를 들어 자존심이 상했다는 것에서 유래한 것이든, 본인 스스로에 대한 것이든 중요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들은 무기력한 움직임을 벗어 던졌다. 그것이 중요했다.
경기장 이곳 저곳에서 거친 몸싸움이 벌어졌다. 오늘의 주심이 몸싸움에 관대한 편인 것이 리버풀로서는 다행이었다. 상대를 위축시키고 흐름을 빼앗는데 거친 플레이는 의외로 효과적이었다. 루카스 레이바가 펠라이니의 패스를 중간에 저지시켰다. 그리고 흘러나온 공을 핸더슨이 잡아 냈고 그는 곧바로 왼쪽 사이드를 확인했다.
'길잖아!'
데이빗은 혀를 차며 달렸다. 아직 플레이의 세밀함을 떨어졌다. 공을 빼낸 핸더슨이 자신을 놓치지 않은 것은 좋았다. 하지만 곧바로 시도한 롱패스는 좀 아니었다. 조금 긴 수준이 아니라 상당히 긴 패스였다. 이대로라면 사이드 라인 아웃 확정이다. 하지만 공을 잡을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데이빗은 온 힘을 다해 점프하며 다리를 뻗었다.
공이 밖으로 흘러 나가기 전 발등으로 공을 띄워 올리는 것으로 사이드 라인을 넘어서는 것을 막는다. 마치 새처럼 우아한 동작으로 공을 살려낸 데이빗은 관성과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사이드 라인을 지나서야 몸을 멈춰 세웠다. 공은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이었고 자신이 살려낸 공을 향해 토니 히버트가 달려드는 모습을 발견 했다. 데이빗은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죽쒀서 개 주는 꼴이 될 수는 없었다.
'제기랄, 기껏 살려 놨더니 하이에나처럼 달려 들기는!'
애초에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달려드는 타이밍이 늦어 보였다. 그렇다면 아직 승산은 있었다. 데이빗은 허벅지에 힘을 주며 반동을 이겨 내고 공을 향해 달려 들었다.
서로 공을 차지 하기 위해 양 쪽에서 달려드는 두 선수, 이대로 가다간 충돌이 불가피해 보였다. 두 선수의 간격이 1m도 되지 않았을 때, 데이빗은 공을 살짝 오른쪽으로 건드렸고 자신의 몸은 왼쪽으로 돌리며 충돌을 흘려 냈다. 그리고 전력 질주의 여파로 토니 히버트가 몸을 추스리는 사이, 재빨리 오른쪽으로 흘린 공을 따라 잡아 공을 소유했다. 그리고 방향을 꺾어 토니 히버트가 뛰쳐 나옴으로 해서 만들어진 공간을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빨랐다. 두 발짝이나 디뎓을까, 그가 가속하는 데 두 발짝이면 충분했다. 마치 성능 좋은 스포츠 카처럼, 순식간에 톱 스피드에 달한 데이빗은 그야말로 전광석화와 같았다. 공을 다루며 움직이는 선수가 저렇게 빨라도 되냐는 말이 나올 만큼 빨랐고 순식간에 에버튼의 페널티 에어리어 근처까지 접근했다.
"제기랄, 내가 간다. 넌 7번(수아레즈) 마크에 신경 써!"
같은 잉글랜드 국가 대표 출신의 필 자기엘카가 팀 동료 욘 헤이팅아에게 지시를 내리며 데이빗을 막아 선다. 그는 긴장감이 등골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비록 대표팀에서 자신은 벤치에 있었지만,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저 리버풀의 10번이 얼마나 위협적인 선수인지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한 호흡도 놓쳐서는 안되었다. 눈 한번 깜빡이는 순간에 놓칠 수도 있을 만큼 빠른 녀석이었다. 자기엘카는 데이빗의 움직임을 읽기 위해 집중력을 끌어 올렸다.
'왼쪽? 오른쪽? 어느 쪽이냐.'
패스 코스까지 봉쇄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렇다면 슈팅 코스를 견제함과 동시에 그의 돌파를 저지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패스가 나간다면 동료들을 믿어야 했다. 어정쩡하게 모든 것을 막으려 들었다가는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었다. 그는 그런 공격수였다.
하지만 그의 이런 수준 높은 집중력은 별 의미가 없는 행동이 되었다. 그는 슈팅 코스를 완벽하게 막았다고 생각했지만, 그로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코스가 남아 있었다. 그래, 만약 그의 키가 4m에 달했다면 막을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공중으로 향하는 공은 그가 막을 수 없었고 그는 자신의 머리를 지나 날아가는 공을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크로스라고? 이 위치에서? 아니, 그리고 길어 보이는데...'
처음에는 미스 킥으로 보였다. 크로스라고 하기에 공은 너무 느려 보였고 코스도 애매했다. 이대로라면 수아레즈에게 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골대로...
'잠깐! 골대라고?'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든다. 저건 미스 킥이 아니었다. 명백하게 골을 노리는 슈팅이었다. 자기엘카는 고개를 돌리며 비명과도 같은 고함을 질렀다.
"돌아가 하워드!"
