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Answer-83화 (83/346)

00083  -  =========================================================================

[파비우가 많이 우울해 보이더라.]

맨체스터 시티 전이 끝난 다음날, 경기에 뛴 선수들은 가벼운 회복 훈련만 소화하고 팀 일정을 마쳤다. 데이빗과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카윗은 훈련을 마치고 식사를 같이 하자고 권했고 데이빗은 개인 훈련을 마치고 나서 가도 괜찮냐고 물었다. 카윗은 당연한듯 고개를 흔쾌히 끄덕이며 자신도 집에 들려서 볼 일을 보고 나올테니 장소와 시간을 정하자고 이야기 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나서 라임 스트리트 인근의 한 레스토랑에서 만난 데이빗과 카윗은 식사를 주문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무래도...그렇겠죠.]

데이빗은 쓰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카윗도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지난 경기때 뭐라고 하긴 했지만 말야, 악감정이 있는 건 아니었어.]

[알아요.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무조건 감싸주고 덮어주는 것이 팀웍이 아니라는 것 쯤은 데이빗도 알고 있다. 오히려 서로 부족한 점을 말하고 고쳐나가는 것이 진정한 프로의 자세라고 생각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내가 했던 말 때문에 그녀석이 지금 그렇게 우울해 할 거라 생각하지도 않아. 다만 너도 알겠지만 파비우가 이번 시즌 영 폼이 좋지 못하잖아.]

데이빗도 눈이 있고 귀가 있으니 모를리가 없었다. 오른쪽 풀백으로 나서는 글렌 존슨이 공 수 양면에 걸쳐 준수한 활약을 보이는 반면 왼쪽 풀백의 자리는 상당히 불안했다. 주전 풀백 파비우가 잦은 부상 이후 폼을 잃어 버렸고 에밀리아노 인수아는 터키의 갈라타사라이로 임대간 상태였다. 리저브에서 올라온 마틴 켈리는 들쭉 날쭉한 경기력과 잦은 잔부상으로 제몫을 못해주고 있었고 말이다. 한 마디로 리버풀의 왼쪽 풀백은 그야말로 초토화 상태나 다름 없었다.

[감독님이 그래도 잘 다독여 줬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봐요.]

[본인이 납득하지 못하는 거지.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데 주변에서 뭐라 한들 받아 들여지겠어?]

그것도 그렇겠다며 데이빗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파비우와 같은 상태였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 보지만 상상이 가질 않았다. 추상적으로 어떻겠거니 하는 수준이었지 딱히 슬럼프를 겪어본 일이 없는 데이빗이 그런 마음을 알기란 무리였다.

[그래도 워낙 경험이 많은 사람이니까 곧 회복될거라 믿어요.]

[그렇겠지. 사실 슬럼프는 누구나 오는 거야. 그걸 얼마나 현명하게 극복하느냐도 프로에게는 중요한 자질이지. 파비우는 네 말대로 경험도 많고 원래 기본 실력이 출중한 친구니까 괜찮아 지겠지.]

그렇지 않으면 곤란하고 말이야-라고 덧붙이는 카윗이다.

[사실 지난 경기는 아우렐리우 씨가 주로 서는 위치도 아니었잖아요. 윙어로 나선 적은 별로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뭐...주로 풀백으로 나서긴 하지만 말야, 그녀석 원체 공격력이 좋은 친구라서 윙어도 무리 없이 소화하긴 해. 다만 요즘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것 뿐이야.]

많은 경기를 함께 한 카윗이 그렇다고 하니 데이빗은 그런가 보다 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우리 왼쪽 라인은 좀 어떻게 할 필요가 있다고. 우리 팀의 지금 주력 포메이션이 4-2-3-1 내지는 4-3-3 이잖아. 투톱도 가끔 쓰긴 하지만 말이지.]

[그렇죠.]

[근데 왼쪽 윙포워드로는 보통 네가 나서잖아. 오해하지 말고 들어. 어쨌든 네가 수비 가담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잖아. 처음보다야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안그래?]

[...맞아요.]

사실이었기에 조금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데이빗이다. 카윗은 그런 데이빗을 보며 진중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그렇게 자책할 필요는 없어. 너는 공격력이 워낙 뛰어나니까 충분히 제 몫을 해주고 있다고. 자신을 가져. 완벽한 플레이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너는 수비보다 공격에 강점을 가진 것 뿐이야. 서로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게 동료고 팀이 아니겠어?]

니가 아예 수비 의식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말야-라고 덧붙이고는 앞에 놓인 물컵을 들어 한모금 목을 축인다.

[그러니까 내 말은, 네가 공격에 전념할 수 있도록 뒤에서 확실히 받쳐줘야 한단 말을 하고 싶은거야. 그러려면 파비우가 되었든 마틴 녀석이든 간에 지금처럼 해서는 곤란하다는 거지.]

[디르크는 어떻게 그렇게 전후반 내내 미친듯이 뛰어다닐 수 있는 거에요?]

내심 부러운지 데이빗이 물어왔고 카윗은 '이것봐라'하는 눈빛으로 데이빗을 바라 보았다.

[왜? 부럽냐?]

