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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이제 시작하네."
TV앞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기대감 어린 눈빛을 빛내는 김영후, 그는 한국에서 리버풀을 응원하는 팬이었다.
"아, 오늘은 진짜 이겨야 되는데..."
지난 맨체스터 시티전에서 무승부를 거두었기에 오늘 만약 승리하지 못한다면 4위권 도약은 사실상 자력으로는 힘들어진다고 봐야했다. 영후는 오늘 반드시 리버풀이 승점 3점을 획득하여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에 한발 가까워지길 바랬다.
"선발 명단이...어디 보자...레이나, 켈리, 캐러거, 스크르텔, 존슨, 메이렐레스, 루카스, 제라드, 로드리게스, 데이빗, 수아레즈...좋아, 라인업은 괜찮아 보이네!"
리버풀의 포메이션과 선발 명단이 TV화면에 잡히자 영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시발, 솔직히 저번에 아우렐리우는 정말 더럽게 못했으니까."
맥주를 한모금 마시고 앞에 놓인 닭다리를 하나 들어 입으로 가져간다. 역시 야식, 그중에서도 축구를 볼때에는 치킨과 맥주만한 조합이 없다고 생각하며 기분 좋은 감탄사를 흘린다. TV화면에는 어느새 리버풀의 핵심 선수로 지목된 데이빗이 클로즈 업 되어 잡혀이었다.
"그나저나 데이빗 장 쟤는 진짜 쩔어."
한국에서도 골수 리버풀 팬들 사이에서는 리저브에 있는 시절부터 유명했던 선수였다. 영후가 활동하는 리버풀 팬 카페에서도 리버풀이 공격진의 부재로 고통받던 시절 데이빗을 올리라는 글들이 심심찮게 올라왔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올해 1월, 달글리시가 부임한 이후 확실한 주전자리를 꿰차며 리버풀의 상승세를 이끌고 있는 그를 보며 역시 자신들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고 기뻐하는 영후와 카페 회원들이었다.
"와, 진짜 다시 봐도 대박이네. 어떻게 저렇게 침착하게 골을 넣는 걸까."
데이빗의 지난 경기 하이라이트 장면이 다시 나오자 영후는 감탄을 터뜨릴 수 밖에 없었다. 지난 경기도 물론 생 중계로 봤고 하이라이트는 10번은 넘게 본 것 같았지만 봐도 봐도 멋지다고 생각했다.
"근데 딱 봐도 동양인인데...창...장...Chang 이면 한국계야? 중국계야? 국적은 잉글랜드라고 되어있지만..."
성이 장이라면 일본쪽은 아니겠고-라고 중얼거린 영후, 어차피 국적은 잉글랜드였으니 별 의미는 없었지만 그래도 한국계 선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런 애가 한국 국대였으면 국대 경기도 진짜 기대해 볼 만 할텐데..."
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문제점-골결정력-을 생각하니 한숨이 나오는 영후였다. 답답한 마음을 털어내려는 듯 맥주를 다시 한모금 들이킨다.
"에휴, 쟤 하나 온다고 한국 축구가 바뀌겠냐. 택도 없는 소리지."
고개를 저으며 자조 섞인 웃음을 흘린다. 그런 영후의 상념을 털어내려는 듯 경기가 시작되었고 곧 영후는 오오 하는 탄성과 함께 TV화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에미레이트 스타디움, 아스날의 홈 구장이다. 6만이 넘는 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경기장으로 올드 트래포드 다음으로 많은 관중을 수용하는 경기장이다. 아스날 측에서 경기 전 리버풀 팬들에게 할당해준 좌석은 대략 9000여 석, 나머지 5만이 넘는 인원은 당연히 홈 팀 아스날의 팬들이었다.
어느 구장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어웨이 팀에게 호의적인 곳은 프리미어 리그, 아니 잉글랜드 내에 없다. 특히 상대가 비슷한 레벨의 팀, 순위 경쟁을 하는 라이벌 팀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우우우우우우우-!!!!!
리버풀의 키 플레이어이자 최근 리그에서 가장 위협적인 공격수인 데이빗 장이 공을 잡자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은 야유 소리로 가득 찼다. 아스날을 응원하는 팬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야유가 상대방을 기죽게 만들길 원했다. 그들은 수만 관중들의 야유소리를 대담히 넘겨버릴 만한 선수는 몇 안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특히 어린 선수라면 더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휴, 야유 소리 봐라.'
데이빗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안필드의 인간들이 열광적이고 상대 팀에게 지옥을 선사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곳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의 지금 분위기도 그에 못지 않다고 느꼈다.
'이 자식들을 모두 입 다물게 만들면 기분 째지겠지. 그러니까...음 그게 언제였더라. 아 그래, 첼시와 경기할 때였지. 그때 우리가 세골을 때려 넣으니까 야유하던 인간들이 다 경기장 밖으로 나가 버렸어.'
