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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게 뭐야!]
TV를 보던 제임스가 왈칵 성을 내며 소리쳤다. 오른손에 잡혀 있던 맥주 캔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졌고 왼손은 탁자위에 올려진 채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티티도 '빌어먹을' 이라고 중얼거리며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다 이긴 건데! 젠장! 빌어먹을!]
리버풀은 후반들어 완벽히 흐름을 타고 맨체스터 시티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후반 초반에 나온 수아레즈의 멋진 터닝슛으로 한골을 만회하고는 후반 17분에는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페널티 박스 왼쪽에서 공을 잡은 데이빗이 절묘하게 공간으로 침투하는 수아레즈에게 슬쩍 공을 찔러주었고 당황한 레스콧이 수아레즈를 잡아 당기며 넘어뜨렸다. 심판은 지체없이 페널티 킥을 선언했고 리버풀의 키커 스티븐 제라드는 자신의 이름값에 걸 맞게 차분히 성공시켰다.
후반 20분도 안되어 2골을 몰아친 리버풀의 기세는 이후로도 꺾이지 않았다. 데이빗과 수아레즈는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진을 곤욕에 빠뜨렸고 제라드 또한 공격 전반을 지휘하며 공격수들에게 양질의 패스를 공급해 주었다.
그리고 후반 25분, 제라드의 스루 패스를 받은 데이빗이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 팀의 세번째 골이자 역전골을 작렬시켰을 때는 대부분 이 경기는 리버풀이 잡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TV로 보던 티티와 제임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불퉁한 표정으로 TV를 노려보는 제임스, 화면에서는 경기의 하이라이트가 다시 재생되고 있었고 데이빗의 골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스티븐 제라드! 공을 몰고 나옵니다. 전방으로 패스!
-엄청난 패스! 데이빗 장 곧바로 슈팅! 골입니다! 리버풀의 역전골!
-리버풀 엄청납니다! 후반 25분만에 세골을 몰아치면서 경기를 단숨에 뒤집어버리는 군요!
-제라드 선수의 엄청난 스루패스였습니다! 뒷공간을 파고 들어가는 데이빗에게 절묘하게 연결시켜주는 군요!
-수비가 몰려 있는 좁은 틈 사이를 절묘하게 찔렀습니다. 데이빗 선수의 침착한 마무리도 돋보였네요.
-그렇습니다. 논스톱으로 오른발 인사이드로 절묘하게 감아찼습니다. 오늘 멋진 선방을 여러차례 보여준 기븐 골키퍼도 손을 쓸 도리가 없는 완벽한 피니쉬였습니다.
[이때까진 좋았다고!]
분통이 터지는지 제임스가 으르렁거렸다. TV 화면의 장면이 바뀌고 후반 45분이 지난 로스 타임의 모습이 잡혔다.
-야야 투레, 중앙 지역에서 볼을 커트해 냅니다. 지체없이 전방으로 연결하는 군요. 실바가 이어 받습니다.
-오, 실바의 멋진 볼 터치! 한 순간에 메이렐레스를 제쳐내는 실바! 테베즈에게 패스! 테베즈 원터치로 다시 실바에게! 실바 슈팅을 시도합니다!
-골입니다! 실바의 침착한 왼발 슈팅이 맨체스터 시티를 패배의 위기에서 구해내는 군요! 정말 엄청난 게임입니다!
후반 정규 시간이 끝난 로스타임, 그중에서도 막바지에 터진 맨체스터 시티의 동점골이었다. 다시 결승골을 넣기에는 양 팀에게 모두 시간이 부족했고 경기는 결국 3:3 동점으로 마무리 되었다.
전반, 답답한 경기력에 실망하고 후반을 기대하며 지켜보았다. 그리고 기대대로 시작하자마자 추격골을 넣었고 완전히 기세를 타고 평소와 같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친구 데이빗이 후반 25분에 역전골을 기록하자 기뻐서 어찌할 바를 모른 두 사람이다. 마치 자신들이 골을 넣은 것 처럼 기뻐했고 리버풀의 승리를 확신했다. 하지만 마지막 1분, 아니 불과 몇초를 남기고 모든 것이 바뀌었다.
[입에 넣으려고 했던 고기를 눈 앞에서 빼앗긴 기분이야. 제기랄.]
제임스의 한탄에 티티도 동감했다. 같은 무승부라도 이런 식의 무승부는 정말 느끼는 바가 달랐다. 감독 교체 이후 리버풀이 무패 행진을 이어나가는 중간에 있었던 무승부는 대부분 지고 있는 상황에서 따라잡은, 팀의 기세가 꺾이지 않는 것들이었다면 지금의 무승부는 다 잡은 승리를 눈앞에서 놓친 기분을 들게 했다. 당연히 같은 승점 1점이라도 선수들, 그리고 감독, 팬들이 느끼는 바도 다를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토튼햄도 비겼네.]
