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Answer-73화 (73/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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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에 있던 퍼거슨 감독의 얼굴이 조금 상기되었다. 그리고 껌을 씹는 속도가 빨라졌다. 모두 그가 흥분했을때 나타나는 징후였다.

[저게 뭐하는 짓이야!]

상황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집중력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한 것이 실점의 원인이었다. 퍼거슨은 코치를 불러 지시를 내렸다.

[하파엘에게 전해. 또 얼간이 같이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바로 빼버리겠다고 말이야.]

가차 없는 질책. 코치는 그렇게 말하면 선수가 오히려 위축되지 않겠냐고 되묻지 않았다. 선수의 심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이용하는 것이 퍼거슨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젠장, 한방 먹었군.]

거칠게 벤치에 주저 앉는 퍼거슨 감독, 분명 리버풀이 초반부터 데이빗을 이용한 공격을 시도할 거라 예상했었다. 누가 뭐라해도 현재 리그에서 가장 잘나가는 공격수 였고 돌파, 패스, 슈팅 모든 면에서 위협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기 시작 전부터 그에 대한 대처를 준비했다. 하지만 시작 5분만에 자신의 지시는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지(Ji)가 있었다면 좀 더 수월하게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코치의 아쉬움에 퍼거슨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격적인 능력이야 나니에 비해 부족한 면이 있었지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비가담 능력, 팀 플레이 이해도는 Ji, 박지성의 장점이었고 이는 퍼거슨 감독이 강 팀을 상대할때나 상대의 키 플레이어를 봉쇄하는 역할을 맡길때 가장 믿을 수 있는 카드 중 하나로 꼽히는 원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부상이야. 없는 선수를 아쉬워 해봐야 나오는 것은 없어.]

쓰지 못하는 카드는 잊어버리는 것이 좋았다. 퍼거슨은 이른 시간 실점을 하며 끌려가게 된 경기를 뒤집기 위해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데이빗은 자신을 죽일 기세로 노려보는 하파엘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켕기는 일을 한것도 아니고 딱히 더러운 플레이로 골을 넣은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좀 전에 사이드 라인쪽에서 코치에게 한 소리를 듣고 왔는 지 그때부터 계속 저 표정이다.

'그러게 누가 그렇게 긴장을 풀고 있으래?'

오히려 자존심 상해야 하는 것은 자신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피식 하고 실소를 날려주었고 살기가 두배로 강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뭐 흥분하면 나쁠 것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열받아 달려들어 주길 원하는 마음도 있었다. 아마 자신이 조금만 더 요령이 좋았다면 여기서 상대의 멘탈을 흔들어 놓는 훈훈한 대화를 시도했겠지만 그러기에는 아직 경험이 부족했다. 데이빗은 진심으로 아쉬웠다.

'이런 것도 베테랑들에게 좀 배워야 하나.'

남이 걸어온 시비를 받아 치는 것에는 그럭저럭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먼저 시비를 걸기에는 아직 자신이 너무 순수(?)하다고 생각한 데이빗은 탄식을 흘렸다.

'오늘은 데이빗의 날인 것 같군.'

플레이 메이커로 나서 경기를 조율하고 있던 제라드는 그렇게 생각했다. 경기 전 상대 감독으로부터 도발을 당했기에 흥분해서 경기를 그르치면 어쩌나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주변의 충고를 잘 받아 들였는지 생각보다 침착했다. 아니, 적당한 흥분 상태, 플레이하기에 최적의 상태가 된 것 같았다. 제라드는 퍼거슨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하긴, 요즘들어 맨날 저녀석의 날이긴 하지.'

토레스가 떠나고 그 자리가 전혀 아쉽지 않을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데이빗에게는 예전부터 기대를 걸었던 자신이었지만 아직 최고 레벨이라 말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좀 더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스물한살도 안된 어린 동료는 자신의 생각을 쓰레기통에 던지게 만들었다. 제라드는 이런 종류의 오산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다시 그에게 공을 전달했다.

[나이스 패스!]

패스를 받는 데이빗의 몸놀림이 목소리만큼이나 경쾌했다. 그리고 다시 하파엘과 대치했다.

와아아아아아-!!!!!!!!!!!

선제골의 주인공 데이빗이 다시 한번 왼쪽 사이드 라인에서 하파엘과 대치하자 멋진 플레이를 기대하는 관중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데이빗은 정수리를 타고 찌르르 한 전율을 느낄 수 있었고 냉랭한 표정으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는 하파엘을 응시했다.

'생각보다 냉정하네.'

흥분해서 달려 들어주었다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랬다면 그대로 사이드 스텝을 밟아 한번에 제칠 수 있었을 것이다. 데이빗은 아쉽지만 차선을 준비했다.

톡, 토옹, 통

데이빗이 하파엘을 눈 앞에 두고 장난이라도 치듯 리프팅을 시작했고 하파엘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아 데이빗 장 선수! 하파엘을 앞에 두고 리프팅을 하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캐스터의 질문에 해설자가 난감한 듯 뺨을 긁으며 입을 연다.

-글쎄요, 아무래도 하파엘 선수가 단단히 지키고 있으니 흔들기 위함이겠죠. 일종의 도발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안그래도 하파엘 선수는 방금 전 실점 장면에서 데이빗 선수에게 돌파를 허용했거든요. 흥분하지 않고 자리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하파엘.