데이빗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궁했다. 카윗은 어처구니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을 이었다.

[사실 내 자랑같지만...보통 순발력이나 민첩성, 스피드, 이런 쪽은 타고나는 게 크고 훈련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부분이 적다고 하잖아? 근데 체력도 분명 타고나는 게 있어. 아 오해는 하지마. 훈련으로 극복할 수 없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니까.]

[하지만, 아무리 체력이 좋아도 90분 내내 뛰어다니면 당연히 힘들어. 나도 마찬가지야. 그래도 내가 리버풀이란 빅 클럽에서 뛰기 위해서는 남들과 차별화된 무언가 하나쯤은 있어야 하잖아. 나같은 경우에는 그게 남들보다 한발 더 뛰는 것일 뿐이야. 그러니까 죽기 살기로 뛰어다닐 수 밖에 없지.]

그러면서 조금은 쓰게 웃는 모습이다. 그도 사실 조국 네덜란드 리그 에레디비지에에서 득점왕까지 차지한 우수한 공격자원이었다. 하지만 프리미어 리그, 그중에서도 명문 리버풀로 이적하며 공격 능력에 대한 부족함을 절감하게 되었다. 감독의 요구였든 본인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이었든 카윗은 다른 분야에서 자신의 장점을 살려나가기 시작했고 그런 성실함이 지금까지 카윗을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남의 장점을 부러워해서는 발전할 수 없어. 본인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갈고 닦을 생각을 하라고. 약점이 너무 두드러져서야 문제가 있겠지만 너는 지금 충분히 좋은 흐름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

[...고마워요 디르크.]

진심어린 조언에 데이빗은 깊은 감명을 느꼈다. 그도 느낀바가 있었지만 화려하게 보이는 프로 세계의 뒷면에는 처절한 생존 경쟁이 있었다. 그 경쟁 상대가 때로는 동 포지션의 라이벌일수도 있었고 자기 자신과의 싸움일 수도 있었다. 대중들은 엄청난 주급을 받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유명 선수들을 보며 동경하지만 그 뒤에서 벌어지는 피튀기는 노력은 알지 못한다.

[에이, 이런 설교는 나하고는 안 어울리는데. 이런건 스티븐이 해야 어울린다고. 물론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숨막히는 시간이 되겠지만.]

[...딱히 숨막히진 않던데요.]

데이빗의 대답에 '역시 넌 마조히스트였어!'라며 오버스러운 동작을 보이는 카윗이다. 데이빗은 왜 내가 마조히스트냐고 따져 물었고 카윗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예전에 제이 스피어링 그 친구가 퍼스트 팀에 올라왔을 때 얘기해줬거든. 리저브에 제정신이 아닌 녀석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너라고. 리버풀의 사디스트 웨스트 코치와 어울리길 즐기는 마조히스트라고 했지.]

[...제이 이 빌어먹을 녀석...]

오랜만에 들리는 친구의 이름이었지만 전혀 반갑지 않다고 데이빗은 생각했다. 이를 갈며 두고보자고 중얼거리는 모습에 카윗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나저나, 제이 그 친구는 종종 퍼스트 팀에 올라오더니 요즘은 통 소식이 없네.]

[...아무래도 레이바 씨하고 메이렐레스 씨가 괜찮은 폼을 유지하고 있으니까요. 캡틴이야 말할 것도 없고요.]

스피어링이 유망주 소리를 듣고 있다지만 퍼스트 팀에 자리가 있어야 기회를 주든 말든 할텐데 지금 퍼스트 팀의 중앙 미드필더 라인은 상당히 괜찮았다. 비록 비싼 주급에 걸 맞지 못한 활약을 보이고 있는 크리스티안 폴센같은 이도 있었지만 루카스가 만개한 기량을 뽐내고 있었고 메이렐레스도 충분히 훌륭했다.

거기에 팀 사정도 4위권 진입을 위해 죽을 힘을 다하고 있는 처지라 함부로 유망주에게 기회를 주긴 힘들었고 말이다.

[그것도 그렇지. 오히려 네가 참 특이한 케이스거든.]

카윗의 말에 데이빗이 손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잖아. 보통 콜업되고 바로 결과를 내는 케이스는 정말 드물거든. 제이 그 친구도 그렇고...또 몇명 있었는데...아무튼, 처음에는 보통 적응을 못하고 왔다갔다 하는 편이거든. 너처람 딱 하고 자리를 잡아 버리는 경우는 음...없었던 것 같은데.]

그 말에 픽 하고 웃음을 흘리는 데이빗이다. 말하는 경우가 다르긴 했지만 갑자기 호지슨 감독 시절의 우울했던 시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가요? 운이 좋았던 거죠.]

[매 경기 골을 쳐넣고 있는 네가 그런 말을 하니 굉장히 얄미워 보이는 거 알아?]

얄밉다는 듯 째려보는 카윗의 모습에 데이빗이 어깨를 으쓱하며 웃음을 지었다.

============================ 작품 후기 ============================

내일부터 설 연휴동안 연재를 아마 못할 것 같아 부족한 용량이나마 올려봅니다. 다들 설 잘 보내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