같은 시각 다른 구장에서 열린 소식이 전해졌고 홈에서 스토크 시티와 경기를 가졌던 토튼햄이 무승부를 거두었다는 나쁘지 않은 소식에 티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6위의 리버풀, 바로 위인 5위 팀이 바로 토튼햄이었기에 오늘 만약 토튼햄이 이겼다면 얼마 남지 않은 리그 일정상 타격이 컸을지도 몰랐다.
[...아스날은 이겼잖아. 제기랄.]
3위 맨체스터 시티가 승점 1점을 추가하는 동안 아스날이 블랙풀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며 3점을 추가, 3-4위간 승점차가 1점차로 줄어 들었다. 그리고 5위와의 격차도 4점차이로 벌리는데 성공했다.
[그러니까...그럼 우리가 지금 아스날하고 승점 차이가...]
손을 꼽아가며 승점을 계산하는 제임스, 티티가 옆에서 먼저 답을 말했다.
[7점차야.]
[그래! 역시 티티 계산이 빠르잖...이 아니라! 7점이라고 제기랄!]
감탄하다 화를 내는 모습에 티티가 피식 웃고 말았다.
[웃을 일이 아니라고! 다음 라운드에서 아스날을 이긴다고 해도 승점 4점 차이나 나잖아. 이거 어떻게 할거야?]
[그래, 좀 타격이 크지만 다음 라운드에서 아스날을 이긴다면 희망을 걸어볼 수도 있어.]
티티의 말에 제임스가 무슨 뾰족한 수라도 있나 하고 귀를 기울인다. 티티가 차분히 설명을 시작했다.
[아스날을 잡고 우리는 일정 상 다른 팀들보다 수월한 편이야. 그리고 37라운드에는 토튼햄과 홈 경기가 있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는 여지가 있지. 반면 아스날은 우리와 경기를 치르고 35라운드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경기가 있지. 맨유 놈들이 이기길 바란다는 건 참 웃기는 일이지만 충분히 승점을 쌓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티티의 말에 제임스가 점점 기대가 어린 표정을 지었다. 티티는 자신감 있는 어조로 계속 말을 해나갔다.
[그리고 맨체스터 시티는 다음 라운드에서 토튼햄과 경기를 치러. 그리고 에버튼과의 경기도 남아 있다고. 토튼햄은 그보다 더해. 맨체스터 시티와 붙고 첼시와의 경기도 있지. 물론 우리와의 매치도 있고 말야. 그리고 우리는 아스날 전과 풀햄 전을 빼면 거의 다 홈이야.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긴 설명이 끝나자 제임스과 화색을 띄며 맞장구를 쳤다.
[그렇구나! 좋아! 아직 희망이 있다 이거지?]
[그렇다니까. 그러니까 아직 실망하기에는 일러.]
[그래. 제기랄, 그래도 오늘 이겼으면 확실히 승점차이를 팍! 좁힐 수가 있었을 텐데...]
못내 아쉬운 지 혀를 차는 제임스, 티티도 '누가 아니래.' 라고 동조했다.
-리버풀, 다 잡은 승리를 눈앞에서 놓치다.
프리미어 리그 32라운드, 안필드에서 열린 리버풀과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는 32라운드 최고의 빅 매치로 꼽혔다. 이전 9경기에서 7승 2무라는 가파른 상승세로 상위권 도약을 노리는 리버풀과 최근 주춤한 모양새였지만 호시탐탐 1위를 노리고 있는 맨체스터 시티와의 대결은 리그 막바지 상위권의 향방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했다. 가끔 이름 값 높은 빅 클럽간의 매치가 서로 수비에만 신경쓰다 지루하게 끝나는 경우도 있는 반면 이번 리버풀과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는 그야말로 난전을 거듭하는 혈투였다. 양 팀은 세골씩을 주고받는 난타전을 펼쳤고 멋진 골들이 그라운드 위에서 펼쳐졌다.
먼저 주도권을 잡은 쪽은 맨체스터 시티였다. 전반 14분, 야야 투레의 전진 패스를 이어 받은 테베즈가 멋진 드리블로 제이미 캐러거를 제친 뒤 아크 정면에서 강렬한 중거리 슈팅을 시도했다. 호세 레이나 골키퍼가 몸을 날려보았지만 역부족이었고 테베즈는 득점에 성공했다. 맨체스터 시티의 좋은 출발이었고 리버풀은 최근의 상승세가 한 풀 꺾이는 듯한 일격이었다.