해설자의 말대로 데이빗의 의도는 도발이라고 봐야 했다. 적어도 하파엘은 그렇게 느꼈다.

'이 빌어먹을 애송이가 감히 날 앞에 두고 이딴 짓거리를 해?!'

성질대로라면 바로 저 재수없게 까딱이는 발목을 걸어 볼썽사납게 나자빠지게 만들고 싶었다. 아마 올드 트래포드였다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안필드, 즉 원정경기였고 전반 10분도 안되서 카드를 받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데이빗의 의도를 단순히 도발로 치부했고 이는 큰 착각이었다. 데이빗은 수비수를 눈앞에 두고 의미없는 동작을 한적이 여지껏 단 한번도 없었다.

왼발, 오른발로 번갈아 가며 가볍게 공을 튕기던 데이빗은 갑자기 공을 왼쪽으로 차 올리며 급격히 시동을 걸었다. 이를 갈고 있던 하파엘은 문제 없이 이를 따라 움직였고 데이빗이 다급히 왼발로 공을 다시 뒤쪽으로 튕겨 올렸을 때 이겼다고 생각했다.

'쓸데 없이 헛 짓거리를 한 댓가다. 네놈은 등진 상태에서는 전혀 무섭지가 않다고!'

왼발로 뒤쪽으로 튕긴 공을 지키기 위해 데이빗이 등을 보였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몸으로 압박하며 그를 밀어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데이빗의 의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투웅-

하파엘을 등진채, 중심을 오른쪽에 둔 채로 데이빗은 왼발을 뻗었다. 그리고 발 끝만 까딱 움직여 공을 자신의 머리 위로, 그리고 하파엘의 머리 위로 넘겨버렸다. 자신을 밀어 내기 위해 힘을 쓰고 있던 하파엘 보다 반전을 미리 준비하고 있던 자신이 빠를 것은 자명했다. 애초에 지금까지 스피드 경쟁에서는 밀려본 적이 없었다. 데이빗은 자신을 밀어 붙이는 하파엘을 타고 돌아 넘어가며 뒷 공간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제길! 스몰링! 7번(수아레즈) 놓치지 마!]

빠르게 지시를 내리며 백업에 들어오는 웨스 브라운, 데이빗은 안면이 있는 상대라고 느꼈다.

'그러니까...분명 예전에 리저브에 있을때 만났던 상대였지.'

그때 기억이 정확하게 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이겼다는 사실은 기억하고 있었다. 데이빗은 죽어라 뛰어나오는 웨스 브라운을 보며 씩 웃었다. 그리고 미련 없이 옆으로 빼는 패스를 조금 뒤쪽으로 흘려 주었다.

돌파에 뛰어난 공격수가 있다는 점은 상대보다 수적우위를 점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공격수와 수비수의 1:1 상황에서 공격수가 이겨 낸다면 상대는 반드시 커버를 들어와야 했다. 이는 부분적으로 아웃넘버가 발생함을 의미했다. 그리고 데이빗은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욕심부리지 않았다. 다만 그 선수가 좋아하는 위치에 적당한 속도로 굴려주었을 뿐이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공에 달려드는 선수는 리버풀의 백넘버 8, 스티븐 제라드였다.

-스티븐 제라드!!!!

-슈팅!!!! 아!! 반 데 사르 골키퍼! 엄청난 슈퍼 세이브입니다!

-스티븐 제라드의 파워풀한 슈팅을 간신히 쳐내는 데 성공한 반 데 사르 골키퍼! 굉장한 선방이었습니다!

-제라드 선수도 정말 아쉬워 하는 군요! 머리를 감싸쥐는 스티븐 제라드! 데이빗 선수는 박수를 치며 오히려 캡틴을 독려하고 있군요.

-엄청난 위기에서 벗어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하지만 코너킥으로 이어집니다.

[아까웠어요.]

코너킥을 차기 위해 왼쪽 코너로 발걸음을 옮기는 제라드에게 아쉬웠다 이야기하는 데이빗, 제라드도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코스가 좀 쉽게 들어갔어. 완벽한 찬스였는데, 미안하다.]

그러면서 '다음에는 놓치지 않을 거야' 라고 덧붙이는 모습에 데이빗은 든든함을 느꼈다. 누가 굳이 이야기해주지 않아도 이미 앞을 보고 있는 모습이 멋있다고 느껴졌다. 데이빗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초반부터 리버풀은 데이빗을 앞세워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로도 고삐를 늦추지 않고 맨유를 밀어붙였다. 하파엘은 의욕은 넘쳤으나 데이빗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어쩔수 없이 그때마다 센터백이 커버를 나와야 했다. 스몰링은 수아레즈를 맡아야 했고 에브라는 카윗을 막아야 했으니 스티븐 제라드를 막을 선수가 없었다. 어쩔수 없이 맨유의 미드필더들이 깊숙히 수비가담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럽게 맨유의 라인 간격은 엉망이 되어버렸다. 루니가 중반으로 내려오며 공백을 최소화 하고자 분투했으나 최전방의 베르바토프는 역습에 특화된 공격수도 아니었고 활동량이 뛰어난 선수도 아니었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이미 그를 제외한 맨유 선수 전원이 수비에 가담하는 거나 다름 없는 상황이었기에 맨유는 이렇다할 찬스를 잡지 못한채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나마 미드필더들의 헌신적인 수비가담으로 추가 실점은 허용하지 않았고 리버풀은 전반에 한골을 성공시킨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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