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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은 아까와는 다른 의미에서 경기장에 온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어찌보면 비슷한 의미였지만 가만히 앉아서 팀이 허둥대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차라리 오지 말 것을 하는 후회가 들정도로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괴로웠다.
[정말 갑자기 왜들 이러는거야.]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빈 자리가 다른이들에게 크게 다가오길 원할 수도 있다. 자신이 빠졌는데 평소보다 팀이 잘나간다면 그건 그것대로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팀이 이렇게 무기력하게 패배의 길로 빠져드는 것을 원한 것도 아니었다.
답답한 것은 데이빗 뿐만이 아니었다. 안필드를 채운 콥들은 여전히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르며 선수들에게 힘을 불어 넣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지만 답답한 경기가 계속 되자 이곳 저곳에서 탄식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오 마이 갓, 오늘 경기력은 정말 그동안 봐온 리버풀이 아닌 것 같군요.]
옆에 앉아 있던 점잖아 보이는 남성이 괴로워하며 머리를 부여잡은채 중얼거린다. 이 감상은 상당히 신사적이고 점잖은 감상이었는데 일부 관중은 몇몇 경기력이 좋지 않은 선수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데이빗, 다친 사람에게 부담을 주려는 건 아니지만 하루라도 빨리 복귀해주었으면 합니다. 당신이 빠지니까 우리는 다시 몇달 전의 암흑기로 돌아가버린 것 같아요.]
고개를 끄덕이자니 동료들을 믿지 않는다는 뜻이 될 것 같아 짧게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라고 대답해 주었다. 남자는 그건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경기 흐름이 뒤바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리고 그 남자의 생각대로 경기는 결국 뒤집히지 않았고 리버풀은 뉴캐슬을 상대로 홈에서 0:1의 패배를 당하며 23라운드 에버튼 전 이후 이어오던 무패행진을 마감하게 되었다.
언론은 당연히 호들갑을 떨었다. 23라운드부터 34라운드까지 12경기 연속 무패 행진, 사실 35라운드 뉴캐슬 전까지 포함하여 13경기에서 1패밖에 하지 않았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었다. 산술적으로 계산한다면 그간의 리버풀의 페이스는 한 시즌을 통틀어 3패를 기록할까 말까 한 수치였으니 말이다.
1패는 별 것 아니었다. 하지만 내용이 문제였다. 무패 행진을 이어갈 때의 리버풀과 어제의 무기력한 패배를 겪은 리버풀의 차이는 단 하나, 데이빗 장의 출전 여부였다. 한 기사는 로이 호지슨 시절에 리버풀이 심각한 부진을 겪을 때도 누가 없었는 지 떠올려 본다면 지금 리버풀의 상승세를 이끄는 이가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을거라 이야기 했다. 물론 그보다 한발 더 나간, 과격한 기사도 존재했다.
-리버풀, 과연 무엇이 변했나
결론부터 말하겠다. 리버풀은 그들이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암흑기(불과 몇개월 전이다)에서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다. 있다면 단 한명의 선수가 그들에게 있었다는 점이고 그가 없는 리버풀은 그들이 중하위권에서 허덕이고 있는 시절과 다를바가 전혀 없었다. 혹자는 단 한경기에서 패했을 뿐인 것을 가지고 지나치게 악의적으로 확대해석 한다고 이야기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의 패배는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로이 호지슨 경질 이후 리버풀은 23라운드부터 35라운드까지 13경기에서 9승 3무 1패라는 호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달글리시 감독의 부임이 베스트 초이스가 되었다는 말이 괜히 나온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리버풀이 승리를 챙기지 못했을 때와 승리했을때의 차이는 극명하다.