선취골을 허용한 이후 리버풀의 경기력은 지지부진했다. 왼쪽 윙어로 나선 파비오 아우렐리우는 인상적인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고 스티븐 제라드와 디르크 카윗은 수비에 신경을 쓰느라 제대로 된 공격 작업에 참여하지 못했다. 공격수로 나선 데이빗 장이 중앙으로 내려와 공을 연결하며 몇차례 인상적인 패스를 선보였으나 득점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오히려 전반 43분, 맨체스터 시티의 다비드 실바의 환상적인 패스를 이어 받은 벨라미가 글렌 존슨과의 경합을 이겨내며 슈팅을 시도했고 추가골을 득점하는 데 성공하며 전반에만 2골을 넣는 힘을 발휘했다.
후반전에 들어서며 리버풀은 부진했던 파비오 아우렐리우를 빼고 메이렐레스를 투입하며 변화를 꾀했고 곧바로 반격에 성공했다. 후반 5분, 데이빗 장이 코너에 몰린 상황에서 끈질기게 공을 지켜냈고 상대의 파울에도 집중력을 발휘하며 돌파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강렬한 중거리 슈팅을 시도했고 이날 최고의 경기력을 보였던 셰이 기븐 골키퍼가 선방해 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펀칭해낸 공이 루이스 수아레즈에게 향했고 수아레즈는 멋진 터닝슛으로 추격하는 골을 성공시켰다.
기세가 오른 리버풀은 더욱 강하게 맨체스터 시티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후반 17분에는 수아레즈가 얻어낸 페널티 킥을 스티븐 제라드가 침착하게 성공시키며 경기를 원점으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리버풀이 역전골을 넣는데 필요했던 시간은 단 8분이었다. 후반 25분, 스티븐 제라드의 날카로운 스루패스를 이어받은 데이빗 장이 감각적으로 감아차며 팀의 세번째 골을 기록했다. 2:0으로 앞서나가고 있던 맨체스터 시티는 망연자실한 표정이었고 경기는 완벽히 리버풀의 흐름으로 가고 있었다.
하지만 끝날때 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다른 종목의 명언처럼,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 무슨일이 벌어질 지 모르는 것이 축구였다. 후반 로스 타임도 거의 다 소모된 시점, 중앙 지역에서 야야 투레가 상대의 느슨한 패스를 가로채는 데 성공했다. 시간을 의식한 그는 지체없이 전방의 다비드 실바에게 연결해주었고 실바는 환상적인 기술을 선보이며 카를로스 테베즈와 원 투 리턴을 주고 받으며 리버풀의 수비를 농락했다. 그리고 감각적인 왼발 슈팅으로 맨체스터 시티를 패배의 위기에서 구해냈다. 이날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한 다비드 실바는 MOM에 뽑혔고 평점 8.5점으로 최고 평점을 받았다.
이날 무승부를 거둔 리버풀은 최근 10경기 무패 행진을 이어가는 데는 성공했지만 내심 찝찝한 모양새다. 경기 종료를 단 몇초를 남겨둔 시점에서 골을 허용하여 무승부를 거두었기에 그간 이어온 상승세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반면 맨체스터 시티는 같은 날 승리를 거둔 4위 아스날에게 승점 1점 차이로 추격당하며 3위자리가 위태로워졌지만 마지막 기적같은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반전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평.
리버풀과 맨체스터 시티가 승점 1점씩을 나눠 갖는 바람에 상위권의 순위 다툼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더구나 리그 잔여 경기에서 상위권 팀 간의 대진이 대부분 남아 있는 상황이라 서로간의 맞대결에서 운명이 갈릴 확률이 높다.
-스티븐 제라드, "리버풀, 승리할 자격 있었어."
리버풀의 주장 스티븐 제라드가 지난 맨체스터 시티전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비록 전반에 우리는 좋지 못한 플레이를 보였지만 후반들어 우리는 다시 평소의 모습을 찾았다."
"감독님과 코치들은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었다. 그들은 라커룸에서 우리에게 용기를 심어 주었고 자신감을 고취시켰다. 나는 그들과 오랜 시간동안 함께 하길 원한다."
"후반은 우리가 경기를 지배했다는 사실에 대해 아무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승리할 자격이 있었지만 마지막 단 몇 초를 지키지 못했다."
"아쉬운 일이지만 이런 것이 축구다. 축구에서는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나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실망하지 않았고 앞으로 더욱 철저한 플레이를 해나갈 것이다."
"우리는 지난 10라운드를 치르며 단 한차례도 패하지 않았다. 이는 굉장한 일이고 앞으로도 이런 모습을 계속 이어나가길 희망한다. 시즌이 끝나고 우리의 순위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