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Answer-93화 (93/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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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제라드가 공을 빼앗습니다. 제라드가 패스합니다. 데이빗이 골을 넣습니다. 리버풀의 득점 방정식이 다시 한번 증명됩니다!

-사실 아스톤 빌라의 수비진들은 예상하고 있었을 겁니다! 스티븐-데이빗 라인이 엄청나다는 사실은 설명할 필요도 없죠. 오늘도 수차례 위험한 장면을 연출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순식간에 뒷 공간을 파고 드는 데이빗의 스피드와 정확하게 수비 틈사이를 찌르는 제라드의 패스는 알고도 막지 못한다는 말이 정확하겠네요!

-이렇게 된다면 리버풀이 챔피언스 리그에 나갈 확률이 높아졌는데요.

-그렇습니다. 아스날로서는 지난 37라운드 아스톤 빌라와의 원정경기에서 무승부를 거둔 것이 치명적이었습니다. 리버풀이 토튼햄을 상대로 3:0 완승을 거두며 승점 동률을 이뤘지만 골 득실에서 앞서나가며 리그 4위를 차지했으니까요.

-현재 리버풀과 아스날의 승점은 같지만 골 득실이 무려 16포인트나 차이가 나고 있습니다. 오늘 경기에서 리버풀이 승리를 거둔다면 아스날에게는 사실상 희망이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겠지요.

-맞습니다. 사실 그 누가 리버풀이 이런 무시무시한 상승세를 보여줄 것이라고 예상이나 했을까요.

-데이빗 장 선수가 선취골을 기록하며 19호골을 기록합니다. 지난 토튼햄 전에서 득점이 없었지만 2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습니다. 현재 득점왕 경쟁을 하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선수와 맨체스터 시티의 카를로스 테베즈 선수와는 한 골 차이입니다. 리버풀 팬들로서는 데이빗 장 선수가 추가 골을 기록하여 득점왕에 오르길 바랄텐데요.

-그렇습니다. 지난 경기에서 골이 없었다고 하지만 이번 시즌 그 누구보다도 엄청난 득점 능력을 보여주고 있는 선수가 아닙니까? 몰아치는 능력도 엄청나니 리버풀 팬들로서는 기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골 장면이 다시 나옵니다. 스티븐 제라드의 패스 커팅이 정말 노련했습니다. 완전히 상대의 패스 코스를 읽어 냈다고 밖에 이야기할 수 없겠군요.

-맞습니다. 그리고 저는 두 선수간의 호흡이 정말 최고조에 이르렀다고 느낀 부분이 바로 이 장면입니다. 제라드 선수가 공을 빼앗자 마자 데이빗 선수는 이미 쇄도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제라드 선수쪽은 그 이후 보지도 않았어요. 오프 사이드도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랄까요, 패스가 자신의 발 아래 당도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 기대대로 리버풀의 캡틴은 그의 발 아래에 완벽한 패스를 찔러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루이스 수아레즈 선수의 움직임도 훌륭했습니다. 데이빗 선수가 완벽한 찬스를 잡도록 상대 수비의 시선을 분산시켰어요. 데이빗 장과 루이스 수아레즈의 호흡은 이미 상당한 수준이니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됐어!]

벤치에서 달글리시 감독이 격하게 기쁨을 표현하며 외쳤다. 한 시즌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라운드, 종종 이맘때 쯤이면 이미 순위가 확정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번 시즌은 달랐다. 37라운드에서 승리를 거두며 아스날을 제치고 4위에 올라섰지만 마지막 라운드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한다면 지난 수개월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랬기에 이번 경기를 준비하며 그 어느때보다 긴장한 달글리시였고 후반 17분, 데이빗의 선제골이 작렬하자 그 누구보다도 격하게 기쁨을 표현했다.

[계속 밀어 붙여! 상대가 우리 진영에 얼씬도 못하게 만들라고!]

하지만 기쁨을 표현하는게 지나쳐 자신의 본 업무에 소홀하지 않았다. 아직 경기는 30분 가까이 남아 있었다. 단 몇분, 아니 1분도 안되는 시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 축구였고 종료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 방심은 금물이었다. 달글리시는 선제골을 넣으며 기세를 올린 지금 승리에 쐐기를 박는 추가골을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괜찮겠습니까? 이곳은 어웨이이니 만큼 안전하게 지키는게 낫지 않을까요?]

코치의 걱정스러운 조언에 단호히 고개를 젓는 달글리시 감독이다.

[그 말도 일리는 있지만 지금 수비를 굳히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보네. 아스톤 빌라는 이번 경기가 홈 경기라는 점을 빼면 큰 동기부여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야. 강등을 당할 일도 없지만 7위 안쪽을 노려 유럽대항전에 진출할 가능성도 없지. 이기든 지든 그들의 순위에는 변화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아. 당연히 우리보다 동기 부여가 제대로 되었을리가 없지.]

그리고 걱정말라는 듯 한마디 더 덧붙였다.

[추가골이 들어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만약 스코어가 이대로 유지된다면 후반 35분 쯤부터는 잠그기를 지시할거네. 너무 걱정하지 말도록.]