리버풀이 거둔 9승에서 데이빗 장은 모두 선발 출장했다. 그가 선발 출장하여 승리를 거두지 못한 경기는 32라운드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 밖에 없다. 28라운드 웨스트 햄과의 경기, 31라운드 웨스트 브롬위치와의 경기에서 그는 교체 출장을 했고 팀은 무승부를 거두는데 그치고 말았다. 그리고 지난 35라운드에서 그가 빠진 리버풀은 결국 무패행진을 12경기에서 마감하고 말았다.
그가 선발 출장하지 않은 경기에서 리버풀은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것이다. 표본이 너무 적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리버풀이 무승부를 거둔 두 팀이 과연 전력상 리버풀과 대등하다고 말할 수 있는 팀인가? 이번에 패배를 안긴 뉴캐슬은 리그 중 하위권에 처진 팀이다. 심지어 원정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킹 케니의 귀환에 환호하고 리버풀이 점차 살아나는 모습에 기뻐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팀이 현재 한 선수에게 지나칠 정도로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활약에 기뻐하고 훌륭한 선수를 가지게 되었다는 행복감을 느꼈겠지만 이 어린 선수가 이미 팀 전력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은 몰랐는지도 모른다.
리버풀이 좀 더 높은 스테이지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특정 선수에게 지나치게 쏠리는 부담을 덜어내야 한다. 그렇게 되지 못한다면, 이는 어린 선수를 망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데이빗 장은 이미 리버풀이란 클럽만의 유망주가 아니다. 이미 20대 초반의 선수 사이에서 누구보다 빛나는 선수가 되었고 장차 잉글랜드를 대표할 만한 특급 공격수가 될 포텐을 가진 선수다. 그가 아직 어린 나이에 과도한 짐을 지며 혹사당하는 것을 나는 원하지 않는다.
루이스 수아레즈는 훌륭한 재능을 지녔고 아직 완벽히 녹아든 것은 아니지만 본인이 리버풀에서 뛸 만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증명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그를 제외하고 과연 누가 데이빗 장에게 걸리는 부담을 대신 짊어질 수 있겠는가. 스티븐 제라드는 뛰어난 공격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는 이미 많은 것을 어깨위에 지고 있다. 오히려 리버풀의 위대한 캡틴이 짊어지고 있던 짐의 일부를 데이빗이 나눠 지고 있는 형편이고 점점 그에게 걸리는 부담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리버풀에게 이번 패배는 그들이 위치한 현재 상황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단적으로 이야기해서 만약 데이빗 장이라는 선수가 없었다면 그들이 이런 놀라운 상승세를 탈 수 있었을 거라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16경기에서 18골 6어시스트라는, 경기당 1.5개의 공격포인트를 올리는 공격수가 없었다면 리버풀은 그들이 거둔 승리의 절반도 챙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케니 달글리시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존중받아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선수를 보는 눈이 있었다는 것이다. 로이 호지슨은 데이빗 장이라는 보물을 가지고도 그를 벤치에 처박아 두고 기용하지 않았다.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리버풀이라는 명문이 중하위권에서 허덕이는 결과로 나타났다. 달글리시와 호지슨의 차이는 주어진 자원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용했느냐의 차이다. 하지만 리버풀이 다음 시즌 챔피언스 리그에 나가고 우승컵을 다투기 위해서는 자원의 폭을 넓혀야 할 필요성이 있다.
달글리시의 리버풀이 출범한 지난 23라운드부터 리버풀은 오직 리그 경기 일정만 남아 있지 않았다. 굳이 체력 안배를 해줄 필요도 없었고 데이빗 장은 박싱 데이 무렵의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지 않았다. 그는 앞으로도 리버풀에서 많은 경기를 소화해야 하고 더 많은 것을 해주어야 하는 핵심 플레이어다. 그런만큼 그의 부담을 덜어줄 서브의 필요성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아쉽게도 다비드 은고그는 자신이 리버풀이란 빅 클럽에서 뛸만한 자질이 있음을 스스로 증명해내지 못했다. 그는 충분한 기회를 받았지만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고 데이빗 장이라는 걸출한 공격수의 빈자리를 메울만한 역량이 없다는 것을 드러내고 말았다.