그때 기억을 떠올리자 씩 웃음이 나왔다. 지금 이자리에서 데이빗은 목표를 세웠다.
'후반 끝까지 경기를 볼 엄두가 나지 않게 만들어 줘야겠다.'
경기장을 끝까지 지키는 것은 원정 팬 9000여 명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데이빗은 자신을 노려보며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는 수비수-사냐-를 향해 천천히 공을 몰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축구 중계를 보며 먹을 양으로 주문했던 치킨이 순식간이 동나 버렸다. 영후는 입맛을 다시며 손을 빨았다.
"좀 천천히 시킬 걸 그랬나."
휴지에 슥슥 손을 닦고는 컴퓨터를 켰다. TV 중계를 보며 카페 회원들과 같이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일상이었다. 짧은 부팅 시간을 기다리며 TV 화면을 보던 영후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와 진짜 대박!"
화면에서 데이빗이 자신을 마크하던 수비수 사냐를 몇번의 볼터치로 순식간에 제쳐내는 장면이 나왔다. 그리고 반대쪽 사이드에서 침투하던 막시 로드리게스에게 절묘한 로빙 패스를 찔러주었고 아쉽게 로드리게스의 슈팅이 하늘로 떠버렸다. 영후는 탄식을 흘리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아 이거 넣었으면 진짜 대박인데..."
전반 5분만에 홈 팀을 상대로 선제골을 넣는다면 이보다 더 좋은 출발은 없었을 것이다. 영후는 방금전의 찬스가 너무나 아쉬웠다.
"근데 데이빗 쟤는 진짜 개쩐다. 시발 호구슨 X병신은 저런 애를 벤치에만 처박아 놨으니..."
이미 짤리고 없는 호지슨 감독을 다시 한번 욕하는 영후였다. 감독 교체 이후 완전히 다른 팀이 된 것 같은 리버풀이었기에 아쉬움은 더욱 컸다.
"진짜 호구슨 딱 한달만 일찍 짤랐어도 지금 4위는 껌으로 하고 있었을 텐데."
빠르게 손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며 카페에 로그인 한 영후는 대화방에 입장했다. 오늘도 많은 회원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영후도 그에 동참했다.
캡틴제라드: 아 방금 진짜 너무 아쉬웠음. 데이빗 패스 진짜 개 지렸는데.
TheKop: 그러게요. 데이빗 얘 진짜 장난 아니네요. 솔직히 요즘 얘가 다 먹여 살리고 있는듯.
YNWA: 막시가 좀만 더 침착했으면 하는 아쉬움. 솔직히 거기서 허공으로 날려버릴 줄이야...ㅠㅠ
스티븐킹: 이걸 날리면 어떻하냐 막시야...ㅠㅠ
캡틴제라드: 그래도 오늘 저번 맨시티전보다는 확실히 나아 보이는듯여.
기적의리버풀: 데이빗 얘는 솔직히 걱정 안해요. 23라운드 이후 얘가 경기에 뛰어서 진적이 없음. 더 대단한 건 매 경기 공격포인트를 올리고 있다는 거...진짜 얘 없었으면 우리팀 이렇게 잘나가지 못했을듯여.
시라노: 팀이 잘나가서 좀 가려진 감이 있는데 얘도 지금 사실상 소년 가장이나 다름 없어요.
수아레즈: 막시가 날린건 좀 아쉬운데 그래도 오늘 우리 선수들 움직임이 좋네요. 지난 경기는 전반에 너무 못했는데.
Defiant: 지난 경기는 솔직히 아우렐리우가 너무 말아 드셔서...
TheKop: 와 심판, 저걸 카드 안주네요! 미친듯-_-;
데이빗짱: 사냐 이 망할 놈이! 우리 데이빗에게 무슨 짓이냐!
스티븐킹: 이걸 옐로 카드도 안주는 건 진짜 말도 안되는 일인듯-_-+
김쓰럴: 와나 심판 제정신이 아닌듯. 완전히 뒤에서 발을 걸었구만 장난하나
커니스: 사냐 멘붕한듯. 처음부터 데이빗한테 탈탈 털리기 시작하니 제대로 빡친 거 같네요.
픽뷰: 그런듯요.ㅋㅋ너무 잘해도 문제가 있는듯...다치면 안된다 데이빗..ㅠㅠ
수아레즈: 14경기 15골 6어시 중인데...솔직히 이거 게임에서도 나오기 힘든 기록 아닌가요.
시라노: 진짜 리그를 씹어먹고 있죠. 솔직히 요새 우리 팀이랑 하는 상대는 죄다 데이빗을 장난아니게 견제하니까요.