결과적으로 달글리시 감독의 의도는 절반의 성공으로 끝나는 듯 했다. 리버풀은 그 이후로도 주도권을 놓지 않은채 거세게 아스톤 빌라를 몰아붙였지만 추가 득점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별 다른 위협 요소도 노출시키지 않은채 일방적인 경기흐름을 가져가는데는 성공했다. 달글리시 감독은 후반 35분이 지나고 40분이 가까워오자 교체카드를 활용하며 본격적인 잠그기에 나섰고 아스톤 빌라는 이렇다할 공격을 해보지 못한채 시간만 허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경기 종료가 눈 앞으로 다가오자 리버풀의 원정 응원석은 묘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봐, 지금 로스타임 몇분째야?]

[아직 1분밖에 안 지났어. 제기랄 한 10분은 지난거 같은데!]

[시계가 고장난 것 같아. 오 신이시여. 제발 남은 1분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해주세요.]

빌라 파크로 원정 응원에 나선 콥들은 초조하게 시계를 보고 있었다. 로스 타임으로 주어진 시간은 2분, 이제 1분이 지났을 뿐이데 10분은 지난 느낌이다. 남은 1분이 마치 영겁처럼 느껴졌다.

[오늘은 정말 엄청난 날이 될거야.]

누군가가 감격에 젖어 중얼거렸고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1초, 1초,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렀고 주심은 콥들이 염원하던 경기 종료 휘슬을 길게 불었다. 그리고 리버풀 원정 팬들이 모인 응원석에서는 어마어마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마치 이곳이 안필드인 것처럼 소리 높여 그들의 응원가 You'll never walk alone을 부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기쁨에 겨워 어쩔줄 몰랐고 누군가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들에게 있어 오늘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 수년간 팀을 이끌었던 수장 라파 베니테즈가 떠나고 후임으로 사령탑을 맡은 로이 호지슨은 팀을 제대로 이끌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팀이 중 하위권에서 허덕이는, 익숙하지 않고 유쾌하지 않은 경험을 해야했다. 어떤이들은 리버풀은 현실적으로 유로파 리그 진출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이야기하기까지 했다. 그랬던 날들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만큼 리버풀은 변했다. 과거의 전설이 돌아와 팀을 바꾸었고 새로운 스타가 등장하여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리고 이제 유로파 리그가 아닌 챔피언스 리그에 나가게 되었으니 그 기쁨이 오죽하겠는가. 데이빗은 경기장에서 그런 팬들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으하하하하!]

데이빗의 상념은 길게 가지 못했다. 누군가, 자신의 덮쳐오는 것을 느꼈고 경기를 뛴, 그리고 벤치에 앉아 초조하게 기다리던 동료들 모두가 함께 얼싸 안고 기쁨을 나누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해냈어! 제기랄! 해냈다고!]

그 누구보다 크게 웃으며 기뻐하는 이가 보였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킨 채 신에게 감사를 표하는 이도 보였다. 그리고 그 어느때보다 큰 웃음을 지은채 자신에게 다가온 제라드가 보였다. 평소 침착한 모습은 어디 갔는지 흥분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두 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잡고 외치는 모습이 그가 지금 얼마나 기뻐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잘했어! 정말 잘했다고! 넌 정말 엄청났어!]

데이빗은 입을 열어 캡틴도 수고많았다고, 대단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흥분한 채 자신을 놓아주지 않고 계속 소리치는 제라드의 모습에 그저 웃으며 마주 그와 포옹을 나누었다. 90분간 그라운드를 누비는 동안 유니폼은 온통 땀으로 범벅되어 있었지만 전혀 불쾌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이 땀이야 말로 그들이 이렇게 기뻐할 수 있는 결과를 받아들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었으니까.

[수고 많았다. 너희들은 승리자야! 하지만 먼저 이곳 런던까지 응원와준 콥들에게 인사를 하도록.]

선수들 못지 않게 기쁨에 겨운 표정을 짓고 있는 달글리시 감독이 다가와 가깝지 않은 원정길에도 아랑곳 않고 찾아와 응원해준 팬들에게 보답해 줄것을 말했다. 데이빗을 포함한 선수들은 밝은 표정으로 콥들이 기다리는 원정 응원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와아아아아-

선수들이 다가오자 팬들의 함성소리가 한층 더 커졌다. 그들은 자신들의 자랑스런 팀 로고와 이름이 새겨진 머플러를 당당히 펴 들고 성공적인 시즌을 보낸 선수들을 맞아 주었다.

[우리가 정말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아요.]

팬들을 향해 인사하며 박수를 치는 선수들, 데이빗은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자신이라고 기쁘지 않을리 없었지만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같은 표정을 지으며 눈물을 글썽이는 팬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뭉클해진 것이다.

[저들에게 클럽의 일은 남의 일이 아니라네 데이빗. 마치 어머니처럼 저들은 클럽의 성공을 바라고 기쁠때나 슬플때나 언제나 함께라네.]

데이빗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인자한 미소를 짓는 달글리시 감독, 그리고 이번 시즌, 리버풀의 성공의 주역의 손을 잡아 크게 치켜 올렸다. 데이빗은 쏟아지는 함성을 들으며 다시 한번 전율을 느꼈다.

[다음 시즌, 우리는 저들에게 더 나은 성과을 보여줄 의무가 있지. 데이빗, 오늘 팬들이 보여준 모습과 함성을 절대 잊지 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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