찢어져라 골키퍼 팀 하워드를 부르는 자기엘카, 그는 하워드가 평소보다 앞으로 몇 발자국 나와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사실 큰 문제가 될 상황도 아니었다. 극단적으로 앞으로 나온 것도 아니었고 단 몇 발자국이었을 뿐이었다. 아마 평소와 같았다면 저 정도 거리에서 골키퍼를 넘기려는 루프 슛 정도는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워드 골키퍼는 반응이 늦었다. 그리고 자기엘카는 그것이 자신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입술을 짓 씹으며 자책하는 자기엘카.
'내가 이 녀석의 몸을 가려준 셈이 되버린 건가! 제기랄!'
슈팅 코스를 막는 다는 것이 우연찮게 자신의 팀 골키퍼로부터 상대 공격수를 완벽하게 가려 버리는 셈이 되어버렸다. 의도치 않게 스크린이 되어버린 셈이다. 아마 하워드 골키퍼는 자신의 머리 위로 공이 나타 났을 때에서야 파악했으리라. 본능적으로 자기엘카는 하워드 골키퍼가 저 공을 막아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남은 것은 저 공이 골대로 정확히 향하지 않길 바라는 수 밖에 없었다.
'제발 들어가지 마라 제발!'
느릿하게 날아가는 공을 바라보며 간절히 빌어 본다. 그제서야 공의 경로를 눈치 챈 팀 하워드 골키퍼가 부랴부랴 돌아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아무리 느리게 날아 가는 공이라고 해도 사람보다는 빠르다. 자기엘카도 그가 막아 줄 거라 기대하진 않았다.
'제발!'
간절하게 외쳐 본다. 하지만 그의 기도가 하늘에 닿기는 부족했던 것일까, 마치 약올리는 것처럼 나풀나풀 날아간 공은 골 포스트를 스치듯 지나 부드럽게 그물을 타고 내렸다. 자기엘카는 머리를 감싸쥐며 탄식했다.
[역시 이 선수가 해냅니다! 리버풀의 10번! 데이빗 장의 추격골!]
[가장 필요한 순간에 가장 필요한 플레이를 해주는 선수를 스타라고 한다면 데이빗 장은 완벽한 스타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정말 아름다운 골이 나왔습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에이스입니다! 후반전 들어 리버풀의 기세가 살아나기 시작한다고 말씀드렸는데 그 마침표를 데이빗 장 선수가 완벽히 찍어 주었습니다!]
[리버풀이 따라가기 위해서는 최대한 이른 시간 내에 추격골을 넣어야 한다고 말씀 드렸는데, 곧바로 해결해 주네요! 와우! 이런 선수를 가진 팀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느린 화면으로 다시 보시죠. 와우! 우아하게 날아 올라 공을 살려내는 동작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정말 우아한 백조와도 같은 모습입니다.]
[조단 핸더슨의 패스가 너무 길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토니 히버트가 적극적으로 달려들지 않았습니다만, 데이빗이 놀라운 움직임으로 공을 살려 내자 부랴부랴 달려오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데이빗이 한발 먼저 공을 빼냈고 혼자 빈 공간을 질주해 들어 갑니다.]
[그리고 필 자기엘카를 앞에 두고 완벽한 루프 슛으로 마무리를 짓네요. 골키퍼가 약간 앞으로 나와 있다는 것을 놓치지 않습니다. 21살의 어린 선수가 이정도로 침착할 수 있나요? 정말 대단합니다.]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 있습니다만 데이빗 장, 한 골에 만족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달려 드는 동료들을 뿌리치고 골대로 달려가 공을 꺼내 옵니다. 승리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모습! 반드시 경기를 뒤집겠다는 의지가 보이네요!]
"잘했다 이 자식아!"
공을 들고 센터 서클로 달리는 동료들과 가벼운 하이 파이브를 나누는 것으로 세레모니를 대체한다. 아직 시간은 40분 가량 남아 있었다. 하지만 아직 역전한 것이 아니었다. 느긋하게 세레모니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는 1분이라도 빨리 경기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것이 시급했다.
"앞으로 한 골만 더 넣자!"
누군가의 외침, 데이빗은 곧바로 반박한다.
"아뇨, 두 골입니다. 한 골로는 이길 수 없어요."
경기는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무승부로 만족할 생각 따위 추호도 없었다. 동료들은 단호한 그 모습에 든든함을 느꼈다. 승리에 탐욕적인 에이스의 모습에 신뢰가 생기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래, 내가 잠깐 말 실수 했네. 두 골이야. 두 골이면 충분하지?"
"차고 넘쳐. 지금부터는 절대 실점하지 않아. 두 골, 앞으로 두 골만 부탁해. 그럼 이길 수 있어."
============================ 작품 후기 ============================
-저기 데이빗이 공 살리는 장면 있잖아요
-그 장면이 길 가다가 생각이 났는데
-제가 원래 글을 쓰기 전에 그 동작을 살짝 따라 해 보거든요
-네 그래요, 길에서 팔을 벌리고 뛰어 오르는 동작을...
-죽고 싶다..
-혼자 있고 싶네요
-추천은 남겨 두시고
-Aㅏ.....
-어쨌든
-즐감해 주세요
-추천 선작 코멘 쿠폰 모두 감사드립니다. (_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