YNWA: 아직 어린 친구라 더 클 가능성도 있죠. 진짜 다치면 리버풀 망함..ㅠ
Pino: 데이빗이 직접 차려나 보네요. 요즘 들어 점점 데이빗이 프리킥이나 코너킥 상황에서 캡틴하고 나눠차기 시작하는 거 같네요.
신밧드: 킥이 워낙 정확하니까요. 솔직히 파워가 아예 딸리는 것도 아니고...아마 1~2시즌 내에 이녀석이 리버풀의 프리킥이나 코너킥을 전담할 거라 봅니다.
Yesman: 아! 골대...!!!
캡틴제라드: 아 이게 안들어가다니..ㅠㅠ
수아레즈: 골대 맞고 안으로 꺾일수도 있었는데 하필 밖으로...ㅠㅠ
데이빗짱: 진짜 5cm만 안쪽으로 갔어도...와 진짜 재수도 없지...
Roy: 와 진짜 대박 프리킥이었는데...
Defiant: 근데 데이빗 쟤 멘탈이 진짜 좋아보이네요. 보통은 아쉬워서 막 머리 쥐어뜯고 그럴텐데 그냥 한번 픽 웃고 돌아서는데 남자지만 반할듯...
시라노: 그렇게 다들 게이가 되가는 거죠.
Pino: 난 게이가 아닙니다. 다만 좋아했는데 그게 남자일 뿐...어?
캡틴제라드: ㅋㅋㅋㅋ데이빗이 여러 회원들 성 정체성을 찾게 하는듯. 이 마성의 남자 같으니.
수아레즈: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알무니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게 뭐옄ㅋㅋㅋ
Roy: ㅋㅋㅋㅋㅋㅋㅋㅋㅋ잠깐 이게 무슨 일이죸ㅋㅋㅋㅋㅋㅋㅋ]
캡틴제라드: 와낰ㅋㅋㅋㅋㅋㅋㅋㅋ골킥을 데이빗한테 갖다 바치다니ㅋㅋㅋㅋ
Defiant: 정말 엄청난 패스가 나왔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
김쓰럴: 알무니아ㅋㅋㅋㅋㅋㅋㅋ고맙다ㅋㅋㅋㅋㅋㅋ복받을거여ㅋㅋㅋㅋㅋ
TheKop: 데이빗도 황당한가봐요ㅋㅋㅋ골 넣고 저렇게 웃는 건 처음보는듯ㅋㅋㅋㅋㅋ
Pino: 벵거 감독 표정 대박ㅋㅋㅋㅋ알무니아 너 이새끼 하는 표정인듯ㅋㅋㅋㅋ
스티븐킹: 완벽한 어시스트ㅋㅋㅋ알무니아 땡큐!ㅋㅋㅋ
캡틴제라드: 살다살다 이런 일도 보는군요ㅋㅋㅋㅋ
데이빗은 별 다른 세레모니를 하지 않았다. 골을 넣고 솔직히 웃음을 참느라 혼났기 때문이다. 별 생각 없이 상대의 골킥을 대비해 천천히 뒤로 물러서고 있었는데 갑자기 알무니아의 골킥이 자신을 향해 굴러올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자신을 둘러싸고 축하해주는 동료들도 낄낄거리며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진짜 우리 캡틴보다 더 멋진 패스였어!]
수아레즈가 낄낄거리며 얘기했고 다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라드도 '정말 흉내낼 수 없는 마법같은 패스였지!' 라며 맞장구를 쳤고 선수들은 더 크게 웃을 수 있었다.
[저도 놀랐다고요. 설마 나한테 굴려줄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어요?]
[그러니까 말이야. 나도 축구하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니까.]
[데이빗 이 운도 좋은 녀석같으니! 알무니아 저 친구 나한테도 저런 패스를 좀 해줬으면 좋겠네.]
고개를 돌려 아스날 선수들을 보니 다들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실점의 원인이 된 알무니아 골키퍼는 그야말로 죽을상을 하고 있었다. 아마 지금 심정은 정말 말이 아닐 것이다.
[그나저나 오히려 더 잘된 일이야. 저렇게 골을 먹히면 정신이 나갈게 분명해. 아마 지금쯤 죽고 싶은 생각밖에 안들걸?]
[정신을 다잡기 전에 더 몰아쳐야지. 전반에 최소한 한 골은 더 넣고 끝내자고.]
데이빗은 선수들의 말에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전반 10분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다. 시간은 아직 충분했다.
============================ 작품 후기 ============================
다들 명절은 잘 지내셨나요. 저는 돼지처럼 이것저것 처묵처묵했더니 아직도 속이 더부룩 한것 같네요^^;;
수요일에 면접을 보러갑니다. 이것저것 준비할 게 있다보니 글을 쓸 시간이 좀 부족하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