10-11 프리미어 리그도 이제 단 3경기 밖에 남지 않았다. 리버풀의 보드진에게는 곧 열리는 여름 이적시장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한 시점이 될 것이다. 데이빗 장과 루이스 수아레즈를 뒷받침 해줄 만한 공격수의 영입이 가장 시급할 것이고 하락세를 보이는 파비우 아우렐리우를 대체할 만한 풀백 또한 필요할 것이다. 리버풀이 진정 명문의 부활을 꿈꾼다면 그에 걸맞는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다.
존 헨리 구단주는 사실 투자할 의사가 있었다. 신임 구단주가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뭐니뭐니해도 지갑을 여는 것에 있다. 그는 충분히 지갑을 열 의사가 있었고 그럴 능력도 있었다.(물론 맨체스터 시티나 첼시의 그들에 비할바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달글리시 감독이 사실 1월 이적시장에서 더 많은 선수를 원할 줄 알았습니다.]
자신의 집무실에 찾아온 단장 코믈리와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헨리 구단주, 코믈리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시했다.
[저는 사실 그가 에딘 제코나 앤디 캐롤과 같은 플레이어를 영입해 줄것을 요구할 줄 알았습니다. 수아레즈는 감독보다는 제 의사가 반영된 부분이었죠. 그는 별 다른 요구를 하지 않았고 우리는 겨울 이적시장에서 토레스를 팔며 이득을 남길 수 있었죠.]
무려 5000만 파운드라는 거액이었다. 팀의 간판이었지만 하락세였고, 그리고 선수 본인의 의사가 강했기에 첼시로 이적시킨 그들이었고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토레스는 첼시로 이적한 후에도 폼을 찾지 못하며 헤매고 있었고 리버풀은 토레스의 빈자리를 완벽히 채워준 데이빗 장이라는 걸출한 공격수를 발굴해 냈다.
[3만 파운드로 재계약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와 또 협상 테이블에 마주하게 될 것 같군요.]
존 헨리의 말에 코믈리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가치가 있는 선수에게 돈을 주는 것을 아까워 하는 이들이 아니었다.
[저도 놀랐습니다. 20세 이하의 선수 중에서 그만한 주급을 받는 선수는 사실 드문 케이스니까요. 하지만 그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로컬보이라는 점, 그리고 나이가 어리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듭니다.]
팬들에게 어필하기 좋은 부분은 모두 가지고 있었다. 더구나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성장한 것이 아닌, 놀랍게도 부두에서 짐짝이나 나르던 노동자 출신의 선수였다. 코믈리는 이를 잘 어필한다면 팬들의 이목을 한층 더 끌수 있을거라 생각했고 그에 대한 작은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었다. 존 헨리도 코믈리가 이야기했던 데이빗 장에 대한 집중 조명을 쌍수를 들어 환영한바 있었다.
[현대 축구에서 이런 케이스의 선수를 보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스트리트 사커 출신들이 간혹 놀라운 재능을 보이며 스카우트들의 눈에 드는 경우는 있지만 말이죠.]
그를 발굴한(엄밀히 말하면 발굴했다고 보긴 어려웠지만) 개리 매칼리스터 스카우트는 데이빗을 스카우트했다는 공로 하나만으로 상당한 보상을 받았다. 그는 스스로 은퇴할 때까지 자리를 잃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사실 기사에서 호들갑을 떠는 부분도 있지만, 선수단에 대해서 어느 정도 보강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얼마전 달글리시 감독도 그런 요청을 한 바가 있었죠.]
찻잔을 들어 입가에 가져가며 고개를 끄덕이는 존 헨리 구단주, 결과를 내 주고 있는 감독에 대한 지원은 당연히 해줄 가치가 있었다.
[일단 달글리시 감독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겠습니다만, 단장이 보고 있는 선수가 있습니까?]
구단주의 질문에 코믈리는 자신있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